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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을 환대한 성도들 4:12~15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수고 4:16~20
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17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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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이 처음에 복음을 전했을 때는 그의 육체가 약했는데도 성도들이 그를 천사나 예수님처럼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간하는 이들 때문에 성도들이 참된 말을 하는 바울을 원수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들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시 해산의 수고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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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을 환대한 성도들 4:12~15
바울의 권면은 신뢰 관계에 기초합니다. 바울은 ‘육체의 약함’ 때문에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말합니다(13절). 육체의 약함은 고린도후서에 언급된 ‘육체의 가시’로 볼 수 있는데(고후 12:7), 이는 눈과 연관된 질환(15절)이거나 뇌전증(간질) 혹은 말라리아 같은 풍토병으로 보기도 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모습은 육체의 약함으로 인해 시험거리가 될 정도였음에도 성도들은 바울을 업신여기지 않고 영적 부모인 그를 하나님의 천사처럼 영접했습니다.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관계는 복음을 전할 때 매우 중요합니다. 성도의 환대는 사역자가 복음을 담대히 전하게 하는 큰 힘이고, 그 결과 성도는 복음의 진리 안에서 하늘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 더 깊은 묵상
거짓 교사들이 오기 전까지 바울과 갈라디아 성도들의 관계는 어떠했나요?
사역자를 존중하고 환대하는 일은 내 신앙에 어떤 유익을 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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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수고 4:16~20
성도는 참된 사역자를 분별해야 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바르게 이끌기 위해 생명을 다해 수고했지만, 거짓 교사들은 성도들을 바울과 이간해 자신들을 추종하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결국 거짓 교사들에게 현혹된 성도들과 바울의 관계가 소원해졌습니다. 바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성도들을 다시 복음 위에 세우기 위해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해산의 수고에는 율법에 종노릇하려는 이들에게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참된 말을 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사역자와 성도는 영적 부모와 자녀 관계입니다. 어려움을 겪더라도, 넘어진 성도를 일으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시 애쓰는 사역자가 진정한 사역자입니다.
● 더 깊은 묵상
거짓 교사들이 성도들에게 열심을 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내가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해산의 수고를 감당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요?
오늘의 기도
주님, 공동체를 위한 제 열심과 수고가 누구를 향하는지 돌아보길 원합니다. 제 사람을 만들거나 제 만족을 위해서라면 멈추게 하시고, 복음을 드러내고 주님을 자랑하는 것이라면 더 힘을 쏟게 하소서. 지체의 연약함은 덮어 주고 잘함은 칭찬하며 주님의 형상을 이루게 하소서.
하나님은 우리가 거짓 복음에서 떠나 다시 첫 마음을 회복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복음을 위해 수고하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결코 거짓 복음에 현혹되는 일 없이, 복음을 바르게 깨닫고, 그 깊은 이해로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복음을 더 깊이 알아가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첫사랑의 때를 다시금 회복하고, 그 열정과 사랑으로 주님의 백성으로 바로 서기 위해 노력하자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바로 세위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더 열심히 수고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도 묵묵히 감내해 나가자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2절 바울은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고합니다. 그는 유대인이면서 이방인처럼 살았고 이방인에게 유대인이 되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복음 증거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고 종이 되었습니다. 나처럼 되라는 사도의 요청은 자신이 먼저 그들처럼 되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말보다 삶으로 가르치는 지도자, 십자가 도의 본보기로 제시될 수 있는 성도가 되는 소원을 품읍시다.
