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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의 시인의 서재] 소수자의 감정과 캐시 박 홍의 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푸틴 대통령은 옛 소련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환상을 자국민에게 심어 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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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푸틴 대통령은 옛 소련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환상을 자국민에게 심어 주면서 장기 집권을 꾀하고 있다. 그가 전쟁을 일으킬 때마다 지지율이 치솟았기에 이번에도 주도면밀하게 전쟁을 준비하고 침략했다.
최근 들어 러시아에서 독재자였던 스탈린의 업적을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한다. 스탈린이 지배했을 때 우크라이나는 엄청난 곡창 지대임에도 수확된 농산물을 정부가 대부분 몰수해 가는 바람에 3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거리에 시체가 널려 있어도 사람들은 기력이 없어 시체를 치울 수도 없었다. 우크라이나 대기근에 대해 소련은 사과한 적이 없었다.
위기일수록 약자들이 차별과 폭력에 노출
인터넷 시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용기를
몸에 각인된 고통 새기는 ‘문학의 힘’ 주목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키예프)로 쳐들어가는 탱크 부대를 맨몸으로 막아서는 남자를 보니 가슴이 먹먹하다. 대개의 전쟁이란 독재 성향이 강한 정치인이 자국 내에서 기반을 강화하고자 주변 국가를 침략할 때 발생한다. 조선도 임진왜란 때 일본 권력자들의 정치 전략으로 인해 큰 시련을 겪었다. 강한 자는 전쟁을 일으키는 명분을 자신에게 유리한 논리로 조작해 힘으로 밀어붙인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을 교묘하게 속이면서 공습을 강행한 푸틴에게 분노심이 일어난다. 러시아 내에서 반전 시위를 하는 국민을 모두 잡아들이는 구시대적인 폭정이 사라져야 한다. 중국의 시진핑 역시 장기 집권을 꾀하면서 대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김정은 역시 세습 왕조의 후계자처럼 북한 인민을 호도하고 있다.
뉴스를 보니, 어나니머스(Anonymous) 해커들이 러시아 정부의 사이트를 공격했다는 소식에 잠시 희망이 보인다. 그들은 사이버 검열과 감시에 반대하면서 시민 불복종 운동도 한다. 인터넷에서 핵티비즘(Hacktivism)의 활동을 하는 가상 단체인데, 그들이 흑기사처럼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무참하게 짓밟는 이러한 사태를 전 세계인들이 감시하고 저지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 대전으로 번질 우려 때문에 군사행동을 자제하는 서방의 지도자들도 좀 더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펼치길 바란다.
히틀러나 푸틴처럼 침략 전쟁을 일으키는 정치인은 범죄자로 낙인을 찍는 것도 필요하다. 전쟁을 일으키고 승리한 지도자를 영웅으로 기록하는 역사관도 재고되어야 한다. 국제 관계는 냉혹한 정글이지만 인터넷이 발달한 현대는 전 세계인들이 그들의 만행을 보고 규탄할 수 있다. 나도 페이스북에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라는 포스팅을 올렸다. 독재자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이 고통 속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빨리 해결되기를 바란다.
개인 혹은 국가 집단에서, 소수자 혹은 약자들은 이러한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기 쉽다. 이러한 문제에 반응하면서 미국의 인종 차별을 선명하게 부각한 캐시 박 홍(Cathy Park Hong)의 시와 산문은 관심을 끈다. 2020년에 출간한 산문집인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는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녀는 〈타임〉지의 표지 모델도 되었다. 이 책에서 그녀는 미국에 사는 유색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미묘한 차별과 배제를 아주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토로한다. 특히 코로나19로 아시아계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무시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더 주목을 받고 있다.
