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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와 계급장
선우 휘
대령(大領)은 차를 탔다. 그리고 뒤로 고개를 돌렸다.
“형님, 제가 앞에 타서 이거 안됐수다.”
“원 별소리를 다 하누만, 님재 차 아니와.”
“이게 왜 제 찬가요?”
“자기 차가 별거 있댑다? 타고 댕기면 제 거디.”
부릉 하고 발동이 걸리면서 차는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다다다다 머플러 터진 소리가 났다.
“차가 좀 썩 었습메게래.”
“예, 머플러를 고쳐 야겠는데.”
“다른 차들은 매끈합데다. 이 차는 왜 이렇습마?”
저쯤 길 한가운데 애들이 모여서 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운전병이 클랙슨을 눌렀다.
“아가, 소리가 왜 이렇습마?”
“이게 원랫 겁니다.”
“그래도 남들은 빵빵 하는 쌍 크락숀 달구 댕기두만.”
“그건 위반이지요.”
차는 그런대로 털거덕거리면서 거리를 빠져나갔다. 훤히 트인 좌우에 푸른 보리밭이 저편 산기슭까지 잇닿아 있었다.
“형님, 두 시간이면 닿겠지요?”
“그럼, 한 시간 반이면 넉넉하디.”
‘그런데 차가…….’
대령은 뒤에 낀 타이어 생각을 했다. C급도 못 되는 타이어가 걱정이었다.
“그래두 님재는 성공한 거웨, 대령이 어디와.”
“대령이 별거 있습니까?”
“아니웨, 일제 때면 리쿠궁 다이사(陸軍大佐)¹ 아니와. 그때야 어디 좀처럼 구경이나 했었습마. 소위만 해두 대단했디.”
‘성공, 리쿠궁 다이사.’
“날 보시, 이 꼴 하구. 이게 어디 됐습마.”
대령은 얼핏 뒤로 돌리려던 고개를 멈추고, 길섶에 보이는 무너져가는 초가에 눈길을 보냈다. 꾀죄죄한 어린 것이 번쩍 두 팔을 쳐들었다.
대령은 손을 들어 거기다 턱 경례를 보냈다.
‘참, 이게 어디 된 일인가.’
대령은 무연히 팔짱을 꼈다.
십 년 전, 이북인 그의 고향, 그리운 산과 들과 안온한 고을.
“형님, 해방 다음해 삼일절 때 생각이 납니다.”
“생각하문 그때만 해두 호랭이 담배 먹던 시대웨. 님재가 월남한 건 그 딕후디?”
“예, 그땐 참 견디기 어려웠지요. 삼일운동을 내리깎아 걸레같이 만들어놓구, 거기다 어린 소학교 애들을 시켜서 절대 지지를 부르짖게 했으니 말입니다. 제가 끌구갔던 여학생까지 뛰어나가 기를 쓰다가 벌렁 자빠져, 걷혀진 스커트 밑에 허연 속치마가 드러났던 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아마 님재가 그땐 총각이 돼서 그랬등게디.”
“원, 형님두.”
“그때 김선생이 공산당 대표루 연설을 했습메니.”
“그게 더욱 슬펐습니다.”
“아마 님재네들 일학년 때 담임을 했디.”
“코흘리개 때지요.”
“김선생이 그땐 정신 나간 사람처럼 돌아갔디. 오죽 눈꼴사나왔습마.”
“형님이 공산당 본부를 습격하구 월남한 건 그해 5월이던가 그렇지요?”
“아마 그랬을 거웨.”
“광화문에서 처음 뵌 것이 그때쯤 되던 것 같애요.”
“서북청년회 사무실 앞에서 만났던가?”
“그랬을 겁니다.”
“그때 님잰 신문사에 있었디?”
“예, 바로 옆이어서 가끔 찾아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기삿거리도 얻어 왔지요.”
“님재 그때 서청(西靑)에 가입했었던가?”
“전 안 들어 있었습니다. 지금이니 말이지 형님들 하는 일이 너무 무지무지해 보여서 겁이 났습니다.”
“거 잘했습메니. 미련한 것이 한두 가지뿐이댔습마?”
피비린내 나는 테러와 난무하는 아지트, 삐라, 메시지와 노호, 집회에 이은 행진, 모함과 중상과 욕설…… 그러한 어지러운 거리 위에서 신문기자증 한 장을 가지고 갈피를 못 잡고 뛰어다니던 때가 어제 같았다.
“한번은 농성한 파업 노동자들을 경찰들이 끌어내는 데 간 일이 있었지요. 피를 흘리고 쓰러진 노동자의 머리를 싸매주려고 할 때 경찰관이 달려와서 이런 새끼는 그대로 둬! 하고 거기다 발길질을 하고 갔는데, 그땐 참 괴로운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지만 이북에서 하고 있는 꼴을 생각하면 이건 도대체 어떻게 판가름을 해야 할는지 도무지 분간이 안 가더군요.”
“사실, 그땐 정신 차리기가 어려웠디.”
“혼자 따돌리운 것만 같았습니다. 얼빠진 것처럼 되어가지구 신문사를 뛰어나와 부두 노동도 해보고 농장에 들어가 농사도 지어 봤지요.”
“님재두 별자(別者) 웨니.”
“저두 약한 편은 아니었는데 못 하겠습디다. 그래서 중학 교원으로 들어갔지요.”
“성격으루 봐서두 님재가 군대에 들어간 건 참 이상한 일이웨니.”
“부끄러운 얘기지만, 뭐 국가니 민족이니 그런 거창한 생각에선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얘기해서 목숨 하나 부지하려구 들어간 거지요.”
“님재두, 목숨을 부지하레 군대에 들어가는 사람이 어딨습마?”
