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요선암과 요선정, 바로 이곳이 무릉도원
그 이름부터 호기심 유발하는 무릉도원면은 영월 서북쪽에 위치한다. 과거 수주면으로 불리던 지역에 속한 무릉리와 도원리 두 마을의 이름을 가져와 새롭게 무릉도원면이란 이름표를 붙였다. 무릉리와 도원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한데, 그 이름은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이 영월 군수로 재직하던 시절 이 지역을 방문해서 그 경관에 반해 붙인 지명이라고 전한다.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 요선암
지금도 신선들이 노닐 것 같은 무릉도원면 무릉리에 알쏭달쏭한 모습의 암석들이 강 위에 지천이다. 조선 전기 4대 명필로 이름을 날렸던,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를 읊었던 봉래 양사언은 평창군수 시절 이 기이한 풍경에 빠져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란 뜻의 ‘요선암(邀仙岩)’ 세 글자를 기꺼이 바쳤다. ‘그야말로 무릉도원이구나!’ 싶다
요선암 주변은 그야말로 무릉도원 같다
천연기념물 제543호로 지정된 요선암 사이를 흐르는 주천강은 이곳의 울퉁불퉁한 바위를 깎아 예쁜 항아리 모양의 바위, 돌개구멍을 만들어왔다. 강물은 자갈을 운반하다가 물을 만나 소용돌이치고, 이때 암석으로 된 강바닥을 침식하면서 움푹 파인 공간 돌개구멍이 만들어지게 되고, 물의 회전이 계속되면서 그 구멍은 점점 깊어진다. 요선암의 돌개구멍은 그렇게 장고한 세월 신선들이 이곳에서 놀며 깎아놓은 조각 작품처럼 남아있다.
세월이 만든 항아리 모양의 예쁜 돌개구멍
요선암 위 절벽 위에 오르면 주천강변의 절경과 함께 요선정에 남겨진 숙종대왕의 어제시를 감상할 수 있다. 영월로 유배와 생을 마감한 어린 왕 단종을 복위시킨 숙종은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짓게 하고 시를 지어 보내 현판을 달게 했다. 이후 숙종의 아들 영조가 시를 추가했고, 정조대왕 역시 시를 지어 보내 현판을 달았다. 한양에서 1천리나 떨어진 산골 오지 정자 하나에 세 분의 임금이 시를 하사한 기막힌 역사가 지금도 요선정 안에 남아있다.
요선정 함께 있는 마애여래불상과 탑
무릉도원 사람들은 숙종대왕이 꿈에서 보았던 강과 정자의 모습을 잊지 못하고 수소문하자 원주 목사 심정보가 주천면에 그런 곳이 있다고 하여 숙종대왕이 시를 지어 내렸다고도 얘기한다. 당시 요선정은 왕의 꿈을 논할 정도의 핫플레이스였다는 증거. 본래 이 숙종 어제시는 주천면의 청허루라는 정자에 있던 것인데, 일제강점기 홍수로 정자가 떠내려가고 현판은 주천면 경찰소장이었던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었다. 이에 거부감을 느낀 무릉도원면의 요선계 회원들은 이 현판을 매입하고 봉안하기 위해서 요선정을 지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마애여래불상
정자 옆에는 이곳을 찾는 이들을 바라보는 둥글고 무표정한 얼굴의 마애여래좌상이 태연하게 서 있다. 좌상을 새긴 커다란 바위 뒤에는 절벽 아래 주천강으로 뛰어들 것 같은 소나무 한 그루가 아슬아슬하지만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마치 요선정에서 요선암으로 날아갈 것 같은 한 마리 새처럼.
요선암으로 날아갈 것 같은 소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