13~16절 갈라디아 사람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복음을 전한 바울을 천사처럼, 예수처럼 영접하였고 그에게 눈이라도 빼줄 것처럼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원수가 되었고 언성을 높이는 관계(20절)가 되었습니다. 복음에서 떠나자 복음이 형성한 사랑의 관계도 깨졌습니다. 성도와 지도자 간에 복음으로 인한 가슴 절절한 교제의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까?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눈물로 견뎌온 지도자의 수고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17~19절 거짓 교사들은 거짓 복음으로 사도와 성도들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를 바랐지만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에 바빴습니다. 사심 없는 사도의 헌신과 달리, 그들의 열정은 사랑으로 위장한 욕망입니다. 나의 열심은 무엇을 위한 열심입니까? 성도의 성숙보다 나의 성공에 연연하고, 예수의 제자 만들기보다 나의 추종자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건 아닙니까?
19,20절 바울의 관심은 성도였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처럼 타인의 죄와 잘못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것(1장 4절)입니다. 거친 말로 나무라지만, 그릇된 길로 가는 자식을 두고 보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입니다. 힘든 산고를 다시 자처합니다. 복음으로 낳은 그들을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달게 지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미끼로 욕심을 채우는 삯군이 아니라 아낌없이 내어주는 부모입니다. 바울처럼 우리 공동체의 바람도 복음으로 하나가 되고 함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까?
기도
제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게 하소서. 함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게 하소서.
갈라디아 교회성도들은 사도 바울로부터 처음 복음을 들었을 때에는 감격함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값 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대한 소망이 불타올랐고,
측량할 수 없는 자비와 한량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에 오직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바울의 육체의 모양에 시험거리가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눈이라도 빼어 줄 마음으로 바울을 사랑했고 존경했습니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갈4:14~15)
그러나 바울이 다른 도시에 복음을 전하러 떠난 사이에 다른 자들이 갈라디아 교회들의 눈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경건해 보이는 복장과 열정적인 가르침에 매료되어 바울에 대한 오해가 쌓여만 갔습니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갈4:15~17)
그러나 바울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된 복을 버리고 종으로 돌아간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낳기 위해 해산의 수고를 재차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갈4:19~20)
왜냐하면 하나님은 미쁘사 한 번 시작하신 선한 일을 중단하는 일은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5:24)
참으로 미쁘신 주님이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시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완전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3:3~5)
거짓 교사들 역시 자신들의 열심을 다했을 것입니다. 이미 1차 예루살렘 공의회를 통해 율법이나 할례를 이방인에게 강조하지 말아야 함을 베드로와 바울의 주장을 통해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 부분을 인정한 자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의 의도가 이 갈라디아교인들에게 가지 흘러갔다면(17절),
그들의 열심은 바울을 비하하기 위해 오히려 더 강렬했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도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을 만큼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형상”이 온전히 이루지는 “좋은 일”을 위한 것이 아닌 열심은 오히려 영적 고통을 유발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고,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것들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된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충실할 때, 교회는 다시 새로워지고 겸손해질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형상이 성도들의 삶에 나타나고, 그 음성에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쓰임 받아 그들을 통해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자녀들이 더 풍성해질 때,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신실하신 주님을 좇아, 어그러진 마음과 저는 다리로 그 길 위에서 고침을 받으며,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선하게 사용되는 축복의 통로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거짓 교사들의 꼬임에 빠져 잘못된 길에 들어선 성도들에게
나의 사랑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으니
다시금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바울의 편지를 통하여
나의 영적 상태나 형편에 관계없이
번함 없는 사랑으로 나를 놓지 않고 계시는 주님의 마음을 느끼며
신앙 공동체 안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배웁니다.
1. 동일시 [ identify with ] (4:1)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12]
이미 마음을 바꾸고 거짓 교사들을 따라간 성도들이지만
아직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고
나와 너희는 여전히 뗄 수 없는 “하나”라고 강조하는 동일시[同一視]에서
예수님을 닮은 진정한 목자 상으로서 바울의 모습을 봅니다.
특별히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평안을 얻기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법인데
바울 사도는 이미 배신한 갈라디아 성도들로 인해 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한 것이 없다는 말로 그들을 안심시키고 있습니다.