“아니오 춘봉 형님, 여순반란사건 아시지요? 제가 × × 에서 교원을 하고 있을 때 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교원들은 아침이면 다투어 신문을 들여다보고 이거 큰일 났는걸, 이크, 여기까지 왔군, 하면서 겉으로는 걱정하는 체하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만세를 부르고 있는 것 이 헨둥(분명)해 보였지요.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쥐 한 마리 설치지 않는 지봉 밑에서 쾌재를 부르고 있는 것을 보니까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만일 내가 거기 있었다면 틀림없이 죽었을 게다. 만일 여기 그런 일이 생기면 맞아 죽을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생각하니, 앉아서 욕을 당하거나 죽기보다는 어차피 어떤 분명한 태도를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육군으로 들어간 거지요.”
버스가 한 대 먼지를 날리며 다가오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스쳐갔다.
“님재 육이오 땐 대위 댔지?”
“한심 했습니다. 생시 같지 않더군요. 한강을 건너서면서부터 저는 이미 죽어 없어진 것으로 쳤지요: 그때부터 저는 하루하루를 덤의 삶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특수 부대에 자원한 것도, 부산 부둣가까지 밀려가서 물속에 들어가 빠져 죽을 수는 없었기에 자살을 할 셈치고 들어갔었지요.”
“특수 부대 얘기는 말게.”
“형님은 장사(長沙)에 상륙했었지요.”
“말 마시. 혼이 났쉐, 혼이 났어.”
“워낙 그때는 무리였지요.”
“님재넨 그래두 그 덩도루 괜티않았습메니.”
“인천 상륙이 늦었으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요.”
“그래두 님쟨 평양까지 갔다 왔으니 다행이웨니.”
“뭐 찝질했습니다. 날도둑놈들만 눈에 띄어서.”
“사람을 죽이는 전쟁판이니 무슨 일 인들 없었갔습마.”
차가 커브를 도는데 앞에 나타난 우차가 한 대 바싹 언덕으로 붙으며 황급히 길을 텄다.
“김선생님은 영동에서 붙잡혔다지요?”
“성호가 없었다문 꼼짝없이 죽었디.”
“거 다행이었습니다. 그때 성호가 바로 그곳 경찰서 사찰계장으로 있었군요?”
“그럼. 갸가 보증을 서서 꺼내다가 뒤에 당개(장가)꺼지 보내주디 않았습마.”
“어떤 여잔데요?”
“입산했던 부인인데 촌 녀자야.”
“김선생은 몹시 변했겠군요?”
“그럼, 말이 아니디.”
“참, 모든 게 변하구 말았습니다.”
“그렇습메. 그저 그 눅이오(6·25) 가 탈이웨니.”
파앙!
대령은 깜짝 놀랐다. 차가 급정거를 했다. 춘봉 형님의 내어진 머리가 대령 의 뒤통수를 떠받았다.
“아이쿠.”
춘봉 형님이 소리를 질렀다.
“체, 빵꾸야.”
운전병이 혀를 차며 차를 내려서서 허리에 팔을 올리고 터져나간 뒷바퀴를 흘겨보았다.
대령과 춘봉 형님도 내렸다. 대령은 뒤통수를 어루만지면서 춘봉 형님을 보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잘 좀 고치시다나. 깜짝 혼이 났습메.”
대령과 춘봉 형님은 길가에 돋은 풀포기 위에 가서 앉았다.
“이래가지군 해가 있기 전에 들어가긴 글렀는걸.”
“곧 될 겝니다.”
대령은 고개를 돌려 운전병 보고 물었다.
“자키² 있나?”
“예, 빌려가지구 왔습니다.”
대령은 백양담배를 꺼내 춘봉 형님에게 권했다.
“김선생님께선 제가 꼭 가는 줄 아십니까?”
“그럼, 눈이 빠지도록 기대리구 있을걸.”
“가는 길에 뭘 좀 사 가지구 가야겠는데요.”
“좀 가면 장(市)이 서 있습메니.”
춘봉 형님은 달게 담배를 빨았다.
“거기선 닢초를 썰어서 신문지에 말아 먹는 게 기껏이야.”
“식량 사정은 어떤가요?”
“보리 한 가마씩을 받는데 반찬은 산채웨.”
“김선생님두 그걸 먹겠군요?”
“그럼. 거기서야 누구나가 다 한가지지. 생각하문 김선생 팔자두 티껍게(더럽게) 기박한 거웨. 이북에 그대루 남아 있었으문 지금은 거뜬히 국당이디.”
“많이 달라졌겠습니다.”
“그럼 아주 딴 사람이디. 내가 하릴없이 친구들을 두루 찾아댕기다가 거기 김선생 계시능 걸 알구 찾아갔더니 반가워하두만. 이북에서야 서루가 으르릉댔디만, 만나구 보니까 반가왔디. 김선생은 그르케 돼서 나가떨어디구 난 나대로 쓸모가 없이 이르케 된 판이니, 비슷비슷한 신세타령이 됐디. 김선생은 지금 한 가지 생각밖에 없대능 거야. 어드케 하문 촌에서 조용히 새끼들이나 길러가면서 살겠능가 하는 연구뿐이디.”
“애가 몇인데요?”
“다섯 살짜리 체네 아이하구 세 살짜리 아들이 있디. 그른데 김선생 얘길 들어보니끼니 되겠어. 김선생이 본래 농업학교 출신 아니와. 오리를 치구 병아리를 길러서 알을 받구 한겨울 지내문 염소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두 마리만 사면 거기서 짜내는 젖으루 하루에 이천 환 벌이는 틀림 없대능 거야.”
“달걀을 까서 소 사는 문세(이치) 아니오?”
“아니디. 님재레 딕접 김선생한테서 니야길 들어보시다나. 그래서 나두 이전 주먹을 내두를 데두 없구, 이전 또 그르구 싶디두 않구, 새끼덜두 커가는데 어디 좀 들어백힐래던 판에 맘이 맞았디. 그래서 같이 고생하면서 재출발을 하자구 니야기가 돼서 네펜네를 끌구 들어갔디 .”
