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親日)과 반민족(反民族)
1.
해방후 우여곡절 끝에 1948년8월 반민특위가 준비됨으로써 일제강점기 친일파와 반민족적행위자들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졌다. 조선의 지식인으로써 친일과 반민족적행위를 함으로 인해 민족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나라의 안위에는 상관없이 개인의 치부와 안전에 중심을 두었던 자들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미군정의 반대로 설치의 어려움이 있었으나 미군정이 빠짐에 따라 특별위원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을 통과시켜 특위를 설치하게 되었다.
반민특위 이후 2001년부터 추진된 친일인명사전이 2009년11월8일 공개되기에 이르렀는데 이 인명사전에서는 반민특위에서 미진했던 친일파들까지 모두 망라하여 일관된 잣대로 그 반민족적 죄과를 낱낱이 고발하게 되었다.
전 연세대 교수인 김동길선생은 최근에 펴낸 그의 저서 <백년의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친일파에 대한 진보세력들의 일괄적 매도에 대해 매우 분개하고 있음을 필력으로써 호소하고 있다.
즉 그의 논지는 친일을 했을지언정 그 친일이 민족을 위한 친일이 많았다는 논리다. 아니나 다를까 춘원 이광수는 그의 친일행적에 대해 <나의 고백>이란 책을 통해 자기는 민족의 앞날을 위해 고민하고 일했음을 주장하고 있다.
무엇이 이러한 판단의 근거를 낳았을까? 왜 김동길 선생은 친일파로 매도된 많은 일제강점기의 사회지식인층에 대한 변호를 하고 있는 것일까?
19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의 분위기는 정치적 독재의 근본뿌리는 친일에서 나왔다고 보았기에 친일파에 대한 분노가 매우 강도높았던 것이 사실이고 그러한 분위기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김동길 선생의 분노는 결국 대륙조선의 강제이주라는 역사적 진실이 우리 근대사의 전면부로 부상하게 되면 친일파가 반민족적행위자다 라는 명제가 아니라 친일파와 반민족적행위자의 구별이 명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논점으로 귀결시켜 고찰하게 될 때 어느 정도 이해의 공간이 넓어지게 된다.
1918년부터 시작된 대륙조선의 반도이주는 일만년 조선사 최대의 시련으로 일제의 총칼앞에 입을 닫고 붓을 꺽어야 하는 생사의 갈림길, 존망의 갈림길에 놓여 있었다.
특히나 서구세력들은 이익이라는 경제논리 앞에 인문이니 도덕이니 하는 개념자체가 없던 천하의 무뢰배들이었다. 그들의 앞잡이를 자임했던 들개와 같은 일제가 아니었던가?
2.
1923년 이후 조선의 시인들의 작품을 분석해보면 1930년이 넘어서면서 체념과 희망의 갈림길을 노래하기 시작하는 모습이 뚜렷이 보인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대륙조선과 반도조선에서 벌어진 일들을 돌이킬수 없다는 절망감에 체념하여 일부는 자살하고, 일부는 해외로 독립운동을 위해 떠나고 나머지는 반역의 이 땅에서 희망을 노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본인의 생각과는 달리 타의에 의한 친일은 명백히 구분해서 평가할 일이다.
김동길 선생은 바로 자의와 타의를 구분하지 못하고 일괄적인 잣대로 평가한 것에 대한 분노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이 대륙에서 반도로 이주해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가 생각한다면 반민족적행위자에 대한 처벌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소시민적 지식인의 소극적 친일과 반민족의 구분은 다시금 규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비록 가슴속에서는 분노와 절규의 불길이 가득해 아직도 친일과 반민족의 갈림길을 받아들이기 힘든 점도 있으나, 대륙조선의 강제이주라는 엄연한 사실 앞에 분명 친일과 반민족은 구별되어야 마땅하다는 논지에 무조건적인 반대를 외칠수 있을까?
어둠이 내려 걷힐 줄 모르던 암흑의 35년이다.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슬픈 반도조선의 과거모습이 바로 일제강점기 친일의 역사임을 목놓아 서럽게 울며 떨리는 목소리로 그들을 헤아려 본다.
윤동주가 그 많은 가을속의 별들을 헤이듯이 말이다.
2020.11.18. 송계(松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