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어떤 작품에서도 늘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주제입니다. 사랑은 대단한 동력을 생산하지요. 비슷하면서도 그 사람에 대해서는 특별합니다. 사람이 다르니 나타나는 사랑의 표현도 다릅니다. 은근하게 또는 강렬하게 때로는 애틋하게 참으로 다양합니다. 하늘을 날 것 같은 기쁨이 있는가 하면 땅이 꺼질 듯한 슬픔이 닥쳐오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기쁨이고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사람들을 불행의 골짜기로 몰아갈 수도 있습니다. 하기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롤로코스터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래서 그 힘이 대단한 모양입니다. 결과를 예견하기도 쉽지 않지요. 결과를 예측하며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없습니다.
젊은 사업가인 조지 펨버튼이 어느 모임에 갔다가 여자를 보게 됩니다. 사고로 부모 가족을 모두 잃고도 당당하게 자라서 여걸이 되었습니다. 물론 사고로 인한 아픔과 상처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을 이겨내려 더 강하게 성장하였는지도 모릅니다. 두 사람은 한 눈에 서로를 담았습니다. 첫 만남에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 천생연분입니다. 아버지의 사업장에서 자란 세레나는 벌목장의 상황을 잘 이해합니다. 그래서 동종의 사업을 하고 있는 조지와 배우자이면서 파트너가 됩니다. 단순히 고운 여성이 아닙니다. 그만한 역량을 지니고 있는 커리어우먼이지요.
조지에게는 함께 하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특히 오른팔과 같은 돕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장인 조지가 결혼하고 오더니 아내를 소개하면서 파트너로 인정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벌목 현장에서 그 능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보통 여자가 아니로구나, 현장의 모든 일꾼들이 보았습니다. 문제는 여태 누리던 자기 자리가 흔들리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사장님의 사모님과 일터의 파트너와는 다릅니다. 사모님은 깎듯이 모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터의 파트너는 경쟁자일 수 있습니다. 자칫 여태 누려왔던 그 자리를 뺏길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분명 비교가 될 것이니 말입니다.
결혼하기 전 조지는 현장에서 심부름하는 여자를 가까이 했습니다. 젊은 이방 여자이지만 비교 대상이 없는 마당에 그만하면 괜찮은 여자지요. 그래서 섹스 파트너로 사용(?)하였습니다. 현장 근로자들은 모두 눈치 채고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탓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탓할 처지도 아닙니다. 여자 또한 그것을 빌미로 자기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결국 임신합니다. 그래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야 자기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그뿐입니다. 그런데 그 무렵 아내를 맞게 되었습니다. 사장의 아리따운 아내가 된 세레나가 일터로 찾아온 그 날 두 사람은 멀찍이서 눈빛을 나누었습니다. 갓난아기를 가진 여자가 남자들 일터에 있다니? 여기 누군가와 결혼한 여자인가 보다 생각했겠지요.
시간이 흘러 세레나도 임신을 하게 됩니다. 불러오는 배를 서로 바라보며 만져보며 부부의 정도 깊어집니다. 그런데 그만 사고가 발생합니다. 세레나의 도움으로 한 사람이 위급한 상황을 벗어나 목숨을 구하고 대신 세레나는 유산을 하게 됩니다. 더 무서운 것은, 다시는 임신할 수 없다는 의사의 선언을 듣게 됩니다. 세레나는 절망에 빠집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일단 이겨내야 합니다. 선택의 문제도 아니지요. 부부가 함께 그냥 이겨내야 하는 삶의 조건입니다. 그리고 사실 부부의 사랑은 그것으로 흠이 생긴 것도 아닙니다. 두 사람은 변함없이 사랑합니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다. 그런 상황이 일어난 동기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세레나는 사업에 있어서나 사람들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조지보다도 냉철하고 이성적입니다. 그것이 조지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그러나 자기 주변의 변화를 어떻게 감지할 수 있을까요? 아내가 능력 있는 파트너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사장이 통솔하는 것과 사모님이 통솔하는 것과는 분명 다릅니다. 사장이 일꾼들에게 그것을 요구한다고 해도 다를 것입니다. 어쩌면 일꾼들의 입장에서는 머리를 둘 가지는 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 자체는 헷갈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하면서 감정이 헷갈릴 수는 있습니다. 사람의 일이란 것이 이성만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보다 잘되라고 하는 일이지만 분별할 필요는 있습니다.
조지는 아내에게서 자식을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비록 마음에 우러나서 얻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낳아 길러지고 있는 그 아이가 자기 씨일진대 신경이 안 쓰일 수 없지요. 그래서 아내 몰래 양육비를 따로 보내주며 그 여자를 돕습니다. 그 아기 사진까지 숨겨두고 봅니다. 그렇게 영원히 숨겨둘 수만 있다면 오죽 좋겠습니까? 유산하고 나서 더구나 다시는 임신할 수 없다는 사실에 세레나는 매우 예민해집니다. 남편의 낌새를 눈치 채고 사무실 서랍을 열고 확인합니다. 아기의 사진과 양육비를 찾아내서는 아기와 아기엄마가 함께 나온 사진을 울부짖으며 찢어발깁니다. 이 자식이 있는 한 남편의 마음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아기를 살해할 작전을 폅니다. 남편은 자기 씨가 위험에 빠진 것을 깨닫고 건지려고 달려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너 없이는 세상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정도의 사랑에 빠집니다. 두 남녀가 그렇게 지극히 사랑합니다. 그 사랑을 어떻게 유지해 가는가 하는 것이 숙제입니다. 헤쳐 나가야 할 인생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로이기 때문이지요. 남편의 일터에 한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그 후의 변화는 참으로 예상 밖의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사랑이 만들 수 있는 비극이기도 합니다. 정말 행복할 수도 있는 부부였는데 말입니다. 영화 ‘세레나’를 보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댓글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좋은 하루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