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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 둘레길 길동무 원문보기 글쓴이: 수명산
낙동정맥 종주 10구간(산줄기 164일째)
일 자 : 2003년 4월 24일
구 간 : 시티재 ~ 도덕산 ~ 운주산 ~ 한티
날 씨 : 맑다가 차차 흐려짐
도상거리 : 24.6km
시티재(28번국도) - 3 - 521.5봉(△521.5m) - 2.8 - 오룡고개 - 4 - 도덕산갈림길 - 4 - 614.9봉 - 1.2 - 이리재(921번도로) - 4.4 - 운주산(△806.2m) - 2.3 - 421.2봉 - 1.6 - 불랫재(임도) - 1.7 - 545봉 - 1.3 - 한티(31번국도)
산행시간 : 11시간 05분(휴식시간 포함)
승전가를 불러라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어본다. 희미하게나마 별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별이 보인다고 외치니 모두다 반가워하며 벌떡 일어난다. 오늘은 좋을 하루가 될 것 같아 서둘러 짐을 챙긴다. 약속한 시간에 마쳐 현대가든에 도착하니 식사준비 완료, 오늘 거리가 만만치가 않으니 많이 먹어야 힘을 내지, 먹는데 너무 욕심부리는 것이나 아닐까...
05시 55분 4번 국도 시티재에서 안강휴게소를 뒤로 넓은 길을 따르다가 좁은 길로 들어선다. 어제 하루종일 내린 비로 흠뻑 물을 먹은 나무들이 더욱 푸르러 보이는 아침, 청안이씨 묘지를 지나면서 돌길이 가팔라진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어느새 동녘 하늘엔 둥근 해가 모습을 들어내고 있다.
묘지를 지나 오른쪽으로 첫 봉에 오르고, 2분 뒤 키다리 참나무 숲을 가르다가 올라선 349.8봉, 여기서 완만한 내리막길을 촉촉이 젖은 낙엽을 헤치며 더욱 푸르러진 숲과 한데 어울려본다. 너무나 신선하고 정겹다. 산새마저 반기는 정맥의 아침...
06시 22분 십자로안부를 가로지른다. 완만한 오름길, 참나무 숲이 소나무 숲으로 바뀐다. 오르고 내리고, 깊은 계곡에서 물소리가 마치 교향곡처럼 들려온다. 한차례 가파르게 봉에 올랐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내려선다. 정맥길을 우회길로 나있다. 시야에는 삼성산 줄기가 높게 앞을 가로막는다.
한차례 가파르게 묘지를 통과하며 월성이씨 묘지가 지키는 능선분기점에 오른다. 건설부에서 78년 8월에 설치한 삼각점을 확인할 수가 있다. 꽃잎 떨어진 진달래군락을 가르며 간다. 삼성산 갈림길이다. 삼성산(578.2m)에 오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참자 참아야지 오늘 거리가 만만치 않아...
07시 07분 삼성산 오름길을 버리고 왼쪽길(북서)으로 떨어진다. 아침에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쌓아 올린 고도, 여기서 다 팔아버리는 느낌이다. 뚝 떨어지며 만나는 안부에는 소나무 숲 그리고 커다란 무덤 하나, 오름길을 시작하면서 물기 가득한 나무숲에 옷깃이 젖어온다. 정다운 산새소리...
능선분기점인 407봉에 이어 삼각점이 있는 369.4봉(07:45)에서 오른쪽으로 내리막길을 터널 숲을 빠져 내려서면 영천시 고경면 오룡리를 지나는 오룡재다. 좌측으로 삼포리 윗수용, 아랫수용마을이 있고 우측에 미룡마을이 있다. 정맥팀 중에는 미룡고개라고도 부른다.
07시 52분 2차선 아스팔트도로 왼쪽으로 흙비탈이 미끄러워 간신히 올라 소나무숲의 묘지에서 목을 추긴다. 묘지를 뒤로 정맥길은 비포장길에 내려섰다가 조금 올라서면서 만나는 밋밋한 야릉을 차지하고 있는 밭, 여기서 동쪽으로 산판길을 따르다 보니 우뚝 솟은 도덕산 마루에서 비치는 햇살에 눈부시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 어제는 그렇게 햇빛이 그립더니...
