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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선수들의 해외 이적을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을 지난 1편에서 짚었었다. 우리가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은 경기력의 저하와 팬들의 박탈감이며, 나아가 K리그 팬들이 리그 자체에 대한 애정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대안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외부의 ‘자본’ 유입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이적을 제한하는 제도적인 규제를 취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결국 각 구단을 비롯한 K리그 전반의 자생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인 듯하다. K리그 전체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갖고 있지 못하지만, K리그 팬으로서 K리그의 살 길을 모색해보려고 한다.
(△ 이제 초록 유니폼이 제법 잘 어울리는 데얀. 그는 FC서울을 정상으로 이끈 동시에 팀을 떠나며 거액의 이적료를 안겼다.)
1. ‘시장’이 된 K리그
현재 우려되는 이적은 아시아 내로의 유출이다. 바늘구멍 같은 유럽 이적과 달리 아시아 내 이적은 훨씬 장벽이 낮아서 양적으로 훨씬 많다. 게다가 중국, 중동에서는 아시아쿼터를 검증된 한국 선수에게 할당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K리그에서의 활약과 AFC챔피언스리그 무대의 활약 정도면 선수에 대한 검증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한국 출신의 검증된 선수들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영입할 수 있고, 아시아쿼터로도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었다. 아시아 내의 한국 선수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는 뜻이다.
더불어 K리그에서 활약하는 용병 선수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국내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ACL 챔피언스리그 등을 통해 직접 확인한 외국인 선수에 대한 신뢰도는 높다. 환경이 크게 차이나는 브라질이나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과 달리 한국에서 무난히 적응하고 활약하는 선수들은 중국이나 일본에서의 적응도 무난할 것으로 생각된다. 적응이 필요 없다는 것은 즉시 전력감을 원하는 아시아의 팀들, 특히 중국 슈퍼리그 팀들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말인 즉슨 국내 선수, 외국인 선수를 가리지 않고 K리그의 선수들이 다른 리그의 관심을 받는 좋은 ‘상품’이라는 것이다.(사람에게 상품이란 말을 쓰고 싶진 않지만.)
리그의 인기나 자금력으로 따지자면 K리그는 더 이상 특별한 리그가 아니다. 다만 경기력때문에 전 아시아가 집중하는 리그가 되었다. K리그에서 잘하는 선수는 아시아 어디에서도 통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셀링리그’가 되어간다는 말을 뒤집으면 아시아의 많은 팀들이 K리그에서 ‘쇼핑’하는 것을 즐긴다는 이야기다. K리그는 이제 새로운 생존 방식을 택해야 할 것 같다. 선수들을 ‘빼앗기는’ 것보단 우리의 의지에 따라 능동적으로 선수들을 파는 것은 어떨까. 자세의 차이지만 그 결과는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선수를 '빼앗기는' 지금도 이적 과정에서 중국과 중동에서 받는 액수는 상당하다.
2. K리그는 매력적인 무대
현실적으로 K리그는 유럽의 포르투갈리그처럼 다른 무대로 진출하기 위한 좋은 교두보가 될 수 있다. 엄밀히 말해 K리그는 최후의 목표가 될 수 없다. 하지만 K리그는 분명 아시아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압도적인 성적 때문이다. K리그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의 활약은 아시아 내 리그는 물론이고 당연히 유럽 구단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다. 따라서 K리그는 '유럽 진출'이라는 목표는 물론 ‘연봉’을 위해서도 선수들에게 좋은 발판이 될 수 있다. 이명주, 고명진, 하대성 등은 많은 국내 선수들이 K리그의 활약을 바탕으로 해외로 진출한 선수들이다. 이는 외국인 선수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데얀, 에스쿠데로, 에두 등이 거액의 연봉을 받고 중국으로 진출했다.
울산으로 이적한 조영철의 예는 K리그가 한국 선수들에게도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K리그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국가대표에 선발하는 슈틸리케 감독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은 선수의 이적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경기 외적인 생활도 익숙하다는 사실도 중요한 강점이다. 중동/중국과 달리 적응이 쉽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유럽의 구단들이 재정난을 겪고 있다. 지난 시즌 프리메라리가 13위를 기록한 엘체CF는 재정난으로 강등되었고, 이탈리아의 ‘7공주’로 불리던 파르마FC도 재정난으로 세리에D로 강등되었다. 금융위기에 따른 한파가 축구계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실제로 베라와 시시의 이적엔 금전적인 이유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K리그의 몇몇 팀들도 재정적인 문제를 드러낸 적이 있지만,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보다는 훨씬 상황이 낫다. 아주 많은 연봉을 줄 순 없지만 괜찮은 수준을 보장할 수 있고 급료 지급을 미룰 팀들은 거의 없다. 생활 환경이 중국이나 중동에 비해 더 낫다는 사실도 강점이다.
