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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클라호마대학의 한 연구팀이 동물의 지능 한계를 알아보기 위하여 열다섯 살 인 침팬지 '와슈'에게 수화(手話)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갖은 노력을 다해 140개의 단어를 가르치고, 이 단어들을 참팬지 생각에 따라 결합할 수 있게끔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스스로 자기의사를 표현하도록 유도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침팬지가 놀랍게도 맨 처음으로 표현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를 좀 놓아달라는 수화였습니다.
어떻게 동물을 가르쳐 수화를 할 수 있도록 한다지만 나를 좀 놓아 달라고 했을까 수화를 배울 때 너무 힘들어서 그랬을까요?
우리나라 농식품부에서 발표한 것입니다. 2022년 반여견 개, 고양이 수가 800만 마리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집에서 반여견과 지내지만 집 밖으로 데리고 나올 때는 반드시 목줄을 걸고 나오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한 번은 가까운 산을 오르는데 낯선 집 앞에 개가 목줄에 매여 묶인 상태로 낯선 사람이 오니까 나를 향하여 좇아올려고 하지만 매인 자리에서 사납게 멍멍! 짖기만 합니다. 목줄 때문에 그 자리에서 빙빙 도는 것을 보면서 너도! 참 메어있어 자유롭지 못해 안타깝구나 중얼거린 적이 있었습니다.
오래전 거미줄에 매여 잠자리가 날개 짖을 하며 날아 갈려고 애쓰는데 옆에 누구 있습니까? 먹이감이다. 거미가 지켜보고 있는데 제가 잠자리를 날려 보낸 적이 있습니다. 나는 자유다 하며 훨훨 날아가는 거예요~~~
무엇에 매어 있어도 아무리 오래 매어 있다하여도 누가 풀어주면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분명합니다. 공생애 시작 회당에서 처음 외치신 말씀이 매임의 포로 된 자를 자유하게 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눅4:18) 누구든 매임에서 자유를 누려야할 권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안타까운 한 여인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여인은 귀신들려 몸이 꼬부라졌다고 했습니다. 척추장애자입니다. 그래서 허리한번 펴지 못했으니 가을에 볼수 있는 아름다운 하늘풍경을 18년 동안을 보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뿐 만 아니라 정상적으로 말을 하지 못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중에 바디매오는....... 예수님께 '내가 보기를 원합니다. 부르짖었어요 혈루증여인은 예수님께 나아가 '나를 고쳐주세요'하고 요청했습니다. 문둥병자도 '나를 정결케 해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치유를 요청할만한 능력이 없어요. 한마디로 전인적인 병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몸도, 정신도, 영혼도 다 병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이런 상태로는 회당에 올수 없는데 안식일에 회당에 온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교회에 온 거예요 지금도 우리주변에는 이 여인처럼 고통속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라도 가볼까?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 여인이 극적으로 회당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예수님 회당 안에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 유독 척추 장애자 여인을 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말씀하시고 안수하는 순간 여인이 18년 동안 허리한번 펴지 못했는데 허리를 펴고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누가 보았습니까?...... 회당의 책임자인 회당장이 지켜 본 것입니다. 회당장은 화를 내면서 하는 말이 6일 동안 일하는 날에 고치면 되지~~ 왜! 하필이면 쉬는 안식일에 이런 짓을 하느냐며 화는 낸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 안식일에 소와 양에게 풀을 내어 주고 물을 주는 일을 하지 않느냐 하물며 18년 동안 사탄에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않느냐 책망하시니까 어떤이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습이 오늘 읽은 본문 줄거리입니다.
우리는 이 기적의 사건은 통하여 예수님 말씀하신 16절 다시한번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다함께 다시 읽습니다.
16절....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우리예수님은 18년 동안 하늘풍경 한 번 쳐다보지 못한 이 여인을 '아브라함의 딸아' 부르셨어요 이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겉으로 들어난 것을 보지 않고 내면에 있는 본래의 모습 약속된 하나님의 자녀 그대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18년 동안 사단의 매임에서 속히 풀어주는 것이 옳지 않냐 말씀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속박으로부터 풀어주고 고통에서 풀어나고, 저주 의식과 죄책에서 풀려나고, 귀신에 붙들려 있는 안타까운 여인을 속히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셨습니다.
누가복음4장을 보면 우리예수님 어린시절 자라셨던 나사렛 회당에서 성경을 펴셔 읽은 말씀이 이사야 말씀이었습니다.(사61:1a) 우리예수님은 오직 그 말씀 붙잡고 초지일관 변함없이 공생애를 살아 오셨습니다.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신 것” 우리 예수님 변함없는 마음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예수님 누구를 만나든 변함이 없었습니다. 18년 동안 사단에 포로가 된 이 여인을 보시고 자유를 주시고자하는 마음이 예수님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 여인이 18년 동안 매여 있는 자리에서 풀어주신 것은 화를 내고 있는 회당장을 향하여 의도적으로 하신 것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회당장이 누구입니까? 회당의 책임자입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철저히 율법대로 살고, 구약에서 주신 말씀대로 예배를 드리고 자기 방식의 종교 생활이 최고임을 자처한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율법과 자기신앙의 틀에 매여 있어요 그러니까 회당장은 18년 하늘 한 번 쳐다 보지 못한 이 여인보다 18년 아니 평생 동안 율법에 매여 있으니 예수님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자기종교방식대로 예수님께 화를 낸 것입니다.
