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5-05-12
< 나는 BMW를 탄다 >
- 文霞 鄭永仁 -
나는 주로 BMW를 타고 다닌다. 이것을 타고 다니면 못 가는 데가 별로 없다. 이건 인류가 생긴 이래, 태어면서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이다. 이주 작은 골목길도 산골짜기나 산등성이도 너끈히 올라갈 수 있다. 그렇다고 산악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내 마음대로 운전할 수 있다. 빨리 갈 수도 있고, 엄청 느리게 갈 수도 있다. 물론 교통비는 아주 저렴하다. 어떤 경유에는 전혀 교통비가 안 들 수 있다.
BMW를 타고 다니면 우선 운전에 그리 신경을 안 쓰니 사방천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88세의 노익장(老益壯)으로 주일마다 전국을 누비는 MC 송해도 이 BMW를 애용한다고 한다. 그의 건강의 비결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외제 고급승용차 BMW가 아니다. 나는 그런 외제차를 탈 능력이 없다. 그렇다고 기천만원이나 하는 외제 자전거나 오토바이도 아니다. 나의 애마(愛馬) BMW는 ‘B(Bus)·M(Metro)·W(Walking)’다. 버스, 지하철, 다리이다. 이 BMW는 정작 BMW가 못 가는 곳을 갈 수가 있다.
나의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는 ‘전국 수목원·식물원’ 가보기가 있다. 그전부터 탐방을 시작하여 경기권과 충청권은 거의 다 가 보았다. 올해부터는 강원권이다. 물론 수목원을 갈 때는 내 BMW로 간다. 버스 타고, 전철 타고, 걸어서 간다. 그래야 이것저것 구름 나그네처럼 다 보고 갈 수가 있다.
또 하나는 가격이 아주 저렴하다는 것이다. 휘발유 걱정은 잡아 매 놓는다. 더구나 교통실버카드를 쓸 수 있는 전공선사(電空先士)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점에 대해서는 국가의 노인 대해서 아주 고맙게 생각을 한다. 교통당국은 적자라고 아우성이긴 하다. 하지만, 6080세대인 나는 작금의 한국을 일으킨 장본인인 ‘국제시장(國際市場)’ 세대다. 해방과 6.25, 4.19와 5.16, 그리고 격동의 지금 시간까지……. 초근목피(草根木皮)는 아니더라도 보릿고개에서 꿀꿀이죽, 청계천 먼지 폴폴 나는 봉제 다락에서 새마을 운동에서 월남전, 서독 광부와 간호사, 열사의 중동에서 피땀을 흘려 조국근대화의 기수(旗手)들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세대다. 그렇다고 이즈음처럼 말 많은 연금이 있던 시절도 아니다. 늙은 우리들에겐 ‘노인 사고(老人 四苦)’ 만 기다린다. 빈곤(貧困), 질병(疾病), 소외(疏外), 무위(無爲)만 기다릴 뿐이다.
그 알량한 자부심만 가진 6080세대들에게 어느 대통령 후보는 ‘늙은 꼰대들은 투표에 나오지 마라’ 했으니, 화가 안 치밀어 오를 꼰대들이 어디 있겠는가. 선거 투표로 꼰대들의 반란을 그들은 깊이 느꼈는지 모르겠다.
지난번 아산시 영인면에 있는 ‘영인수목원’에 갈 때는 오고가는 경비가 점심값 포함해서 달랑 10,000원 들었다. 온양까지 전철 공짜, 온양에서 영인까지 왕복 버스비 3,000원, 점심값 7,000원 도합 만원 한 장이면 충분했다. 커피, 생수는 자체 조달한다. 배낭에 믹스 커피 서너 개, 뜨거운 물 담은 보온병과 집에서 떠간 물병이 충분하다. 그 앞의 아산온천까지 들렸더라면 한 15,000원 정도….
나의 BMW는 휘발유 엥꼬 염려 붙들어 매놓는다. 통행료도 내지 않아도 되고, 타이어가 갑자기 빵꾸 날 염려도 없다. 국공립 수목원 입장료는 무료 아니면 경로라 공짜인 경우가 태반이다. 물론 사립인 경우는 경로라서 당연히 할인 대상이다. 늙음이 좋은 경우가 이런 경우인가 보다.
