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youtube.com/live/372_tJnAhQ4?si=qVQMrkPcc-eqoUCx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5:1~6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진리에 대한 순종 5:7~12
7 너희가 달음질을 잘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
[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예수님이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할례받고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는 자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집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가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만 효력 있습니다.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고 성도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심판받습니다.
----------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5:1~6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행함과는 상관없는 방종이 결코 아닙니다. 바울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기회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권면합니다(5:13).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여러 차례 언급했는데, 그가 말하는 믿음은 행위와 상관없는 믿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6절). 따라서 우리는 ‘이신칭의’ 진리를 행위와 상관없는 믿음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성도의 믿음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동반되는 ‘실천적인 믿음’ 혹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누리되, 그 자유를 가지고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고 섬겨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란 어떤 자유인가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도록 내가 시도할 것은 무엇인가요?
----------
진리에 대한 순종 5:7~12
참신앙인은 진리에 순종합니다. ‘진리’란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자유를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거짓 교사들로 인해 거짓 복음이 마치 누룩처럼 순식간에 퍼져 나갈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성도들이 진리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을 확신합니다. 바울은 할례가 그토록 중요한 것이라면, 그런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이나 스스로 거세해 버리라고 풍자적으로 말하며, 그들이 심판받을 것이라고 단호히 경고합니다. 기독교의 자유는 진리에 대한 복종으로 누리는 역설적인 자유입니다(요 8:32). 잘못된 교훈을 분별하고, 복음의 진리에 순종하는 성도는 참된 자유를 누립니다.
● 더 깊은 묵상
바울이 거짓 교사들을 향해 강경하게 대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누룩과 같이 퍼져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에 내가 분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한절묵상:갈라디아서 5장 6절
믿음은 사랑의 시작이며, 사랑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믿음이
사랑을 통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사랑의 그릇이 작아서가 아닙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잠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힘은 믿음의 크기
에 비례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자신이 그리스도의 것임을 확신하는 사람은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결국 승리하게 된다. - 데이비드 윌커슨
오늘의 기도
주님, 제 노력과 힘으로 의로워지려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하찮게 여기는 것임을 마음에 새깁니다. 죄의 굴레에서 저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날마다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시고, 제 믿음이 지체를 향한 사랑으로 확인되고 드러나게 하소서.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의 멍에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성령을 힘입어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게 하여 주시고, 사랑을 통해 서로 섬기며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종상이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하고, 형식과 율법에 얽매인 삶이 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자
우리를 불러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인된 우리를 의인으로 칭하여 주시고,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신 그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자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게 하자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면서 주님의 말씀을 삶으로 실천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갈라디아서 5:1~12 이단 사상을 주의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여종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은 율법아래 종노릇하는 자로
사라의 아들 이삭은 약속의 자녀로 비유를 했다.
비록 육체를 따라난 자들이 성령을 따라난 자들을 조롱하고 핍박하지만
결국에는 성령을 다라난 약속의 자녀들 만이 유업을 누리게 될 것이므로
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자의 자녀가 되라고 하셨다.
계속해서 오늘 본문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으니
믿음에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신다.(1)
종의 멍에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처음부터 계속 주장하는 내용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는 논점이다.
유대주의자들은 구원의 조건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 + 알파가 있었다.
그 알파에 대한 구제척인 내용이 종의 멍에이고
종의 멍에란 율법이고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할례이다.
나 바울은(2)하고 바울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하고 있다.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2)
구원을 이루는데는 그리스도 + 할례가 아니라는 것이다.
구원 방법으로 두 가지가 결합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이 나의 죄를 대속하기에 충분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 외에 무엇을 더하는 것은
아무소용이 없을 뿐아니라 아무 유익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바울이 정말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할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을 위해서 할례를 행하는 것을 반대하고 무익하고 소용없는 일이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구원을 위해서 세례를 받고, 구원을 위해서 안식일을 지키고
구원을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은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1. 할례를 받는 자는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진자다.(3)
2.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자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요 (4)
은혜에서 떨어진 자다.(4)
모든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서 계명중 어느 하나라도 범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혹시 율법에 의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을 지 몰라도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누구든지 율법의 행위로 인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뿐아니라 이미 은혜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가 멸망의 구렁텅이로 들어가고 있는 자일 것이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살아야하는데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서 산다.(5)
2. 의의 소망을 기다리며 산다.(5)
3.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따라 산다.(6)
죄로 인한 형벌에서 구원을 받았고
죄의 권세에서 구원을 받았고
죄의 존재로부터 구원을 받은 내가
죄의 존재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소망을 기다리며 성령의 믿음을 좇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변화를 받아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믿음을 따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영혼에 부음바 되어 옛 자아는 죽고
율법으로 종노릇하던 나는 죽고 내 안에 계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분의 사랑이 내 안에 부어짐바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따라 산다.
