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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101가지 이야기 중에 〈너희가 부모님을 아느냐〉의 내용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내 아내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린 아들이 부엌으로 달려와서 엄마에게 자기가 쓴 글을 내밀었습니다. 아내는 앞치마에 손을 닦은 다음에 그것을 읽었습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엄마, 잔디 깎은 값 5달러, 엄마 심부름 다녀온 값 50센트, 엄마가 시장 간 사이에 동생 봐준 값 25센트, 쓰레기 내다 버린 값 1달러, 마당 청소한 것 2달러 등, 도합 14달러 75센트를 달라는 청구서였습니다.”
아내는 기대에 차서 바라보는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아내는 연필을 가져다가 아들이 쓴 종이 뒷면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너를 내 뱃속에 열 달 동안 데리고 다닌 값 무료, 네가 아플 때 밤을 새워가며 간호하고 널 위해 기도한 값 무료, 너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힘들어하고 눈물 흘린 값 전부 무료, 이 모든 것 말고도 너에 대한 내 사랑도 무료, 너 때문에 불안으로 지샌 수많은 밤들과 너에 대해 끝없이 염려해야 했던 시간들도 모두 무료, 장난감, 음식, 옷, 그리고 심지어 네 코를 풀어 준 것까지도 전부 무료, 이 모든 것 말고도 너에 대한 내 진정한 사랑은 무료라고 썼습니다.”
아들은 엄마가 쓴 글을 읽고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에게 “엄마, 사랑해요! 그러더니 아들은 연필을 들어 큰 글씨로 전부 다 지불되었음”이라고 썼습니다. 이분이 우리의 부모님입니다.
송나라 유학자 주자는 그의 십회훈(十悔訓)에서 부모에게 불효하면 세상 떠나신 이후에 후회막급하다고 말했습니다.
나무가 고요하기를 원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부모 섬기기를 바라나, 부모님이 기다려 주지 않다
정말 부모님을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깨달았다 ‘싶으면 떠나고 없으신 것입니다.
또 5월을 맞아 어린이 주일, 어버이 주일을 지킵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말씀을 듣습니다. 하지만 또 들어야 하겠습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있을 때 잘해야, 계실 때에 부모님 공경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우리가 왜 부모 순종과 공경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 보십시다.
1. 부모에게 순종하라.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1)
부모를 어떻게 순종해야 할까요? 성경은 말합니다. ‘주 안에서’입니다.
가령, 좀 문제가 있는 부모가 있습니다. 자기 자녀에게 도둑질을 시켰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자식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순종해야 할까요? 주 안에 사는 성도로써 도무지 복종할 수 없는 일을 부모로부터 요구받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에 부모님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어떻게 자식에게 도둑질을 시켜요. 그러고도 당신이 부모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인연을 끊고 삽니다.” 아주 단호하고 직설로 바로 잡아야 합니까?”
부모가 잘못된 것을 요구할 때에 자식들은 한번 탬포를 늦추어 생각해 봅니다.
