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갑자기 변신을 할까. 아무 탈 없던 아들 딸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아무런 다른 징후가 없었다. 동네 어른들 만나면 인사 잘 하고, 부모 말이라면 별로 거역하는 법이 없이 순종했고 학교 성적도 늘 상위권이었다.
불과 반 년 만에
그러던 자식들이 대학에 진학하거나 서울 유학 생활 불과 반년도 채 안 되어 확 변하는 것이었다. 경찰서에서 주로 공안 문제를 담당하는 경찰조사관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일이 있다. 서울대 등 서울의 소위 명문 대학에 진학한 시골 출신들 중에 유달리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자들이 많다고 했다. 예컨대, 어머니가 떡장수 두부장수를 하는 집의 외동 아들이 서울에 진학해서는 그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고 격렬한 운동권이 되어 그 어머니 속을 "새까맣게 태운다"는 것이다.
측은지심이 남다르지도 않아
고등학교 때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사회 문제를 계급 대립적으로 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측은지심이 남다른 것도 아니었다. 예컨대, 길 가다가 추운 거리에 가벼운 옷을 걸치고 떨고 앉아있는 사람을 보고 입었던 옷을 벗어주고 오는 그런 자식도 아니었다. 그저 하루 세번의 밥 잘 챙겨 먹고 공부 열심히 한 평범한 학생이었다.
오리엔테이션 MT 그리고
그 '아이들'을 변모시키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오리엔테이션 (orientation) M.T. (membership training) 그리고 학내 동아리에서의 "의식화 교육" 때문이었다. 그 훈련 교재로는 주로 일본어판 사회주의 교재들이 쓰였다. 그 교재를 읽게 하기 위해서 수개월 간의 일본어 트레이닝도 거쳤다.
왜 운동권이 되나?
"가치를 가르쳐주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가치, 생활의 가치, 바른 생활, 옳고 그른 것들에 대한 가치 판단을 "보여준다." 이때까지 시골 출신 떡장수 두부장수의 아들들 또는 딸들은 그저 "허허벌판"이었다. 그 의식의 들판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심어져 있지 않고 황량하게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의식화 교육의 결과 그 아들은 "계급투쟁적" 사관을 가진 의식인이 된다. 그리하여, 제 어미가 고생하는 것도, 떡장수를 하는 것도 모두 제도 탓이라고 생각한다. "기득권층이 부를 독점하고 친일반민족 세력이 사회지도층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가 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허리가 휘도록 일했건만
기가 막히는 것이다. 허리가 휘도록 일했다. 오직 희망이라고는 고이 키운 그 아들이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고시 패스하여 판.검사는 되지 못하더라도 좋은 직장에 취직이라도 해서 좋은 여자 만나 장가 가서 잘 살아주는 것이었다. 뭐 자식 덕을 보고 호강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게 뭔가? 경찰서 조사관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아들의 모습--기가 막힌다. 잠도 제대로 못 잤는지 핏발선 눈에 적개심이 가득하다. 조사관이 "아들의 죄상"을 일러주는데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도 못하겠다. 아들은 "죄송하다"고만 말한다.
떡장수 어머니가 아들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이 땅의 어머니들도 "무장을 해야 한다." 고이 키운 자식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말이다. 누군가 이제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그게 뭘까? 부모가 단순한 생활공급자 (provider) 역할만 해서는 안된다. 대화자가 되어야 한다. 이걸 잘 하기 위하여 무슨 카운셀링 기법을 공부할 필요도 없다.
다른 말로 하면, 지금까지처럼, 공부하는 자식 마음 상할까 봐 발걸음도 조심조심, 아들 딸 학교에서 돌아오면 "얘야, 힘들지?" 이러면서 갖은 과일과 음료수 챙겨 들고 들어가는 일을 그만 두어야 한다.
전혀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뭔가 대화를 하라는 것이다. 일방적인 "훈시"라도 좋다. 그 "텅텅빈 자식의 벌판"에 "의식의 나무"를 심으란 말이다.
이 세상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부모는 사실 "많은 생활의 지혜"가 있다. 신문을 구독하지 못하는 경우라도 텔레비전도 훌륭한 교사다. 그런 정보에 자신의 생각을 보태 말하는 것이다.
