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페스토 발뺌 못할 ‘담보장치’ 마련해야
매니페스토(Manifesto)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2006년 5월 전국동시지방선거다. 이후 중앙선관위는 ‘참공약 선택하기’로 용어를 풀어 사용하고 있다. 지난 9일 경남선거관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 창원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한국지방정치학회, 경남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공동으로 개최한 ‘한국매니페스토 운동과 정당정치의 발전방향 토론회’에서 매니페스토 얘기가 나온 걸 보니 바야흐로 선거철임을 알겠다. 이 자리서 김정기 창원대 교수는 “정당이 유권자에게 합리적인 투표 선택의 단서를 제공하려면 이념정당을 확립하고, 이에 기초한 분야별 정책공약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당이 무슨 정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후보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밝혀 유권자의 선택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매니페스토의 어원은 라틴어의 마니페스투스(manifestus)다. 애초 ‘증거’ 또는 ‘증거물’이란 의미로 쓰였던 말이다. 미국에서는 정강정책을 뜻하는 플랫폼(platform)이나 맹세하다는 의미의 플레지(pledge), 계약을 뜻하는 칸트랙트(contract)로 대신 쓰기도 한다. 용어들을 대충 정리해 보면 누구와 선언적 계약을 한다는 것이다. 선거만 두고 보면 후보자와 시민주권자인 유권자 간의 ‘정책적 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는 국민들에게 밝힌 매니페스토의 최우선 순위를 교육에 두고 재원 마련 방안과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계약을 하면서 이행조건과 방법을 적시함으로써 표심을 얻는 데 성공했다. 매니페스토의 성공사례다.
이제 곧 다가오는 우리 선거에서는 2006년보다 진일보한 매니페스토가 이뤄져야 한다. 정당과 후보자가 국가와 지역, 유권자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명확히 볼 수 있도록 철저하게 ‘계약’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단 당선되고 보자는 식으로 유권자를 기망하는 정당과 후보를 배척할 수 있도록 매니페스토는 더 정교해져야 한다. 그런 매니페스토를 한 바 없다고 발뺌하지 못할 담보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미국에서 사용하는 플레지라는 말에는 ‘담보’라는 뜻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