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삭과 이스마엘, 사라와 하갈 4:21~27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노릇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 4:28~31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
[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아브라함의 두 아들을 예로 듭니다. 여종 하갈에게서 육체를 따라 난 아들을 율법 아래 종노릇하는 자로, 자유 있는 여인에게서 약속을 따라 난 아들 이삭을 약속의 자녀로 비유합니다. 우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요, 성령을 따라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을 자유인입니다.
----------
이삭과 이스마엘, 사라와 하갈 4:21~27
약속의 자녀만이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앞서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했습니다(3:7, 29). 더 나아가 그는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인간적 혈통이나 율법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님을 논증하기 위해 ‘이삭과 이스마엘’을 예로 듭니다. 둘 다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난 이삭만이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22~23절; 롬 9:7~9). 또 하갈과 사라는 두 언약을 뜻하는데, 여종인 하갈은 율법을 상징하는 시내산 언약을, 자유자(자유인)인 사라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성취된 아브라함 언약 혹은 새 언약을 가리킵니다. 불임으로 고통받던 사라가 결국 더 많은 자손을 얻는 복을 누리게 되었듯(사 54:1), 하나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함없이 성취됩니다.
● 더 깊은 묵상
바울이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을 비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끝까지 신뢰할 하나님 약속은 무엇인가요?
-----------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 4:28~31
복음을 믿고 약속의 자녀가 되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이 이삭을 괴롭혔듯(창 21:9~14), 갈라디아 교회에서도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했습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는 율법의 행위를 강요하는 거짓 교사를, ‘성령을 따라 난 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은 것처럼, 거짓 교사들 곧 유대주의자들을 내쫓으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약속의 자녀가 된 우리는 복음 안의 자유를 누릴 특권이 있습니다. 이를 제한하거나 빼앗는 이들은 공동체에서 반드시 제거되어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갈라디아 교회에서 ‘육체를 따라 난 자’는 누구를 가리키나요?
약속의 자녀로서 살기 위해 내가 단호히 청산할 옛 습관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주님!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신앙생활은 율법적으로 하려는 모순에서 벗어나길 원합니다. 성도의 삶은 시작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하는 것임을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하소서. 믿음으로 사는 삶에 장애물과 조롱이 있을지라도 당당하게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는 은혜를 주소서.
우리를 언약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성령을 따라 나게 하시며, 자유를 가진 여자의 자녀로 품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율법의 속박 속에 거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가 되었음에 감사하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성실히, 충성되이 실천해 나가자
우리는 더이상 죄의 자녀가 아니고, 종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약속의 자녀로 삼아 주셨음에 감사하자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고, 자유함을 누리면서 언약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자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21절 바울은 율법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율법 속에 나타난 복음의 원리를 설명하여 반박합니다. 그들이 제대로 알았다면 거짓 교훈에 미혹되지도 않고 율법의 멍에를 메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에 어떤 기능과 역할을 부여하셨는지 잘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율법을 오해하여 사람을 정죄하거나 하나님을 반대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22~27절 바울은 아브라함의 두 아들을 비유로 제시하여 율법을 고수하는 이들과 그리스도만을 붙드는 이들 중 누가 아브라함의 참 후손인지 밝힙니다. ‘육체를 따라’ 난 여종의 아들과 달리, 사라의 아들 이삭은 출산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약속’을 통해 태어났습니다. 그 약속은 생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유업을 이은 것도 오로지 ‘약속’ 때문입니다.
두 아들은 ‘육체와 약속’, ‘율법과 믿음’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자기 힘으로 살 것인가’와 ‘하나님의 힘으로 살 것인가’의 대립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구원)은 율법의 행위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약속을 믿는 자들의 것입니다. 활동만 많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믿음이 없다면, 그곳에는 하나님만이 만들어내실 수 있는 새 창조(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8,31절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육체가 아닌 성령을 따라 난 하나님의 자녀요, 죄와 율법과 세상의 권세에서 벗어난 자유의 자녀입니다. 그러니 이제 믿음을 따라 살고(2장 20절) 성령을 좇아 행하며(5장 16절)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며(5장 16절) 살아야 합니다. 내 삶의 기준이나 방식, 목표는 내가 하늘에 속한 사람임을 증명합니까?