“생각 잘하셨습니다.”
“뭐 잘한 건 없디만 해봐야디.”
뚜뚜, 타이어를 갈아 낀 운전수가 경적을 울렸다. 둘은 다시 차에 올랐다.
장터에 닿았다.
“뭘 사갔습마?”
“소주나 한 병하구 쇠고기나 한 근 사지요.”
“쇠고긴 무슨 쇠고기야, 돼지고기가 제일이웨니. 돈을 이리 내시, 내 사 올께.”
“아, 제가 가지요.”
“대령이 어데 그릉 걸 사갔습마.”
한참 있더니 춘봉 형님은 소주 한 되와 돼지고기 한 근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돼지고기 한 근에 사백 환을 달라구 해서 백 환을 깎았디.”
“그렇게 깎아줍니까?”
“그럼. 달라는 대루 줬다간 뽕빠집 메니.”
“아 참 애들이 있지요. 과자를 사 오겠습니다.”
“원 님재두, 과잔 무슨 과자와.”
대령은 차를 내려서 막과자 한 근을 사 가지고 왔다.
“애들이 도와(좋아)는 하갔습메만 그르케 돈을 써서 어드캄마.”
차는 잔허리에 파인 꼬부랑길을 더듬기 시작했다.
마지막 고비를 넘어가자 앞에 탁 트인 벌판이 보인다. 저편에 여남은 채의 인가가 보였다.
“저기 보이는 기와집이 저게 지서웨니.”
차가 지서 가까이 이르자 춘봉 형님은 서라고 했다.
“님재, 잠깐 내렸다 갑세.”
“왜요?”
“글쎄 잠깐 지서에 들렀다 갑세나.”
대령은 춘봉 형님을 따라 지서로 들어갔다. 경사 한 사람과 순경 두 사람이 있었다. 둘이 들어서자, 그들은 고개를 들어서 쳐다보았다. 춘봉 형님이 대령을 얼싸안듯이 하면서 경사에게 얘기를 건 다.
“저 인사하시디요. × × 사령부에 있는 성 대령입니다.”
대령과 경사는 동시에 경례를 붙였다.
춘봉 형님은 순경들에게도 인사를 시켰다. 그때에야 대령은 그 뜻을 알아차렸다.
“저 저의 고향 선배 되는 형님입니다. 여러 가지루 잘 부탁합니다.”
지서를 나온 두 사람은 다시 차에 올랐다.
“인사는 해두는 게 동습메니.”
“……”
“아마 대령이 지서에 나타난 건 처음일걸.”
춘봉 형님은 혼자 공연히 흐뭇해했다.
“나두 괜히 주먹이나 내두르구 돌아가디만 말구 경찰에나 들어갔다문 지금쯤 경감은 됐을 게 아니와.”
“그랬을 겝니다. 그런데 아직 멀었나요?”
“저어 저기 보이는 고개를 넘으면 돼.”
산속에서는 해가 금시 떨어졌다. 떨어지기가 바쁘게 어슬어슬 해지더니 곧 어두워졌다. 마을 어귀에 닿았을 때는 캄캄했다.
“저 기웨 저기.”
춘봉 형님의 가리키는 어둠 속에서 반딧불 같은 희미한 불빛이 몇 개 깜박거렸다.
“크락숀을 뙤시.”
“왜요?”
길에는 쥐새끼 한 마리 얼씬하는 것이 없었다.
“왔다능 걸 알리야 할 게 아니와.”
“뭐 조용히 들어가지요.”
“아니웨, 글쎄 좀 뙤시.”
“……”
운전병이 뚜뚜 경적을 울렸다.
“자꾸 뙤시.”
춘봉 형님이 또 재촉을 했다.
운전병은 그저 하라는 대로 또 경적을 울렸다.
‘하아아’ 대령은 짐작을 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모양이군.’
“여기웨.”
차가 섰다. 춘봉 형님은 재빨리 차에서 뛰어내리더니 자기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뛰어갔다. 대령은 잠시 섰다가 천천히 그 뒤를 따라갔다.
십여 년 만에 은사를 만나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한껏 두려웠다. 너무나 변했을 은사의 모습을 보는 것이 무서웠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기웨 여기.”
램프등이 높이 들리었다. 거기 조명을 받은 무대같이 벽과 마루와 댓돌이 드러났다. 그 등불이 기둥에 박힌 못에 걸리면서 그 희미한 불빛 아래 어리는 하나의 그림자가 보였다. 춘봉 형님이 대령을 잡아당기듯이 그리로 끌고갔다.
“김선생님이웨.”
대령은 모자를 벗으면서 조심스레 그리로 가까이 다가갔다.
“김선생님이십니까?”
“아 성선생이오?”
“이거 몇 년 만입니까?”
김선생은 내민 대령의 손을 꽉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대답이 없었다. 김선생이 그 움켜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 손이 불덩어리처럼 뜨겁게 달고 있다고 대령은 느꼈다.
고개를 숙인 김선생의 목덜미가 잔가락으로 떨고 있었다. 어금니를 꼭 물고 있는 것을, 입가에 생긴 쥐어 당겨진 깊은 주름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대령은 등불이 희미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김선생의 입에서 느끼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선생님!”
대령의 손등에 뜨거운 것이 방울져 떨어졌다.
“선생님!”
대령의 목멘 소리에 춘봉 형님도 시선을 땅에 떨구었다. 한참 그대로 시간이 흘렀다.
김선생이 고개를 들면서 마루로 대령을 이끌었다. 대령은 등불에 비치는 김선생의 두 눈을 보았다. 눈물어린 두 눈에는 생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멀거니 뜨여졌을 뿐 빛을 찾아볼 수 없는 두 눈망울이었다.
