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지 않고도 술을 한잔 한 것처럼 몽롱하고 오묘한 기분에 젖을 수 있을까. 불빛이 흐린 방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10분간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비일상적 의식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
국제학술지 ‘정신의학연구(Psychiatry Research)’에 실린 이탈리아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경험이 의식을 분열시켜 현실감각을 떨어뜨린다. 마치 세상을 흑백으로 바라보는 듯한 기분처럼 말이다. .
연구팀은 젊은 성인남녀 20명을 2명씩 짝을 짓도록 했다. 어둑한 불빛을 켜놓은 큰 방에 1미터 간격으로 의자를 떨어뜨려놓고, 서로 마주 보고 앉도록 했다.
방의 밝기는 조도 0.8럭스로 조정했다. 이정도 밝기면 얼굴의 특징을 세부적으로 느끼지만 정확한 색감을 인식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실험 참가자들은 상대방의 눈을 10분간 쳐다보았다. 또 중립적인 얼굴 표정을 유지했다.
대조군으로 실험에 참여한 또 다른 20명은 어두운 방에 들어가 2명씩 앉아있었다. 단 이들은 각자 벽을 보고 앉아있었다.
연구팀은 실험의 의도를 참가자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눈을 뜬 채 하는 명상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공지했다.
10분간 실험이 끝난 뒤 참가자들에게 몇 가지 질문이 담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질문지에는 분열 상태를 확인하는 질문과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느낀 감정을 묻는 질문으로 구성돼 있다.
그 결과 서로 눈을 응시하고 있던 참가자들은 전에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색깔의 강도가 흐려지고, 소리가 작게 혹은 크게 들렸다고 답해 분열 상태의 특징을 보였다는 것이다. 정신이 멍해지고, 시간이 지연되는 느낌을 받았다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또 상대방의 눈을 본 참가자의 90%는 상대방 얼굴에서 기형적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봤다고 답했다. 또 70%는 괴물이 보였다고 말했고, 50%는 상대방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고 답했다. 15%는 친척의 얼굴이 보였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환각은 의식이 분열된 상태에서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반등효과일 것으로 추측했다.
왜 이러한 조건이 참가자들의 의식을 분열시켰는지에 대한 정확한 단서를 밝혀내지 못했다. 연구팀은 어둑한 불빛보다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는 과정이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았다. 똑같이 어두운 방에서 실험에 참여했던 대조군은 의식이 분열되지 않았으며 사람의 눈이 아니더라도 벽에 점을 표시해놓고 응시하도록 했을 때는 의식 분열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단 벽에 찍은 점보다는 상대방 눈을 볼 때 분열의 정도가 더욱 심해진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