29,30절 성령을 따라 난 자(이삭)가 육체를 따라 난 자(이스마엘)에게 핍박을 당했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육체를 신뢰하는 자들에게서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상속자이기에 당하는 시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을 사는 성도에게 세상과의 불화나 고난은 불가피할 것입니다. 하지만 왕관(상속자의 지위)을 쓰려 한다면 그 무게를 견뎌야 합니다.
기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종이 아니라 사랑받는 아들로 살게 하소서.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꼬임에 빠져서
율법주의 신앙에 빠진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은혜의 복음을 듣고 약속의 자녀가 되어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이
율법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것과 비교하여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여러 대조법을 사용하여 설명 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내가 되었던 몸종 하갈과 본 처인 사라
그리고 그들에게서 낳아진 두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을 비교하며
한 걸을 더 나가
몸 종 하갈로 비유되는 아라비아 “시내산”과 연관된 지상의 예루살렘과
아브라함의 본 처인 사라로 비유되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비교합니다.
여기서 율법 수여의 장소로 상징된 시내산과 연관된 예루살렘 이라고 함은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에도
예루살렘은 여전히 율법 신앙의 중심 역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여기서 사라로 비유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율법신앙의 성지요 요람인 예루살렘의 유대교 한 복판에서부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기독교가 새롭게 출발되어 나간 것을 상징 합니다.
더불어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성소의 휘장이 찢겨져 나가서
더 이상 성전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하였는데도
예루살렘 성전을 여전히 율법신앙의 중심으로 삼은 유대교가
예루살렘 안에서 일어난 기독교를 박해하였던 것을
약속의 자녀인 사라의 아들, 이삭을
몸종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괴롭힌 것과 비교하여 설명합니다. [창21:8-12]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4:29]
그러나 성경이 보여주는 대로 여종과 그 아들이 내어 쫓김을 받고
자유의 어머니 사라로부터 태어난 약속의 자녀인 이삭이
아브라함 유업의 상속자가 된 것처럼 [창21:8-21]
마침내 견고히 서게 되는 것은 율법주의 신앙이 아니라
복음주의 신앙이라는 것을 바울은 명명백백하게 밝히며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너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라는 것을 재차 확인시켜 줍니다.
----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4:31]
결론적으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써 보낸 이 글을 통해
비유컨대 너희는 은혜의 복음 안에서
약속을 유업으로 받는 자유의 자녀들이 되었는데
왜 너희가 받은 존귀함을 버리고
율법신앙으로 돌아가 종으로 살려고 하느냐로 이해하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요약
아브라함의 아들 중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여종은 육체를 따라 종을 낳았고, 자유 있는 여자는 약속으로 말미암아 이삭을 낳았습니다.
우리는 이삭처럼 약속의 자녀요 자유자의 자녀며, 성령을 따라 난 자로서 유업을 얻습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약속을 좇아 난 이삭(4:21~28)
똑같은 아브라함의 혈통이라도 지위와 신분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아들을 기다리던 아브라함이
조급한 마음에 사라 말대로 여종 하갈을 취해 낳은 육신의 아들입니다. 반면에 이삭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탄생한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순서상 이삭이 늦게 태어났을지라도 언약의 공식적 계승자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성취하는 도구입니다. 바울은 이스마엘을 시내 산 율법의 대표자로,
이삭을 예수 그리스도 은혜의 대표자로 비유합니다.
인간적인 노력으로 구원을 쟁취하려는 율법주의자는
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할 때만 성령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 묵상 질문: 이스마엘과 이삭은 근본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나요?
- 적용 질문: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 복음의 자유를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육신을 좇아 난 이스마엘(4:29~31)
육체와 성령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말씀과 성령 아래 있는 사람들과 사사건건 대립하고
갈등합니다. 육신을 좇아 난 이스마엘은 약속을 좇아 난 이삭을 괴롭히고 학대했습니다. 이삭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모든 권리와 재산이 자신에게 돌아오리라 생각했는지, 노골적으로 원한과 증오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광야로 쫓아내도록 명하셨고, 언약 백성에서 완전히
제외되도록 가지치기를 하셨습니다. 우리도 관행처럼 율법 의식들이 거룩한 은혜를 무력하게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첫사랑의 은혜와 감격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 자기 의와 공로를 쌓으려 하면 죽은 신앙으로 변질됩니다.
