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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시 125:1-2) |
[서 론]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좋은 것, 곧 복을 받고 싶어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福(복)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땅에서도 복을 받고, 내세에서도 복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가 받을 복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세에서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서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9)
그런데 하나님의 복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만히 있는데 주는 것이 아닙니다. 복을 받고자 하는 사모함이 있어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고,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시 107:9)라고 했습니다.
내가 복을 사모하는 것은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하나님 앞에 씨를 심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부지런히 씨를 심을 때 하나님이 복의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 이후로 우리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땅에서도 복을 받고, 내세에서도 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祝願(축원)합니다.
[본 론]
1. 거둠의 법칙
거둠(추수)의 법칙은 무엇입니까? ‘씨를 심어야 거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요, 또 하나님이 세우신 법칙입니다. 씨를 먼저 심거나, 뿌리지 않으면 거둘 수가 없습니다. 물론 쓸모없는 잡초나, 해를 끼치는 것들은 심지 않아도 잘 자랍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유익한 열매들은 먼저 심어야 거둘 수가 있습니다.
농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밭에는 고추, 호박, 가지가 달려서 따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저절로 밭에서 생겨납니까? 먼저 씨를 심었기 때문에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열매를 거둔 후에 씨를 심는 사람은 없습니다. 먼저 심지도 않으면서 열매를 거두고자 하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먼저 심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전 11:6)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좋은 것, 곧 복을 풍성히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 앞에서, 또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씨를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기독교는 씨를 심는 종교입니다.
미신이 무엇입니까? 씨를 심지도 않으면서 복만 내려 달라고 두 손 모아 비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복의 열매를 원한다면 먼저 씨를 심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씨를 뿌리거나, 심기를 게을리 하면 복이라는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도 먼저 씨를 심어야 나중에 열매를 거둘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한 알의 밀이 먼저 땅에 떨어져 심어져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소 그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곧 죄악으로 인하여 지옥의 불못에 가야 할 우리 인간을 건지고자(구원) 자신의 몸을 속죄제물로 하나님께 먼저 드렸습니다. 곧 십자가에 그의 몸을 먼저 희생하셨습니다. 자기 몸을 씨로 심으신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는 열매가 맺어지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순종(심음)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거둠)이 되리라.”(롬 5:19) 예수 한 사람이 하나님께 희생의 씨를 심었더니 많은 사람이 구원받는 열매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먼저 내게 복을 주면, 나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이 변덕스러움과 간사함을 잘 알고 계십니다. 사람의 달콤한 말에 속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심으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신다”라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바보 취급을 당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2. 사르밧 과부의 체험
오늘 본문은 한 여인이 하나님 앞에 먼저 심고, 거둔 체험의 이야기입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이 여인이 살고 있는 땅은 이스라엘에 인접한 시돈에 속한 사르밧이라는 도시입니다. 8-9절을 읽어볼까요?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사르밧은 이스라엘의 땅이 아니라 시돈이라는 나라에 속한 땅입니다. 시돈은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내인 이세벨의 부친이 다스리던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과 아세라신을 섬기는 이방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야를 누구에게 보냈습니까? 이방 땅 사르밧에, 남자도 아닌 여자에게, 그것도 과부에게 보냈습니다. 왜 과부에게 보냈습니까? 그 여인으로 하여금 엘리야에게 먹을 음식을 제공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1-2번의 음식 제공이 아니라 여러 날 동안 제공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여러 날 동안 음식을 제공하려면 생활의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르밧 과부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여유가 있었을까요? 12절을 읽어볼까요?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하나님이 자기 종을 보내려면 부자에게 보낼 것이지, 마지막 한끼 양식 밖에 남지 않은 매우 가난한 과부에게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그 가난한 과부에게 무엇을 요구했습니까? 물과 떡을 요구했습니다. 10-11절을 읽어볼까요?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마실 물이야 얼마든지 줄 수 있겠지만, 음식은 과부와 아들 두 사람만이 먹을 양식밖에 없습니다. 