현대 미국 문화에 대하여 성찰을 이끌어 내는 그녀는 미국 시단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그녀의 첫 시집 〈몸을 번역하기(Translating Mo'um)〉은 아주 실험적인 시집이다. 한국계 후손이라는 자의식이 강하게 배어 있다. 두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한국인 2세의 번민이 선명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몸은 영어로 ‘Body’인데, 그녀는 몸의 한국식 발음을 그대로 시에서 영어로 표기한다. 부모의 언어를 소리로 감각하는 무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3개의 연작시로 된 ‘몸을 번역하기’ 1부에서는 한국인의 애틋한 정서가 담겨 있다. ‘몸(mo’um)은 모피/ 음식/ 심장/ 욕정// 혹은 몸은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 몸은 이 모든 것이 아니다./ 엄마는 늘 내게 물었지, 몸이 아파(mo’umi a-p’a)?// 그리고 내가 제일 먼저 몸을 정의할 때는 감기,/ 차가운 한기, 열이 나는 기운 ― // oma ujiruh(엄마, 어지러워요)// 감기라는 선물은 학교를 하루 쉬게 하고/ 내 담요 온도 조절 장치, 집은 온통 뜨거워.’
이런 표현을 보면, 그녀의 몸에는 한국의 고유한 정서와 삶이 응축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미국인이지만 몸에 각인된 정동(情動)을 표현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몸의 고통이 푸틴의 심장에 깊이 각인되기를 바란다.
https://www.reader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5120
"소수자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리고 싶어요" SF 소설가 정소연 - 독서신문
SF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러니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그리는 장르라고 합니다. SF 전문 칼럼니스트 심완선이 오늘의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여섯 명의 SF 작가를 직접 만나, 새로운 이야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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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몇 년 전 미국에서 한국 SF의 특성에 관한 강연을 하셨죠. SF 연구자이자 UC 리버사이드 영문학과 교수인 셰릴 빈트의 『에스에프 에스프리』가 국내에 번역되면서 한국어판 출간 기념 인터뷰 영상이 올라왔는데, 거기에 소연 님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소연 님 강연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요. 어떤 내용이었나요?
“UC 리버사이드에서 하는 행사였는데 셰릴 빈트가 와서 발제와 토론을 듣고, 질문도 주고받았어요. 미국의 SF는 백인 남성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어요. 아이작 아시모프나 로버트 A. 하인라인을 읽지 않기가 어렵죠. 분명 여성혐오적 경향이 굉장히 강한 장르였고요. SF에 진입하려면 이를 극복해 나가면서 읽고 쓰고 연구해야 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SF에 입문할 때 꼭 『파운데이션』을 읽지 않아도 되잖아요. 과거 SF를 적극적으로 배제하지 않으면서 비교적 현대적인 SF를 자연히 접하는 일이 가능해요. 한국에서는 어슐러 K. 르 귄이나 로저 젤라즈니에서 많이 시작하는 것 같아요. 아예 한국 작가로 SF 독서를 시작하시는 경우도 점점 더 많이 보이고요. 그러니 기본 인식 차이가 있어요. 그로 인해 한국 독자들이 어떻게 SF를 더 진보적이고 덜 여성혐오적인 장르로 느끼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셰릴 빈트는 그런 상태, 즉 르 귄 같은 작가가 캐논으로 받아들여지는 SF 세계가 존재한다는 점 자체가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에요. 처음부터 극복할 대상이 없는, 애당초 이를 자연스레 피해가는 독자들과 작가들이 있다니, 너무 좋은 곳이라고. 그분들의 반응을 보며 이런 상황이 참 귀한 거구나 싶었어요.”
Q. 에세이 『세계의 악당으로부터 나를 구하는 법』에서 ‘경계에 관해 쓰고 싶다’고 말하는 부분을 봤어요. 예전에 『미지에서 묻고 경계에서 답하다』라는 책에 실렸던 글이죠. 제가 본 소연 님의 글을 통틀어 가장 뚜렷하게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드러났어요. 처음 쓴 이후로 시간이 꽤 지났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그 글은 약 13년 전에 쓴 글이에요. 제가 한국어 교사를 할 때니까요. 지금도 기본 방향은 크게 차이가 없어요. 글을 쓰는 일은 어떤 식으로든 목소리를 부여하는 작업이잖아요. 어떤 말을 할지보다 어떤 목소리를 선택할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발화의 내용보다 발화자가 중요한 면이요. 그런데 역시 소설로 사회 운동을 하는 건 아니니까 자연스러운 인물을 쓰고 싶거든요. 나에게서, 독자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경계 바깥의 인물이 되어버리면 몰입하기가 어려워요. 저도 쓰기가 어렵고요.