주여 내가 이렇게 살게 하여 주옵소서.
생명보다 귀한 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하려고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 접근한 뱀 같은 존재들이 있다.
갈라디아 교회에는 교묘히 침투한 거짓 교사들이 있었고
오늘날도 연약한 인간의 심리에 죄와 율법
혹은 율법적 심리를 이용해 접근하는 세력들이 있다.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로
자유를 얻게 했던 사도 바울은
지금 거짓 교리로 자유를 침탈당한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굳건하게 서서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호소한다.
한 국가가 억압하는 국가로부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
치루는 희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엄청난 희생을 딛고 얻은 이 자유를 지켜 내는 것인데
여기에는 자유를 지키려는 의지력과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 할만한 힘이 있어야 한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희생 위에 세워진 교회에
성도의 자유를 엿보는 은밀한 마수의 손길이
갈라디아 교회에 뻗쳤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의 교회와 성도들의 양심을 위협하는 세력들이 있다.
우리들의 교회에서 건강한 신학의 역할은
이 은밀한 세력들을 파수하고 방어하는 역할을 하며
(왜 한 교회의 목사가 무슨 신학을 공부했는지가 중요한 이유이다)
성도 개인의 건강한 신앙은 강한 면역력으로
이런 병적 신앙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
오늘 날 서구 교회들을 무너지게 만든 세력이 자유주의 신학이라면
한국교회의 위협 세력은 율법주의와 신비주의 신앙이라고 생각된다.
율법주의 신앙은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에 감흥하여
감사와 믿음으로 받아 드리기보다
어떤 선동자들의 유혹처럼 병적 자존심이 발동하여
갈라디아 교인들이 할례나 해와 날과 절기를 지키는 것으로
자기의 공로(행위)를 덧붙이기 하고 싶어 한 것처럼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얻어내기 위해 인정받을 만한
나의 공로를 덧붙이기 하려고 하니 이것은 다만 은혜로 구원받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헛되게 하며 욕되게 하는 것이요
계속해서 이 덧붙이기를 유지하기 위해 율법의 종이 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신비주의 신학과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과 임재 체험을 위해
인간적인 방법으로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최근 우리 한국교회에도 불건전한 신사도 운동 같은 것으로 나타나
성도들의 신앙을 혼란에 빠트리는 일들도 곳곳에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것으로라도 성도들을 미혹하고 혼란케 하는 것들에 대해
바울은 오늘의 말씀 마지막 구절에서는 매우 극단적인 표현까지 썼는데
그것은 (할례 주장자들에 대해)
차라리 너희 자신을 베어버리기 원하다고까지 저주성 발언을 쏟고 있다.
여기서 너희 자신을 베어버리라고 하는 것은
할례의식에서 남자 생식기의 표피 일부분을 잘라내는 정도가 아니라
너희 자신의 거시기(생식기)를 예 거세하여 힘을 잃어버리고
멸망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무서운 저주성 발언으로 이해되는데
순수 복음을 지켜내려는 바울 사도의 마음이 얼마나 통분했으면
이렇게까지 나가야 했는가 하는 그의 모습에서
순수 복음을 지켜내기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읽게 된다.
오늘의 묵상을 내리면서 복음의 순수를 지켜내려는 사도의 권고처럼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고 바른 신앙에 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얻게 해주신 자유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과
이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깨어 굳게 서는 신앙을 가지는 것
그리고 어떤 영적 위협 세력도 퇴치할 수 있도록
평소 영적 강건함을 유지해 나가는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아침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새긴다.
