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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뻥축구'라는 말을 쓰지만 영어로 '킥 앤 러시'라는 '있어보이는' 용어로 설명하는 것도 가능하다. 직역하자면 차고 달리기라고 해야 할까. '뻥축구'라는 말은 대책 없는 전술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렇지만 잉글랜드에서 대표적으로 구사되었던 전술로, '남자의 팀'으로 꼽히던 스토크시티의 경우 효과적으로 킥 앤 러시를 구사하면서 우리나라 팬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었다. 하지만 킥 앤 러시는 팀을 관통하는 주전술로는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왜 그런 걸까? 그 이유는 멀리 있지 않은 것 같다. 최근의 울산 경기를 보면 그렇다. 김호곤 감독 시절의 '철퇴 축구'도 아기자기한 패스 플레이가 아니었지만, 최근의 울산 경기는 더더욱 답답한 '뻥축구' 양상을 보이고 있다.
(△ 발도 잘 쓰는데 왜 자꾸 공을 머리로만 주나요. 출처:울산현대축구단 홈페이지)
1. 단순함의 문제
킥 앤 러시의 문제는 공격 작업이 단순하다는 데에 있다. 롱패스는 가장 직접적인 공격 방법으로 경우에 따라 효과적 전술이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양한 공격 패턴을 이용하는 가운데에 나와야 의미가 있다. 공격 작업을 롱패스에만 의존한다면 수비는 편안하게 상대를 막을 수 있다. 패스를 위주로 공격을 푸는 티키타카 식 빌드업과 비교해보면 그 단순함이 갖는 문제를 인식할 수 있다. FC바르셀로나나 스페인의 티키타카가 무서웠던 이유는 끊임없이 공을 패스하는 가운데 언제 수비벽을 허무는 결정적 패스가 나올지 예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팀 모두에서 활약했던 사비, 이니에스타, 파브레가스 등 세계적 미드필더 중 누구라도 위협적인 패스가 가능했다. 어느 선수에게 패스할지, 어느 선수가 공을 받으러 움직일지, 나아가 어떤 타이밍에 위험지역으로 침투하고 패스가 투입될지 쉽게 예측할 수 없었기에 수비진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패턴 잠금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4개의 점을 한줄로 이은 패턴은 '킥 앤 러시', 9개의 점을 다양한 방식으로 오가며 완성한 패턴은 '티키타카'. 수비 입장에서 예상하고 읽기 쉬운 패턴은 과연 무엇일까. 공 전개를 읽을 수 있다면 수비는 훨씬 편해진다.
최근 울산의 플레이를 생각해보자. 후방에서 연결하는 패스는 누구를 향할지 뻔하다. 긴 패스는 196cm라는 공식 신장보다도 훨씬 더 커보이는 김신욱에게 향할 것이 자명하다. 시즌 초 재미를 봤던 양동현과의 '트윈 타워' 전략도 어차피 장신의 스트라이커 두 명에게 공이 집중될 것임은 어렵지 않게 예상 가능하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 김신욱은 벨기에 수비진을 공중에서 농락했지만, 그들은 김신욱에 대해 잘 몰랐다. 최근 경기를 보면 김신욱이 아예 점프하지 못하도록 괴롭히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동아시안컵에서 마키토가 그랬고 지난 24R 수원의 구자룡이 그러했다. 도움 수비로 김신욱은 더욱 괴롭다.
김신욱 자체가 봉쇄당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킥 앤 러시에서 '러시'의 역할을 맡아줄 다른 선수들이 철저히 봉쇄당하는 것도 문제이다. 김신욱은 종종 볼을 따내긴 했지만 그의 머리에 맞는 패스들도 그다지 위협적이진 않았다. 모두 김신욱의 머리를 노릴 것을 예측하고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신욱의 머리를 맞춘다고 해도 떨어지는 볼에서 집중력을 놓치지 않으면 위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이것이 '킥 앤 러시'가 여전히 유효한 전술이지만 팀 전체를 관통하는 주 공격루트가 되기 힘든 이유이다.
