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22일 (목)
제목 : 가룟 유다의 죽음
오늘의 말씀 : 마태복음 27:1-10 찬송가: 152장
1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2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6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9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10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중심 단어: 의논하다, 유다, 은 삼십, 피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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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지도자들의 불의
1절: 예수를 죽이려고 의논함
2절: 예수를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줌
4절: 가룟 유다의 죄와 자신들은 상관없다고 말함
7절: 불의한 돈으로 공공 사업을 행함
도움말
1. 빌라도(2절): 발레리우스 그라투스의 후임자로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를 다스린 로마의 5대 총독(A.D. 26-36년)이다. 그는 가이사랴의 로마 영지에 머물렀으나 유대 명절에는 관례에 따라 예루살렘에서 절기를 보냈다.
2. 그의 정죄됨(3절): 이는 예수님에 대한 산헤드린 공회의 사형 판결을 말한다.
3. 뉘우쳐(3절): ‘생각을 돌이켜 후회하다’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는 완전하고 철저한 ‘회개’(메타노이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말씀묵상
종교지도자들의 불의
날이 밝아 새벽이 되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참석하는 산헤드린 공회가 정식으로 열렸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예수님의 사형 선고를 공식적으로 의논한 뒤, 예수님을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줬습니다(2절). 산헤드린 공회의 종교 재판만으로는 예수님을 죽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는 로마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형집행권은 로마 황제의 권한을 위임받은 총독에게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형 선고와 집행은 분명히 불의한 일이었습니다. 불의한 일을 정당한 일인 양 법에 따라 처리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부패한 양심을 보게 됩니다.
예루살렘의 영적 혼돈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는 뒤늦게 후회하고 은 삼십을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돌려줬습니다(3절).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가룟 유다를 정죄하며 돌려보냅니다(4절). 그러자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유다는 성소에 들어가서 그 은을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5절). 대제사장들은 유다가 던져 놓은 은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는 대담한 죄악을 저지릅니다(7절). 잘못된 죄책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다와 그의 죽음을 방조한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에서 당시 예루살렘의 영적 혼돈 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종교지도자들의 불의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뒤늦게 죄책감을 느낀 가룟 유다는 결국 어떤 선택을 합니까(5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이 하는 일의 동기와 수단이 정직하고 올바르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2.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제공:프리셉트
<오늘의 묵상>
새벽이 되자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은 예수를 죽이기 위해 결박하고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준다. 그들은 밤새 예수님을 불의한 재판을 통해 사형시키기로 결단했다.
예수를 배반한 유다는 예수님이 사형 판결이 내려졌다는 것을 알게 되자 양심의 가책을 느껴 예수님을 판 은화 30을 가지고 대제사장에게 가서 돌려주며 “내가 죄를 지었소 내가 죄 없는 사람을 배반했소”라고 하자 그들이 가롯 유다에게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라고 말한다.
가롯 유다는 은화를 성소에 던지고 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오늘 아침 대제사장이 가롯 유다에게 한 말이 내 마음에 걸린다. 다른 말로 유다를 살릴 수는 없었을까? “우리가 알 바 아니다. 그것은 너의 문제다!” (메시지성경)
이 말은 유다에게 ‘우리가 이제 예수를 사형시킬 것인데 그 책임이 너에게 있다!’라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가롯 유다도 다른 제자들과 함께 ‘마26: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는 말씀을 들었던 자였다.
예수님이 베풀어 주신 성만찬의 자리에서 ‘마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하시면서 주셨던 잔을 마신자였다.
목을 매어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예수님께 나아가 용서를 빌었더라면, 베드로처럼 자신의 실수를 통곡하고 살아 있었더라면, 자신의 끔찍한 실수를 담당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만났더라면, 며칠만 참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났더라면....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과 인간 대제사장 가야바, 그의 장인 안나스(눅3:2, 요18:3)의 역할이 왜 이렇게 대조적일까? 예수님은 친히 모든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지만, 가야바는 자신의 부와 권세와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 불의한 재판을 통해 예수님을 죽이기 결정한다.
가야바는 대제사장으로 공정한 재판을 통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것을 막아야 할 사람이었다.
대제사장의 임무는 재판할 때 불의를 행하지 말아야 하며 가난한 자의 편도 권세 있는 자의 편도 들지 말고 공의로 재판해야 했다. (레19:15)
거짓인지,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했다. 자세히 조사해서 사실인지 확인할 의무가 있었다. (신17:4, 신19:16~19)
무엇보다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억울하게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했다. (출23:7)
대제사장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공정한 재판을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재판하는 사람이다. (신17:10)
안나스와 가야바는 대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한 재판을 통해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도록 주도한 범죄자가 되고 말았다.
히12: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왜 우리는 만인 제사장임을 주장하면서도 창조주요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일까?
대제사장들은 자신의 부와 권세, 명예와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한 재판을 하고 있다.
오늘 내 마음에 무뎌진 부분은 무엇일까? 작은 영혼과 작은 교회를 살리는 일에 있어서 ‘나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부분은 없는가?
‘나는 할 수 없어! 그것까지 내가 알 바 아니지! 그것은 당신들이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지!’라고 하면서 책임 전가하는 부분은 없는가?
자세히 살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대하19:6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여호와를 위하여 할 것인지를 잘 살피라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심이니라
7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 하니라’
1.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
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2. 오늘 내 삶 속에 실천할 일
내 맘속에 무뎌진 부분이 없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책임을 전가하거나 회피하거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 불의와 타협하는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자.
들꽃 가족들과 작은 교회 목회자들의 형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3. 성령께서 내 삶 속에서 역사하신 일, 감사할 일
나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심으로 영혼을 살리는 직분, 작은 교회를 살리는 직분을 맡겨주셨음에 감사
사랑의 주님. 저에게 맡겨주신 이 자리가 바로 영혼을 책임지라고 맡겨주신 자리임을 믿습니다.
하지만 맘이 상하거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거나, 반응하지 않으면, ‘내가 알 바 아니요 그것은 당신의 문제입니다!’라고 도망치는 비겁하고 불의한 종이 되지 않도록 붙잡아 주시옵소서.
저의 자리는 작은 영혼과 작은 교회를 살리는 자리임을 믿습니다. 이 자리에 주님께서 함께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저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감당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살리는 자리가 되게 하옵소서. 다시 일으키는 자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