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잔 다르크
Melina Mercouri (멜리나 메르꾸리)
일리아(멜리나 메르꾸리)는 그리스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피레우스의 선창가에서
일하는 창부이다. 그런데 피레우스의 남자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한다. 비록 직업
은 매춘부지만 마음씨 곱고 낙천적인 그녀가 다른 매춘부들과 다른것은 한 남자에
게 독점되는 것을 싫어하며 자기가 마음에 드는 상대여야만 교제한다는 점이다.
어느 날 피레우스의 항구에 호머 트레이스(쥘 다생, Jules Dassin)라는 미국인이
나타난다. 그는 그리스 문명의 멸망 원인을 연구하러 온 풋내기 철학자다.
호머는 살롱에서 일리아를 만나자마자 그녀에게 현혹되고 만다. 일리아야말로 그
가 오랫동안 꿈꾸어 온 그리스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호머는 고대 그리스의
몰락과 일리아의 현실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보고 공부하는 자세로 그녀의
생활 속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일리아를 갱생 시키기로 결심한다.
"그리스의 예술은 조화라는 면에서 세계 제일이었소. 말해 보시오. 당신이 왜 이런
생활을 하는지. 모든 악은 부조화요. 그런데 당신의 현실은 자신과 완전한 부조화
를 이루고 있어요. 예쁘고 우아한 당신이지만, 당신은 뭐죠? 난 말이오 당신을 다
시 조화의 상태로 돌려놓고 싶소"
한편 항구의 매춘 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포주 검은 안경에게는 자유 영업을 하는
일리아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일리아의 독자적인 행동이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여자들에게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한 그는 그녀를 피레우스에서 쫓아 내려고
한다. 그러므로 일리아를 교육시켜 창부 노릇을 그만두게 하려는 호머와 검은 안
경이 서로 손을 잡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검은 안경은 호머에게 자금은 얼마든
지 댈 테니 제발 일리아를 갱생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일리아는 일요일이면 이미 15번도 더 본 그리스 비극 <메디아>를 보기 위해 호머를
데리고 아테네로 간다. 두 사람은 아테네 중심부에 있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파르
테논 신전과 그 아래 펼쳐진 고대 문명의 유적들, 그리고 음악당에서 <메디아>를 감
상한다. 고색창연한 그리스의 고대 유적이 화면에서 유감없이 아름다움을 보여 주
고 있다. 호머는 비천한 창부에 불과한 일리아가 어째서 그토록 낙천적이고 늘 행복
에 겨워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말해봐요.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말이오."
"태양이요, 내게도 비치거든요. 그래서 행복하답니다. 좋은 생선을 먹지요. 그래서
행복하지요. 이렇게 당신을 만지죠. 당신이 좋으면 나도 행복해요."
호머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모두가 육감적이고 형이하학적이오. 당신은 그리스가 몰락한 후에 나타난 스토아나
에피쿠로스학파의 주장을 실천하고 있소."
그러는 동안 일리아도 헌신적인 호머에게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자기에게 쓴 돈이 모두 검은 안경에게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리아는 화
가 나서 창부들을 이끌고 항의 데모에 나선다.
결국 그리스 사람들에게 한 수 가르치고자 했던 호머는 어리석고 거만한 생각을 포기
하고 일리아를 둘러싼 남자들처럼 그저 흥겹게 마시고 춤추며 질펀하게 놀았다. 그런
다음 올 때와는 달리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피레우스를 떠나는 배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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