오늘의 말씀요약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할례받는 사람은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있습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면 주님에게서 끊어집니다. 주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입니다. 성도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심판받습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복음을 받은 사람이 다시 율법의 멍에를 메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율법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율법에 의한 정죄나 심판은 더 이상 효력이 없습니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유혹에 넘어가 유대교로
복귀한 자들에게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책망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에, 성도가 할례를 받든 안 받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만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도 율법을 통해서는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의로워집니다.
- 묵상 질문: 그리스도인이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가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거짓 가르침에 휘둘리지 않도록 진리를 확고히 붙잡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누룩을 주의하라 명령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막8:15)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기독교적 종교인들의 부풀리고 과장한 설교를 가리키고, 헤롯의 누룩은 정치인들의 헛되고 거짓된 정치적 비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들의 성공을 위해 그들의 종이 되고, 헤롯의 누룩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들의 종이 되어 그들이 기뻐하는 집회에 끌려다니고 그들을 위한 댓글 활동을 하고 복음은 한 번도 전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말은 여기저기 다니며 열심히 전파합니다
그러나 때가 다 되었으니, 주의 말씀을 듣고 정신 차려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만약 누구든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따라 옳다함과 잘했다함을 얻으려 한다면 은혜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5:2~4)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누룩을 베어 버리기 원합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갈5:9~12) 왜냐하면 종교인들의 누룩과 정치인들의 누룩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갈5:7~8)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성령의 가르침, 곧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천국과 부활의 소망 가득한 믿음만 따르기 원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5:5~6)
그 소망, 곧 몸의 속량의 부활을 모든 인내 가운데 고대하기 원합니다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3~25)
어렸을 적 걸림돌에 자주 걸려 넘어지고 다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오늘은 안 걸려 넘어야지 하고 생각하다가도 또 같은 곳에서 넘어진 적도 있습니다.
걸림돌은 피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치워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의 교회에 스며든 거짓 교사들이 그들의 믿음의 경주에서 진리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었고, 상처를 주고 혼란을 가져오는 존재가 됨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고수하며 거침없이 율법의 칼을 휘둘렀던 그에게 지나칠 수 없는 걸림돌이 되었고,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자신이 가진 모든 기득권을 배설물로 버리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과거의 벗어버린 그 옷을 다시 입을 수도, 진리로 인정할 수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갈라디아 교인들도 그런 거짓 가르침을 버리고 교회를 새롭게 하도록 결단하기를 촉구합니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부귀와 무병장수를 축복의 근원으로 착각하며
광야에서 말씀하시고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는 무뎌지게 하는 일이 더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진리에 대해 깨어있고 용납할 것과 버려 할 것을 분별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갈라디아서5:1-12절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그리스도안에 참자유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음을
기억하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것을 말씀합니다
1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
바울은 거짓교사들이 주장하는 율법과 그리스도안에 참 자유를 비교합니다
먼저 거짓교사들이 주장하는 율법입니다
거짓교사들이 주장하는 율법은 먼저
2절 말씀에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너희와 상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느냐 하면 할례를 받는 사람은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하는 속박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속박아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4절에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
한마디로 거짓교사들에 의해 할례를 받으면 율법에 속박을 받으며
참자유가 없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안에 참자유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먼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하실일을 믿는 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5절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참자유는 떠 어떻게 나타납니까? 둘째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함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참자유를 정리하면 할례와 같은 외적인 외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일을 확신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거짓교사들의 특징을 말합니다
7절에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8절에 그들의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9절에 적은 누룩과 같다고 말합니다
10절 하반절에 그들은 너희를 요동하는 자이며 심판을 받게 될것이라 경고합니다
결론적으로 참자유를 가로막는 거짓교사들의 주장 할례를 받아야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거짓진리를 베어버리라 말합니다
12절입니다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거짓교사들의 주장을 베어버리라는 말은
그리스도안에 참자유가 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참자유, 즉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참자유를 누리시며 참자유의 은혜를 삶의 현장에 흘려보내며
믿음으로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모두 어리석은 양 같아서 우리의 앞길을 찾아갈 수 없었지만
우리의 목자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그 죄를 감당하게 하시고 또한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깨닫게 해주셨음을 찬양합니다.
구원의 합당한 삶으로 오늘도 우리의 시간을 아버지께 드리고 구하는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분을 담는 삶을 살아 내는 주님의 제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위에 기름 부어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풍성하게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불쌍히 얘기해 주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로 덮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모든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 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