2. 세컨드 볼 싸움&선수 간 궁합 문제
아마추어 축구만 해봐도 알 수 있는 것이 '뻥축구'를 제대로 하려면 주변에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과거 이청용의 동료였던 케빈 데이비스에게 한국 팬들은 '머리(?) 사비'라는 별명을 붙여줬었다. 헤딩으로 공을 떨어뜨려주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리가 발보다 더 높은 정확도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공의 2차 낙하지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빠른 움직임으로 공을 따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울산의 2선의 선수들에게 그런 능력이 부족하다.
제파로프, 에벨톤, 코바 등 2선 공격수들은 김신욱이 머리에 맞추는 순간 공간으로의 적극적인 침투가 없다. 자신의 발 앞에 공을 떨어뜨려주길 바라는 듯 제자리에 서있다. 위치 자체가 세컨드 볼 싸움에 적합하지 않은 위치이다. 물론 최근 김신욱의 공중 경합 능력이 예전 못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애매한 위치까지 전진한 2선과 수비 앞을 지키고만 서있는 3선의 수비형 미드필더 두 선수 때문에 조밀한 간격을 유지하지 못해 세컨드볼 싸움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김신욱의 머리이든 다른 수비의 머리이든, 경합 후에 공이 떨어지는 공간에서 울산은 전혀 수적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 동시에 수비적으로도 역습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촘촘하지 못한 간격은 수비 시에도 제대로 된 압박을 펼칠 수 없고, 공이 떨어진 후에 밀고나오는 역습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2선을 주로 이루는 선수들 자체가 드리블을 좋아하는 선수들이다. 공을 발 앞에 잡아놓고 드리블을 통해 한 두명을 제치는 것으로 공격을 푸는 스타일이다. 팀 마다 이런 유형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모든 선수들이 그렇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공을 '우선' 잡아두고 드리블을 시도한다는 것은 팀의 템포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바꿔 말하면 상대가 수비를 정비할 타이밍을 주고 있다. 2012년 아시아 무대를 제패한 시즌엔 저돌적인 이근호가 함께 기용되어 김신욱의 머리를 맞은 '세컨드 볼'을 노리고 적극적으로 공간으로 '러시'하는 전술이었다. 또한 김신욱의 리턴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빠른 역습을 선보였었다. 그러나 정적인 동료들과 김신욱의 포스트 플레이는 잘 어울리는 궁합이 아니다.
(△ 울산 공격의 안 좋은 예. 김신욱을 집중 견제하는 수원 수비. 게다가 머리에 맞추는 김신욱도, 받으러 움직이는 선수들도 뚜렷한 목표가 없어 보인다.)
(△ 울산 공격의 좋은 예. 공을 받기 위한 움직임이 좋았다. 단순하지만 강력할 수 있는 전략)
3. 상대를 괴롭히는 공격이 되지 않는다.