“오시느라고 고생 많이 했지요?”
“무슨 고생이겠습니까, 진작 찾아뵈어야 했을 텐데.”
“이렇게 오시는 것만도 고맙지요.”
“선생님!”
대령은 나무라듯 언성을 높이면서,
“말씀을 낮추십시오. 왜 자꾸 예우를 하십니까.”
김선생은 어색한 웃음을 웃었다.
“댁에선 다 안녕하시구?”
“예 덕택에 그저…….”
“어머님을 모시고 계시지요?”
또, 하고 대령은 마음속으로 뇌었다.
“예, 서울에 계십니다.”
“애들은?”
“둘입니다.”
그때 춘봉 형님이 두 부인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리고 자, 하면서 대령 앞으로 밀어냈다.
“인사드리우, 성선생님이오.”
김선생의 얘기에 사십이 가까워 보이는 촌티나는 부인이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대령은 마루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사모님이십니까? 이렇게 늦게 찾아뵈어서 죄송합니다.”
춘봉 형님이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자 이건 우리 네펜네웨.”
사십 내외의, 원피스를 입은 부인이 생긋이 웃으면서 머리를 숙였다.
“아주머니 안녕하십니까? 여기서 고생하신다는 말씀은 벌써부터 듣고 있었으면서두.”
인사가 끝나자 세 사람은 방으로 들어갔다. 춘봉 형님이 밖을 내다보고 큰소리를 질렀다.
“여보, 거 안주 좀 잘 끓이우.”
대령은 좀더 똑똑히 김선생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머리는 무수한 흰오리 탓으로 회색이었다. 이마와 눈 언저리엔 깊숙이 여러 줄가의 주름이 새겨져 있었다.
변모!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하나 너무나 심한 변모였다.
“성선생은 옛날 모습 그대루군요.”
“아뇨, 밤이니까 그렇겠지요. 저두 많이 변했습니다.”
“아니 옛날보다는 더 좋아진 것 같수다.”
“선생님!”
대령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말씀을 낯추십시오.”
김선생은 자기 자신이 야속하다는 듯이 힘없이 음성을 떨구었다.
“이전 이것이 입버릇이 돼서.”
대령은 가슴이 뭉클했다. 도리어 십여 년 전 천여 군중 앞에서 절규하던 그때의 모습과 음성이 그리웠다.
춘봉 형님이 입을 열었다.
“김선생은 짬짬이 글을 많이 쓰고 있담메.”
“춘봉씨두…… 내가 무슨 글을 쓴다고그래?”
춘봉 형님은 대령을 보고 손짓을 해가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님재두 잘 알디 않습마. 일제 때부터두 김선생의 문필은 대단했쉐.”
“그저 춘봉씨는…….”
김선생이 거북하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거저 난 김선생만 따라가겠쉐. 아까두 니야기했디만 김선생 계획대루만 하문 틀림없겠단 말이야.”
춘봉 형님은 더욱 열을 냈다. ˙
“먼저 오리부터 치야갔습메. 그르케서 알을 받거덩. 님재두 내일 아침에 보문 알갔디만 벌써 삼십 마리나 새끼를 사 왔습메. 그른데 이놈의 땅주인인가 뭔가 하는 촌놈의 새끼가, 글쎄 이 집에 붙어 있는 땅 열 평을 가지구 야단이웨게레. 오리장을 만들라구 울타리꺼정 만들어놨는데 글쎄 안 된대능 거야.”
“열 평 정도 가지구야 뭐 그럴 건 없지 않아요?”
“님잰 아직 사람의 심뽀를 모르누만. 이 집두 이거 김선생이 직접 설계해서 이르케 말쑥하게 지어놓은 건데 그것부터 배가 아파 하거덩. 그르니 오릴 키워서 알을 받아먹는 걸 차마 못 보갔다는 거디.”
김선생 부인이 술상을 들고 들어왔다. 돼지고기를 배추와 섞어 먹음직하게 볶아놓은 것 외에, 싱싱한 산채, 쑥갓, 도라지, 마늘, 파가 잔뜩 상을 괼 정도로 얹혀 있었다.
“이거 다 여기서 장만한 거웨. 이 쑥갓 보시, 이것두 김선생이 다 만든 거랍메.”
술잔의 크기가 모두 달랐다. 대령은 제일 큰 잔을 들어서 김선생 앞에 갖다놓았다.
“내가 이렇게 큰 걸 어드케.”
“아, 선생님 오늘은 좀 드십시오.”
대령은 다음으로 큰 잔을 집어서 춘봉 형님 앞에 갖다놓았다.
“술이야 님재레 잘하디 않습마.”
“전 작은 잔으로 여러 잔 하디요.”
대령의 말투에도 차차 사투리가 섞여져 갔다. 세 사람은 술을 따른 잔을 높이 들었다.
“자!”
대령은 다음 얘기를 찾지 옷했다. 무어라 해야 할지 적당한 말이 없었다.
김선생이 잔을 들여다보며 혼잣말처럼 뇌었다.
“이거 참.”
“고맙쉐.”
춘봉 형님이 대령을 건너보며 싱긋이 웃었다.
“이거 뭐 변변치 않수다. 되레…….”
대령이 먼저 쭉 한 잔을 비웠다. 그리고 김선생한테 잔을 돌렸다. 반 잔을 마시고 잔을 놓은 김선생은, ‘아이거’ 하면서 대령의 잔을 받았다. 그리고 자기 잔의 남은 것을 마시고 대령에게 건넸다.
대령은 큰 잔을 비워 춘봉 형님한테로 돌렸다. 춘봉 형님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쭉 잔을 비워 대령 에게 건넸다.
