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2월 30일 화요일
[(백) 성탄 팔일 축제 제6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죄를 용서받은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 안에 머물러 있기에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것을 권고한다(제1독서). 한나는 하느님을 섬기는 데에 온갖 정성을 쏟으며 살아온 예언자로서 아기 예수님을 보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12-17
12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그분의 이름 덕분에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13 아버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처음부터 계신 그분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14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여러분이 아버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처음부터 계신 그분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쓴 까닭은
여러분이 강하고,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머무르며
여러분이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15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17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6-40
그때에 36 한나라는 예언자가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예수님의 부모는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한나라는 이름은 히브리 말로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뜻이고, 한나의 아버지 이름 프누엘은 ‘하느님의 얼굴’ 또는 ‘하느님을 만남’을, 지파 이름 아세르는 ‘행복’을 뜻합니다. 평생 성전에서 단식과 기도로 일편단심 하느님만을 섬기고 봉사하며 구원자를 기다리던 한나의 삶은 오늘날의 관상 수도자의 삶과도 비슷합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한나의 꾸준한 인내와 충실함은 마침내 하느님의 얼굴을 뵙는 은총과 행복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드디어 만난 아기 구원자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루카 2,38 참조). 기쁨 가득한 눈으로 성전 안을 돌아다니면서 ‘드디어 구원자가 오셨어요. 저 아기예요, 저 아기! 아기를 보러 가세요!’라고 외치는 노파의 모습을 그려 봅니다.
젊어서 남편을 잃은 슬픔을 성전에서 봉사하는 기쁨으로 바꾸고, ‘단식과 기도’로 하느님을 섬겨 온 한나의 신실함은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과부의 본보기라 하겠습니다. “홀로된 여자는 하느님께 희망을 걸고 밤낮으로 끊임없이 간구와 기도를 드립니다”(1티모 5,5). 한나의 인내와 횃불처럼 깨어 있는 정신은 그 긴 세월의 기다림 속에서도 굳건한 믿음을 지킴으로써, 희망을 ‘은퇴시키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자렛의 평범한 삶 속에서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지는]”(루카 2,40) 어린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도 자라시기를, 우리 또한 나날의 삶을 통하여 예수님 안에서 자라면서 신앙이 튼튼해지기를 꾸준함과 기도와 희망으로 청합시다.(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특기는 단식, 취미는 기도!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바야흐로 백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제 어린 시절, 60세만 넘겨도 오래 살았다며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놓고 큰 회갑 잔치를 벌였습니다. 자식들이며 손주 손녀들이 도열해서 큰 절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회갑 잔치하면 욕먹습니다.
초고령화 시대, 길고 긴 노년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것이 인생의 최대 과제가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쩔 수 없이 성경을 참조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 안에는 노년기의 모델이 되는 몇몇 인물들이 있습니다.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이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노인으로 살아가기 점점 힘들어지는 오늘날 우리 사회기에 이분들의 덕행이 더욱 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한나라는 특별한 여 예언자도 있었습니다. 이 여인의 일생은 참으로 기구했습니다. 결혼한 지 7년 만에, 그러니까 20대 초반에 남편과 사별합니다. 그리고는 여든네 살이 될 때까지 그녀는 재혼도 하지 않고, 방황도 하지 않고, 딴 곳으로 눈길 한번 두지 않고 오로지 성전에서 살았습니다.
한나 예언자의 특기는 단식이었으며 취미는 기도였습니다. 그녀는 60년 세월동안 한결같이 깨어있는 자세로 구세주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렸습니다. 이런 한나 예언자의 충실하고도 항구하며 열렬한 신앙에 하느님께서도 크게 응답하십니다.
탄생하신 구세주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목격하는 은총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복직관, 하느님을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평생에 걸친 충실한 영적 생활 끝에 평생의 소원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 역시 너나할 것 없이 희망합니다. 나이를 먹게 되면 좀 더 영적인 사람이 될 것이라고. 우리는 꿈꿉니다. 지금은 비록 많이 부족하지만, 노년기에 접어들면 좀 더 많이 기도하게 되고, 좀 더 많이 희생하게 되고, 좀 더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이 세상을 하직할 순간이 다가오면 좀 더 이타적인 사람이 되고 하느님께 한 걸음 크게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그래서 아름답고 품위 있는 노인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웬걸! 많은 경우 삶은 우리 의도대로 펼쳐지지 않습니다. 기도나 영적 생활은 습관이 중요한 것이어서 젊은 시절 기도에 맛들이지 않았던 사람이 나이 든다고 저절로 기도의 능력이 주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젊어서 육적으로만 살았던 사람이 연세 든다고 저절로 영적인 사람으로 탈바꿈되지는 않습니다.