경주이씨 쌍묘를 만나면서 왼쪽으로 산판길을 버린다. 분홍색의 낙동정맥 리본하나, 어제는 힘을 내라고 격려해두더니 오늘은 “평화,통일”, 그래 우리 자유는 어디쯤 가셨을까? 소나무숲길을 뚫고 이어간다. 낙엽송군락을 지난다.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이를 악물어야 하는 비탈길이다. 너덜길도 나타난다. 한발 한발 디딜 때마다 이기고 말겠다고 다짐하는 특공대원들...
08시 53분 능선마루에 오른다. 도덕산 갈림길이다. 정맥은 왼쪽이다. 여기까지 왔으니 도덕산은 올라야지, 마당바위를 지나고 오르내림 끝에 삼각점을 만난다. 그러나 여기가 정상이 아니다. 조금 더 진행해서야 도덕산 정상인 바위봉을 만날 수 있다. 왼쪽으로 우회하며 만나는 표지석과 너럭바위, 정상부인 바위 꼭대기에 올라서니 시야가 트이며 ‘와! 오르길 잘했어’ 안강벌판과 포항 그리고 멀리 동해바다 및 호미곶이 한눈에 들어온다는데 오늘은 ...
도덕산은 경주시 안강읍과 영천시 고경면을 경계로 높이 702.6m의 아담한 산이다. 산세가 그리 빼어나지는 못하지만 산자락으로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많은 곳이다. 국보 40호인 정혜사지 13층석탑이며 조선시대 영남오현의 한 분이신 회재(晦齋)이언적(李彦迪 1491~1553)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세우고 기거하신 독락당(獨樂堂 보물 413호)과 계정(溪亭)의 즐비한 고목과 중국주엽나무(천연기념물115호)며 명필 한석봉, 퇴계 이황, 아계 이산해 선생들의 친필 현판글씨며 선조 5년(1572년)에 이언적선생을 제향하기 위해서 세운 옥산서원(玉山書原 사적154호)과 그곳에 보관중인 보물524호인 정덕계유사 마방목, 525호인 보물 삼국사기, 526호인 해동명적 등 약 230종의 2197권의 책이며, 최근에 세웠으나 먼 훗날 명소로 남게 될 염불종의 총본산인 대가람 대흥사등...
09시 26분 삼거리로 되돌아와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5분 정도 다리 쉼을 하며 영양보충을 한다.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정맥길은 완만하게 이어간다. 참나무숲길이다. 6분 뒤 능선갈림길이 나타난다. 왼쪽으로 많은 리본들이 줄줄이 달려있다. 여기가 570.7m의 능선분기점이 아닌지? 특공대의 후미를 담당한 류민형선배가 아니었다면 무심코 그 길로 들어섰다가 돌아오는 누를 범했을 것이다. 정맥은 오늘쪽으로 완만하게 이어간다. 시야에는 좌측으로 천장산(694m)이 유혹하고 멀리 운주산이 어서 오라 재촉한다.
진달래군락을 헤치다가 벌목지대를 지나 천장산으로 갈라지는 능선을 확인하며 6분 정도 내려서면 임도(09:50)를 만날 수 있다. 삼포리 수홍마을로 내려설 수 있는 임도를 잠시 걷다가 왼쪽으로 능선에 붙는다. 정맥의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수북한 낙엽길, 화사한 꽃을 피운 복사꽃(개복숭아)이 너무나 아름다워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시야에 가로막은 산줄기...
10시 17분 능선마루에서 다시 한차례 올라선 능선분기점인 밋밋한 봉에서 허기를 채우는 특공대원들, 어제와는 달리 틈만 나면 배낭을 열고 먹는 것부터 찾으니 정말 모를 일이다. 10분 가까이 휴식을 하고 왼쪽으로 내려서면서 멀리 이리재를 오르는 도로가 반갑다.
봉을 하나 우회한다. 역시 나도 모르게 편안한 길을 택하고 만다. 그 전 같으면 없는 길도 잡목을 헤치련만, 그리고 힘겹게 가파르게 올라선 곳이 능선분기점인 614.9봉(10:55)이다. 영천시 임고면, 경주시 안강읍과 포항시 기계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우측으로 조금 올라선 정상에서 보는 봉좌산의 암릉이 너무나 아름답다. 다녀가라고 유혹을 하지만 시간이 여의 치가 않다. 갈곳은 많고 시간을 없고...