가방 하나 달랑 메고서 방랑 김삿갓처럼 모자 뒤집어쓰고, 죽장(竹杖) 대신 등산지팡이 하나들고 아침 일찌감치 떠난다. 당연히 BMW로…….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옛 노래 ‘김삿갓’이나 내가 아주 좋아하는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를 흥얼거리며 “강나루 건너/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녁놀// 그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수목원이나 식물원에 갔다 오면 스크랩을 해 놓는다. 스크랩 이름이 ‘구름 나그네’다. 내가 지어도 참으로 멋지게 차용(借用)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글쓰기는 에티롤지, 즉 편집(編輯)이라 했다. 벌써 두 권째 시작이다.
BMW는 당연히 혼자 타고 다닌다. 두 대가 가면 자유롭지 못하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내 BMW에는 마누라도 안 태운다. 보고 싶은 것 보고, 가고 싶은 곳 가고, 먹고 싶은 것 먹을 수 있기에……., BMW를 타고 가면 정작 더 좋은 것은 ‘마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것처럼….
지난번 안면도 수목원에 안면도에 사는 할머니와 버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갔다. 인천 큰 아들네 집에서 며칠 묵으며 병원에 가서 약 타서 안면도 집에 가는 길이라 한다. 허리 수술해서 지척거리는 할머니다. 노인네는 늙은이와 통한다. 아들 내외가 이것저것 싸준 보따리가 제법 무겁다. 이 얘기 저 얘기, 무거운 보퉁이를 들어 들여들었더니, 안면도 자기 집에 가서 뜨신 점심 해줄 테니 먹고 가라고 야단이다. 이렇게 내 BMW를 타고 다니면 살가운 마음과 길거리 인생 멘토들을 만날 수 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과연 그렇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마음, 사랑, 우정 등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또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지수화풍(地水火風)은 정작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마련이다. 그저 눈에 잘 보이는 것은 돈이 아닌가 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곳 어딘가에 샘물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처럼 BMW를 타고 다니면 정작 감추어진 샘을 볼 수가 있다. 버스나 기차, 비행기,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 운전을 하면 그 숨겨진 샘물을 발견하기 참으로 어렵다.
어찌 보면 나의 BMW 여행은 숨겨진 보물찾기 같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가면 으레 보물찾기를 했다. 그런데 나는 유난히 눈썰미가 손방이라 그 보물딱지를 못 찾는 경우가 허다했고, 그나마 찾아도 그 보물딱지는 ‘꽝’일 경우가 다반사였다. 어느 친구는 보물딱지 몇 장을 찾아 희희낙락(喜喜樂樂)하였다. 정말 열불 나기 십상이다. 어떤 때는 그 당시 귀하디귀한 사이다 한 병과 그 보물표와 물물교환을 하였다. 어찌 보면 인생이란 나에게 숨겨진 보물딱지 같은 샘물을 찾아가는 여정(旅程) 아닌가 한다.
가장 중요한, 눈에 보이지 않는 내 인생의 샘물을 발견하기 찾기 위하여 오늘도 나는 BMW를 탄다. 인생이라는 ‘bus · metro · walking’을……. ‘버스 · 지하철 · 걷기’를!
이주민여성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BMW로 다문화센터 가는 공원에서 어떤 여자가 무슨 종이딱지를 숨기고 있다. 한 장을 뽑아 보니 ‘무지개 색종이 한 묶음’ 이라고 적혀 있다. 그 옛날의 보물표다. 아마 유치원 선생인가 보다. 그 선생이 “그거 뽑으면 안 되는데요.” 라고 한다. “아이들 보물찾기 하나요?”
삶이란 보물인 ‘무지개 색종이’ 처럼 무지갯빛이 아닌가 한다. 빛과 같이 투명이던 인생이 프리즘을 통해서 보면 7가지 색깔이 나타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 내 인생의 빛을 찾기 위해 오늘도 BMW를 타는지도 모르겠다.
첫댓글 예전엔 11호 자가용이 젤로 좋다 했었는데 ......... 이즈음은 BMW 로 바뀌었군요, ^^ 숨은 보물찾기도 하고 건강도 챙기고....... 취미생활도 하고 1석3조 ....... 십니다. 참 멋지게 사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