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숙이
- 남수현
아홉 오라비 하나 둘 객지로 나갈 때
나이 든 부모 곁에 남아
왼종일 갈비를 끌어와 정지 한켠을
가득 채워놓거나
걸레를 우리 집 수건보다 말갛게 빨아 널던 점숙이
사시인 눈은 언제나 반쯤 허공에 걸려 있었네
동네 인근 배수로 공사 때
잡부로 딸려온 좀 모자라는 노총각에게 짝 지워져
사내아이 연년생으로 낳았지
육아상식 제대로 알려주는 이 하나 없어
아이 둘 젖뗄 무렵 어마어마한 짝젖이 되고 말았지
바람 유난스레 불던 가을
취로사업 갔다 오다 정원이 넘은 오토바이에서 떨어져
알아들을 수 없는 몇 마디 웅얼거리다가 죽었네
고운 옷 입혀 월악산 아래 묻던 날
여름휴가 때 쓸 요량으로 그 집에 맡겨놓은 중치의 개를
오라비들 말없이 꼴삐 풀어와 나눠 먹었네
에미생각 나거들랑 다녀가라는 외할머니 당부에도
외손자들 아직 다녀가지 않았네
국민학교 졸업장 받도록
제 이름 석 자 그리지도 못했던 점숙이
간이역에서 고향 가는 버스편을 묻고 있겠지
희끄무레한 눈을 허공에 반쯤 걸어두고
읽어서 모를 게 없는 한 사람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삶이 정말 깨끗합니다. "사시인 눈은 언제나 반쯤 허공에 걸려" 있었다고 하나 그게 점숙이의 눈이 아니라 오히려 점숙이를 제대로 볼 수 없던 이 세상의 눈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일어납니다. 이 세상은 그 사시의 눈으로 삶을 평가하고 객지로 나아갔고("아홉 오라비 하나 둘 객지로 나갈 때"), 오히려 정상이고 깨끗했던 점숙이는 "나이 든 부모 곁에 남아/ 왼종일 갈비를 끌어와 정지 한켠을/ 가득 채워놓거나/ 걸레를 우리 집 수건보다 말갛게 빨아" 널었습니다. 그녀는 사시였지만 사시가 아닙니다. 이 역설이 점숙이의 삶으로 이 세상의 삶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한쪽으로만 흘러가는 흐름이 그 안에 담고 있는 소용돌이와 같은 역설로의 삶입니다. 그 역설로서의 삶이 거대한 흐름을 반성케 하는 그런 삶입니다. 예를 들어 거대한 흐름은 육아상식으로 알맞은 균형의 유방(이때의 유방은 젖가슴과 다르다)을 만들었지만, 역설로서의 삶은 "아이 둘 젖뗄 무렵 어마어마한 짝젖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균형 잡힌 유방과 어마어마한 짝젖은 결코 비교급이 아닙니다(예수나 부처의 삶을 나와 비교급으로 두지 않듯이). 어마어마한 짝젖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가치를 잃게 되는 유방임을 알리는 형상입니다. 그 어마어마해진 짝젖에 매달려 있었고 그리로 통했던 그 순(順)하고 깨끗한 생명의 흐름을 상상해 보십시오. 무엇이 무엇을 반성해야 합니까? 어떤 생명의 미의식이 어떤 생명의 미의식을 반성해야 합니까? 그렇게 점숙이의 삶이 이 세상에 있었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반성 없이 살아온 이 세상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여름휴가 때 쓸 요량으로 그 집에 맡겨놓은 중치의 개를" 잡아먹었습니다. 당신은 이런 그녀의 삶과 이 세상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래서 제겐 마지막 연 "국민학교 졸업장 받도록/ 제 이름 석 자 그리지도 못했던 점숙이/ 간이역에서 고향 가는 버스편을 묻고 있겠지/ 희끄무레한 눈을 허공에 반쯤 걸어두고"라는 장면이 너무 상징적입니다. 죽음이라는 그 無의 고향에 갈 때는 우리 모두 제 이름 석 자 그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점숙이와 다를 바 없고, 그렇다면 우리는 그때야 비로소 점숙이로 태어나는 셈이겠지요.
