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해줍니다
(티토2,13).
(명동 성당 12/24)
Ⅱ.“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2816 신약 성경에서 ‘나라’(basileia)라는 말은 ‘왕권’(추상명사),‘왕국’(구상 명사),또는 ‘통치’(동작 명사)등,세 가지의미를 가진다.하느님 나라는 우리보다 먼저 있다.그 나라는 강생하신‘말씀’을 통해서 다가왔으며,복음 전체를 통하여 선포되었고,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도래하였다.하느님 나라는 최후의 만찬 이래,성찬례 안에서도 우리 가운데 펼쳐지고 있다.그리스도께서 그 나라를 당신 아버지께 드릴 때,하느님 나라는 영광 중에 오게 될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그리스도 바로 그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날마다 기원하고 있으며,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어서 빨리 우리에게 당신 의 도래를 앞당겨 드러내 보시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부 활이십니다.우리가 그분 안에서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 서는 하느님 나라,하느님의 다스림입니다.우리가 그분 안에서 다스릴 것이기 때문 입니다.-성 치프리아노, 주님의 기도 해설,13-
2817이 청원은“마라나 타”(Marana tha),곧“오소서,주 예수님!”이라고 하는 성령과 신부 新婦의 외침이다.
비록 이 기도가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가 오기를 기원할 의무를 지우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우리의 희망이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우리는 열렬하게 이 말 을 외치게 될 것입니다.제단 밑에서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큰 소리로 주님께 간청 합니다.“저희가 흘린 피에 대하여 땅의 주님들을 심판하고 복수하시는 것을 언제 나 미루시렵니까?”(묵시6,10)과연 그들은 세상 끝 날에 정당한 갚음을 될 것입니 다.그러니 주님,주님의 나라가 어서 오게 하소서!
-테르툴리아누스,기도론 5,2-4 -
2818주님의 기도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하느님 나라의 궁극적 도래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그런데 이 희망은 교회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사명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그 사명을 다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왜냐하면 성령 강림 이후로,하느님 나라의 도래는“성자의 구원 사업을 세상에서 이루시며,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시는”주님의 성령께서 하실 일이기 때문이다.
2819“하느님의 나라는....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14,17).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마지막때는 성령께서 내려오신 때이다.성령 강림 이후로 “육”과 성령 사이의 결정적 싸움이 시작되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만이“그 나라가 오소서.”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 따라서“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여 여러분이 그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로마6,12).생각과 말과 행위가 깨끗한 사람은 하느님께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신비 교리 교육, 5,13-
2820성령에 다른 분별력으로,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나라의 성장과,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문화와 사회의 진보를 구별해야한다.이러한 구별은 분리가 아니다.영원한 생명에 대한 인간의 소명은, 이 세상에서 정의와 평화에 투신하기 위해 창조주께 받은 힘과 수단을 유용하게 활용해야 하는 의무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한다.
2821이 청원은 성찬례에서 표명되고 유효하게 되는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전달되고 받아들여진다.이 청원은 참행복에 따른 새 생활 안에서 열매를 맺는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발췌)
하느님께서 우리의 피신처와 힘이 되시어
어려울 때마다 늘 도우셨기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네,땅이 뒤흔들린다 해도
산들이 바다 깊은 곳으로 빠져든다 해도
(시편46,2-3)
하느님께서 시인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믿을 만한 도움이 되어주신다는 것은 시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주제다.하느님은 고통 중에 있는 우리를 그분 자신의 현존으로 도와주신다(크리소스토무스).
‘땅이 뒤흔들리고’,‘산들이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것은 무서운 지진으로 인한 최악의 상태를 나타낸다.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시인은 시편23,4에서와 같이‘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이 말에는 신앙고백이 담겨있다.그러므로 이 말은 하느님이 우리 인생에 단 하나 필요불가결한 존재라는 근본적인 확신을 드러낸다.여기서는 땅.산.바다의 언급과 함께 주님이 모든 우주의 세력을 통치하신다는 점이 강조된다.“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통하여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다.만일 우리가 신앙을 잊어버리면 우리의 마음은 폭풍이 이는 이 세상 안에서 파손되고 동요되는 배와 같다.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주무시는 것 같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분이 깨어나실 때 고요해진다”(아우구스티누스).
파도를 만난 제자들이 배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구해달라고 했을 때 그분은“왜 겁을 내느냐?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마태8,26)하고 말씀하셨다.
시편46편의 전체적 의미:시편 46편은 세상의 붕괴에 직면하여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로 시작하여 세상 끝까지 일어나는 난폭한 전쟁 가운데서도 확신에 찬 고요함으로 마무리된다.백성이 어려움 가운데서도 신뢰와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하느님이 거처하시는 도성이 무너지지 않고 굳건하게 서있기 때문이다(5-6절).그래서 시인은 혼돈의 물이 창조질서를 혼돈으로 몰고 간다고 해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백성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이 이 시편의 중심 주제다.하느님께서 역사와 자연을 지배하시기 때문에 시인은 역사와 자연이 가져다줄 혼돈의 위협에 아무런 두려움 없기 직면한다.왜냐하면 창조주 하느님은 혼돈도 지배하시기 때문이다.창조된 세계에 질서를 세우시는 하느님은‘전쟁을 그치게 하시는’(10절)분이다.이 시편에서 하느님은 혼돈은 지배하시는 분으로서 찬양의 대상이 되고 있다.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 위해 죽으셨고 죽음을 지배하신다.그분은 우리를 위한 튼튼한 도성이 되신다.그러므로 이 시편을 통해서 우리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주님께 믿음 두는 한 두려워할 이유가 없음을 배운다.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시편42-89편)
“연구원 화학박사도
와인의 숙성에 대해 잘 설명하지 못한다
생화학이라면서
인문운동가도
인간의 성숙함에 대해 잘 설명하지 못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마다 성숙함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설명하려면,
사는 동안 쓴맛,단맛 다봤기 때문에 느껴지는 성숙함이 아니라,
힘찬 기운과 여유가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를 가진 사람일 거다
그런 사람은 스치는 게 많아 가슴에 자국이 많은 사람이다
그게 진짜 성숙함이다
가슴에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성숙함에 대하여/박빈손)
스스로 심지를 굳게 하는 일
헐거워지는 일로 하루를 사는 일
마음이 원하는 쪽으로 잘 자라게 하는 일
쓸데없는 걱정을 내보내는 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사는 일
일의 문제는 바깥에서 찾지 말고
내 마음에게서 찾는 일
마음 바탕에 고요를 심는 일
말과 생각과 행동의 뒤를 살피는 일
(나를 키우며 사는 일/문태준)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박해가 없을 때,
냉장고가 가득 찼을 때,
생활에 골칫거리가 없을 때 평화롭다고 느낀다.
그런데 예수님의 평화는 다르다.
박해를 받을 때도 평화롭고,
냉장고가 비었을 때도 평화롭고,
생활에 문제가 있을 때도 평화롭다"
(故 차동엽 신부)
“행복하여라,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마태7,9).
다가오는 새해에도 늘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