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바람이 서늘하다면 서늘하고 그래도 포근하다면 포근할 자기 생각 나름인 봄날. 점심을 먹고 티비 화면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벌떡 일어나 난지도로 향한다. 골프 승마 또는 여느 우아한 운동 못지않게 자전거로 달려가는 상쾌한 마음이란...
며칠간 대통령을 했나 최규하 전 대통령 집앞을 달리면 아직 보초서는 젊은이가 있고 보초가 철수한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홍일네 집앞을 가노라면 권불십년을 생각케 한다. 최씨네는 근래에 노부인이 하늘나라로 가 초상을 치러서 그렇다 치고 홍일네도 왠지 쓸쓸하다.
망원동 골목골목 시장통을 지나노라면 언제부터 이 동네는 인구가 이렇게 많다냐 의심이 들고 그 어느 해던가 홍수가 나서 집값이 폭락했다던 이 위태했던 마을은 이제 한강 조망권 아파트가 버젓이... 그러나 조밀조밀한 집사이로 연립이 떼를 지어 아침마다 저녁마다 인간들로 북새통이다.
한강 망원지구에 들어서면 장사가 안되는 오리보트가 길다랗게 강가에 메달려서 춤추고 저 멀리 선유도 아래 분수대는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한채 강위에 둥실 둥실 양화대교 철교를 지나가는 전철은 아스라한데 성산대교 주황 아치가 그래도 따뜻하다.
페달을 밟아 한강을 북으로 오르다보면 일인용 이인용 자전거타는 사람 인라인 타는 매니어 가볍게 손을 흔들며 조깅하는 아낙네 모두들 지 갈 길 바쁜데 철지난 수영장은 조용히 을씨년스럽게 그렇게 한가하게 거기 버티고 서있다.
그뿐이랴 상암 나루터를 오가는 유람선도 수상스키를 태운다던 컨테이너도 수상면허시험장도 여름이면 고기굽는 냄새가 진동하던 난지 캠핑장에도 인적없지만 그 주위 놀이터나 잔디밭 그리고 강변으로 난 길 마다 연인들로 아이들로 북새통이다.
홍제천을 따라 난 샛길로 접어들어 월드컵 공원으로 들어서면 아예 적막이 깨어진다. 아직 나무들도 풀들도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고 햇볕도 적어 싹틔우기 힘들지만 인간들은 겨울에도 충분한 물과 음식과 영양탕을 끓여 먹고 양기가 뻗쳐 벌써 봄나들이 왔다.
인공호수 주위로 인라인 족들이 진을 치고 그 사이로 미니스커트의 연인들이 팔짱을 끼고 언제 다시 치를줄 모르는 저 상암 월드컵 경기장은 이제 전광판에 "선영아 사랑한다" 다섯자를 새기고 일금 오십만원씩 받는다고 하니 그 장삿속을 누가 말리겠는가?
이제 난지도로 가자. 어라 이게 원래 한강에 떠있는 한개 섬이었다는 말이지. 난꽃과 영지가 자라던 섬으로, 오리가 물에 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오리섬 이라고 했다고? 1977년 서울의 쓰레기 매립지로 운명이 바뀌더니 1993년 생태공원이 들어섯다는 난지도.
15년간 생활쓰레기외 산업쓰레기로 난지도 전체면적 82만평 가운데 57만평 쓰레기 산... 처음에는 국제적인 매립장의 일반 높이인 45m까지 매립할 계획이었으나 두배나 높이 쌓아서 세계에 유래가 없는 95m 높이 윗부분이 편편한 쓰레기산, 쌓인 쓰레기양은 8.5t 트럭 1300만 대분.
그러나 아는지 모르는지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미니스커트 청바지 아이들 곱게 색동옷 입은 강아지까지 모두들 힘들다며 계단을 오르다가 "오메 힘들어" "쬐게 힘들구마이" "아빠 더올라가야 돼?" 투정하며 갈짓자 하늘공원 계단 오르다가 월드컵 경기장 한번 보고 한강 한번 보고 두어 차례 쉬었다가 마침내 골인.
하늘공원에 가면 갈대 숲이 사시사철 있고 그 옆으로 난 순환도로가 생각보다 엄청 멀고 주위를 빙 둘러서 포토 아일랜드 그러니까 조망 좋은 난간에 기대 서서 저기가 북한산 저기가 안산 연세대 이화여대 뒤쪽에 잇는데 유영철이가 20구가 넘는 시체들을 묻은 산이 바로 저산이야 속닥이며.
그리고 내친 김에 남산도 보고 북한산 맨 서쪽 봉우리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이 손에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특히 비온뒤나 바람이 좀 부는 날은 서울의 스모그가 날라가버려 가까이 바로 아래 한강과 그 넘어 목동 여의도 낙지머리 전두환이를 생각케하는 국회
가을이면 언제나 이곳에서는 갈대 축제가 열려서 밤에도 개방되는데 그 가을 보름을 빼면 오후 4시 이후에는 간첩 올지몰라 오르지 말라고 하는 이곳 공원. 여기가 청와대 서쪽이라 그런다고? 청와대에서 서쪽 북악산 안산 하늘공원 그리고 멀리 인천까지 산이면 산마다 일몰 후 출입금지라.
저 갈대숲에 들어가 기나긴 뽀뽀를 하고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이 있을지라도 하늘공원의 하늘은 말리지 못할텐데 어이하여 갈대는 겨울이 되어도 죽을 줄 모르고 봄이 되고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되어서야 그 큰 자태를 뽐내며 울어예는가?
그리하여 지난해 그러께 여의도에서 열린 불꽃축제를 구경하고 갈대축제를 감상하려고 하는데 갈대밭에 비쳐진 그 조명은 또 얼마나 괴기스러운 몸짓인지 저기 태백산맥의 앞부분에 나오는 무당 누구의 귀신 씬나락 까먹는 몸짓인지 생각이 미쳐 얼마나 황당해 했던가 씁슬한 기억.
그러고보니 요즘 한창 잘나간다는 강남은 저멀리 하늘아래 있는둥 마는둥 감춰져 여기 있으면 강남의 나이트클럽하며 골목마다 씨씨티비를 세워놓고 바라본다는 그 꼬락서니며 티비만 틀면 나오는 그 누구누구의 축재 그 모든 악과 그 모든 위선이 안보여서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