대접하고 싶어도 대접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얼마나 어렵고 불쌍합니까? 그렇다면 떡을 달라고 했던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13절을 읽어볼까요?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남은 양식으로 먼저 자기를 위하여 작은 떡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나를 먼저 대접하고 그 다음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떡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오늘 주보에 실은 글처럼 어떻게 보면 엘리야는 참으로 예의도 없고, 사랑도 없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도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떡을 만들어 가져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과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 여인은 처음에는 갈등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먼저 떡을 만들어 오라는 말에 그 여인이 ‘아멘, 할렐루야’ 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엘리야는 갈등할 수 밖에 없는 그 가난한 과부에게 하나님의 복된 약속을 전해 주었습니다. 14절을 읽어볼까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기근이 끝날 때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제 선택은 그 과부의 손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전해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엘리야에게 떡을 만들어 줄 것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는 어려운 현실을 보고 엘리야에게 떡을 만들어 줄 것을 거절할 것인가? 그 여인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 과부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엘리야를 위하여 떡을 먼저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15-16절을 읽어볼까요?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기근이 끝나는 날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또한 뒤에 보면 그 여인의 아들이 병에 걸려 죽었는데 다시 살아나는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22-23절을 읽어볼까요?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오늘 가난한 과부가 이러한 놀라운 복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녀가 하나님의 종에게 대접하는 씨를 먼저 심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녀가 자기 삶의 궁핍함을 내세워 대접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기 말대로 마지막 음식을 만들어 먹고 둘이 죽었을 것입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극히 어려움 중에서도 씨를 심었기에 복을 거둘 수가 있었습니다.
3. 무엇을 심을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무슨 씨를 심어야 할까요? 대표적인 것으로 ‘기도의 씨, 물질의 씨, 봉사의 씨, 선행의 씨, 예배의 씨, 말씀의 씨’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씨들을 심어서 복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① 저의 큰 딸 자영이에 대한 간증은 얼마 전에 했기에 생략하고, 둘째 딸 주영이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간증입니다. 주영이는 아주 어렸을 적 (4-5살)에 갑자기 쓰러지는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잘 놀다가도 그냥 쓰러지는 것입니다. 간질처럼 몸을 비틀거나, 거품을 흘리는 것은 아닙니다. 전혀 움직이지도 않고, 온 몸이 뻣뻣해지고, 정신을 잃어 의식이 없습니다. 죽은 것 같습니다. 몇 분 이상을 그렇게 합니다. 차에 태워 병원을 가는 동안에도 의식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고, 몸이 뻣뻣합니다.
그런 일이 처음 교회를 개척했던 장소(나운동)에서 일어났고, 지금 이 곳으로(동흥남동) 교회를 옮긴 후에도 일어났습니다. 여러 번 그런 일이 일어나자 뇌에 이상이 생겨서 그렇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회 개척 초기라 돈이 없어서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도 해 보지 못하고,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저의 부모님이 그 사실을 아시고 큰 병원에 가서 사진이나 찍어 보라고 100만원을 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MRI 사진 촬영비 50만원만 빼고 나머지 50만원은 하나님께 헌금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주영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북대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와 MRI 검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머리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언제 그런 일이 또 생길까봐 저희는 몇 년 동안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건강하고 잘 성장했습니다. 지금이야 적은 돈이지만 당시 저희에게는 가진 돈이 전부였습니다. 과부의 2렙돈처럼 가진 것을 모두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주영에게 건강의 복으로 갚아주셨습니다.]
② 지난 주일 간증한 정미영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정미영 집사님은 우리 교회에 오셔서 정말 불평이나 말없이 교회를 위해 봉사를 많이 하고 계십니다. 교회 비품이나 수리를 위해서도 물질로 봉사하고, 성도들이 먹을 음식을 위해 매달 한번씩 고기 찌개를 준비해 주십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예배에 참석하고, 성가대로 봉사하고, 예배 후에는 주방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정리를 해주고 가십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좋은 직장을 주셨습니다. 금년 8월에 군산 노동부에서 무기계약직 상담사 한사람을 채용하기에 집사님이 서류를 넣었습니다. 무기계약직은 해고나, 재계약 없이 60세까지 평생 다닐 수 있는 좋은 직장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서류를 낸 사람은 정집사님 혼자뿐이었습니다. 1년직 계약직에도 여러 명이 지원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혼자서 면접을 보게 되었고, 합격해서 지난 주부터 다니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좋은 씨를 부지런히 심었더니 좋은 직장의 열매를 주신 것입니다.]