‘엄마 아빠가 오죽하면 저런 요구를 하실까?’ 그런 심정을 생각해 보면서 부모님의 그 요구 자체에 대해서는 거부하지만 부모를 향한 공경의 태도만은 상실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몇 해 전에 우리 집 큰 딸의 생일에 회사 동료와 교회에서 축하 파티를 몇 번씩 했다는 이야기에 그대도 우리 딸내미가 인심은 잃지 않고 사회와 교회 생활을 하구나 하면서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또 회사 남자 동료가 생일이라고 케잌과 선물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은이가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난처해하고, 또 기분이 썩 좋아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와 아내는 ‘지혜롭게 잘 해야 한다’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요즘은 연애를 하다 가고 헤어지면 큼직한 스토킹 보복을 당하는 뉴스를 보면서 딸내미에게 연애를 좀 해라고 선뜩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은이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매몰차게 ‘당신이 왜 내 생일을 챙기느냐, 나는 언찮다’하면서 선물을 돌려주었다면 상대방이 얼마나 인격적으로 상처를 받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머 감사해요. 저 같은 직장 동료의 생일을 다 챙겨주셔서 …. 직장 동료로써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정말 영광입니다. 이렇게 챙겨주셔서 …” 지혜롭게 상대의 인격을 건드리지 않고 상대를 거절할 수 있는 것이 지혜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딸내미에게도 그런 이야기도 들을 수 없으니 참 걱정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요지의 말씀은 부모님의 무례한 요구를 자식들은 거절할 수는 있지만 부모의 인격을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좀더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고서 지혜로운 자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에서 ‘주 안에서’라는 말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은 ‘네가 주안에 있다면’ ‘네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혹은 ‘네가 예수님을 믿고 달라졌다면’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네가 만약 이러하다면 너는 더욱 부모에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네가 주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기에 부모님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골로새서 3:20에는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십시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골로세서는 부모님께 순종하는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 안에 있다면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순종이란 무엇입니까?
‘순종’이라는 말은 두 단어가 결합되어진 것입니다. ‘ - 아래서’라는 전치사와 ‘잘 듣는다’라는 동사가 결합되어진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을 풀이하자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부모님의 권위 아래서 그 말씀을 잘 듣는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순종이란 잘 듣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성도 여러분!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이것이 바로 순종이요 효도입니다. 우리는 고국에서 멀리 떠나왔습니다. 자주 찾아가서 뵈옵지를 못합니다. 자주 전화라도 안부를 묻기를 바랍니다. 요즘은 얼마나 좋습니까? 마음만 먹으면 화상 통화로 직접 얼굴을 보면서 통화가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공짜로 ….적적해 하실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보이지 않으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보이는 부모님을 돌아보지 않고 공경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요,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을 주안에서 순종하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부모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자입니다.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어도 자신의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악한 자니라”(딤전5:8)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주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부모님께 어떻게 해드려야 하겠습니까?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2. 부모님께 순종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1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십시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1)
여기서 ‘이것이 옳으니라’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신약 성경에서만도 183번이나 나옵니다. ‘옳다’라는 말은 디카이오스(dikaios)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주로 절대적 가치를 강조할 때에 사용되는 말입니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일들을 두고서 사용합니다.
어떤 택시 기사분이 착한 시민상을 받았습니다. 어떤 손님이 택시를 탔는데, 내릴 때에 가방을 두고 내렸습니다. 기사분이 가방을 열어보니 수천만원의 돈다발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고민이 되었지만 주인을 찾아 돌려주었습니다.
신문사는 이런 사실을 알고는 착한 시민이라고 보도를 했습니다. 시민 단체에서 착한 시민상을 주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 분명 그는 용기가 있고 착하고 선량한 시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운전사가 착한 것이 아닙니다. 남의 물건을 주었으면 주인을 찾아 주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즉 ‘디카이오스’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착하게 보이는 오늘의 현실이 문제이지 그것은 착한 일이기 이전에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내 것을 남에게 주어야 그것이 착한 일이지 남의 것을 내가 갖지 않고 주인에게 돌려준 것은 선행이 아니고 마땅한 일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모공경은 ‘디카이오스’ 너무나 당연하고 마땅한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되도록 부모를 공경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헬라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효도는 인간의 첫걸음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자기의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는 사람과는 친구도 될 수 없다. 그는 벌써 인간의 첫걸음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리자면 효도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유컨대 걸음걸이도 못하는 애기와 같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부모를 공경할 줄 아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나이는 비록 많이 먹었다 할지라도 아직 인간의 첫걸음을 걷지 못하는 불구자와 같는 자입니다.
