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고 젊었을 땐
도덕적으루나 양심적으루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야지만
잘 사는 것인 줄,
사람답게 사는 것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사람다운 삶에 대한 판단의 경계가
점점 더 흐릿해지는 거 같다.
어떤 사건, 문제에 대해
보이는 면만 보고
잘한거냐 못한거냐,,를 따지는 데
주저함이 늘어간다.
작년에 자주 혼자 여행을 다녔었다.
일박이일, 이박 삼일..
놀 줄 모르니, 주로 절구경을 다녔는데^^
한 번은 모 지방에 갔다가
늦은 밤에 기차역에서
자고 갈까 밤차를 타고 집으로 갈까..하다가
피곤하니 걍 자고 가자 하고는
역 건너편 모텔이 많은 곳으로 갔다.
얼른 쉬고 싶은 마음에 두리번 거리다가
가까운 건물, 간판이 휘황찬란한 모텔로 갔는데
카운터 창문 뒤에 있던 아줌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문밖으로 나와서 나를 맞는다.
왜 나와서 사람을 맞지? 순간 이상했으나
숙박비를 물으니 삼만원이라는데
싼 가격에 혹해서는 자고 가겠다 했다.
2층으로 올라가 현관문을 여니
침대 하나로 꽉찬 좁은 방과
옛날 샷시문이 달린 목욕탕이..
어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어느 새 뒤에 따라왔는지 카운터 아줌마가
이리 들어가시면 되요~ 하는데,
나도 모르게 아,예~ 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줌마가 친절하게 현관문을 닫고 나간 후
잠시 방에 서있다가..
머 벌써 계산 끝난 거 어카겠어
이불 위에서 걍 옷입고 몇시간 자면 되지..하며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키며
완전 수동의 티비를 켜고 앉아
그래도 지금 내가 잘한 것인가?를 생각하는데..
밖에서 들리는 소리들이 심상찮았다.
자고 가라며 지나는 남정네를 잡는
아줌마들의 소리가 들리고
젊은 남자, 중년남자들과
가격 흥정하는 소리도 들리고..
이게 머지? 밖에 뭔 집이 있나?
창문 밖을 내다보았더니
빨간 등불이 켜진 집은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 하며 있는데,
결정적으루 창밖으로 들리는 소리들..
"언니~ 우리 여기서 자고 가자~"
"여긴 그런 데 아녀~ 한탕 뛰고 가는데여~
저 여펜네가 뭘 알지도 못하구선..."
그랬다. 내가 바로 그 뭘 알지도 못하구선
한탕 뛰고 가는 데 들어와있는 여펜네였던 거였다.ㅠ
지금이라도 나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문단속 잘 하고 그냥 자자 하고 누웠는데
밖에서 술취한 할배의 고성이 들리더니
카운터 아줌마의 차분한 목소리..
"첨 본 사람한테 그렇게 욕하면 안되지,
직업이 드럽지 사람이 드러운 건 아니잖아.."
근데 그 소리가..
카운터 삐끼아줌마의 입에서 나온 말임에도 불구하고
맞는 말처럼 들렸다는..
옛날같았으면
그런 직업을 선택한 사람인데, 하며
나머지도 판단했을 테지만
지금은 괜찮게 봤던 사람이
음흉한 속내를 감췄었던 것이 드러나면..
외려 그 숭악함에 사람 자체가 다시보이게 되고
도덕적으로 엑스인 행동을 대놓고 한 사람이
피치못할 상황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면
다만 나쁜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면서
오로지 내가 기댈 것도
넘들에 대한 판단 기준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나와 그들의 양심이란 것 하나이지 않을까..싶고
나이 먹을수록
판단력도 흐려지고
판단의 기준도 모호해지고...
하는 거 같다는.
첫댓글 나이 들수록 선악과 가치가 모호해지는 면이 있죠. 무척 선하게 보이면서 또 선한 척 하더라도 극도의 이기주의를 보이는 사람도 있고, 그럴 사람같이 보이지 않는데 대단히 양심적이고 겸허한 사람도 있고.
간혹 여행이란게 애초 예상보다 전혀 달라 지는 게 있더군요. 캡슐 호텔이 궁금하여 갔던 갭슐호텔, 청갈하게 보였던 숙소가 합판으로 짜여진 유령산장 같았던 적도 있고, 그냥 아무데나 자고가자고 예약했던 곳이 너무 근사했던 적도 있었지요. 지나고 나면 별의 별 추억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