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을 벗어 곱게 접으면서
이종준
아우야!
인생은 왜 울어야 하고
웃어야 하며
슬퍼해야 할까?
나는 울지 않으리. 웃지도 그리고 슬퍼하지도 나는 내 인생의 도롱이를 입고 비바
람 몰아치는 설성광야를 고통과 괴로움을 가슴에 안은 채 굽히지 않으며 흔들리지도
않고 부끄럼 없이 힘차게 달려온 과거를 곱게 접으며 내사랑하는 아우를 불러 본다.
내 사랑하는 아우야!
하얀 날이 까맣게 물들어지고 어둠의 정막속에 땅거미가 내린지도 오래 되어 지
금은 고요가 흐르는 밤 밤하늘에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찬란한 은하수가에 별들
의 속삭임이 하루에 지친 피로를 달래주는 듯 아름답게만 보이는군.
아우야!
항상 간절한 그리움처럼 서로를 아끼고 염려하고 있으면서도 서로 각자 자기의 위
치에서 본분을 다하느라 아름다운 밀어를 주고받을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 몹시 아쉽
군 경찰관으로서 뜨거운 집념과 충성된 마음으로 주민을 위해 넘치는 정성과 마음
바쳐 일하는 너를 볼 때 가슴 뿌듯한 신뢰와 사랑이 새삼 마음에 여울져 오는군.
우리 서로 경찰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무엇보다도 주민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참되게 봉사하여 신뢰받고 존경받는 경찰이 되자고 맹서하던 그날이 지금도 잊어
지지 않는군.
아우야!
팔월의 태양이 아스팔트를 녹이는 무더운 여름 어느 날 이었지.
매우 복잡한 시골 설성장날 골목 모퉁이에서 한 중년여인이 다섯 살 가량의 남
자아이를 데리고 광주리에다 사과를 담아 팔고 있었지. 때마침 지나가던 하드 장
사가“ 하 드 요 하 드 시원한 하 드 하드사세요”하며 외쳐대자 사과장수 아들이
“엄마 나 하드 응 .하드 하나만 사줘”하고 애원하자 엄마는 징얼대는 아기의 볼
을 힘차게 때리며 “사과도 못 팔아 쌀 산돈도 없어! 이놈의 자식하며 주르르 흐르
는 땀을 훔치며 눈을 부르뜨는 것이었어. 하드는커녕 엄마에게 얻어맞고 우는 아
이를 보고 그 냥 발걸음을 돌릴 수 없어 하드 하나를 성큼 사서 아이의 손에 쥐여
주고 순찰을 마 치고 파출소에 돌아와 근무 하는 중 교통사고가 발생하였다는 신
고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뛰어가 현장에 도착하였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
어. 얼마 전 하드 사 달라고 애원하던 사과장수 아들이 목이 말라 길 건너편 물가
물 마시러 뛰어가다 그만 차에 치여 현장에서 죽고 말았으니......
사과광주리를 팽개치고 죽은 아이를 붙들고 땅을 치며 통곡하면서 ”영 철 아! 영
철아 이 불상한 영철아, 나를 두고 어디로 가느냐? 하며 몸부림치는 엄마의 울음이
나의 가슴을 두들일 때, 나는 그만 가슴이 아파 괴로움을 참다못해 하늘을 향해 누가
이랬느냐고 고함을 치며 , 죽은 아가를 바라보는 순간 한없는 눈물이 나의 볼을 적시
고 나도 모르게 뜨거운 피가 멈추는 것 같았어. 바위처럼 무겁기 만한 내 심장을 달
래며 아가야 내가 차라리 한 아름에 하드를 사서 너에게 안겨 주었더라면
아우야!
나는 경찰관으로서 괴로움에 짓 눌려 며칠 밤을 지새웠어. 이렇게 비극의 요소
가 사회의 구석구석에 깔려 있어 우리를 우울하게 해주지만 우리의 손길이 이러한
구석진 곳까지 미쳤더라면, 잃어버리지 않아도 되였을 것을... 그 어린 목숨을 잃
어버렸다는 이런 괴로움이 10년 아니 20년 30년이 지났어도 지금도 나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을 생각하니 더욱 나를 부끄럽게 하는군.
아우야!
우리는 국민의 행복과 안녕의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피와 땀을 흘리며 위험을 무
릅쓰고 몸 바쳐 일하는 우리의 손과 정성이 국민이 바라는 곳까지 미치지 못할 때,
우리의 주위에는 이처럼 불행이 따르게 되는 것을 잊지 말자꾸나. 지금쯤 어느덧 주
위에 모든 주민들이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없을. 그 아픔이 아직도 이렇게 나의
마음속에는 커다란 상처로 남아 뼈대 속에 물결로 굽이치고 있는 것은 웬일일까?
2006/ 24집
첫댓글 우리의 주위에는 이처럼 불행이 따르게 되는 것을 잊지 말자꾸나. 지금쯤 어느덧 주
위에 모든 주민들이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없을. 그 아픔이 아직도 이렇게 나의
마음속에는 커다란 상처로 남아 뼈대 속에 물결로 굽이치고 있는 것은 웬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