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보양식
지난 달 27일부터 이번 달 열흘까지 연일 35도를 넘나드는 18년만의 최악의 폭염이 오늘 내리는 비로 말끔이 씻겨 내려갈 듯하다. 그간 폭격기의 공습경보보다도 무서운 폭염경보하에서, 특히 요주의대상인 고혈압환자인 노인으로서 에어콘의 도움을 받고 올림픽중계시청으로 위안을 삼아 15일간의 피서라기보단 피난생활을 영위하였던 이 몸! 어찌 많이 상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마땅히 알맞은 여름보양식으로 초췌해진 뺨을 원상복구해 놓아야 하리라.
유감스럽게도 집사람이 나보다 더 여름을 타므로 현재 미령하신 상태이니 다른 집 양처처럼 남편을 위한 보양식을 기대하기는 난망이고 부득이 자력갱생을 하던가 친구들의 도움을 받던가 해야 할 터이었다. 그리고 고맙게도 친구들로부터 그런 도움의 손길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8월 초, 낮 최고기온이 연일 35도의 상종가를 치고 있는데 K군으로부터 양갈비구이에 칭따오맥주가 어떠하냐는 문자메세지가 왔다. 양갈비구이라면 중동의 사나이들이 40도도 좋고 50도면 어떠냐하는 살인적 폭염에서도 유유히 생활을 영위하고 힘이 남아 하렘까지 마련하는 보양및 정력의 원천인 줄을 알만한 사람은 이미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그런 괴기에 칭따오맥주의 환상적 결합!
그러나 본인은 이 제안을 눈물을 머금고 용감하게 거절하였다. 나같은 노약자가 술먹고 폭염에 노출되었다가는 무슨 심각한 변을 겪을지도 모르겠기에 이 몸의 안위를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이다.
우리 땅에는 양대신 흑염소가 있어왔다. 그래서 "매애"하는 애잔한 울음소리와 짧은 꼬리, 똥구멍이 보이는 뒷 자태가 인상적인 이 조그만 동물을 시커먼 무쇠솥에, 요즈음엔 은빛 스테인리스용기로 대체되었지만 그것이 당자에게 위안이 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넣고 푹 고아 보약이라고들 잡수어 욌다. 허나 이 흑염소는 양에 비교하면 그 화력에 있어 대포앞의 기관총격이라 여름철 보양에 부족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않은 사람들이 이 양고기를 누린내가 난다고 하여 시식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데 이는 외래 먹거리에 대한 속좁은 편견에 기인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K군과 그 일당들은 서역의 우수한 음식문화를 받아들임에 있어 조금의 주저함이 없으니 이 진취적 기상 하나만 보아도 이 일당들이 사회의 리더임에 부족함이 없음을 잘 알수 있다.
어떻든 보양할 기회를 놓치고 보니 좀 억울한 생각이 새록새록 들었다. 그래 오늘 날씨가 좀 그만해 정신이 들기로 어떤 보양식을 먹어야 할까하고 둘러 보기로 했다.
나는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신체가 그 음식의 영양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라는 견해를 옳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가장 먹고 싶은 것이 바로 나의 여름 보양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보양식으로 보리쌈밥을 떠올린다.
거친 꽁보리밥은 아니고 보리와 햇콩을 적당히 놓아 지은 밥 한 덩이를 넓은 호박잎에 놓고 그 위에 돼지고기 수육 한 점과 송송 썬 마늘, 푸른 고추, 깻잎등을 올려놓고 불그레한 쌈장을 척 바르고 다시 호박무침, 가지무침 기타 이름은 몰라도 먹기엔 익숙한 갖은 나물들을 고봉으로 올려 초록 보쌈을 만든다. 다음 아구운동을 한 뒤 입을 째지게 벌리고 눈을 장비처럼 부릅뜬 채 아가리속으로 처 넣는다. 말을 물론 못하고 볼은 미어 터지게 불룩하고 전심전력 저작운동에 전념하느라 눈망울도 약간 튀어나온 듯하고 콧김까지 내뿜을 기세다. 이 식욕을 만족시키는 모습은 가히 성욕을 만족시키는 그 때와 유사한 정경이다. 보쌈덩어리가 식도로 다 들어가기가 바쁘게 원군으로 시원한 막걸리를 한 보시기 목구멍속에 쏟아 붓는다.
허나 춘추 높으심을 잊으시고 이렇게 호기를 부리다간 보쌈에 숨이 막혀 옆 사람의 구조를 받는 소동을 일으키거나 재채기를 하여 아가리속의 슬러지를 분출하여 동석한 사람들의 성찬을 망치는 춘사가 발생할 위험이 증대된다. 그러하니 보쌈의 체적을 적의감량하시고 열무김치국물로 입안을 개운하게 가신 후 막걸리를 젊잖게 마시는 감속조치가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어떠할 것같은가? 머리는 청신하게 정화되고 몸통과 사지에는 샛파란 활력이 솟아나리라고 상상할 수 있지 아니한가? 참! 어둑하고 서늘한 대청마루에 앉아 이런 보양식을 즐길 때가 언젠가 오려나 모르겠다.