나의 마음에는 피눈물이 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철부지 아이를 달래는 어미처럼 상대방의 위치에 내려가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는 모습에서 주님을 닮은 참 목자 상을 배웁니다.
2. 좋은 기억 되살리기:
첫 사랑의 추억 [4:13-15] [Memory of the First Love]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시간이 지나면서 어딘가 틈이 벌어지고
사랑의 위기가 찾아올 때 지난 시절 첫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회복을 위한 좋은 촉매제가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지난 날 갈라디아 교인들과 주고받았던 아름다운 사랑의 시간들을
그리워하며 그들이 또한 이 아름다웠던 사랑을 기억하고
떠나간 마음이 다시 돌아오기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 때 그들은 얼마나 목회자 바울을 사랑했는지
바울의 인간적인 약점이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눈이라도 빼어 줄 정도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다메섹 도상에서 강렬한 빛 가운데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의 눈에 이상이 오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좋지 않은 시력으로도 복음 전파에 최선을 다하며
좋지 않은 시력으로 성경을 보면서 복음을 전했을
주님을 닮은 참 목자 상 바울과
그를 사랑했던 갈라디아 성도들 사이의 첫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참 목자의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3. 직면하기 [face to face]
포도원을 헤치는 여우 몰아내기 [4:17-18]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충분히 그들의 마음을 감싸고 달랜 후에는
정말 해야 할 정곡을 찌르는 말로써 그들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말하고 지금 포도원[교회]를 헤치고 있는 세력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직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목자와 양들 사이에 틈이 벌어지게 되었을 때
그렇게 만든 문제를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그 문제를 직면하여 해결을 시도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오늘의 말씀요약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처음 복음을 전한 것은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았습니다.
바울의 육체에 시험할 만한 것이 있었지만 그들은 업신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천사처럼,
그리스도 예수처럼 바울을 영접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의 열심은 이들을 이간하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바울의 호소(4:12~15)
직설적인 책망보다 애정 어린 호소가 마음을 움직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른 복음에서 이탈해 율법주의로
향하는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따뜻한 사랑과 변함없는 신뢰를 표현합니다. 특히 그들이 처음 만난 때를
상기시키며 육체적인 약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하나님의 천사’나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접한 데 대해 감사하고,눈이라도 빼어 줄 듯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섬긴 점을 극찬합니다.
친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 신뢰는 변절한 성도조차 돌아올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 묵상 질문: 사도 바울은 진리에서 떠난 갈라디아 교회를 어떤 자세로 대하나요?
- 적용 질문: 신앙적 관점에선 동의할 수 없어도 사랑으로 품어야 할 지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단의 유혹(4:16~18)
참스승은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고, 거짓 스승은 자기 제자를 만듭니다. 자신의 유익과 영광을 위해
사역하는 자는 거짓 교사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복음 확장과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심 없이 헌신합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은 감언이설로 연약한 갈라디아 성도들을 미혹되게 하고,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신들을 따르게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것을 전하는 자는 거짓 사역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 묵상 질문: 거짓 교사들이 특출한 열심을 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이기적인 열심이나 사람을 드러내는 섬김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해산의 수고(4:19~20)
사랑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습니다. 참사랑은 기나긴 인내 과정과 거룩한 낭비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버리고 율법을 따르는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그들이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도록 변함없는 관심과 사랑을 쏟고자 합니다.
그들을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때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 묵상 질문: 사도 바울이 ‘해산의 수고’를 기꺼이 감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나의 ‘해산하는 수고’가 필요한 영혼은 누구이며, 어떤 수고를 더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더 귀함을 생각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하소서.
제가 한결같이 사랑할 때 강퍅했던 사람도 변화될 것을 믿으며 길이 인내하는 사랑을 하게 하소서.
갈라디아서 4:12~20 회복을 위한 산고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라는 복음의 기초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풀어서 설명을 하고 있다.
갈라디아 지방에는 몇 가지 구원에 대한 생각들이 있었다.