코끼리는 늙어서 죽음이 임박하게 되면 다른 코끼리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빠져나와 아무도 모르는 후미진 곳에서 죽는다고 합니다. 거기를 코끼리 무덤이라고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 부모도 이렇게 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야말로 사람이 아니라 짐승일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의 최후가 코끼리의 죽음처럼 되어서는 안됩니다. 외롭고 고독한 노후를 보내게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가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고 해서 면죄부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을 여기까지 키우시느라 애쓰신 부모님의 노후가 아름답고 편안하고 품위 있도록 해 드려야 합니다. 특별히 부모님들이 내세의 소망을 가지고 살도록 믿음으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부모님 공경은 인간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자녀들아 주안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아멘
3. 부모공경은 약속있는 첫 계명입니다.
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 공경을 두고 말씀은 ‘약속 있는 첫 계명’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부모 공경을 첫 계명이라고 합니까?
우리는 십계명을 압니다. 10가지 계명입니다. 십계명을 두 돌비에 기록되어졌는데 1-4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이 지켜야 할 계명이 기록된 하나님에 대한 계명입니다. 두 번째 돌비에는 5-10계명이 기록되어 있으며 인간과 인간 사이에 윤리를 말하는 인간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돌비에 기록된 사람에 대한계명 가운데 첫 번째로 기록된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 5계명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첫 번째 계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한 강조되는 것은 ‘첫째 계명’이라 함은 근본이요, 시작을 말합니다.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마치 우리가 셔츠에 단추를 잠그는 것과 같습니다. 첫 단추를 잘 마주어야 됩니다. 첫 단추가 잘못되는 나머지도 어긋하는 법입니다. 부모 공경이 안되는 사람은 다른 대인 관계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 5계명에는 축복의 약속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약속입니다. 그러니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의 축복의 약속은 ‘잘되는 것’입니다. ‘잘 된다’는 말은 구약에서는 주로 물질적인 축복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에 와서는 신령한 복, 영적인 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잘되고’라는 복은 이 땅에서 너의 일들이 잘 풀릴 것이라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잘되어 영육 간에 복을 누리게 된다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또한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말씀은 단순히 숫자적으로 ‘오래 산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부모 공경하는 자에게 이 땅에서의 삶에 진정한 의미와 행복 그리고 감사를 누리며 살게 된다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사도 요한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임종하실 때에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기의 어머니로 한평생 섬겼습니다. 그가 어떤 축복을 받았습니까?
요한 본래 성격이 불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별명이 ‘우뢰의 아들’입니다. 또한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날 사마리아 땅을 예수님과 함께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행을 영접하지 않자 예수님께 무엇이라 말합니까? “선생님, 하늘에서 불을 내어 이 마을을 다 깡그리 태워버리십시오”라고 분노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후에 ‘사랑의 사도’로 변합니다. 사랑의 제자가 됩니다. 그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놀라운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인격의 변화를 축복으로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요한은 장수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요한만이 90세가 넘게 산 것으로 보입니다.
나아가 사도 요한이 얼마나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는 성경 가운데 요한복음, 요한 1,2,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까지 기록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친어머니도 아닌 예수님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평생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삶에 넘치도록 부어 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부모에게 순종, 하나님의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부모 공경, 사람 노릇하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 그리하여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랍비 요시아가 어느 날 꿈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요시아야, 너는 천국에 가면 ‘레네스’라는 푸줏간 주인 곁에서 살게 될 것이다”
요시아는 꿈에서 깨어났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육점(푸줏간) 주인을 제일 멸시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랍비 요시아는 꿈을 생각하면서 ‘레네스’라는 사람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는 아주 시골 골짜기에 살고 있는 사실을 알고 사람을 보내어 오게 했습니다. 하지만 오지를 않았습니다. 할 수 없어서 직접 찾아가서 “왜 나를 만나러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레네스는 “제가 연세 많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병석에 누워 계셔서 갈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요시아는 레네스의 말을 듣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왜 그 꿈을 자신에게 보여주셨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천국에서는 부모를 귀히 여기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은 곳에 두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 순종과 공경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통함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