이상의 이유로 보면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K리그는 괜찮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기존에 판로를 확보해 놓은 에이전트를 통해 동유럽/브라질 용병들을 연결해서 복권 긁듯이 진행되었던 외국인 선수 영입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노력하기에 따라 더 훌륭한 선수들을 영입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 특히 베라와 시시의 성공할 수 있는지 여부는 우리 K리그에게도, 해외의 선수들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해외 여러 구단들의 관심을 끌어 이적을 노리기도 좋으면서도, 괜찮은 여건과 높은 리그 수준을 가진 리그가 바로 K리그라는 말이다. 이정도면 최후의 종착지는 아니더라도 제 2의 도약을 노리는 선수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강점을 지녔다. 수원FC의 시시가 이적한 뒷얘기를 보면 그 자체가 자신의 삶에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긴 하지만, 일단 한국과 K리그가 스페인 출신인 그에게도 나쁜 선택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시시 이적 인터뷰 http://footballist.co.kr/bbs/board.php?bo_table=press&wr_id=16644)
(△ AFC 국가 순위표 가장 상단에 자리하고 있는 대한민국. 클럽 점수의 경우 사우디보다 조금 쳐지지만, 사우디 팀들은 결승에 오르기 전까진 우리나라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만나지 않는다. 일본과 중국과도 클럽 점수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3. 좋은 선수를 영리하게 수급하자
K리그는 유스팀을 제대로 정비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듯하다. 이번 시즌에 눈에 띄는 권창훈, 심동운, 김민혁 등 어린 선수들은 프로팀들의 산하 유스팀이 길러낸 재능들이다. 어린 선수들이 잇단 이적으로 팀에 빈자리가 생긴 틈을 타서 속속들이 성장하고 있다. 재능 있는 선수들은 언제라도 해외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K리그 챌린지의 창설과 함께 뛸 곳이 많아진 것은 더욱 긍정적인 일이다. 신인들은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으며, 부진에 빠진 선수들도 챌린지를 비롯한 하위리그에서의 활약을 통해 부활을 노리는 선수들도 많아지고 있다. 최근 많은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고 있는 청춘FC처럼, 괜찮은 재능을 가졌지만 시야에서 벗어난 선수들이 많이 있다. 각 K리그 구단들은 시야에서 벗어났지만 재능 있는 선수들을 꾸준히 발굴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K리그에게 진정한 블루오션은 외국인 선수 영입이 아닌가 싶다. 유소년 선수들을 육성하는 것은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외국인 선수들은 아시아쿼터를 포함해 4명의 제한이 있긴 하지만 국내 선수들보다 영입에 있어 훨씬 선택지가 넓다. 합리적인 가격에 팀이 원하는 선수들을 영입하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 가능성을 있는 선수를 영입해서 다시 이적시키는 것에도 시간이 필요한 유망주 육성보다 용이하다. 팬들의 감정을 생각해도 외국인 선수가 팀을 떠났을 때 받는 심적 충격도 적다.
최근 포항은 외국인 선수들을 조커로 주로 이용하고 있고 수원이나 전북의 경우도 외국인 선수가 대체 불가능하진 않다. 국내 선수들의 수준도 한층 높아져서 예전에 라데나 샤샤처럼 리그를 '씹어 먹는' 선수가 나타나긴 쉽지 않다. 물론 중국과 중동의 과감한 투자가 이어지면서 이미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그리고 비싼) 용병들을 데려오는 것이 어려워진 것 역시 하나의 이유이다. 어쨌든 K리그의 정상급 클럽들을 비롯해 리그의 현재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졌다.
그래서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충분한 적응 기간을 제공하고 팀의 구성원으로서 발전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고 또 그것이 실제로 가능해졌다. 전북은 그런 굉장히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시즌 초반 이동국과 공존을 모색하기도 했지만 때론 이동국 혼자서도 경기를 잘 이끌 수 있었기 때문에 에두는 서서히 출전 시간을 높여가면서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외국인 선수들의 이적 과정을 보면 처음부터 정상급 선수를 영입했다기 보단, K리그의 활약을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K리그에서의 맹활약은 선수와 팀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고 훈훈한 이별도 나올 수 있었다.
외국인 선수의 영입에 있어 이번 여름 이적 시장은 의미를 갖는다. K리그는 기존 브라질과 동유럽 출신 선수에 편중되어 있던 것과 달리 이번 여름 이적 시장에선 스페인 선수들도 K리그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번에 합류하는 베라와 시시의 경우 FA로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은 이른바 '꿀영입'이다. 이들의 활약과 향후 행보에 따라 많은 유럽 선수들이 K리그로의 진출을 꾀할 가능성도 있다.