킥 앤 러시가 유효한 전술이 되기 위해선 상대가 정돈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울산은 패스를 통해 상대 수비의 형태를 흐트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울산은 상대 수비가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공격수들을 모두 시야 안에 넣은 상태로 수비에 임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공격은 완벽히 연결해야 성공, 수비는 상대를 방해하기만 해도 성공. 당연히 수비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최근 현대 축구를 강타하고 있는 '간격'과 '압박'이라는 화두는 K리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는 성남FC나 인천유나이티드 같은 시민구단들까지도 객관적 전력의 열세를 타이트하게 라인을 좁히고 압박의 강도를 높여 극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비의 형태를 흐트리지도 못한 채 단순하게 때리는 롱킥은 그 효용성이 더욱 작아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상대의 흐트러진 수비를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인 역습 시에도 이러한 문제는 동일하게 나타난다. 사실 역습은 선수 간의 호흡이 무척 중요하다. 공을 빼앗은 후 누군가는 전방을 향해 달려야 하고, 이를 인식하고 있다가 빠르고 정확하게 공을 연결할 때라야 효과적인 역습이 될 수 있다. 속도와 정확성이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울산의 경우 역습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은 모습이다. 김신욱, 양동현의 경우 스피드가 강점인 공격수는 아닌데다가 언급했듯 직접 드리블하기 좋아하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의 2선 공격수들은 현저히 느린 공격전환 속도 때문에 역습을 효과적으로 전개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공격 작업에서 연계 플레이가 적다. 김신욱의 장점은 머리와 더불어 수준급 리턴패스에 있다. 머리를 이용한 포스트 플레이 외에도 발을 이용한 포스트 플레이에도 장점이 있는 선수다. 하지만 코바는 돌파 후 단순히 크로스에 의존한 공격을 원하는 듯 하고, 제파로프 역시 드리블을 한 후에 '킬러 패스' 찌르기에 관심이 많다. 김태환도 스피드를 살린 드리블에 장점이 있는 선수이고, 에벨톤은 아직 팀에 잘 녹아들지 못했다. 2선 공격수들이 드리블을 선호하는 성향 때문에 공격의 템포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공을 잡은 선수 외에 공을 받기 위한 움직임도 공을 빠른 타이밍에 받기 위한 예측된 움직임도 거의 찾기 힘들다. '오프 더 볼'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적고 또 영리하지 못하다. 개인 능력은 갖췄으니 1:1에서 이기기를 주변에서 마냥 바라보는 장면이 많다. 그래서 '포스트 플레이어'인 김신욱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 움직임이 전체적으로 부족한 2선 탓에 김신욱에 대한 견제는 점점 심해지고 공격은 단순해지고 있다. 다양한 공격 방식을 시도해야 상대를 헷갈리게 할 수 있는데, 김신욱이 분명한 장점이 있음에도 2선 개개인의 공격 '성향' 때문에 제대로 된 팀 플레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 김신욱 머리에 맞고 떨어진 볼을 받아 드리블하는 제파로프. 주변에서 도움이 없다. '너 혼자 하세요.)
4. 악순환
후방부터 빌드업이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장신인 김신욱에게 때려주는 볼들이 점점 많아진다. 제파로프를 중심으로 가끔 아기자기한 플레이가 나오기도 하지만 정말 간헐적이고 주 공격전술이라고 보긴 어렵다. 골이 필요해지는 상황이 되면 원래도 단순한 공격이 더 단순해지기도 한다. 양동현까지 투입하면서 '높이'로 승부를 보려고 하는데, 언급한 것처럼 세컨드 볼 싸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효과를 발휘하긴 어렵다.
이런 경기 흐름이 이어지면 팀 전체가 슬럼프에 빠지고 만다. 김신욱은 공을 따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공격은 답답하다. 공이 연결되야 그 맛에 헤딩도 하는 것이다. 당연히 헤딩을 위해 점프하는 게 힘겨워 진다. 게다가 머리에 잘 맞춰도 침투해주는 선수가 없으니 공을 자꾸 후방으로 떨어뜨려주게 된다. 킥 앤 러시의 장점은 한 번의 연결로 공을 위험 지역으로 넣을 수 있다는 것인데 기껏 머리로 백패스를 한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
한편, 침투가 부족하다보니 김신욱은 공을 후방으로 연결하려고 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선수들도 공간 침투를 아예 포기하게 된다. 공이 언제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매번 달려 들어갈 수 없으니 어느 순간부터 발이 멎는다. 이렇게 되면 머리에 제대로 맞춘다고 해도 찬스를 제대로 잡을 수가 없다. 롱볼에 의한 공격이 생명력을 잃고 무의미해지게 되는 것이다. 최전방 공격수도, 2선 공격형 미드필더와 윙어들 모두 원하는 플레이를 할 수 없다.
