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因緣
<제4편 입산기>
④ 찔레꽃 필 무렵-12
“아!”
여승은 염불을 외다가 천복이 나타나자, 대뜸 목탁을 치던 손을 멈추고서 가녀리나마 감탄하는 목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어-억?”
천복도 놀라 여승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만덕 엄니!”
“....!”
여승은 무어라고 대꾸하지는 않았으나, 반가움에서인지 소리 없이 웃음을 흘리자, 덧니가 살짝 드러나 보이는 거였다.
그러자 천복은 이와 같은 현실이 꿈도 아닌 것 같았고, 그렇다고 생시는 더욱 아닌 것 같아서 정녕코 연장되는 꿈결만 같았다.
“보덕스님! 어서 방으로...”
천복은 어찌할는지를 모르다가 열어젖뜨리어서 옥희가 내어다보는 방문을 가리키면서 방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하여보이었다.
후줄근히 비를 흠씬 맞아 척척하게 젖은 가사와 함께 무던히도 초췌하게 보이는 여승이 가엾어 보이었던 거였다.
여승은 다름 아닌 도선암의 갱두 보덕이었다. 천복이 하산한지 한 철을 지나 여름이었는데, 그녀가 그 짧은 동안 불문에 귀의하여 머리를 깎고, 탁발동냥을 나와 집을 찾아들었으니, 꿈이 아니고서는 이러한 현실이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내가 귀의하여 첫날에 첫 집을 찾아들어 불자를 만났으니, 천생에 인연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소이까?”
그녀는 한 발을 사립 안으로 들이어놓으면서 인연을 말하고 있었다.
여승이 방으로 향하자, 옥희는 대뜸 몸을 일으키고는 그녀를 맞아들이었다.
천복은 그녀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면서 옥희에게 말하였다.
“내가 있던 도선암의 보덕스님이오. 인사하오!”
옥희가 천복의 말에 방으로 들어서는 보덕스님에게 고개를 숙이어보이고는 아랫목으로 앉으라고 하였다.
“이리로 앉으셔유.”
“나무관세음보살!”
옥희가 아랫목을 가리키면서 앉기를 권하자, 보덕스님은 합장을 하고, 염불을 외면서 그리로 몸을 조심스레 주저앉히었다.
그리고 천복내외가 잠시 그녀와 마주보고 나란히 앉았다. 그런데 스님의 가사가 너무나 젖어서 빗물이 줄줄 흐르는 걸 본 옥희가 입을 떼었다.
“스님, 옷이 너무 젖었어유. 벗으셔유.”
옥희는 이렇게 말하고는 그녀에게 달리어들더니, 스님의 가사를 벗기었다.
“옷이야 해가 뜨면, 마를 것인데, 장맛통에 벗겨 어찌하려구요?”
“제가 싸게 빨아 말려드릴 거여유.”
보덕스님이 걱정스레 말하였으나, 옥희는 빨리 빨아서 말리어드린다면서 가사를 벗기자, 그녀는 못이기는 척하면서 순순히 응하였다. 그러나 장마철에 옷을 빠는 거야, 비를 맞으면서 빨겠지만, 어디에 어떻게 말린다는 말인가. 천상에 물기를 꼭 짜서 솥에다가 물을 붙고, 아궁이에 불을 지핀 뒤에 솥뚜껑이 뜨겁게 데워지어야 그 위에 빨래를 펴널어서 말리는 수밖에는 없을 거였다.
아무튼 보덕은 홑적삼에 속곳만 몸에 남긴 채 벗기어도 그냥 들었다. 그러고 보니, 보기에 민망하였던지 옥희가 장롱에서 홑이불을 꺼내어 스님의 아래를 가리게 하고는 빨랫감을 들고, 훌쩍 밖으로 나아갔다.
비는 끊임없이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보덕스님은 옥희가 내어준 홑이불로 아래를 가리고 앉아있었으나, 얄따랗게 투명한 모시적삼으로 젖무덤과 유두가 환히 드러나서 보이었다.
“보덕님, 어떻게 여길 알고 찾아왔어요?”
천복이 물었다.
월하산 도선암에서 백삼십 리나 떨어진 곳인데, 입때껏 인수보살이나 보덕에게 집이 어디라는 걸 일러주었던 적이 없었으니, 신기한 일이어서 물었던 거였다.
“그래서 천생의 인연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내가 귀의한 뒤로 오늘이 탁발 첫날이고, 오경에 암자를 뒤로 길을 떠난 뒤에 찾아든 첫 집이 바로 여기오. 나무관세음보살!”
보덕이 이렇게 말하는데, 한쪽으로 비껴놓은 바랑이 헐렁하게 비어있는 건만 보더라도, 그동안 다른 집을 한 번도 거치지 않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아! 참으로 보덕님은 신령스럽군요!”
천복이 감탄하여 말하였다.
“나는 그동안 천복불자가 한없이 보고 싶었어요! 당신이 떠난 뒤에, 세상천지 어디에 살고 있는 줄을 모르니요. 꼭 만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고, 천지신명께도 빌었어요. 그랬더니...”
보덕은 허물없이 그동안 보고 싶었던 심정에서 부처님과 천지신명께 빌었다는 말까지 기탄없이 털어놓았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복도 그동안 시험문제로 속이 들썩거리어서 혼란에 빠지었지만, 그러한 순간순간에도 보덕은 늘 머릿속에 박히어있었던 거였다.
“신앙을 생활하는 것도 인간이 하는 거지요. 하기에, 사람이 도(道)를 넓힐지언정 도(道)가 사람을 넓힐 수가 있겠어요?”
첫댓글 만날 사람은 어떻게 하더라도 만나나 봅니다 ㅎ
악연만 아니길 바라지요""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지요.
그 만남에 따라서 자기의 운명도 조금씩 변하게 됩니다.
그런데 옥희는 장마 속에서 빨래를 어떻게 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