조금은 이르지만 20여분의 중식시간을 보내고 서북방향으로 뚝 떨어지는 정맥은 언덕을 살짝 넘어 다시 미끄러지듯 내려서면서 또 한차례 고도를 팔아버린다. 안부에서 잠시 봉에 올라섰다가 내려선 곳이 이리재다.
11시 45분 영천시 임고면과 포항시 기계면를 가르는 이리재는 지하에 현재 대구~포항간 고속도로 기계터널공사가 진행중이다. 사람은 물론 통행하는 차량조차 눈에 띄지 않는 이리재를 뒤로 바위절개지를 기어올라 능선에 붙으면서 다시 팔아버린 고도만큼 높여야 하는 부담이 어깨를 짓누른다.
코가 닿을 듯한 오름길로 바위능선에 오른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바위능선에는 산벚꽃도 아름답다. 잠시 걸음을 멈추어봄이 어떨까? 뒤돌아보는 도덕산, 그리고 우측으로 고속도로현장과 마을들, 돌밭길을 지나 완만한 참나무숲길의 허허한 공간에는 특공대를 위로라도 하듯 지저귀는 새소리가 정겹다.
능선갈림길에서 조금 더 올라선 곳이 621.4봉이다. 좁은 날등을 타고 간다. 시야가 트여 여기저기 유혹하는 것 다 뿌리치며 오직 어서 오라 손짓하는 운주산으로 찾아가는 정맥길엔 낙엽이 수북하다. 우측으로 수직을 이룬 바위능선을 지날 때면 바람도 불어주니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걷는다.
12시 50분 안부를 뒤로 정맥길은 잡목으로 좁아진 산판길을 따르고 있다. 또 다시 힘겨움이 잡목을 헤쳐나갈 자신이 생기지 않아 봉우리를 하나 버리고 간다. 서서히 서쪽으로 방향을 바뀌면서 다시 만나는 십자안부, 운주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시작된다. 곳곳에 정맥팀의 흔적이 있어 정맥길이라고는 하지만 내키지 않는 길이다.
마음먹고 가파르게 능선에 붙는다. 그리고 완만한 오르내림의 정맥길, 우측의 하산로를 통과하고 식탁바위를 만난다. 둘러앉아 맥주잔이라도 꺾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그리고 다시 우측으로 나타나는 하산로에서 자칫하면 최경섭씨 배낭을 두고 운주산을 오를 뻔했다.
13시 40분 좌측으로 우회길로 나있는 운주산 직통길을 버리고 돌탑이 쌓여있는 능선분기점에 오른다. 정맥은 오른쪽이다. 왼쪽으로 운주산을 향해 잠시 내려섰다가 7분만에 헬기장을 통과하며 올라선 곳이 높이 806.2m의 운주산이다. 삼각점을 확인한다.
영천시에 솟아있는 운주산(雲住山)은 산자락에 항시 구름이 주위를 감싸고 있어 이름 그대로 구름이 머물러 살고 있는 산처럼 올려다 보이는 산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산세 덕에 외적을 방어하기 좋아 김백암장군이 이곳에 성을 쌓았던 곳으로 이로 인해 산 남쪽아래의 영천시 임고면에는 수성리라는 마을이 있다. 구한말에는 의병조직인 산남의진(山南義陳)이 이곳을 근거지로 일제에 대한 항쟁을 펼쳤으며 임진왜란과 6.25때는 주민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던 전흔의 역사를 품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조망이 탁 트여 북으로는 가야할 정맥의 능선이 가사령을 넘어 침곡산으로 이어지고, 도덕산에서 지나온 정맥의 줄기가 굽이치고 있다. 남서쪽 어래산을 지나 기계들녘, 비학산, 괘령산, 북서로는 기룡산 너머로 보현산 천문대, 면봉산이, 다시 한번 시간은 없고 발목은 붙잡고...
14시 7분 정상을 뒤로 능선분기점에 돌아와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정맥의 능선길, 긴 내리막 그리고 작은 오름이 반복된다. 수북한 낙엽을 가르다 보면 꽃잎 떨군 진달래가 애잔하다. 잠시 아름다운 꽃을 보여주려고 그렇게 정맥꾼들을 힘들게 했나보다. 군데군데 꽃망울이 아름다운 철쭉도 군락을 이루고 있다. 좌측으로 시원한 호반을 이루고 있는 영천댐이 눈길을 끈다.
