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TV쇼에 조영남이 나와서 익살을 부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팬티를 무릎에 걸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는데, 팬티를 올리는 중인지 내리는 중인지 기억이 안되드라"고.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초에는 늙어서 낡아빠진 기억력을 돕기위해 책을 요약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요즘들어 아이들이 글을 읽어주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즐거움으로 변했다. 고마운 일이다. 최근들어 사위들까지 읽기 시작했다니 경사가 겹쳤다. 고맙다. 이른 아침, 혹은 늦은 저녁에 책을 요약하고 있자면 가슴이 따뜻해 온다. 이제는 각자 가정을 이루고 떨어져 사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른거리면서 바로 곁에 함께있는 듯 행복해진다.
평생을 돌이켜 보면 아쉬운 일들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아이들의 잠자리 머리맡에서 도란도란 책을 읽어주지 못한 것이다. 밤늦게 취해서 들어오기 일쑤인데다, 혹시 일찍 들어와도 미쳐 그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그 때는 대개 그렇게 살았다지만 요즘 손자들 키우는 것을 보면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나마 아이들이 바르게 커주어서 다행이다.
은퇴를 해서 두 번 째 삶을 시작하면서 봉착한 문제는 '목표없는 공허한 삶'이었다. 나는 평생 영업 목표를 쫓아 달리며 살아왔으니 목표가 없으면 도무지 허전하다. 더구나 얼마나 어렵게 얻은 두번째 삶인데 목표가 없어서 되겠는가? 그래서 이번에는 "나'를 위해서,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 남은 인생을 결산하게 해 줄 세가지 목표를 세웠다. '결혼 60주년을 기념할 회혼식을 맞는 것'과, '책 3권을 출간'하는 것, 그리고 '대금 독주회'를 가지는 일이다. 하나도 만만한 것이 없어서 'Mission Impossible*1'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책 3권쓰기'는 이래저래 두 권까지 내었고 마지막 한 권이 남았는데 도무지 가능할 것같지 않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제목을 지은지 이미 오래되었고, 초고도 꽤 쌓였다. 그러나 손자들에게 들려줄만큼 의미있게 글을 쓰기가 어디 쉬울 수 있겠는가, 더구나 내 실력에. 그야말로 'Mission Impossible'로 남기 십상일듯하다. 잠시 책 제목의 유래를 설명하고 가자:
인도의 네루 전 수상은 영국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을 하다보니 자주 감옥에 들락거렸다. 나중에 인도수상을 지낸 딸 인디라 간디*2의 교육이 걱정이었다. 세계사가 서양인의 관점으로 쓰여졌다고 판단한 그는 그런 세계사를 딸에게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인도인(동양인/피정복자)의 관점에서 쓰여진 "제대로 된" 세계사를 들려주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래서 감옥에서 틈틈이 쓴 편지로 역사교육을 대신했는데 인디라 간디가 12세 때의 일이다.
"A Glympses of World History", 그 때 보낸 서간문 모음이 나중에 책으로 나와서 극동의 필부까지 감화시키게 된다. 축약된 한글본 "역사의 조망"을 처음 읽은 나는 눈을 새로 뜬 느낌이었다. 그러나 번역본에 담긴 글들은 원본의 1/3도 되지않아 불만이었다. 한동안 보스턴에 머물면서 원본을 찾아 헌책방까지 뒤졌지만 절판되었다는 소식만 들었다. 결국 그 곳 서점의 도움을 받아 영국까지 주문을 넣어서 귀하게 구했으니 30년 전의 세상 사는 방법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아마존에서 찾아보니 구할 수 있다. 좋은 세상이다.)
비슷한 책을 내고싶은 희망은 그렇게 생겨났다.
요즘들어 문득 생각하니 지금 블로그에 올리고 있는 글들이 오히려 나은 대안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희망이 커졌다. 굳이 모두 내 머릿속 생각이어야 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순전한 내 것이 있기는 한가? 또 섣부른 내 생각보다 동서고금을 막라한 석학들의 생각을 빌려서 소화하기 쉽게 들려준다면 오히려 낫지않겠나. 아빠의 체온을 함께 느껴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비록 요약이지만 워낙 좋은 말씀들이니 품질은 크게 걱정하지않아도 될 것이다. 더러 내 생각을 담은 글을 보탤 수도 있다.
앞으로 얼마나 이어갈 수 있을지는 하늘만 아실 일이지만 매주 몇 편씩 들려주다 보면 꽤 쌓일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아이들에게까지 흘러갈 것이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세월이 지나 그 얘들이 직접 읽어준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다.
주:
- 이 말은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여섯편의 제목인데 '거의 불가능해서 도무지 쉽지않은, 그래도 꼭 해야하는 일'이란 뜻일게다.
- 인디라 간디(1917~1984): 인도의 정치가로 1966~1977년과 1980~1984년 두차례 인도 총리를 지냈다. 뉴델리의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은 그녀의 이름을 딴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의 아들과 결혼해서 간디 성을 얻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인도 독립후 17년간 초대 총리를 역임한 자와할랄 네루이며, 아들은 1984~1989년까지 총리를 역임한 라지브 간디이다.
첫댓글 노년에 접어들면서
꿈을 키워가시는 모습
부럽습니다.
곁에서 보아도
대금독주회는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참석하여 축하하고 싶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지금 봐서는 될법하지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