그렇게 해서 네댓 잔씩 마시고 나자 세 사람의 마음은 제법 풀어져갔다. 불그스레 술기가 얼굴에 오른 김선생은 대령을 보고 감개 깊은 듯이 얘기를 건넸다.
“성선생, 난 참 행복한 사람이오.”
“원 선생님 별말씀을 다, 그런 말씀 아예 마시고 술을 하십시다.”
대령은 빨리 얼마를 더 마시고 마음속에 당겨진 줄을 탁 풀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대령은 상의를 벗으려고 손을 앞 단추에 가져갔다.
“참 진작 벗을걸.”
김선생 얘기에 춘봉 형님은,
“잠깐만.”
하고 그것을 말렸다.
“가만있으시, 잠깐만 있다 벗으시.”
“왜요?”
“글쎄, 좀 기다리시.”
갑자기 일어선 춘봉 형님은 밖으로 뛰어나갔다. 한참 있더니 사십 가까운 동민 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대령은 자기 왼편 쪽 자리를 비우면서 자리를 내려고 하는데, 춘봉 형님은 부득부득 대령의 오른편 쪽에 손님을 앉혔다.
“자 서루 인사를 하시디.”
대령과 동민은 서로 통성을 했다.
“저 × ×사령부에 있는 성대령이오.”
춘봉 형님이 목청을 돋우며 소개를 했다. 동민은 힐끔 대령의 계급장을 훔쳐보면서 ‘김 아무개’ 라고 했다.
인사를 하고 나서도 힐끔힐끔 계급장을 쳐다보는 동민의 눈길을 느끼면서 대령은 춘봉 형님이 상의를 못 벗게 한 뜻을 알 듯 했다.
“자, 더운데 옷을 벗으시.”
또 몇 잔이 왔다갔다 했다.
대령은 거푸 김선생에게 잔을 권했다.
“선생님, 고생 많이 하셨수다. 전, 뭐 군복 입은 놈이 선생님한테 뭐라구 드릴 말씀이 없수다.”
“성선생, 나야 죄가 많은 놈이 아니오.”
“쥔 무슨 죄요. 죄야 누구나가 다 짓구 있는 게 아닙니까?”
대령은 조금 혀꼬부라진 소리를 했다.
“그리고 선생님 말씀 낮추시라우요. 저야 선생님 제자 아닙니까?”
“뭐, 다 같이 늙어가는 게 아닌가?”
“늙어가디만 선생님은 어디까지나 선생님이디요. 전 춘봉 형님한테 니야기 다 들었수다. 쉰세 번이나 끌려가서 고생을 하셨다구요. 참 안됐수다. 전쟁이라는 게 그런 모양이디요.”
“마지막, × × 경찰서에 끌려갔을 때는 죽으려구 했지. 이층에서 취조를 받다가 형사가 나간 뒤에 떨어져 죽으려구 창문을 열었지. 마침 그때, 보자기에 옷가지와 먹을 것을 싸가지고 정문을 들어서는 여편네가 눈에 띄었어. 더욱 그때, 저기서 자는 다섯 살 난 계집아이를 배고 있어서 치마 밑이 불룩한 것이 눈을 쿡 찌르더군. 그것을 보고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그때 문밖에서 부인이 김 선생을 불렀다.
“손님이 오셨어요.”
“누구요?”
김선생이 벌떡 무릎을 세우면서 물었다.
“아, 아까 내가 저 옆에 사는 지섯분을 불렀쉐.”
춘봉 형님은 재빨리 일어나 문을 열고 손님을 맞았다. 아까 지서에서 헌사를 한 순경이었다. 김선생과 동민은 안면이 있는 모양이어서 간단히 서로 인사를 건넸다. 갑자기 춘봉 형님이 순경에게 인사를 걸었다.
“아까는 실례했수다. 전 김춘봉이라구 합니다.”
순경도 통성을 했다. 그리고 서로 악수를 나눴다.
대령은 놀랐다. 아까 지서에서 춘봉 형님은 자기를 소개하고 인사를 시켰던 것이 아닌가. 대령은 춘봉 형님이 이미 그들과 인사가 있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니 춘봉 형님은 덮어놓고 지서로 대령을 끌고 들어갔던 것이다.
대령은 어리벙벙했다. 이건 앞뒤가 바뀌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몇 잔 술이 돌아가자 춘봉 형님은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순경을 보고 얘기를 걸었다.
“수고 많이 하우다. 뒤루 많이 폐를 끼치갔수다.”
“뭐, 폐가 무슨 폐겠습니까?”
“내 친구도 경찰에 많이 들어가 있수다. 경감도 서넛 되구요. 총경두 되디요. 난 거저 친구덜 덕으로 사는 놈이웨다. 오늘두 대령이 이르케 형님을 찾아준다구 술까지 사 가지구 왔수다레.”
대령은 그 얘기를 듣고 잠깐 춘봉 형님을 건너보고 순경에게 얼굴을 돌렸다.
“아까두 말씀드렸디만 우리 형님 좀 잘 봐주시우. 그리고 김선생님은 우리 은사외다. 제가 요로케 조곰했을 때 코를 닦아주면서 가르쳐준 선생님이디요.”
김선생은 그저 뷸그스레한 얼굴을 한 채 도연(陶然)히 앉아 있었다.
춘봉 형님이 동민 김씨를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보 김씨, 김씨만은 날 허투루 안 보갔디요. 내레 이른 꼴이 됐다구 모르는 사람들은 날 어드케 볼디 모르디만 이 김춘봉은 그래두 한땐 날릴 대루 날렸수다. 남 하는 짓은 다 했디요.”
대령은 거기 장단을 맞추었다.
“이 형님은 사실 대한민국에서 멕여살려야 할 사람이디요. 굉장히 투쟁을 한 분입 니다. 빨…….”