14시 20분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노송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다시 긴 내리막과 작은 오르막, 역시 군데군데 수북히 쌓인 낙엽을 가르다보면 개선장군이 되기도 한다, 가끔 낙엽 속에 숨은 복병만 조심하면 된다. 이럴 때 누군가가 꼭 한번은 땅 한 평을 사고 말지, 이번엔 김수인씨 차례다. 최경섭씨 한마디 “선배님 여기 땅값 쌉니다.”
커다란 묘지를 지나 421.2봉은 눈길만 주고 간다. 서서히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며간다. 시야에는 헐떡거리며 넘어야 할 545봉이 부담스럽다. 한차례 가파르게 낙엽을 가르며 떨어지면서 “불랫재 나와라 오버” 그러나 불랫재가 아니다. 좌측 숲 사이로 마을과 도로가 보이는 정맥길은 지루하기만 하다.
15시 03분 No.5번 측량점을 만나고 잠시 올랐다가 가파르게 떨어진 곳이 그렇게도 원하던 불랫재(15:12)다. 좌측으로 영천시 자양면 도일리와 우측의 포항시 기게면 남계리를 잇는 불랫재 임도에 내려서기 직전 잘 정리된 커다란 무덤 앞에 사자상이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 힘을 얻기 위해 있는 것 없는 것 다 떨어 먹는다. 우측으로 운주산이 내려다보고 있다.
15시 20분 불랫재를 뒤로 가파른 흙비탈이 젖어있어 미끄럽다.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누가 이기냐의 따라 인생살이가 달라진다. 꼭 극복해야하는 인생길, 아니 정맥길, 한발 한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다. 세상에 이런 가파른 길도 있나, 정말 힘겨운 오름길이다.
15시 42분 아름드리 참나무들이 늘어 서있는 봉에 오르며 승리했어 외쳐보지만 또 한차례 오름길이 특공대를 자지러지게 놀란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간다. 또 한차례 내키지 않는 뚝 떨어지는 길, 정말 싫다. 싫어...
15시 48분 십자로 안부에서 다시 힘겹게 올라 선 능선마루에서 왼쪽으로 묘지를 통과한다. 그리고 잡목과 수풀로 가득한 옛 헬기장 터, 545봉 정상이 보이니 걸음이 빨라진다. 여기까지 힘들다고 한 것은 말짱 거짓말같이 달려간다.
16시 09분 545봉이다. 고생 끝 행복시작, 이제 내려가는 길만 남아 있다. 항상 후미를 장식하던 대원들이 오늘은 먼저 도착하여 한마디씩 한다. 우리가 너무 놀며 왔나, “우린 놀매팀이란 말이여”...
오른쪽으로 영천시와 헤어지면서 내리막길이 시작한다. 10분 만에 안부에 내려서니 한티재로 오르는 도로가 보인다.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내려서는 길에는 철쭉군락이 꽃을 피우고 있다. 넓은 잔디밭의 묘지에는 우리의 첨병 나선배가 먼저 도착하여 반기며 맞아준다. 오늘은 선두도 후미도 없다.
옛 한티고개 인 듯한 비포장길에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선 밭길을 지나 낙엽송이 늘어진 정맥의 능선은 우측으로 가마득한 절개지 아래로 도로가 내려다보면서 상항 끝, 오른쪽으로 산허리길로 10분 정도 내려선 곳이 한티다.
17시 31분 힘겹게 3일간의 종주를 마치고 31번 국도 상의 한티터널 입구가 보이는 도로에 내려서니 참아주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만가지가 교차하는 순간이다. 성취감 또한 남다르다. 특공대 모두가 맘껏 승전가를 부르는 순간이다.
첫댓글 지금까지 산행기를 보면서 처음으로 제가 가 본산입니다
도덕산 자옥산...등등
오늘도 건강하시고 활기찬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랬군요. 우리의 산줄기를 찾아, 그 때는 종주기 쓰기가 산 타는 것 보다. 힘들었는데. 오랜만에 읽어보니 추억이 새롭습니다. 감사합니다^^
@수명산 이 산행기를 보면서
저도 더욱 열심히 산행기를 써야 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