- 묵상 질문: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희미하다면, 이를 회복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오늘의 기도
성취욕을 만족시키려는 세상적 가치관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돌이키기 원합니다.
열띤 봉사와 수고로 텅 빈 마음을 가리고 있진 않은지 정직하게 저를 돌아보게 하시고,
오직 십자가 은혜를 가슴 깊이 체험하게 하소서.
갈라디아서 4:21~31 성도는 자유인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한 것을 말씀을 통하여 설명한다.
오늘 본문은 특별히 아브라함의 두 아들을 통하여
율법 아래에 있는 자와 복음 아래에 있는 자를 설명하고 있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22)
하나는 이스마엘이요 다른 하나는 이삭이다.
이스마엘은 계집 종에게서 났다.(22)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여종 하갈에게서 출생한 자요(창16:15)
이삭은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22)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서 출생한 자다.(창21:2)
이스마엘은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통하여 육체를 따라 출생한자이다.(23)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살, 사라가 90살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약속을 따라 하나님께로 난 자이다. (23)
이 두 여자들은 두 언약이다.(24)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하갈로(24) 종 노릇하는 자요(25)
다른 하나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26) 자유자요(26) 우리 어머니라(26) 하신다.
계속해서 대비되는 복음과 율법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대신 할 단어들이 있다.
자유자인 사라와 노예인 하갈(22)
약속의 아들을 낳은 사라와 노예인 아들을 낳은 하갈(22)
여자에게서 약속을 따라 난 이삭과 계집종에게서 육체를 따라 난 이스마엘(23)
율법이 주어진 시내산과 위에 있는 예루살렘.(24)
성령을 따라난 자와 육체를 따라 난자(29)
유업을 얻을 이삭과 내어 쫓김을 당할 이스마엘(30)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와 계집종의 자녀(31)
율법의 종노릇하고 있는 자들은 유대인들을 가르킨다.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자는 이삭처럼 자유인이다. .
또 한가지 재미있는 비유가 있다.
남편 없는 여인이 남편 있는 여인 보다 자녀가 더 많다고 한다.(27)
어덯게해서 남편 없는 여자가 남편있는 여자보다 자녀가 많을까?
남편이 없어서 외도를 많이 한 걸까?
천만의 말씀이다. 전혀 그렇지않다.
남편있는 여인은 육신의 자녀만 낳을 뿐이다.
그러나 남편없는 여인은 하나님이 남편이 되어 주신다.
육신의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과는 달리
하나님이 남편이 되어 준자는 약속의 자녀를 낳는다.
이 약속의 자녀가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육체를 따라서 난자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 난 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바로 유업을 이을자요, 약속의 자녀요, 자유하는 자이다.
마치 여종의 아이 이스마엘이 약속의 자녀 이삭을 희롱한 것 처럼(창21:9)
비록 육체를 따라난 자에게 성령을 따라 난 자가 핍박을 받아도
계집종과 그 아들은 내어 쫓김을 받음과 같이 결코 유업을 받을 수가 없고(30)
오직 성령으로 난자 만이 결과적으로 자유하는 여인의 아들로
더블어 유업을 얻을 자 이다.(30)
결국 유업을 누릴 약속의 자녀란?
율법을 행함으로 결코 얻을 수도 없고 될 수도 없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성령님으로만 되는 것이다.
약속의 자녀로, 새 언약의 백성으로, 선택 받은 사실에 대해 감사하며 살자.
하나님의 자녀로 유업 받게 될 것을 찬양하며 살자.
믿음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냄새나고 더러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영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옷을 입혀 주셔서 품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날에 초대받은 백성으로 합당한 마음을 품고,
세상의 지식과 율법의 껍데기를 복음 위에 덧붙이지 않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위에 기름 부어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공급하여 주시고
위로부터의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눈물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 해 주시고,
회복과 치유의 놀라운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버지의 뜻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별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 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