그래서 목소리를 갖기 어려웠을 등장인물을 넣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오늘의 SF》 2호에 실린 「수진」이라는 단편이 있어요. 매우 짧은 글인데, 그냥 읽으면 클론 업체에서 만든 나의 클론이 한집에 산다는 이야기에요. 하지만 자세히 보면 커밍아웃을 하고 가족과 사실상 단절된 상태의, 20대 후반에서 30대인 여성이 도시에서 어쨌든 자기 삶을 꾸리기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정상성에서 튕겨 나간 사람이 어쨌든 일상을 살아가는 거요. 경계 근처에서 잘 안 보이는 사람을 발화자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지도 위의 지희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탄 배가 코로나 때문에 정박하지 못하고 떠돌면서 계속 메일을 보내는 이야기에요.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 연락하고 걱정하는 이야기죠. 그런데 이성 커플과 동성 커플은 대응 가능한 방법이 달라요. 제도부터 다르니까 상당히 달라진단 말이에요. 지희에게 편지를 쓰는 ‘나’는 법적으로 지희와 연결될 수 없는 처지라, 지희의 엄마에게 연락해서 겨우 필요한 서류를 받아요. 똑같은 팬데믹 상황이라도 분명히 동성 커플에게 더 어려운 지점이 있어요. 그런 부분을 자연스럽게 치고 들어간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Q. SF라고 하면 흔히 거대한 세계와 낯선 물체를 생각하죠. 소연 님의 SF는 일상적 상황이 많이 나오잖아요. 등장인물이 적고 관계의 범위도 좁아요. 본인과 가족, 친구, 연인 정도죠. 작은 세계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마치 미시사로 세계를 읽는 듯해요. 이렇게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계를 말하기 위해서 작가가 꼭 세계 규모의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한 명 한 명의 삶에 세계, 제도, 구조, 사회적 가치관 등이 다 반영되어 있잖아요. 작은 단위에서도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작가로서 제가 잘 다룰 수 있는 이야기의 크기가 있으니까요. 개인 단위에서 일어나는 변화, 경험, 생각, 갈등이 다루기 편해요. 제가 커다란 세계관이나 이야기를 다루는 데 능숙한 작가는 아니에요. 큰 이야기를 하면 교조적으로 나올 것 같아요. 설명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아서 신경 쓰는 점도 있어요. 이야기의 크기를 무리해서 키우기보다, 내가 잘 쓰는 규모에서 이야기를 계속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Q. 작은 세계, 그리고 일상적인 모습에 SF를 더할 때 나타나는 효과가 있잖아요. 거대한 구조를 그릴 때와는 또 다르겠죠. 효과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작가로서 자신의 장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미시적으로 개인의 일을 다루면 보통 작고 따뜻한 이야기라고 하죠. 하지만 사람 하나하나는 하나의 세계잖아요. 한 사람의 행동에는 세계가 반영되어 있어요. 얼마나 우주적인 존재인가요. 내가 조금 움직여도 내 그림자는 여럿이 많이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저도 편의상 세계는 크고 개인은 작다고 이야기하긴 하지만, 소설 안의 개인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소설에 나오는 개인은 실존하지 않는, 매우 과장된 개인이에요. 소설에서 드러내고 싶은 어떤 부분만 엄청나게 큰 상태죠. 사람 하나하나의 삶이 얼마나 복잡하고, 행동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외부 영향과 개인의 결심이 들어있는지 보이면 좋겠어요. 개인의 무게가 독자에게 와닿는 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게 SF에서 특히 잘 작동한다고 생각하고요. SF는 세계에 대한 사고실험을 많이 하잖아요. 큰 단위로 사고실험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사람 하나로 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SF를 통해 세계를 현실과 다르게 움직이면 그 안의 사람들도 전부 기울어져요. 그 부분을 포착하는 일도 중요하니까요. 만약 현실에서 개인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사소설이나 르포가 되겠죠. 하지만 세계가 변화하고, 그곳의 개인은 어떻게 같이 변화하는지 보여주는 건 SF 같아요.”