대령은 언뜻 김선생 얼굴을 쳐다보고 마음속으로 아차 하며 입 속에서 나머지 말을 굴려버렸다. ‘빨갱이 치는데’ 하려다가 그만 얘기를 거두고 만 것이다.
“김씨, 주씨보구 내가 그르문 재미없다구 하드라구 말씀 좀 전하우. 그래 오리장 칠 열 평두 못 되는 땅조각 때문에 그르케꺼지 굽신거려야 되냐 말이에요.”
김씨는 그저 주억주억 고개만 흔들어 보였다. 대령은 춘봉 형님을 타일렀다.
“자, 그런 얘긴 그만 하구 술이나 마십수다.”
“성대령, 님잰 가만 있으시. 말이 되나, 말이 되나 말이야. 오리알 받아먹갔다구 땅쪼가리 좀 쓰갔다는데, 그르케꺼지 재야 하느냐 말이야. 성대령 그르티 않습마. 이북에만 가문 그까짓 게 문데나 됩마 어디.”
대령흔 잔을 비워서 춘봉 형님에게 드렸다.
또 몇 잔 술이 돌아가는데, 춘봉 형님은 쉬지 않고 투덜투덜했다.
잠깐 춘봉 형님이 조용해진 틈에 순경과 김씨는 엉거주춤 일어나며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했다.
“와들 가우. 뭐 이 춘봉이가 주정을 해서 그루. 이 춘봉이는 그래두…….”
대령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인사를 하고 김선생은 문밖까지 전송을 했다.
세 사람만 남게 되자 더 몇 잔이 돌아갔다. 김선생은 대령의 손을 꼭 붙들고 좀처럼 손을 놓질 않았다.
대령은 어릿어릿한 정신으로 김선생보고 ‘안됐수다 안됐수다’ 거푸 헛소리처 럼 뇌었다.
가뿐해진 주전자를 들어보고 대령은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춘봉 형님, 한 되만 더 사 옵수다.”
“그르캅세 .”
“뭐 그만들 하지.”
몇 잔이 더 돌았다. ‘성대령 성대령’ 하고 거푸 대령을 부르다가는 ‘김선생, 김선생, 재출발이우다’ 하고는 또 뭐라고 중얼거렸다. 갑자기 춘봉 형님이 대령을 불렀다. ˙
“성대령, 이전 노래나 합세.”
“돟수다 형님. 그럼 형님부터 부르슈.”
대령은 약간 술이 깨는 느낌 이었다. 노래엔 원래 자신이 없었다.
“으음 뭘 부를까?”
춘봉 형님이 잠깐 눈을 감았다. 무슨 노래를 부를까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것을 보자 대령은, 바싹 정신을 차렸다. 춘봉 형님은 술만 마시면 공산당 쳐부순다는 서북청년회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었다. 김선생 앞에서 그것을 불러서는 난처했다. 그렇지만 춘봉 형님의 일이니 할 수 없었다. 더욱 저렇게 취해 있으니.
이윽고 춘봉 형님이 입을 열었다. 저런! 그 입에서 흘러나온 노래의 첫 구절을 듣고 대령은 놀랐다.
푸른 하늘 은하수
춘봉 형님이 저렇게 취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을 쓰고 있다고 대령은 생각하였다. 춘봉 형님이 다시 한 번 쳐다보였다.
‘음 저런 노래가 있었군. 그걸…….’
대령은 실수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테러리스트가 저런 노래를 부르다니.’
가기도 잘도 간다
대령은 김선생의 얼굴을 건너보았다. 눈을 꾹 감고 듣고 있었다.
‘자, 그럼 난 무얼 부른다! 유행가, 그것이야 멋쩍어 부를 수 있나. 일본 노래를 부를까, 그것은 더더욱 안 되지. 카츄사 노래? 그것은 김선생에게 실례가 되지. 푸른 하늘 은하수라, 잘도 골랐군.’
멀리서 반짝반짝 비추이는 것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춘봉 형님의 노래가 끝났다. 세 사람은 다 같이 박수를 쳤다.
“자, 님재 차례웨.”
대령은 잠시 망설였다. 김선생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보통학교 때 배운 노래는 없나, 무두³ 일본 노래야. 가만있자, 일학년 때 배운 것이, 아아.’
갑자기 대령의 머리에 계시처럼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렇지, 그것을 불러야지.’
“선생님, 이건 일학년 때 선생님한테 배운 겁니다.”
대령은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쉬었다.
이리 와 보시오. 밝은 달이 솟았소
둥글고 둥글어 공과 같이 둥글어
앞들과 뒷산에 공과 같이 둥글어
부르고 난 대령은 언뜻 김선생을 건너보았다. 눈은 꾹 감겨져 있는데 입 언저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김선생은 또 한 번 힘있게 대령의 손을 쥐었다.
“그랬구만, 그런 노래가 있었구만.”
대령은 감회 깊은 어조로 노래 얘기를 했다.
“거기 맞추어 유희도 했지요.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선생님은 저희들 한가운데 서 계셨고.
처음엔 손을 흔들고 다음은 두 팔을 들어서 둥글게 원을 만들지요. 다음은, 한 팔로 두 번 둥그렇게 크게 그려 보이고, 다음에는 두 손의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가지고 조그만 원을 만들어 보이고, 그리고…… 선생님!”
대령은 언뜻 얘기를 멈추고 푹 고개를 떨구는 김선생을 불렀다.
“성군!”
그 목소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랬구만, 참 그랬구만. 벌써 얼마나 되나, 삼십 년이 가까왔구만.”
“선생님!”
고개를 수그린 김선생의 어깨가 들먹였다.
“선생님!”
대령은 일부러 명쾌한 가락을 지어 보였다.
“이번엔 선생님 차롑니다.”
잠시 있더니 김선생이 번쩍 얼굴을 들었다. 그 뺨에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김선생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루 넘어간다
대령은 차마 노래를 부르는 김선생의 얼굴을 건너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눈을 깔았다.
