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제가 주례한 주일 강론을 들으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이번주 강론을 제가 다른 주일 복음 말씀으로 잘못 썼습니다. 대신 평일 강론 둘 올려드립니다.
2024.02.06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오늘 우리는 옆나라 일본의 순교성인인 미키 바오로 성인과 성 유대철 베드로와 같은 나이였던 루도비코 성인 등 총 26분의 순교 성인 기념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바오로 성인의 어릴 적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1564년 무렵 오사카 근처에서 태어나신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직 어렸을때 무사였던 아버지가 그리스도교에 관심을 두고 세례를 받으면서 아버지와 함께 세례를 받아 마침내 바오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셨습니다.
청년이 된 바오로 성인은 당시 교토 지방을 중심으로 해서 활동하고 있던 예수회 선교사들을 따라 열렬하게 선교 활동을 하셨고 일본의 첫 사제양성 과정에 뜻을 두고 입학하시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소신학교 정도로 볼 수 있겠지요. 소신학교를 우수하게 졸업한 성인은 이어서 사제로서 또 수도자로서 뜻을 두고 예수회에 입회하여 다른 외국인 예수회와 프란치스코회 선교사들과, 또 일본 국내의 많은 교리교사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데 힘쓰게 됩니다.
당시 일본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던 장군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었습니다. 히데요시는 일 본내의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서 상당히 수가 많았던 천주교인들에 대한 박해를 멈추고, 그 세력을 모두 모아서 조선을 공격하는 데에 공을 들였습니다. 이로써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임진, 정유왜란이 일어나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천주교를 믿고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 같은 무장들조차 이용하기 위해서 천주교 박해를 멈추었던 히데요시였지만,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자 그 패전의 책임을 천주교 장수들과 신자들에게 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로써 다시 박해가 시작되어 임진왜란이 마무리되어가던 1597년, 가장 열성적인 선교사였던 미키 바오로와 23명의 신자들이 체포되었고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이들이 형장으로 끌려가던 와중에 2명의 신자가 더, 스스로 사형받기를 원하였고 이에 총 26명의 신자가 지금의 나가사키에서 십자가형을 언도받게 됩니다. 그 가운데에는 12세였던 루도비코 이바라키 성인도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그가 너무 어린 소년이었던 까닭에 십자가형을 집행하려는 형리가 성인에게 배교할 것을 권하자, 이 어린 성인은 그곳에 준비된 수많은 십자가 가운데 어느 것이 자기 십자가인지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순교자들은 십자가에 매달려, 바오로 미키 성인의 선창으로 기도를 바치며 하느님께 자신들의 생명을 돌려드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기념일을 보내면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파견되어 활동하시는 대구대교구 신부님들과 부제님들을 기억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24.02.07. 연중 제5주간 목요일
마르 7, 24-30
강아지 키워본 적 계십니까? 지금은 저도, 그리고 저희 친가도 강아지를 키우지 않습니다만, 제가 어릴때는 아주 코가 찌그러진 강아지를 키운 적 있습니다. 대부업 광고 같은 데서 자주 나오는 퍼그라는 종의 강아지였는데, 이름은 코가 아주 못 생겼다고 해서 뺑코였습니다. 강아지들은 어리석습니다. 사고를 쳐서 조금 호되게 혼나더라도, 애정을 가지고 같이 놀아주고 또 쓰다듬고 먹이를 나누면, 금새 회복하여 주인에게 다가오곤 합니다. 그러한 강아지의 속성에 대해서 생각해가며 오늘 복음을 읽어보고자 하였습니다.
한 전주 교구 신부님께서 쓰신 묵상글이, 이렇게 얘기해주었습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여자 입장에서는 냉정하게 거절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신 분이기 때문에, 이 말씀은 그 여자가 진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해석하자면, "자녀들의 빵을 먹기를 원한다면, 먼저 강아지 상태에서 벗어나서 자녀가 되어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여인의 청을 냉정히 거절하시는 말씀을 하셨지만, 그 여자는 물러서지 않고 더욱 간절하게 청합니다. 강아지들도 부스러기는 먹는다는 여자의 말은, 자신이 강아지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이고, 부스러기라도 좋으니 은총을 베풀어 달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강아지라는 것을 인정한 것은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강아지 상태인 자신을 더 나은 존재, 더 은총 가득한 자녀가 되도록 만들어달라는 간청으로 들립니다.
강아지들조차도 하느님의 자녀들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을 먹을 수 있다는 여인의 호소는, 이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 이교도이던 여인이 믿음의 영역에서 있어 강아지와 같았으며,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자기 필요할 때만 하느님과 같은 분께 집착하는 어리석은 신앙인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고백은, 그 여인이 아직 강아지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이제 참으로 그 신앙이 하느님의 자녀와 같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말이지요. 오늘 예수님께 은총을 입어 딸이 치유된 이 여인이, 앞으로 하느님의 강아지로 계속 살아가겠습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참된 자녀로 살아갔겠습니까?
우리가 자꾸만 자존심 때문에 하느님을 따르지 못하고 자꾸만 나 자신을 드높아지게 하려 한다면, 간단히 오늘 복음 표현대로 하자면, 우리가 하느님 앞에 강아지가 될 수 없다면, 우리는 더 이상 발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겸손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에 비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마음으로 그분을 따를 수 있고 청을 드릴 수 있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