③ [제가 부목사로 시무했던 군산중앙교회의 담임목사였던 조광성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목사님은 저와 함께 오랜 전(1990-4년)에 인천의 송현교회에서 함께 부목사를 했습니다. 그때 교회 중측이 있어서 모두 건축헌금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목사가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저는 저의 형편에서 건축헌금을 했습니다.
그런데 조목사님은 결심을 하고 은행에서 5백만원을 빚내어 건축헌금을 했습니다. 빚을 낸다는 것은 자기의 힘에 넘치는 액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헌금을 받으시고 그 목사님께 복을 주셨습니다. 목사님이 빚을 마지막으로 갚는 달에 군산중앙교회로부터 담임목사 청빙을 받았습니다.
당시 군산중앙교회는 여러 지원자들을 놓고 고르고 고르다가 전혀 생각지도 않던 조광성 목사님을 청빙하였다고 합니다. 조목사님은 하나님께 5백원원을 바치고 큰 교회로 왔으니 얼마나 큰 복을 받은 것입니까? 그리고 다시 자신이 부목사하던 인천 송현교회의 담임목사로 갔으니 복을 받은 것 아닙니까?]
④ 저의 둘째 딸 주영이의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하게 자란 주영이는 목회자의 자녀인지라 교회에서 늘 봉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영이는 교회의 모든 예배에 말없이 참석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몇 년전부터는 베이스 기타로 예배를 돕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명절이나 어떤 때에 개인적으로 돈이 생기면 헌금을 많이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쓸 돈을 별로 남겨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을 말리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용돈에서 헌금을 많이 하면 부모가 다시 용돈이나 필요한 것을 살 돈을 주어야 하는데 제대로 줄 형편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중에 금년에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가정도 마찬가지겠지만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의 가정 형편으로는 등록금은 한푼도 준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국가에서 등록금을 우선 대출해 주니 다행이도 그것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4년 동안 대출해서 대학등록금을 마련한다면 졸업할 때면 거의 4천만 정도 빚을 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국가적으로 반값 등록금 제도를 만든다고 해서 그런 혜택이라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주영이가 빚지지 않고 대학을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매일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1학기 때는 국가 장학금이 3가지나 나오고, 학교 장학금이 2개가 나와 등록금이 전액 면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2학기 때는 국가 장학금 2개와 성적장학금 일부로 전액 면제가 되었습니다. 성적 장학금이 더 나올 수 있고, 목회자 자녀 장학금이 더 나올 수 잇는데 등록금 이상으로는 나오지 않아서 더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금년에는 비싼 등록금을 한푼도 내지 않고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주영이가 자기 나름대로 예배와 헌금과 몸의 봉사로 하나님 앞에서 먼저 심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때가 되니 갚아 주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씨를 뿌려서 열매를 거두기까지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오늘 씨를 뿌리고, 내일 열매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시간이 필요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빨리 열매가 생기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포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씨를 심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 곧 씨를 심었다고 해서 내일 당장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농사처럼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분량이 채워질 때 응답의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히 10:36,38)
[결 론]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십니다.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학 2:19)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복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씨를 심을 때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열심히 씨를 심는 종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심은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씨를 먼저 심어야 거둔다’는 거둠(추수)의 법칙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씨를 심어야 합니까? 기도의 씨, 재물의 씨, 봉사의 씨, 선행의 씨, 말씀의 씨, 예배의 씨 등을 심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심지 않으면 좋은 것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복 받을 씨를 심고 있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하여 심으려면 나의 희생과 믿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쉽게 드릴 수가 없습니다. 오늘 사르밧 과부가 자기에게 남은 마지막 양식으로 하나님의 종을 먼저 대접한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습니까? 자기의 희생과 하나님이 채워주시리라는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씨를 다 심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 각기 심어야 할 씨가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무슨 씨를 심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서 받기를 원하시는 씨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어려울 때 일수록 사르밧 과부처럼 믿음을 갖고 더 심어야 합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마지막 사실은 심고 거두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루 아침에 거두는 것이 아닙니다. 몇 번 하나님 앞에 심었는데 복이 오지 않는다고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인내를 갖고 꾸준히 불평없이 심으면 거둘 때가 옵니다. 하나님이 갚아 주실 때가 옵니다. 이제부터라도 하나님 앞에 좋은 씨를 부지런히 심기를 바랍니다. 따라해 보십시오. ‘심으면 거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