보편적 가치를 가르쳐야
가장 보편적 인간의 가치를 자주 이야기해야 한다. "보편적 가치"란 무엇인가? "이기적 동물"로서의 인간은 "보편적 이기심"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 보편적 가치는 우선 가까운데서부터, 친한데서부터, 그리고 여력이 있는 경우에 먼데까지 "이기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세상에는 고 제정구씨나 테레사 수녀같은 빈민운동가들이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이들을 흉내도 못낸다. 우선, 세속의 인간들은 자신을 돌보고, 부모를 돌보고, 친척을 돌보고, 그리고 남아도는 힘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보태야 한다.
홱 돌아버린 내 누이
시골의 여고에서 괜찮은 성적으로 졸업했었다. 서울대학교 간호대학에 들어갔다. 재학중에도 잇따금 데모를 하고 늦게 들어오곤 했지만 그런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졸업식날도 낮동안은 아무 낌새를 차리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집에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누이가 곧 대학병원 같은데 곧 발령받아 취직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날벼락이었다.
그렇게 취직도 하지 않은채, 가족과도 소식을 끊은채 무슨 단체와 어울려 무의촌봉사인가를 다닌 것이었다. 어찌어찌 수소문해서 부모님도 상경한 자리에 누이를 데려올 수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를 적대적 계급관계로 봐
나는 내 누이가 학교의 동아리에서 의식화교육을 받았으며, 그 결과 간호사라는 직업을 의사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노예적 계급관계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장장 몇 시간의 내 나름대로의 "의식화교육"을 실시했었다. "니 학교 다닐 때 길 가다가 추위에 떠는 사람 보면 옷 벗어 줬니? 아니지?" "세상을 그렇게 종속적 관계로만 보면 어느 직종, 어느 직장이 무사할 수가 있겠니?"
병원에 가 보라
나는 내 누이의 탈출 사건을 겪은 후 병원에 가면 아주 유심히 간호사들을 본다. 솔직하게 말해서, 간호사 현직에 종사하는 자들까지도 의사에 대해서 아주 적대적인 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간호사는 그 직종의 성격상 "의사의 업무를 보조하는 자"여야 하는데 이게 잘 안된다. 대학병원의 응접실 같은 데 함 가 보라. 응급환자가 카우치에 누워있는데 의사 옆에 간호사가 대기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결국 이 "뻣뻣한 관계" 때문에 환자들만 죽을 지경이다.
"간호사님, 거즈" 그 옛날처럼 "의사선생님"이 "간호원!"하고 큰 소리로 부르지도 못한다. 아마 그날로 그 의사 그 병원을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거의 동배의 의사와 간호사가 서로 "말을 트고 지내며" 앞에서처럼 의사가 간호사를 부르는데 "간호사님"하고 아주 공손하게 부르는 걸 보고 놀랐다.
의사가 간호사를 공손히 불러준다고 해서 그 간호사 또는 간호사들이 제 일을 찾아 척척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출혈을 하고 있는 환자의 경우, 지혈과정을 간호사가 보조해야 하는데, "간호사님, 지혈감자" 이러면 간호사는 그것만 달랑 건네고는 저만치 떠나 가 있는 것이다. 일일이 간호사를 부르기가 뭣한 의사는 자신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는 것이다.
그래 봐야 다 임종석의 밥이야
사회정의도 좋고, 민주화도 좋지. 조국 통일도 좋고 민족 자주도 좋지. 그래서 한총련이 있다고 치자. 그래서 거리로 뛰쳐나가 경찰에 돌을 던지고 화염병을 던진다고 치자.
그래 봤자 뭔가? 그 결과가 뭔가? 그래 봤자 "임종석이 좋은 일 시켜줄 뿐"이야. 임종석 국회의원 시켜주려고 그 숱한 한총련 학생들은 다치고 깨진 것이다. 사회에 적응도 못하고 폐인된 자가 얼마인가!
다 임종석의 밥이야. 수백 명 또는 수천 명 거리로 나가 물대포를 맞고, 경찰봉에 얻어 맞고, 발길에 채어 부상을 당한 결과는 뭔가? 임종석을 국회로 보내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그 악순환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다른 계급
공산혁명? "그거 개뿔이야!"라고 일찍이 설파한 분이 있다. 밀로반 질라스 (Milovan Djilas) 전 유고 부통령의 말이다. "그건 새로운 계급을 낳았을 뿐이야!"
새로운 계급 (a new class). 그렇다. 친일반민족행위 청산을 아주 깊고 알뜰하게도 한 북한은 어찌 됐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김일성 김정일 세습왕조를 탄생시켰을 뿐이다.