이제 남은 날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안하무인으로 살아가시는 분들, 극단적 자기중심주의로 살아가시는 분들, 끝까지 놓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 분들, 그래서 정말이지 불행한 노년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들 꿈꾸실 것입니다. 영적이고 고상하고 품위 있는 노년기! 그렇다면 한나 예언자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녀는 젊은 시절 세상에 푹 빠져 삶을 허비하다가 어느 순간 영적인 삶으로 전환하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충만한 영적 생활을 추구했고 그 맛을 들였습니다. 그 결과 살아생전 구세주 하느님을 직접 눈으로 뵙는 평생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인류의 역사에는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바꾼 발명과 발견이 있었습니다. ‘증기기관’과 ‘전기’는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증기기관의 발명은 인간이 더 빠르고 멀리 이동할 수 있게 했고, 대량 생산 체계는 경제적 풍요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전기의 발견은 어둠을 밝히며 인류의 생활을 완전히 새롭게 열어 주었습니다. 전기는 현대 산업사회의 쌀과 같은 기반이 되었고, 가전제품은 우리 삶을 한층 풍요롭게 했으며, 전기와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이 만나면서 인류는 전례 없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발명들이 주는 혜택 뒤에는 깊은 상처도 있었습니다. 기술을 앞세운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약소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자원을 수탈했습니다. 전체주의 국가들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또 다른 차원의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독일은 유대인을 학살했고, 소련은 무고한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인류는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핵무기의 공포를 체험했습니다. 이 역사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도덕성과 사랑이 없는 과학과 기술은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인류는 또 한 번의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의 시대입니다. 불이 생존의 가능성을 넓혀 주었고, 인쇄술이 지식을 나누어 주었으며, 전기가 문명의 형태를 바꾸어 놓았듯이, 인공지능은 우리 시대의 문명 질서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먼저 인공지능이 주는 풍요로움입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확장하는 도구입니다. 과거에는 평생 접할 수 있는 지식의 양이 한정되어 있었지만, 인공지능은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서로 다른 지식을 연결하며 새로운 통찰을 제공함으로써 누구나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줍니다. 고령자 돌봄, 의료 지원, 언어 장벽 해소 등 우리의 일상에도 직접적인 도움을 주며, 인간에게 시간을 되돌려 주어 삶의 질을 향상하는 따뜻한 풍요를 만들어 냅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나는 누구인가? 인간의 고유함은 무엇인가?”라는 깊은 질문을 던져 영적 성찰의 문을 열어 줍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동시에 중요한 도전도 안겨 줍니다. 노동의 구조가 크게 변화하면 일자리 상실은 경제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기술을 가진 소수가 더 큰 부를 독점하게 되면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할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대화와 판단을 대신할수록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잃고 고립될 위험이 있으며, 알고리즘의 편향이나 오류는 개인의 삶을 흔들 수 있습니다. 기술이 편리함을 제공할수록 인간은 자기의 판단을 기술에 맡기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결국 기술이 열어 줄 미래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우리가 어떤 기준과 윤리, 질서를 세우느냐에 결정됩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두려워하거나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와 양심, 사랑의 능력을 중심에 두고 기술을 ‘선용하는 지혜’를 갖추는 것입니다. 과학과 기술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도구가 될 때, 그것은 참된 발전이며 인간을 위한 빛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신비는 모든 기술이 사랑과 정의 위에서 사용되어야 한다는 기준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줍니다. 오늘 제1독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일러줍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육의 욕망, 눈의 욕망, 재산에 대한 자만은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기술도 욕망과 결합하면 재앙이 되고, 사랑과 정의와 결합하면 축복이 됩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증언합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인간의 역사 안에서 자라나며 지혜를 더해 가셨듯이, 우리의 과학과 기술도 하느님의 뜻 안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한나는 아기에 관해 감사하며 이야기했습니다. 새 시대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오늘의 기술문명도 이처럼 희망의 도구가 될 때 비로소 참된 발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성탄의 빛으로 세상의 어둠을 밝히신 아기 예수님, 오늘의 기술문명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지혜를 저희에게 허락하소서. 인공지능과 과학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도구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선택이 언제나 하느님의 뜻 안에 머물게 하소서. 세상의 욕망이 아니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과 겸손의 길을 따르게 하시며, 새로운 시대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를 지켜 나가도록 이끌어 주소서. 아기 예수님의 지혜와 평화가 우리 공동체와 모든 이에게 가득 내리시길 기도드립니다.”