이런 호사는 꿈이나 꾸고, 현실에서 돈 몇 냥을 소비하고 먹을 수 있는 보양식으로 수준을 낮추어 본다.
먼저 개고기수육과 탕이 생각나는데 젊은 시절 여름철 소화가 불량일 때 먹어보니 소화 하나는 끝내주게 잘 되는 음식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어찌 인간의 가장 충실한 친구인 반려견을 잡아먹는 야만적 행위를 할 수 있냐고 프랑스의 육감적 여우 브리짓 바르도할머니가 일찌기 우리 보신탕문화를 비난한 적이 있었지만 그런 얕은 소견의 쫑알거림때문에 나의 향육에 대한 애정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허나 불교에 호의적인 집사람이 말리기도 하거니와 그 개고기가 香肉으로도 불리워서 그런가 값이 엄청 오르고 내 주머니는 가벼워지니 서서히 인연이 멀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언젠가 T.V.에서 개고기를 중국에서 한국으로 수출하는데 인체에 극히 유해한 방부제용액에 담그어 처리하는 장면을 보게되었고, 한국에선 길잃은 애완견, 고 조막만한 강아지를 도살하여 판다는 장면을 보고 난 후에는 향육을 건강유해내지 혐오식품으로 규정하고 인연을 끊게 되었다.
그러면 삼계탕은 어떤가? 나로서는 이열치열이라는 사자성어가 이해될만큼 여름에 열을 받아 이겨낼 능력이 없기에 그 더운 날 혼잡한 음식점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인삼냄새나는 비릿한 고기를 뜯을 엄두가 다시 나지 않는다. 사상의학상 내 체질이 닭고기와 궁합이 잘 맞지 않는지는 모르겠으나 젊은 시절 한 번 더위를 무릅쓰고 삼계탕을 먹은 다음 나오는 길에 화장실에 들러 토하고 난 다음 삼계탕은 겨울에도 반갑지 않으니 말이다.
민어탕, 잉어탕, 그리고 장어구이가 좋다고 하여 여유있는 미식가들이 찾는다고 하는데 출신이 "뭍의 것"이라서 그런지 비린 생선에는 구미가 그리 당기지를 않는다. 이것이 바깥으로 내세우는 이유이지만 속사연은 사먹을 능력이 좀 딸린다고 할까 가벼운 주머니를 탈탈 털만큼 끌리지 않는다고나 할까.
장어와 비슷하면서 산에서 나는 뱀은 어떠한가라고 누가 추천할 수도 있겠다. 예전에는 정력제로 뱀이 대단한 인기였는데 비아그라류가 시판되면서 수요가 급감하여 가격도 좀 눅어졌고 푹 고아놓으면 닭백숙국물과 구별할 수 없으니 먹기도 역하지 않다는 것이 추천의 말씀이 되겠다. 허나 난 닭백숙국물은 돈주고 먹으라면 참고 먹을 정도이니 내 돈내고 뱀탕을 먹을리가 있겠는가.
간단히 먹을만 하고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이 있으니 냉콩국수가 그것인데, 이것은 상하기가 쉬워서 조심성이 지나치게 많은 나로선 정말 믿을만한 음식점이 아니면 먹기가 두렵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냉면과 메밀국수나 먹어야 할 듯 싶다. 그런데 문제는 메밀국수는 칼로리와 영양분이 다 쌀밥보다 적으니 입맛떨어지는 여름철에 한 별미지 보양식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말씀이다. 게다가 냉면은 육수가 문제라는데 육수가 고깃국물이 아니고 쇠고기맛조미료(다시다), 백설탕과 식초로 만들어진다고 하니 이런 화학제품물을 맛있다고 먹어야 될지 고민이 된다. 아는게 많아지면 걱정도 많아진다고 하지만 알거나 모르거나 아무 생각없이 먹기에만 열중하도록 음식을 좀 양심적으로 만들어 줄 수 없을까?
이렇게 제법 시간을 들여 연구해보아도 마땅한 보양식은 없고 올 여름 나의 보양식은 햄버거와 자장면으로 굳어질 듯하다. 햄버거는 "있는 분들"에게는 정크 푸드이지만 서민에게는 칼로리의 보고인데 이 햄버거를 점심시간대에 콜라, 감자튀김과 함께 세트로 시키면 할인을 많이 해주는데다 감자튀김은 내가 특히 좋아하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자장면은 아파트옆에 새로 생긴 중국집에서 개업축하 서어비스로 팔월 한 달간 한 그릇에 삼천원을 받고 파는데 맛과 양 둘 다 괜찮기 때문이다.(끝)
첫댓글 비단 고르다 베 잡는 격이군요. 치킨구이에 맥주가 올림픽 기간 중 베스트셀러였다 합디다. 전화 한통이면 됩니다. 카드도 받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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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 그러십시다. 파전에 소주 한 잔하면서 소싯적 대한민국을 건국했던 이야기나 나누어 봅시다. 아니 나는 그 때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지 않았나구요? 무슨 말씀을! 태중에서 교감으로 세상사를 다 알아듣고 지도한 줄을 모르십니까?
허허허! 그러시던가요.해방및 건국기념일에 모임을 가지면 예식을 거행하여 대한독립만세 한번, 대한민국만세 한번, 두번 건배를 해야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