실력을 갖추면서도 그다지 높지 않은 비용으로 영입할 수 있는 선수들을 찾아낼 스카우트 체계는 필수적이다. 스카우트 망 구축에는 상당한 돈이 소요될지도 모르는 일이나 비싼 선수를 사오는 비용에 비하면 작은 투자로 가능한 일이다. 괜찮은 선수를 적당한 가격에 사오고 해외로 이적시킬 수 있다면 리그 전체의 수준을 유지하는 동시에 재정적인 안정을 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유난히 국내 선수들에 대한 애정이 큰 팬들을 생각해보면, 외국인 선수들은 '비지니스' 차원에서 접근하기에 더 적당한 대상일 수 있다.(물론 외국인 선수와도 인간적인 교감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올해 초 에두를 '공짜'로 얻어와 40억에 판 전북은 남는 장사를 했다. 동시에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전력 유지에도 성공했다. 팬들 역시 떠난 에두의 축복을 빌어주고 새로운 선수들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 팀도 웃고 팬도 웃고 선수도 웃는 이적이 아니었을까.
4. '거상'이 되자
구체적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거상’ FC포르투이다. 알짜배기 선수들을 영입하고 이들이 리그/챔피언스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이적료 수익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FC포르투는 지난 시즌에도 UEFA챔피언스리그 8강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보였다. 이런 성과를 기반으로 또 많은 선수들이 팀을 떠났지만 FC포르투는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FC포르투가 매년 거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이적료 수입을 가능성 있는 선수들에게 재투자하면서 다음 시즌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영입을 통해 팀의 수준 역시 떨어뜨리지 않는다. 여전히 포르투갈 리그가 좋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FC포르투가 좋은 경기력을 보이기에 모든 빅클럽들의 관심도 끌 수 있는 것이다. 동시에 가능성 있는 선수들의 이른바 '포텐'을 터뜨리고 이적에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잭슨 마르티네즈, 다닐루, 산드루 등 선수들의 이적으로 1000억원이 넘는 이적료를 벌어들였다. 동시에 재능 있는 선수들을 적은 투자로 다음 시즌을 위한 보강도 알차게 했다. 이 선수들이 성장한다면 다시 새로운 수익을 가져올 수 있다. 재투자가 이어져서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선수의 이적을 마냥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 역시 우리에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유망주들을 쏟아내는 네덜란드는 선수 육성에 강점을 두고 있다. 주변에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자본이 압도적인 빅리그들을 두루 두고 있는 입장은 우리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에레디비지에 소속의 대부분 구단들은 흑자로 팀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구단의 수익은 주로 선수의 이적에서 발생하고 있다. 흑자로 팀을 운영하면서 많은 유망주들이 빅리그로의 진출이 가능한 '교두보'로서 역할하고 있는 에레디비지에는 우리 K리그에게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우리가 키운 선수들은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중국/중동 구단들의 타겟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손 놓고 선수들을 해외로 마냥 떠나보낼 수도 없다. 이왕 타겟이 될 거라면 만족스러운 가격에 선수의 해외 이적을 추진하고, 새롭게 선수들을 영입하여 육성해내는 것을 고려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말이다. 전 아시아 클럽이 좋은 선수를 물색하는 '시장'이 된 마당에, 우리가 길러낸 선수들만 팔 이유는 없다. 중세 이탈리아의 부흥을 이끌었던 것은 바로 중계 무역이었다. 우리 역시 묻혀있는 외국인 선수를 잘 발굴한다면 이익을 남기면서 다른 팀으로 이적시킬 수 있다. 물론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한 유소년 육성 시스템도 잘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겠다. 선수들에게 K리그는 매력적인 무대이고, 다른 아시아 구단들에겐 매력적인 시장이다. 많은 상품이 있고 많은 구매자가 있는 마당이니 적극적인 판매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K리그가 나아갈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K리그 클럽들도 '거상'이 되어야 한다.
(△ 수원 유스팀이 길러낸 권창훈. 잘 키운 유스를 보는 것은 스타 영입보다 더 기쁜 일이다. 출처: 수원삼성 블루윙즈 홈페이지)
근대화의 물결이 다가오던 1800년대 후반 조선은 외국과의 무역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일본과 청에서 쏟아지는 값싼 공산품들에 밀려 조선 내의 경제는 파탄이 났으며, 각종 이권을 일본을 포함한 서구 열강에게 모두 빼앗겼다. 재정 부족은 제대로 된 근대화를 어렵게 만들었고 끝내는 나라를 일본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K리그 역시 급격하게 변한 상황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해외 리그에 여러 선수를 빼앗기면서도 ‘유출’에 대해 우려할 뿐이다.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처럼 기존의 질서를 지키는 것이 능사일 수 없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 K리그의 자원들을 함부로 빼앗겨서도 안 되겠지만, 변한 상황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오히려 K리그에 더 심대한 위기가 올 수 있다. 우리 K리그가 아시아 내 여러 리그에 매력적인 선수들을 제공하는 판매처가 되고 있다면, 우리가 가진 상품들을 더 잘 만들고 포장해서 비싼 값이 파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이를 K리그에 재투자해서 더 튼튼한 리그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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