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늘 감사하는 삶 / 홍속렬
내 청년 시절은 질풍노도의 젊음이었다.
소년병으로 군에 입대 군 생활에 적응해 가며 사병 계급이
높아가면서 사병들 세계에서는 인정받고 의리가 있었고
군 생활에서 상명하복의 질서에 적극호응하니 군에서는
꼭 필요한 인재였고 특히 축구를 잘해서 경기에 나가면
우리 팀이 경기에 스코어 상 뒤지고 있으면 울며 뛰고 달리며
팀원들을 독려해 반드시 승리를 쟁취해 놓으니 군에서는 운동
경기에 패하면 전쟁에서 패하는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지휘관들은
그런 나의 축구경기 태도를 보고 언제나 군의 매우 중요한 보직에
보임하도록 배려해주셨다.
한창 젊고 패기가 넘쳐 날 때 월남전에 지원해서 파병을 갔다.
두번이나 파병을 가서 많은 전공을 세우고 두번 특진을 해서 가장
젊으 나이에 육군 상사로 진급을 했고 귀국하면서 공수특전단으로
보직을 받고 특수전 부대원이 됐다
우리 집은 부친의 정직과 무능으로 인해 너무 가난해서 온 가족이 심한
가난에 힘들어하며 동생들이나 나, 까지도 젊음과 삶에 대한 태도가 늘
가난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렇게 젊은 시절에 당당했던 나
자신도 시골 가정 문제가 화두로 떠 오르면 나는 의기소침해서 어깨가
저절로 굽혀지고 자신감을 상실하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곤 했다
한 마디로 젊음을 그대로 받아드리고 용감하게 즐기거나 음미해보지 못하고
깊은 열등감에 빠져들고 말게 되는 병에 걸린 것이다
그래 멋있는 연애를 할 기회가 주어져도 시골집의 가난으로 인해 자신감이
결여돼 연애를 거부하곤 했었다
두 번이나 파병을 다녀와 공수부대 베레모를 쓰며 젊음과 베레모와 멋
있는 얼룩무늬 군복이 잘 어울려 아가씨들에겐 멋있고 용감하고 노래 잘 부르고( 우리 동요 및 가곡)
술 담배 안 하고 신사로서 매너 좋으니 인기 만점이었다
70년대 군인으로 총각 상사가 드물었던 때 나는 당당 24세의 육군상사였으니 말이다
프로포즈 해 오는 아가씨와 몇 번 대화 해보고 내 수준이 맞지 않으면
다음 데이트 약속을 하지 않았다
대화가 잘 되고 좋은 반려자의 조건을 갖춘 아가씨를 만나면 명동 골목길
뚝배기 된장 백반 파는 골목 식당으로 가서 뚝배기 백반으로 식사를 하며
반응이 어떻게 나오는지? 시험해 보고 몇 번의 데이트를 취소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의 아내는 싫어하지 않고 잘 먹고 적응하는데 결혼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되어줬다
내가 너무 가난했기에 이 가난을 함께 잘 이겨 나갈 수 있는 결혼 상대를
찾은 것이었다
내 생각은 적중해서 결혼 54주년을 맞는 즈음 아이들 셋 잘 교육하고 힘들고
어려웠던 지난 세월 잘 이겨 나왔다
(사실 내가 한국 여자축구를 살려 보겠다고 대들지만 않았어도 우리 가정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운 없었을 것이다)
시방 나는 중미에서 8년간 축구로 선교를 하고 돌아와 몸과 마음을 쉬며
갖는 생각은 아직도 열정과 건강을 갖고있고 꿈과 비젼을 나누며 많은
독서와 인생에 있어 실패와 성공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일을 더 하고
싶은 욕심을 갖고 있어 매일 시간을 허비하는 듯한 요즘의 삶이 싫고 어떤
생산적인 일 즉 내가 할 수 있는 스포츠 분야에 더 일할 수 있기를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고 있다
이번 기회야말로 인생 중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 즉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토대로 바르게 실패가 없고 성공적으로 일을 해낼 수 있는 자신감에
차 있기 때문이다
1977년 육군대표 축구팀 감독으로 부임할 때 아내는 내게 말 했다
“당신같이 무명선수 출신이 대 육군대표 축구 감독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선수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일 것이다”
아내의 말에 감동이 되어 1977년부터 시방까지 축구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해서 수 백 명에게 복음 전했고 공병부대에서에 불하 되는 군 컨세트를 내 개인
돈으로 불하받아 여호수아 교회를 세웠고 교회 없을 때 부태 32개 종목 선수
80여명을 신앙으로 인도하며 한국 프로 축구 1호 할렐루야 축구팀을 창단
하는 역사도 이뤄 냈고 무명선수 50여명을 상무에서 국가 대표로 선발시키는
역사 그리고 한국의 여자축구의 여명을 열었고 나 개인 사재를털어 여자축구를 시작
오늘의 여자 축구의 역사를 쓴 동기등 이 모든 일들을 아내의 내조 없이는 이루어 낼 수 없었던 일이다
참고로 무명선수들 50여명을 국가대표 선수로 키워 냈는데 그 중엔 꽁지머리 김병지
한창 인기절정의 유럽의 손흥민이 父 손웅정이도 내 작품이고 손웅정이 장남 손흥윤이는
사이버 대학에서 가르쳤다
첫댓글 무명의 자랑스런 업적입니다. 좋은 결과까지 보고 계시니 보람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과거가 우리네 인생살이이고 그 결과가 있다면 훌륭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즐겁고 행복한 시간 만들어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