Q. 여성, 퀴어, 청소년 인물에게 일관성이 있어요. 소연 님 소설은 이들을 여상하게 다루는 점이 좋아요. 방금도 이야기했지만 레즈비언 커플이 아주 당연하게 존재한다는 점도 그렇고요.
“어느 정도는 일부러 하는 거예요. 퀴어 문학이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교육적인 측면이 있죠. 소설 속 세계에 퀴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곤 하잖아요. 저는 이유 없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리고 싶었어요. 퀴어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모습으로요. 어떤 인물이 퀴어라는 소수자적 특성이 있지만, 여러 특성 중 하나일 뿐인 모습으로. 특별한 소재처럼 다루지 않고 평이하게 쓰고 싶어요. 앞에서 소설을 사회 활동으로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 부분에는 사회적인 인식이 들어가요. 성소수자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리는 소설이 더 필요하다고요. 독자분들은 비율상 이성애자가 많을 테죠. 성소수자를 당연하게 존재하는 요소로 받아들이도록 하고 싶어요.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을 그나마 직접 다룬 소설이 「마산앞바다」와 「처음이 아니기를」이죠. 둘 다 옛날에 쓴 글이에요. 최근의 글은 주인공이 갈등을 겪더라도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겪는 갈등은 아니게 하려고 신경을 많이 씁니다. 만약 리얼리즘 소설을 쓰면서 이렇게 특성이 탈락된 상태를 쓰면 이상할 거예요. SF니까 시공간을 아예 바꿔버리면, 저의 카두케우스 시리즈처럼 다른 사회가 되면 소설을 읽는 사람도 ‘여기는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잖아요. SF를 쓰는 사람으로서 특히 적극적으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니, 앞으로도 신경 쓸 것 같아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평등의 역량 키우기
"차별금지법이 뭐예요?"지난해 12월 초, 바람이 쌩쌩 부는 여의도 국회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는데 40~50대 남성으로 보이는 시민이 묻는다. 속으로 '옳다구나' 하며 설명한다."차별받은 경험이 있으시죠. 학력이나 외모가 다르다거나 비정규직이라고 차별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열심히 일해도 비정규직이라고 임금 적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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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이 뭐예요?"
지난해 12월 초, 바람이 쌩쌩 부는 여의도 국회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는데 40~50대 남성으로 보이는 시민이 묻는다. 속으로 '옳다구나' 하며 설명한다.
"차별받은 경험이 있으시죠. 학력이나 외모가 다르다거나 비정규직이라고 차별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열심히 일해도 비정규직이라고 임금 적게 받는다거나 배제당하거나. 그런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자는 겁니다."
"그러면 좋은 거잖아요. 그런데 왜 안 만들어요?"
"대기업이 있는 경총이나 일부 개신교 세력들이 차별금지법에 반대해서 그들을 의식해서 안 만들고 있어요. 경총은 차별해서 돈을 많이 벌면 좋으니 차별금지법이 불편할 테고, 일부 개신교 세력들은 성서에 대한 극단적 해석과 성 소수자 혐오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거든요."
"국회가 그러면 안 되죠. 차별은 나쁜 건데··· 고생하세요."
▲ 선거용 유세차량 같은 차를 타고 다니며 홍보하는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 | |
ⓒ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 관련사진보기 |
오늘 또 한 명이 차별금지법에 대해 알아가는구나 싶다. 선전전을 하거나 캠페인을 할 때 차별금지법에 대해 질문이 들어오면 기분이 좋다. 최근에는 선거용 유세차량과 비슷한 차를 타고 서울시민들에게 차별금지법을 홍보하러 다닌다. 일명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 약칭 '차만세' 활동이다.