<마침내 그리 될 것입니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루카 2,37ㄴ-38)
밤낮으로
하느님을 보던 이에게
마침내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보이시니
밤낮으로
하느님을 보던 이라야
마침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볼 수 있으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보던 이는
마침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보게 될 것 있습니다
밤낮으로
하느님을 만나던 이를
마침내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만나시니
밤낮으로
하느님을 만나던 이라야
마침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으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만나던 이는
마침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밤낮으로
하느님과 함께하던 이와
마침내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니
밤낮으로
하느님과 함께하던 이라야
마침내
사람이 되신 하느님과
함께할 수 있으며
밤낮으로
하느님과 함께하던 이는
마침내
사람이 되신 하느님과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밤낮으로
하느님을 알리던 이를 통해서
마침내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알려지시니
밤낮으로
하느님을 알리던 이라야
마침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알릴 수 있으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알리던 이는
마침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알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 루제노 주교
활동년도 : +1129
신분 : 주교
지역 : 칸느
같은 이름:
루제로 주교는 안니발레 사람들과 로마인과의 전쟁이 잦은 칸느 교구 주교였다.
주교는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가엾은 마음이 남달리 커서 주교관을 빈민 숙박소로 개조했다.
칸느는 그후 노르만족의 노벨토 구이스카르도의 침략으로 1083년 칸느 온 도시가 파괴되었다.
그러나 루제로 주교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1128년 빈민 숙박소를 다시 재건하여 불쌍한 사람들, 방랑객들을 수용하여 따뜻하게 살게 했다.
성 사비노(Sabinus)
신분 :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 아시시(Assisi)
활동연도 : +303년?
같은이름 : 사비누스, 싸비노, 싸비누스
성 사비누스(또는 사비노)는 스폴레토(Spoleto) 지방 아시시의 주교로서 교외 안팎에서 큰 존경을 받던 인물이다. 에트루리아(Etruria)의 총독인 성 베누스티아누스(Venustianus)는 성 사비누스를 너무나 존경하던 나머지 그에게 작은 유피테르(Jupiter) 신상을 선물하였다.
그러자 성 사비누스는 이것을 받자마자 그가 보는 앞에서 땅에 내동댕이쳐서 깨뜨려 버렸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큰 모욕을 받은 성 베누스티아누스는 성 사비누스 주교의 손을 자르도록 명하였다.
이때 그의 부제이던 성 마르첼루스(Marcellus)와 성 엑스수페란티우스(Exsuperantius) 또한 신앙을 고백하여 함께 순교하여 아시시에 묻혔고 성 사비누스는 투옥되었다.
그런데 세레나(Serena)라는 어느 과부가 맹인이 된 아들을 데리고 와서 옥중의 성 사비누스 주교에게 축복해주기를 간청하였다. 이때 그는 그 아이에게 축복을 내렸는데 기적적으로 아이의 눈이 치유되었다.
이것을 보고 성 베누스티아누스 총독은 온 가족과 더불어 개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성 사비누스는 스폴레토에서 순교하였다.
복녀 마르가리타 콜론나(Margaret Colonna)
신분 : 동정녀
활동지역 :
활동연도 : +1284년
같은이름 : 마가렛, 마르가리따, 말가리다, 말가리따, 말가리타
마르가리타 콜론나(Margarita Colonna)는 이탈리아의 로마(Roma)에서 팔레스트리나(Palestrina)의 오도 콜론나(Odo Colonna) 왕자의 딸로 태어났으나 어릴 때에 부모를 여의었다.
그녀는 어린 두 동생들을 돌보았고, 그들이 성장한 후에는 주위의 결혼 권유를 완강히 뿌리치고 고향인 팔레스티리나 근교에 은거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병자와 가난한 이들을 돌보며 오로지 신심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녀는 아시시(Assisi)의 클라라회에 입회할 뜻을 가졌지만 병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자, 팔레스트리나에 수도원을 세우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클라라회의 규칙을 따르는 수녀회 설립을 교황으로부터 허가받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마르가리타 콜론나는 건강이 악화되어 이 수도원에서 서약조차 발하지 못하였다.
7년 동안 그녀는 온갖 병으로 시달리면서도 용기와 인내심을 잃지 않았다.
그녀가 죽자 이 수녀회는 산 실베스트로(San Silvestro)로 옮겨 설립자의 뜻을 이어 크게 발전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47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승인되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