1. 유대교인들이다.
모세 오경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 함으로 구원을 받는 다는 입장에
있는 무리들이 있었다.
2. 유대주의자들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과 율법을 준수함으로 구원을 얻는 다고 하는 입장에
있는 자들이다.
대표적으로 바리새파 출신들의 입장일 것이다.
3. 사도 바울이 있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다는 입장에 있다.
4. 갈라디아인이 있다.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때에 복을을 들었다.
그런데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것이지?
믿음 + 행위 (율법이나, 선행이나, 할례나.....)가 있어야 하는지? 헷갈리고 있다.
사실 갈라디아인의 이 헷갈림 때문에 바울이 지금 갈라디아에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때가 차기까지 우리가 몽학선생과 같은 율법아래 있었으나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므로 아들의 명분을 얻었기 때문에
다시는 율법아래 종노릇하지 말고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신 바울이
오늘은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 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12)하신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인과 같이 된 것은 무엇인가?
바울은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요 길리기아 다소 출신의 총명하고 유능한 자다.
당대 최고 신학자인 가마리엘 무하에서 엄격한 신앙 교육을 받았고
당시 국제사회의 표준어였던 헬라어뿐만이 아니라 히브리어에 능통했고
산헤드린 공회원이였고 철저한 율법주의자로 유대교를 위하여
기독교를 핍박하는데 맨 앞장에 섰던 인물이다.
이런 바울이 유대인의 모든 특권을 버리고 유대인으로서의 자기를 부정하고
이방인인 갈라디아인 처럼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바울 자신이 핵심 율법주의자였지만 율법을 떠나 자유인이 된 것 처럼
너희도 그리스도안에서 자유인이 되어라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인들을 행하여 형제들아(12)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율법주의자 중에 율법주의자인 바울이
어떻게 이렇게 변화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바울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면 세상에 변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 같다.
나도 좀 변해보자. 나도 바울과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갈라디아인들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이야기 하시는 것 같다.
처음에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너희에게 복음을 전했다 한다.(13)
갈라디아에 있을 때 아마도 무슨 병인지는 몰라도 질병 가운데 있었는 모양이다.
그러나 질병도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나보다. 아멘.
갈라디아인들이 받아들인 반응이 있다.
1. 비록 질병 가운데 있었지만 업신 여기지 않았다.(14)
2.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대접하고(14)
3.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했다.(14)
참 아름다운 관계였었나 보다.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15)
바울이 갈라디아인들을 추억하며 좋았던 관계
가장 소중한 것도 나누어 줄 수 있는 관계에 있었던 추억을 말씀하시나 보다.
이렇게 좋았던 관계에 있던 바울과 갈리디아인들 사이에 무엇인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
바로 유대주의자들 때문이다.
믿음 +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자들이 아주 열심을 내어
갈라디아인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주의자들에 대한 바울의 말씀은 무엇인가?
1. 그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다.(17)
2. 너희을 이간 붙이려는 것이다.(17)
3. 너희로 저희에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는 것이다.(17)
너희란 갈라디아인이요 저희란 유대주의자들이다.
이런 유대주의자들의 열심 때문에 바울은 간절하게 갈라디아인들에게 호소한다.
나의 자녀들아(19)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19)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라(19)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요 애비의 마음이다.
선한 목자의 마음이요 영적 지도자의 마음이다.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열심에 헷갈려 하는 갈라디아인들을 향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다시 하겠다고 결심하는 바울의 결심을 봅니다.
나도 이런 영적인 지도자 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냄새나고 더러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영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옷을 입혀 주셔서 품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날에 초대받은 백성으로
합당한 마음을 품고, 세상의 지식과 율법의 껍데기를
복음 위에 덧붙이지 않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위에 기름 부어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공급하여 주시고
위로부터의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눈물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 해 주시고,
회복과 치유의 놀라운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버지의 뜻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별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 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