서울 곳곳에 유세차량을 타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하자고 발언도 하고 율동도 한다. 처음에 시민들은 진짜 선거 유세차량으로 오해도 했다. 어디 후보인가 싶어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운다. 그러면 우리는 외친다.
"우리 유세단은 특정 대선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유세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차별로 불이익을 겪고 모욕당하는 사회를 바로잡자는 차별금지법이야말로 민생법 아닙니까. 대선보다 더 중요한 게 차별금지법이라는 걸 시민들과 이야기 나누러 왔습니다. 국회가 일 좀 하라고 압박하러 나왔습니다."
때로는 시장을 돌며 "사람 차별 안 된다는 법을 만들자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 손뼉도 쳐주신다. 모두 차별이 나쁘다는 걸 알고 그래서 법으로 제정하자는데, 도대체 누가 막는 걸까?
일관되게 차별금지법을 반대한 경총
대표적인 두 집단이 일부 성 소수자를 혐오하는 극우 개신교 집단과 경총(경제인총연합회)이다. 전자는 성서에 대한 극단적인 해석으로 성 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여 교세를 확장하려는 것이 목적이라면, 후자는 노동자들을 나누고 차별해서 얻었던 이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 노동자나 서민의 이해가 아니라 대기업 경영주의 이해를 고려한 것이다.
사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을 권고했을 때도 호들갑을 떨며 반대했던 집단이 경총이다. 경총은 웬만한 인권법안에는 모두 반대했다. 2007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때도 반대했고, 남녀차별금지법 제정할 때도 반대했고, 연령차별금지법 제정도 반대했다. 이유는 과거와 다르지 않다.
이번에도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차별금지법을 만들면 장애인이든 여성이든 모두 똑같이 임금을 줘야 한다", "각종 소송에 휘말리고 경영자들의 경영권을 침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주장이다.
그동안 노동자들을 다양한 사유로 나누고 차별해서 초과 수익을 얻은 것이 경영자였다는 진실을 실토한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직접고용해야 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해서 얻는 차별이나 비정규직에게는 수당을 적게 줘서 얻는 사용자들의 이익을 떠올려도 왜 경총이 반대하는지는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이 엄청난 제재 조치가 있는 양 주장한 것은 왜곡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4개 법안(장혜영, 이상민, 권인숙, 박주민 대표발의안)에서 형사 처벌은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도왔다고 불이익을 주는 경우에 한정됐다. 시정권고나 시정명령 정도가 전부라 그리 위력적인 법이 아니다.
하지만 표를 의식하는 국회의원들은 대형 교회의 표나 재벌을 의식해서 '사회적 합의'가 안 됐다며 법 제정을 미뤄왔다. 심지어 10만 명의 국민동의입법청원이 된 법안은 90일 이내에 심사해야 하지만 법사위는 두 번이나 심사를 미루더니 급기야 21대 국회 만료 시점인 2024년까지 차별금지법 심사를 연장시켰다.
차별의 경험을 말할 수 있게 하는 출발점
차별금지법은 차별에 대해 차마 말하지 못하고 참아야 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제대로 말할 수 있도록 판을 열어주는 법안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나 연령차별금지법과 같은 개별차별금지법과 달리, 포괄적 차별금지법은개인이 겪는 다양한 차별의 맥락이나 복합차별의 경험을 설명하고 피해를 구제하기 좋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어 하나의 사유로만 차별받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라서 차별받기도 하지만 학력이 낮아서 차별받기도 한다. 개별차별금지법은 개인이 겪은 복잡한 차별의 경험과 맥락을 하나의 차별 사유로만 설명해야 하느라 피해를 드러내고 법적으로 구제받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면 우리는 차별이 무엇인지 사유하고 어떻게 해야 서로를 존중하고 평등한 사회로 나갈 수 있는지 고민하게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구성원들의 평등 감각과 역량이 높아질 것이다.
