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10,24-33
■창세기 49,29-31.33; 50,15-26ㄱ
2017년 7월 15일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위로와 희망의 희소식 하나
삼복더위가 한창인데, 더위와 맞서느라
다들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우리나라 여름은 이제 전 세계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고온다습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선교사 신부님 왈,
그쪽은 온도가 높아도 습도가 낮다보니 차라리 더 견딜 만하다고 하십니다.
무더위로 고통스러울 때 마다,
요즘 같은 날에도 고온의 작업장에서 두꺼운 작업복을 입고 일하시는 근로자들,
제대로 된 냉방설비도 없이 좁은 쪽방촌이나
고시원에서 고생하는 이웃들을 생각하며,
너그럽고 관대한 마음으로 잘 견뎌내야겠습니다.
‘덥다, 덥다!’
소리가 틈만 나면 입에서 튀어나오지만,
이왕 다가온 여름, 잘 넘기시길,
더 나아가서 즐겨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름 아니라면 저 많은 여름옷들 언제 입어보겠습니까?
여름 아니라면 시원한 계곡물놀이며 수박화채며 언제 즐겨보겠습니까?
큰 마음먹고 느긋하게 견뎌 내다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오랜 친구처럼 그렇게, 또 서늘한 가을이 찾아올 것입니다.
태양은 강렬한데다 덥고 습하다보니,
평소보다 머리카락이 더 많이 빠지는 느낌입니다.
머리숱에서만큼은 수도원 남자들도
담 밖의 남자들 못지않게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세월의 흐름 앞에 점점 빈약해지는 머리숱 때문에 고민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각자 나름대로 탈모방지 비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빗 마사지, 어떤 사람은 특정 메이커의 샴푸,
어떤 사람은 검은콩검은깨...
그런데 지금까지 시도해서 가장 효과를 본 것은
역시 병원에서의 약 처방이더군요.
서로의 이마와 정수리를 바라보며,
서로 위로도 해주고, 서로 조언도 해주는 모습이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천만 ‘탈모인’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주는 희소식 하나를 전해주십니다.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마태오복음 10장 30절)
감사하게도 하느님 아버지께서 탈모로 고생하는
우리들 머리카락 숫자까지 헤아리고 계신답니다.
물론 세월의 흐름과 노화현상에 따라 점점 머리카락 숫자는 줄어들겠지만,
완전히 다 가져가시지는 않겠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적어도 몇 올은 남겨두시겠다고 약속하시니 너무도 힘이 납니다.
하느님은 너무나도 크신 분,
너무나 엄청나고 대단하신 분,
우주 전체와 삼라만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라
나같이 미천한 존재에게는 신경 쓰실 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하느님께서 내 머리카락 숫자까지 다 세어두셨다니
정말이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하느님은 너무나 자상하신 분이십니다.
크시고 위대한 분이시만, 한없이 작은 내 삶에 직접 개입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나와 일대 일로 얼굴을 대면하고 싶어 하십니다.
내 속사정을 다 꿰뚫고 계시며,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내 인생사에 깊숙이 개입하고 싶어 하십니다.
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영원부터,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는 그분의 생각 속에 존재했습니다.
부모가 우리를 사랑하기 전부터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받는 자라고 부르시는 그분의 음성을 들으십시오.”(헨리 나우웬 신부님)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2017년 7월 15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강화에는 일몰이 아주 아름다운 곳이 있습니다.
얼마나 유명한지 많은 사진작가들이
멋진 일몰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 이곳을 찾습니다.
특히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붐빕니다.
그래서 이곳을 사진 찍기 좋은 일몰 여행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 역시 이곳에서 본 일몰이 참으로 멋졌었기 때문에,
종종 강화를 찾아오시는 분에게 안내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작년 겨울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분과 함께 이곳을 찾아갔습니다.
일몰이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희는 해가 떨어지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서 있었지요.
그런데 왜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불던 지요.
차가운 겨울바람은 저희를 오들오들 떨게 만들었지요.
함께 갔던 분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몰을 꼭 여기서 봐야 해요?
저 위의 카페에서 바라보는 일몰도 멋질 것 같은데요?”
고생하면서 보는 일몰이 더 멋지지 않겠냐면서
끝까지 이 자리를 지켰지만,
생각해보니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바라보는 일몰도 정말로 멋지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그렇게 고생하면서 바라보았던 일몰이 영원히 잊지 못할 진한 감동을 주었을까요? 사실 그날 찬바람을 많이 맞아서인지 저와 함께 갔던 분은 감기로 며칠을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때 보았던 일몰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있지 못합니다.
일몰이라는 아름다움은 사실 그 당시에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요?
마음에 일몰의 아름다움을 전혀 떠올리지도 않고 기대도 하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아름다움을 남길 수가 있겠습니까?
이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우리 신앙인들 역시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당 안에서만 신앙인처럼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성당 밖에서는 신앙인이 아닌 사람과 별 차이 없이 살아가는 모습이지 않나요?
성당 안에서만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당 밖 역시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거룩한 모습으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정관념 속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을 행하지 못하고
쓸모없는 일과 시간을 보낼 때가 있지 않습니까?
또한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조금만 생각의 폭을 넓힌다면 분명히 전혀 다른 삶,
특히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대신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두려워하면서
지금 해야 할 나의 모습을 떠올렸으면 합니다.
세상의 고정관념에 휩싸여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오늘의 명언:
사막에선 밖에서 물을 구하면 안 된다.
낙타나 선인장처럼 자신의 몸속에 수분을 저장해야 한다.
그 외로운 작업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 단절이 내면을 풍요롭게 한다(이어령).
조명연 마태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