갑자기 춘봉 형님이 김선생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악을 쓰는 듯한 목소리였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대령도 같이 따라 불렀다.
셋은 거푸 아리랑을 부르고 또 불렀다. 세 사람은 똑같이 얼굴을 찡그리고 불러갔다.
마루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부인네들이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령은 눈물 섞인 김선생의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무엇이 목구멍을 간질이더니 코 허리를 척 울리는 것을 느꼈다.
‘김선생, 춘봉 형님, 나 자신, 이 꼴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냐.’
대령은 울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젖어들어 가려는 감정에 반발했다.
어떤 노여움이 가슴 밑 바닥에서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서글픈 가락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겨우 이 아리랑밖에 없다니…… 심장이 발바닥까지 처지는 듯한 이 가락, 빌어먹을 것이. 힘차게 부를 수 있는 변변한 노래 하나가 없단 말인가. 푸른 하늘 밑에 거침없이 서로 가슴을 터놓고 목이 터져라 부를 수 있는 노래 하나가…….’
대령은 무엇이 꽉 들어찬 듯한 머리가 헤질 듯했다.
‘어째서 우리는 밤낮 눈물을 쥐어짜며 울어야만 하나. 이래 울고 저래 울고 도매를 맡은 울음이란 말인가? 물론 울어야 할 때는 울어야겠지. 그러나 지금은 울 수가 없어. 겨우 일 막이 끝난 막간에 지나지 않는데 울 수 없지. 그렇지 삼 막이 모두 끝난 다음에 울어야지.’
그러한 생각이 들자 대령은 갑자기 노래를 그치고 소리를 높여 구령을 외 쳤다.
“노래 그만, 차려어엇! 앞으로 가아앗!”
대령은 우렁찬 군가가 울려오는 착각을 느끼며 술에 떨어져 그대로 벌렁 상 밑으로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대령이 눈을 떴을 때 방 안에는 김선생도 춘봉 형님도 없었다.
부스스 일어난 대령은 눈을 비비면서 밖으로 나갔다. 아침 햇살이 눈부셨다. 간밤에 보지 못한 앞산이 눈이 시울도록 푸르렀다.
맑게 걘 하늘 빛깔과 어울린 것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대령은 쭉 휘둘러보았다. 앞에 개천이 흐르고 저편에 이십 여 호의 초가집이 늘어서 있었다.
김선생이 마늘밭을 가꾸고 있다가 대령을 보더니 얼굴에 웃음을 띠며 일어섰다.
“좀더 주무시지그래.”
“아니오, 푹 잤습니다. 제가 제일 늦었군요.”
대령은 마늘밭으로 걸어갔다.
“춘봉 형님은 어디 갔지요?”
“오리한테 멕인다구 매일 아침 일어나기만 하면 개구리 잡으러 떠나지.”
“예에, 춘봉 형님두 많이 변했습니다.”
“아니 그 고집이면 못할 게 없겠어.”
“그런데 어제저녁, 기억은 희미합니다만 무슨 오리장 짓는 데 말썽이 있나요?”
“글쎄, 곡식도 못 심을, 집 옆의 돌밭인데 그거 좀 빌려달래두 얘기를 안 듣누만.”
“어떤 사람인데 그렇게 인색한가요?”
“뭐 누구든지 그렇지. 난 여기 와서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이 있는데, 한때는 나두 노동자 농민, 하구 떠들어봤지만, 그렇게 한 마디 추상명사로 묶을 수 없는 무엇이 있는 것 같애. 너 나 할 것 없이 곤란한 점도 있겠지만 영 얘기가 안 통하는걸.”
“그래두 어디 그럴 수야 있습니까?’'
그때 ‘성대령’ 하고 부르는 소리가 저편에서 들려왔다. 춘봉 형님이 풀줄기에 개구리를 잔뜩 꿰어 들고 논두덩을 걸어오고 있었다. 정강이를 활짝 내놓고 팔을 잔뜩 걷어붙인 것이 퍽 건강한 느낌을 주었다.
뚜뚜, 경적이 울렸다. 지프차 위에 애들이 잔뜩 타고 있었다. 모두 과자를 먹으며 야단법석이었다.
“저게 어린애들이 있습니까?”
“저 뒤에 탄 게 아들녀석하구 계집애지. 앞에 타고 있는 건 춘봉씨의 아들이야. 우리 애들은 아마 지프차 타는 게 처음일걸 하하…… 저렇게 법석이군.”
대령은 운전수보고 소리를 질렀다.
“애들 태우구, 저 고개까지 한번 갔다 오지그래.”
조금 있더니 다다다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차는 고개를 향해 내달았다. 차 안에서는 더욱 야단이었다.
“여기야 참 촌이지. 저번에 도라지 캔다구 저쪽에 보이는 산을 넘어갔더니 거기 늙은이들이 비행기는 봤어두 자동차는 못 봤다는 거야.”
“그래요? 그거 참 그렇기도 하겠군요.”
대령은 좀 머리가 뻥 했다.
‘반만 년 유구한 역사를 가진 문화 민족인…….’
문득 그렇게 훈시한 생각이 나서 좀 어색했다.
이리로 걸어오던 춘봉 형님이 저편에 누구를 보았는지 ‘선생, 선생’ 하면서 그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어떤 젊은 사람을 붙들고 무어라 얘기를 시작했다.
“저 사람이 땅을 다루는 사람인데 그 오리장 지을 돌밭 열 평을 고집하는 사람이야.”
“그래요? 어디 좀 가서 얘기나 해봅시다.”
대령은 김 선생과 함께 그리로 걸어갔다.
둘이 다가가자 젊은이는 언짢은 눈초리로 대령을 쳐다보았다. 춘봉 형님이 인사를 시켰다. 대령은 머리를 숙였다.