재벌처럼 이익을 얻기 위해 차별을 의도적으로 하는 집단도 있지만, 서로를 몰라서,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차별 관행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에게 차별과 평등에 대해 생각하고 배우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실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생기고 괴롭힘이란 무엇인지, 괴롭힘을 강제하는 직장 내 구조적 문화와 관행에 대해 생각하며 직장문화가 변화했던 것처럼 말이다.
▲ 시장을 돌며 선전전을 하는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 활동가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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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어디까지 왔나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 공약으로부터 촉발됐고, 2006년 인권위 권고안, 2007년 차별적인 법무부의 7개 사유(성적 지향, 병력, 출신 국가, 언어,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범죄 전력, 학력)의 차별금지법안 때문에 공론화됐다. 7개 차별 사유를 뺀 차별금지법은 차별조장법이라는 문제의식으로 국내외 인권단체가 들고 일어섰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들어, 일부 개신교에 성 소수자 혐오세력이 득세하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난관에 빠졌다. 2013년에는 의원 발의된 차별금지법안 두 개가 철회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20대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이 전혀 발의되지 않는 상황까지 이르렀고, 이 때문에 지난 15년간 유엔인권이사회, 유엔사회권위원회, 자유권위원회,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등 유엔인권기구는 한국 정부에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열네 번이나 권고했다.
그런데도 인권단체들과 차별받는 당사자들의 끊임없는 활동으로 국민적 지지는 높아졌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88.5%가 찬성했으며, 한겨레 2021년 조사에는 71.2%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날 정도로 높다.
이제 국회는 더는 '사회적 합의'가 없어서 입법이 어렵다는 핑계를 대기 민망해졌다. 곧 대통령이 바뀔 것이다. 누가 되든 차기 정부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국정과제로 삼고 즉각 제정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032991.html
“왜 안내 목소리는 여자, 의사 캐릭터는 남자인 걸까요?”
초등생들 IT업계 성차별 주제로 국회 발표지난해 11월부터 조사한 내용 책으로그림책 발간아이티 기업에 바라는 7가지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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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업을 통해 생각보다 많은 곳에 성차별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하철 안내 방송은 왜 여성의 목소리이며, 엔트리(초등학생용 코딩 프로그램) 캐릭터의 의사는 왜 전부 남성인지 등 새로운 시각을 갖고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서울 방화초 5학년 류지석군)
28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초등학생 18명이 떼 지어 입장했다. 서울 방화초등학교 5학년1반 학생들이다. 이틀 뒤 6학년이 되는 이들은 ‘아이티(IT)업계 성차별’을 주제로 지난해 11월부터 넉달간 고민한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국회를 찾았다.
이날 국회 방문은 김상희 국회부의장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12월3일 방화초 5학년1반 이명희 담임교사와 학생들은 <초등학생들이 밝힌다! IT업계 성차별 핫IT슈>라는 제목의 그림책 발간을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는데, 이 소식을 접한 김상희 부의장이 이들을 국회로 초대한 것이다. 김상희 부의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방송위원으로 활동하며 과학기술계 인력 성비 불균형 문제에 주목해 왔다”며 “학생들이 아이티업계 성차별 이슈를 조사하고 공부해 책까지 냈다기에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고 했다. 발표회에 참석한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초등학생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다기에 (대통령 선거) 유세 일정도 안 잡고 왔다”고 했다.