누구든 회당장처럼 오래도록 자신을 무엇에 매여 있는 삶의 방식대로 살면서 자신을 틀 안에 가두고 자기가 하는 것이 진리인양 가면을 쓰는 사람이 있어요
김민자권사 부부가 네팔에 다녀왔는데 네팔문화가 좀 궁금하기도 합니다. 책에서 본 것이지만 네팔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 삶이 있는데 외양간 같은 곳에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외양간은 소․돼지․개가 사는 곳인데 네팔사람은 짐승들과 함께 외양간에서 잠을 자요 우리 생각대로 하면 정상적인 사람 같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네팔사람은 가능합니다.
왜 그렇까요?.....그들의 종교가 힌두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윤회설을 믿습니다. 아버지가 죽어서 소가 되고 삼촌이 죽어서 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짐승을 밖으로 내몰 수가 없어요 그냥 같이 자고 먹고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네팔 사람들을 향하여 잘못되었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종교에 매여 있기에 어찌보면 사람을 아주 우습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EBSTV에서 특별다큐 동남아시아를 소개한 프로그램인데 네팔에 인접해 있는 티베트 사람들이 사는 유목생활을 본 적이 있습니다. 티베트 사람들은 사람의 시체를 땅에 묻으면 그 죽은 사람이 극락세계에 가지 못하고, 독수리가 그 시체를 다 먹어버려야만 비로소 극락세계로 가는 것으로 믿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독수리가 시체 먹는 것을 가만히 쳐다 보고 있는 거예요
그들은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숨이 끊어지기 전에 산으로 끌고 올라갑니다. 커다란 바위 위에다 몸을 난도질하여 놓으면 독수리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어 뜯어먹습니다. 얼마나 많이 그랬는지 산 위에 있는 커다란 바위들은 피와 기름으로 반질반질할 정도예요 그리고는 산에서 내려와 영혼이 극락세계로 갔다며 며칠씩 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누가 이들을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잘못된 사상, 잘못된 종교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매여 있는 것 중에 흡연이 그렇습니다. 지난 금요일도 집 교회 쓰레기를 치우면서 눈에 보이는 담배공초를 주어 쓰레기에 담았습니다. 이것은 매일 일상적인 생활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택으로 들어온 문 조그마한 통로를 아실 것입니다. 이 통로는 담배 피우기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화분으로 둘러 있어서 으슥하니 잘 보이지 않기에 남녀 구분이 없습니다. 쭈그러 앉아서 누가 보나 안보나 망보기도 좋아요
그런데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얼마나 초라한지 모릅니다. 마치 동물 우리에 갇혀 있는 모습과 다를 봐 없어요 안 피우면 되는데 그것을 끊지 못하여 창피스럽게 벌 받는 것처럼 쭈그려 힘들게 담배를 피워되니 노예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정말! 가슴이 아파요
담배만이 아닙니다...... 술에 매인 사람...... 습관에 매인 사람...... 자존심에 매인 사람.... 열등의식에 매인 사람........ 더 깊이 자신을 보아야 할 것은 내면에 있는 나에 매여 우리가 살아가고 있어요
성도여러분! 내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내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조금 성숙된 신앙인이라면 무엇을 잘못 했으면 내가 십자가에 죽어야 돼 아직도 죽지 못 했어 그렇게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 유명한 사도바울이 그랬습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한걸음 더 나아가 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자신이 죄의 종노릇하며 죄에 매여 살고 있음을 이렇게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성경을 찾아 읽겠지만 5절 뿐이 되지 않는 성경구절인데 “나” “내가” 자신을 밝히며 입술로 솔직한 고백을 12번이나 외치고 있어요 바울 자신의 신앙 간증이기도 합니다.
롬 7:19-24.....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속사람으로 살지만 매임에서 진정 자유함을 얻지못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 주겠느냐 탄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도바울의 진정성 있는 고백처럼 저와 여러분은 무엇에 매여 있습니까?........ 여전히 우리 앞에는 육신의 매임에서 풀지 못한 죄 성이 다분히 남아 있습니다.
내 혈기.... 내 의지.... 내분됨.... 내 자랑.... 내욕심 그래서 속사람으로 변화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지만 여전히 겉 사람인 “나” 와 속사람인 “내가” 마치 새끼줄로 꼭 꼭 묶여있는 매여 있는 상태로 꼬이고 또 꼬여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꼭 꼭 묶여있는 새끼줄을 칼로 단 번에 자르듯 이렇게 외쳤어요
롬8:1-2..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도여러분!!~~~ 매임에서 자유함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자유 하는 길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물질이나 돈의 문제보다 사단에 매인 영적인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독교인은 가장 자유하다. 어느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주님을 섬기는 가장 강한 사슬에 매인 노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오직 예수님께 매여 있는 삶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오직 예수님 살아가는 방법대로 매여 있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도 우리를 향해 초청합니다. 마11: 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나의 멍에를 메고 배우라~~~ 그리하면 내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했어요~~~
그렇습니다....... 이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저와 여러분은 사단의 종노릇했던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18년 동안 아니 지금까지 살아온 죄의 매임에서 십자가 은혜로 놓임 받은 사실을 믿으십시오..... 오직 예수님께 매임이 되어 진정한 자유함을 누리시기를 축복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