지금 남쪽의 집권세력이 노리는 것은 뭘까? 장기적으로는 열우당의 장기 집권 포석, 단기적으로는 한나라당과 부수 우익 세력의 척살, 보수 성향의 미디어를 죽여 차기 집권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지 뭐. 뻔하지 뭐.
남쪽의 민주화 지식인 집단, 그 민주투사 출신의 정치꾼은 '조선'이라는 이름 외에는 허위와 기민 뿐인 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목을 메고 있다. 참으로 엽기적 군상이다.
갖은 호화사치를 일삼아 올챙이 배때기를 한 인민복의 김정일의 인민궁전을 지금 "쾅!"하고 격추공 (wrecking ball)으로 부숴버릴 절호의 기회가 닥쳤는데도 "김정일의 심기를 거술러 남북관계를 경색시킬 수 있다," 뭐 이런 말을 웅얼거리면서 미국의 양원이 통과시킨 [북한인권법안]에 딴죽을 걸고 있다.
자존 독립하라
자존 독립하라. 개인으로서, 지고한 인격체로서 독랍히라. 이 직업 정치꾼들은 이미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그 의식 속에 행동 청사진이 그려져 있다. 학생회장=>데모지휘=>집시법 위반 또는 국보법 위반=>투옥=>민주투사 라벨 획득=>정치권 입당 권유=>입당=>공천=>입후보 당선의 이정표가 그려져 있는 것이다.
국법은 어디에 있나?
도대체 이 나라 헌법은 어디에 있나? 이 나라의 국가 법질서라는 게 존재하기나 하나? 김민석과 임종석을 투옥시킨 검찰과 법원을 부정하고 만다면 도대체 이 나라의 법질서는 어디에 있나?
"민주투사"의 민주화 기여를 상당 부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 그들 운동권을 기소하고 투옥시킨 실정법을 국가의 법체계로 인전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가 도대체 무엇에 의해서 유지되나?
부연한다면, 지금 열린우리당이라는 해괴한 이름을 가진 집권 여당의 소속 국회의원들의 "과거사 청산"이란 바로 지난날 자신들을 집시법 위반이나 국보법 위반으로 기소하고 유죄선고를 한 그 검찰과 법원을 다시 조사하고 "기소하고 처벌하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이라는 이 해괴한 이름의 정당이 "적법 타당했다"는 판단을 할 때까지 일체의 국법 집행 행위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의 정치 권력을 민주화 투쟁의 보상으로 받아들여야
내 "법질서 담론" (Discourse on Law and Order)이 어렵나?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무슨 철학강의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의식을 긴장하여 들으면 다 이해할 수가 있다.
지금 열우당 국회의원들은 지금 그들이 집권당이 된 것과 그 정당 속에서 입법부의 국회의원이란 국가기관이 되고, 예컨대 이해찬이 국무총리가 되고, 이부영이 여당의 당의장이 되어 있다면, 이 모든 "신분상승"이 지난날의 수고, 즉 "민주화투쟁에 대한 국민적 보상"이라는 말이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이 나라 국민이 빚진 걸 당신들에게 권력의 자리를 줌으로써 갚았다는 말이다.
이 셈이 확실하게 당신들 뇌리에 각인되어야 한다. 지금의 모든 혼란은 당신들이 워낙 공부는 않고 "데모만 하느라고" 수학적 계산 능력이 떨어져서 생긴 결과인 것이다. 이미 "계산이 다 끝났는데도" 당신들은 "더 받을 것이 있다"고 벼르고 있어서 이 혼란이 가중되는 것이다.
더 받으려고 하는 것
"과거사 청산"이다. 이게 뭔가? 마치 몽둥이를 들고 고리채를 받으려고 하는 악덕 사채업자처럼 있지도 않은 빚을 내놓으라고 강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사 청산"이란 다름 아닌 열우당 "정치꾼들의 복수 한 마당"이다. 지난날 자신들을 집시법 위반이나 국보법 위반으로 기소하여 처벌한 이들 국가기관의 종사자들, 검사와 판사들을 조사하여 그 "죄상"을 기록하여 그 당시의 국가기관에 "민주화 탄압"의 낙인을 찍으려는 것이다.
당신들이 과거를 부정하면 당신들 또한 "부정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역사의 필연이다. 당신들을 투옥시킨 그 당시의 법질서를 그대로 인정하고, 그 국가기관의 행위를 적법 타당하다고 간주하지 않으면 이 나라는 유지될 수가 없다. 그리고, 이 기초 위에서 당신들은 지금 지난날의 수고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이다. 그러니, "추악한 복수극은 중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