지난해 ‘이루다 사건’이 있었다. 20대 여성의 모습으로 꾸민 인공지능 채팅로봇 캐릭터 ‘이루다’가 성소수자와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의 표현을 거르지 않았고, 이용자들은 그를 향해 성희롱을 했다. 개발사 스캐터랩은 문제가 되자 지난해 1월 이루다 챗봇 서비스를 잠정 운영 중단했다. 이 사건을 거치며 아이티업계 성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형성되고 있지만 초등학생에게 이 문제는 쉽거나 친숙하지 않다. 최서림양은 “한 달에 한 권씩 학급문고의 책을 정해 읽는데, 에이다 러브레이스(1815∼1852, 최초의 프로그래밍언어를 구사했다고 알려진 여성 수학자)를 알게 됐다. 당시 시대적 분위기 탓에 대학 진학조차 할 수 없었으나 끝내 컴퓨터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로부터 시대가 한참 지난 지금은 과연 어떨까 궁금했다”고 했다.
아기·강아지·할아버지 등 다양한 가상 인플루언서들이 참가하는 오디션의 풍경을 상상한 그림. 사진 <it업계 성차별="" 핫it슈=""> 갈무리</it업계>
학생들이 교사의 도움을 받아 확인해 본 통계는 처참했다. 컴퓨터 학과 재학 인원, 전임교수 성비 모두 성별 불균형이 심각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조사결과를 보면, 인공지능 사업 추진 기업의 소프트웨어 전문인력 여성 비율은 19.1%이며, 인공지능 사업 추진 기업 대표자 여성 비율은 3.1%에 그쳤다. 학생들은 이런 불균형이 차별로 이어진 사례를 일상 곳곳에서 찾아냈다. 최서림양은 “대부분의 인공지능 비서 목소리는 다 여성이고, 챗봇 캐릭터도 여성이며, 루지 같은 가상 인플루언서도 전부 예쁘고 몸매가 좋은 여성이었다”고 했다. 구글 포토앱이 흑인을 인식하지 못했던 사례, 여권 로봇이 동양인의 눈을 감은 것으로 인식해 자꾸 오류가 있었던 사례도 알게 됐다. 아이들은 그림책에 이렇게 적었다. “아이티 기술 개발자들 대부분이 남자란 말이야. 당연히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과정에 편견이 들어가지 않겠어?”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유쾌한 상상력도 덧댔다. 인공지능 목소리를 내 취향대로 바꾸는 앱을 출시한 여자 ‘잡스’의 모습, 아기·강아지·할아버지 등 다양한 가상 인플루언서들이 참가하는 오디션의 풍경 등을 그려 넣었다. ‘초등학생이 아이티 회사에 바라는 점 7가지’도 소개했다. “인공지능에게 데이터를 학습시킬 때 반드시 여자 직원이 함께 하게 해주세요” “새로운 서비스나 기술을 유통할 때 성차별적 요소가 없는지 한번 더 생각해 주세요.”
책을 만들며 현실 세계의 성차별을 경험하기도 했다. 지난 1월 크라우드펀딩 소식이 한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그 밑에 악성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김동현군은 “‘예쁜 에이아이(AI)를 부러워한 못생긴 아줌마의 열폭’이라는 댓글이 너무 어이없어서 기억난다”고 했다. 이명희 교사는 “이게 ‘찐 세상’이다, 성차별 이슈는 워낙 복잡하고 민감하다. 하지만 좋은 취지로 했던 일인만큼 위축될 필요 없다고 아이들을 다독였다”며 “‘이것도 차별 아니에요?’ ‘차별이 이렇게 많았어요?’라고 물어오는 학생들, ‘여성 빅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겠다’는 학생을 보고 있노라면 수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28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초등학생 눈으로 본 IT분야 성차별 국회 발표회’가 열렸다. 사진 김상희 의원실
발표가 끝나고 발표자로 나섰던 학생 3명에게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셋 모두 성차별은 있고, 우리나라가 바뀌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대답했다.
“성차별은 있어요. 단순히 성비 때문만이 아니라, 아이티 업계에서는 육아휴직도 잘 못 간다고 알고 있거든요.”(최서림양)
“여성을 위한 편의시설이 적다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꿈을 덜 키우는 것 같아요.”(김동현군)
“바꿔야 할 게 아직 있는 것 같아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그렇고요. 여성에게는 불필요한(덜 중요한) 일을 시키는 것 같아요.”(정민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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