-글/ 오철수 시인
첫댓글 수현이가 이런 시를 써주어 고맙네. 이런 시를 쓸 수 있도록 기다리고 견디고, 없는 시간 내어 공부한 것도 고맙고. 성격에 문제 있는 쌤에게 맥주사주는 일 잊지 않는 것(ㅋㅋㅋ)도 고맙고, 아모르파티분덜과 우애 있이 지내려고 노력하는 것도 고맙고....고맙네. 내 말하지 않던가. 앞으로 4천년 후의 '성스러운 경전'(성경)은 이런 시들로 채워질 것이네. 왜냐하면 거기에 우주적 삶을 가장 높이 받드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 촌 아줌마로 살아가는 당신 시가 말야, 최고야.^^ 아모르파티분덜, 이 시는 단지 우리가 갖지 못한 소재의 영역이 아니라 그녀가 체현한 몸의 세계이해와 관련될 것입니다. 귀한 작품을 귀하게 사랑해봅시다. 난 오
늘 3일간 금주한 몸에 맥주 좀 부어야겠네. 수현이도 구멍가게로 가서 시원한 맥주 한깡통 사 들이키게.
사실은.. 저도 성격에 문제가 참 많아요. 그래서.. 그러니까.. 시나 쓰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시라는게 음식으로 친다면 fast food보단 slow food에 가까운 것인지라 기다리고 인내한다는 게 공부보다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좋은 선생님이 좋은 학생을 만드는 것 아닐까요? 그냥 말없이 지켜봐 주시고 기다려 주는 것.. 고맙습니다 ^^
점숙이 같은 사람 동네마다 한 명씩은 꼭 있나 봐요. 쑤현언니, 내일부터 장마 시작이라는데 대비 잘 하시와요.^^
고 한 사람을 빨리 아모르파티 시로 모셔오세요.^^
여기는 이미 장마 시작했는데.. 거긴 좀 늦네?
머시라고....옥탑방 얻어놓고 장마를 그렇게 기다렸는데...여기 완존히 열탕인디...
어제, 오늘 날씨가 한여름이예요. 시골은 밤이 되면 나무와 논과 흙이 있어서 기온이 금새 내려가는데 아스팔트의 도심은 덥겠군요. 금새 비가 쏟아질 듯 하늘이 내려앉아 있어요.
삶과 체험을 늘 소중하게 생각하며 사는 것 같아요 언닌... 그게 여기 멀리 떨어진 내가 왜 고마운 마음이 들까요...?
밖으로 통 돌아다니질 못해서 나는 내 시가 폐쇄적이거나 자폐로 갈까봐 은근히 걱정이 되곤했어. 오히려 이렇게 콕 박혀 있는게 오로지 시 쓸때만이 plus요인이 되는 것 같아. 그리고 내 사는 모습이 여기서 변한들 얼마나 변할까. 고맙다 ^^
사람을 보고 특성을 찾아내는 동물적 감각이 있으신가봐요
그렇죠 진짜 본능적으로 찾아내시는 것 같아요...부러워요^^
동물적 감각! 본능적인 거! 내겐 이런 거 하나도 없다우. 나같이 감각 둔한 인간이 어째 시를 쓸라꼬 덤볐는지 참말로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하다니까 ^^
수현님의 시를 읽다 보면 이런 말이 떠올라요. 시는 생을 읽는 것이다... 사람을 생각하고, 그 자체로 사랑하고 싶어지고..급기야 이 세상에 폭~ 정들게 하는 힘이 느껴져서 좋아요. 수현이는 실천하는 휴머니스트 같아...^^
제가 쓴 시의 소재가 된 사람은 뭐랄까.. 그들이 속한 사람들 사회에서는 부정적이고 소외받는 대상일 수 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의 구성원으로 나름의 소중한 역할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또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니 자주 마주치고 관심있게 보게 되고.. 영선언니는 '풍경'을 기막히게 잘 잡아내시니 그 비법 좀 알고 싶은데, 언젠가 만나면 그 때 속닥속닥 ㅎㅎ.. 기다릴께요 ^^
지난겨울 식구들 모인 자리에 시인이 농사 지은 거래요 ㅎㅎ 자랑스럽게 내 놓은 사과를 먹던 시동생이 "시인이 농사지은거라 더 맛있는 건가?" 그래서 제가 "맞아요." 했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그 사과가 맛있는 까닭을 더 정확히 알았습니다. 또 제 입속에 침이 한 바퀴 돕니다.