“저 형님 되는 분인데 여러 가지 잘 부탁합니다. 김선생은 제 어렸을 때 가르쳐주신 은삽니다.”
젊은이는 더욱 얼굴을 펴지 못했다. 춘봉 형님이 젊은이를 달랬다.
“글쎄, 그거 아무 탈두 없디 않소? 내년 봄까지 좀 빌려주디야 못하갔소?”
“글쎄, 그건 안 된다는데 그러십니다.”
“글쎄, 안 될 게 뭐요?”
“안 되니까 안 된다는 거지요. 오리 똥은 독해서 배나무에 해가 된 다니까그래요.”
“아, 배나문 데만침 딸어데 있구, 또 오리 똥이 관계가 없대는데 자꾸 그러시우?”
“자꾸 그러기야 댁에서 그러지 않소?”
대령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자, 선생께서두 널리 생각하시지요. 그만한 땅이야 어떻게 서루 좋게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안 됩니다.”
젊은이는 저쪽에 고개를 돌리면서 툭 한마디를 뱉었다. 대령은 조금 마음이 상했다.
“그렇게 말씀하실 건 없지 않아요? 지금이야 어떻게든지 모두 도와가면서 살아가야 할 때가 아니오?”
“글쎄 안 됩니다.”
“안 될 게 뭐예요?”
“되면 해보시구려, 난 법 대루 사는 사람이니까요!”
“뭐?”
대령은 핑 하고 꼭대기까지 치오르는 뜨거운 덩어리를 느꼈다. 폭력에 대한 향수가 여울처럼 대령의 전신을 흘렀다.
주먹이 그 얼굴 한가운데서 터지고 뻘건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젊은이를 순간적으로 머리에 그려보았다. 그러나 대령은 주먹을 드는 대신 눈을 감았다.
대령은 자기 감정을 누르고 있으면서 그것이 퍽 오랜 시간으로 느껴졌다. 눈을 떴다. 젊은이는 그대로 눈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춘봉 형님이 발끈했다.
“그르케 니야기할 것 뭐요! 예? 안 되문 거저 안 된다구 하문 되지 않소?”
대령은 춘봉 형님을 제지했다.
“아니오 형님, 제가 공연한 얘기를 했나봅니다. 여보시오. 선생, 오해는 마시오. 뭐 제가 군복이나 입었다구 선생보고 그런 건 아닙니다.”
대령의 부드러운 말투에 젊은이는 마음을 늦춘 듯 조금 그 표정을 달리했다.
대령은 한마디를 더 했다.
“미안하게 됐수다.”
젊은이의 입술이 움직였다.
“저두…… 저두 사실은 제대군인입니다.”
“아 그렇소, 어디 계셨는데요?”
“오 사단에 있었습니다.”
“언젠데요?”
“피의 능선 싸움 때요.”
“아 그래요? 몇 연대에 있었나요?”
“× × 연댑니다.”
“그럼 × 대령이 연대장으로 있을 때군요?”
“그렇습니다.”
대령과 젊은이가 주고받는 얘기를 듣고 있는 김선생과 춘봉 형님의 얼굴이 차차 밝아져갔다.
산나물 국으로 보리밥 한 그릇씩을 비운 김선생과 춘봉 형님은 수저를 놓자 뛰어나가, 미리 준비해두었던 울타리를 치기 시작했다. 열 평도 못 되는 개천을 낀 돌밭이었다. 울타리를 치고 나자 곧 오리 새끼들을 몰아넣었다. 아장아장 거니는 오리 새끼는 모두 스물일곱 마리였다.
“세 놈은 그만 죽었어.”
춘봉 형님이 아깝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새끼들은 무슨 새끼든지 귀엽단 말이야. 돼지 새끼두 새끼는 귀엽담메.”
대령이 대꾸를 했다.
“그럼 보기 싫은 건 무엇이든 어른이겠군.”
모두 웃었다. 김선생도 춘봉 형님도 웃었다. 부인들도 웃었다. 땅주인인 젊 은이까지 웃었다.
애들도 막과자를 씹으면서 공연히 좋아서 깩깩 소리를 질렀다.
대령은 한참 오리장을 쳐다보았다.
십 평도 못 되는 땅…… 대령의 눈에 그것은 오리장이 아니라 어떤 영토같이 보였다. 이 영토를 위해서 대령이 필요했는지도 몰랐다.
대령은 슬그머니 손으로 오른편 옷깃에 달린 계급장을 만져보았다.
조국이여! 민족이여! 동포여!
문득 대령은 이렇게 입에서 뇌어보았다.
대령이 마을을 떠날 때의 요란한 머플러 소리에 놀랐던지 모든 동민들이 나와서 말없는 전송을 했다.
김선생과 춘봉 형님은 고개까지 따라 나왔다. 거기서 작별 인사를 했다. 김선생과 춘봉 형님은 대령보고 추석에 꼭 오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대령은 꼭 오리라고 했다.
내리받이를 한참 굴러 내려가다가 대령은 뒤를 돌아보았다. 김선생과 춘봉 형님이 아직도 언덕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푸른 하늘을 등지고 두 사람은 뚜렷이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시 몸을 돌린 대령은 단좌하고 앞을 내다보았다. 산기슭까지 뻗은 보리밭이 물결치고 있었다.
다다라다 머플러 소리가 요란했다. 대령은 이번에 돌아가면 어떻게 해서든지 차를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어제저녁에 마신 술기운이 남아 있었으나 풀냄새 섞인 시원한 바람이 대령의 얼굴과 목덜미를 스쳐갔다.
대령에겐 별다른 일신상의 걱정이 없었다. 사령부에 돌아가면 수일 내로 작성해야 할 계획서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대령은 쓸쓸했다.
=끝-
2016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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