2선 선수 간의 문제까지 더해져 상황은 더 심각해 보인다. 중앙의 제파로프는 공간 침투하는 선수에게 패스를 연결하고 싶은데 코바는 공을 잡아놓은 후 드리블을 하고 싶다. 제파로프의 패스 타이밍은 느려지고, 코바는 공을 잡으면 1:1 돌파만을 시도한다. 개개인은 위협적이지만 협력수비라면 못 막을리 없는 단순한 공격 패턴이다. 공격이 더욱 단순해지고 답답해지는 이유이다.
롱볼 축구를 자주 시도하지만 세컨드 볼을 잡지 못하면 이는 쉽사리 역습으로 연결된다. 특히 2선 미드필더와 3선 미드필더 사이의 공간이 넓어지면서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수비하는 입장에선 피곤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주도성이 무서운 게 패스가 잘 연결되면 남들보다 1, 2Km 더 뛰더라도 체력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끌려다닐 때 힘들다. 끌려다니면서 어렵사리 공을 빼앗으면 단순하게 앞으로 연결하고 공을 빼앗긴다. 또 수비를 해야하는 상황이 온다. 선수 입장에선 경기 하기 싫다.
공격이 안 풀리니 공격수들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수비의 역습에 대한 부담은 심해진다. 움직임이 적은 공격수들 때문에 수비에선 제대로 된 빌드업이 힘들고 롱볼에 의존하는 단순한 패스가 나온다. 이러한 단순한 패스는 공격수들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많은 움직임을 어렵게 하고 있다. 울산의 경기를 보면 선수들의 표정이 다들 좋지 않다. 악순환이다.
시즌 초반의 선전과 달리 성적이 곤두박질 치면서 점점 울산의 전술 선택도 수렁에 빠지고 있는 모양새다. 윤정환 감독의 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철퇴 축구 시절의 색도 아니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상황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압도적 높이를 가진 김신욱의 존재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사실 킥 앤 러시는 가장 단순하고 쉽게 골을 노릴 수 있는 전략이다. 장신인 김신욱의 존재로 울산은 '뻥축구'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성적이 부진하기 때문에 승리가 필요한 상황이라 '뻥축구'를 하게 된다. 김신욱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공격 방식은 취하지 않았을 수 있다.(물론 김신욱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팀 선수들의 면면을 봐도 그닥 어울리는 전술은 아니다. 그렇다고 시즌 절반이 지난 지금 아예 새로운 전술적 판을 짜기도 어렵다. 결국 좋지 않은 방법인 줄 알면서도 자꾸 높이에 의존한 킥 앤 러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어정쩡한 전술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상황이다.
(△ 위기의 윤정환. 선수 시절엔 창의적인 미드필더였으나 감독으로선 조금 다른 전략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울산은 반등할 수 있을까. 출처:울산현대축구단 홈페이지)
시즌 초반 윤정환 감독에 대한 기대가 무척 높았다. 일본에서 작은 클럽인 사간 도스를 부흥시킨 경력이 있는 감독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K리그는 J리그와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더 빠르고 거칠다. 데뷔 첫 해인 만큼 윤정환 감독에게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겠지만, 너무 길어지는 것은 분명 문제이다. 국가대표를 4명이나 보유한 전통의 명가 울산에게 10위가 어울리는 성적표는 아니다. 킥 앤 러시의 함정에서 헤어나올 수 있을 것인가. 윤정환 감독이 현역 시절 창의적인 플레이와 패스 중심 플레이에 능했던 만큼, '발밑'도 좋은 장신 공격수 김신욱을 중심으로 펼치는 좀 더 아기자기한 플레이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단번에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울산과 울산 팬들의 2015년은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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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타깝네요 울산 윤감독 김신욱도 그렇고
일본선수들의 약점은알지만 국내선수들의 약점은 모르는듯 하지만 해결하리라 봅니다. 창의적이고 활동량이 많은 선수를 데려오는것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