제가 가끔 일하다 쉴때 사과나무아래에 앉아 시를 소리내어 읽어요. 그래서 사과가 맛있는 건가? ㅋ 그건 아닌것 같고.. 남편이 과수농사에 들이는 공이 대단해요. 혼자만이 터득한 비법도 있다는데 저도 아직은 전해듣지 못했어요. 영월루님~ 반갑습니다 ^^
어릴적 이웃에 살던 점숙이, 나보다 세살 어렸고 서른다섯쯤에 하늘나라로 갔어요. 동네 뒷산에 같이 갈퀴로 갈비를 끌러 갔었고.. 눈은 사시여서 항상 반쯤은 허공을 향해 있었고.. 아이둘 키울동안 거의 한쪽만 젖을 물려 어마어마한 짝젖 그리고 바람이 유난스레 불던 가을날 죽었단 소식을 친정어머니를 통해서 들었을때 마음이 얼마나 짠했던지요.그리고 공부방 어디엔가 제가 댓글을 달았던 것을 최근에 다시 되돌아보는중에 시가 되었어요. 그래서 사소한 메모들이 시의 중요한 디딤돌이 된다는 것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
점순이의 생을 거룩하게 부활시킨 수현의 시에 박수를 보낸다 ^^ 슬로우 푸드의 위력이 대단함을 절감하면서..
놓치기 쉬운 생을 시로 옮기셨네요...수현님의 말씀처럼 스로우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요...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
천천히 느리게의 아름다움이 보이는 작품 잘 감상했습니다 부럽기도 합니다 느긋하게 가는 마음의 발걸음이.......
제 기질은 원래 그렇지 않았는데.. 이 곳에 적응하면서 익혀진 습관 같아요. 선배님들이 그렇게 눌러앉아 있었고 .. 참! 그리고 저는 시를 쓰면 여행도 시간 만들어서 많이 해야 되고 어딘가를 많이 돌아다녀야 시를 잘 쓸거라는 선입견이 있었어요. 금방 그것만이 아니란걸 깨닫긴 했지만요. 7월 모임에 가능하면 나오세요. 얼굴 좀 익히게요 ^^
눈을 허공에 반쯤 걸어두고 간이역에서 고향 가는 버스편을 묻고 있을 점숙이 생각이 오래오래 남아있습니다.
영선언니를 친구로 두어 행복하시겠어요. 친구라서.. 모습이나 취향이나 목소리가 비슷할까? 아닐까! 상상만 해 봅니다 ^^
신이 '점숙이'언니를 세상에 보내서 어리석은 사람들을 반성하게 하려고 하셨나봐요. 그걸 알아차린 사람은 수현언니이고... 어쩜 '신이 보낸 사람'을 알아보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인가봐요. 언니 장마철 성히 보내시길 바래요.
또 읽어봐도..눈물을 참을 수가 없네..ㅠ 아무래도 수현은, 삶 하나 하나를 사랑하다 결국 그 흐름을 사랑하게 됀 시인 같아^^ 그런 수현 시인을 우리는 또 사랑하는 거고..그치?^^*
수현의 목소리는 참 조근조근하기도 하지. 옛날 이야기 해 주는 오래된 할머니처럼. 사과꽃 필 때 수현의 품앗이 일꾼이 되어 땀 흘리며 전정을 해 보고 싶네.
고은 시인이 만인보를 썼듯이..수현은 또 다른 만인보를 그려 보게나...감동적이고,잔잔하고..조근조근하고 따뜻하고 그런 시...
어제 하루 안 들어 왔더니 수현이 작품 올라와 있네 좋다
아모르 시인들 다 힘 합치면 진짜루 만인보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진한 맛이 배인 시 잊지 못할 거 같아. 그 시맛이 배인 사과 맛도 보고싶다. 좋은 시 고마워^^
그릇을 빚다보면 도공의 마음에 곽 차는 그릇이 나올 때 있을 터, 조물주의 마음에 꽉 찬 작품 인간 점숙이. 좋은 시 잘 감상했습니다.
우와! 칭찬들 감사합니다. 제가 사람이나 이야기시들을 무지 좋아했습니다. 그냥 제가 잘 쓸 수 있는 부분만 드러냈기 때문에 가끔 - 어! 저 사람 시 잘 쓰네! 같은 오해 아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해요.ㅋㅋ 많은 격려들이 다음 계단을 딛기 위한 큰 힘이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이처럼 좋은 시를 쓰셨군요. 생전의 점숙님도, 또 수현님도 참 아름다운 분들이셔요.
희끄무레한 눈이 아직도 선합니다. 참 좋은 심성을 가지신 수현님에게서 많이 배움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