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제향경우회에서는 2025년 새해를 맞이하여 매년 실시하는 시산제를
음력 1월 25일 양력 2월 22일. 천년 고도 경주 남산에서 올리기로 하였다.
시산제란 새해에 산을 오르내기 전 안전을 신에게 부탁하는 제사로 바람
달인 음력 2월 이 전에 시산제를 올리는 것이다.
반대로 산신제는 영험있는 산을 택하여 매년 그 산정상에 올라가 그 산신제
올리는 제사로 시산제와는 차이가 있다.
가가 예문이 있듯이 시산제에도 산에 올라가서 지내는 경우도 있으나 반드시
산에 오르기 전에 산신께 알리는 제사이니 올라가지 않고 산 기슭에서 지내
는 것이 시산제이다.
제사를 지낼 때 자연신에게는 3번 절하는 경우와 2번 절하는 경우가 있는 등
예절이 다른 것도 각각 예문이 다른 것이다.
보편적으로 산 사람에게는 1번 .죽은 사람에게는 2번.임금님에게는 4번 부처님
에게는 3번 .자연신에게는 2번 또는 3번 절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자연
신은 하늘. 땅. 사람(조물주. 산신령)을 뜻하므로 3번이 맞다.고 본다. 또 한편으로
천신(바람). 지신(산의 난코스와 눈과 비와 기온 등등).용왕신 (홍수.계천 번람 등등)을
섬기는 제사를 말하며 또 한편으로는 천지신명과 제사를 올리는 산신에게 드리는 제사
이니 3번 절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기준은 없다.
오늘은 대구 재향 경우산악회 (회장 이 의부)와 재향경우회 시회장 (장 병욱)이 함께
회원 45명을 대동 아침 7시 20분경 대구 수성구 범어치안 센터 건너편에서 출발하여
반월당과 광장코아를 지나 성서 흠플러스 앞에 아침 8시에 도착 하여 회원들이 탑승
하니 모두 45명 이었다.
서대구 IC를 통과하여 경북고속도로 달리다가 평산 휴게소에서 시락국 밥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아침 식사 후 다시 출발하여 차안에서 백 수봉 사무국장 사회로 월례회가 개최되었다.
이 의부 산악회장의 인사 그리고 오늘 산행에 대한 설명이 있고 이어 장 병욱 대구 시
경우회 회장의 인사가 있었다.
백수봉 사무국장의 결산보고 후 고문과 부회장까지 덕담을 하라고 하여 나도 앞에 서게
되어 시산제의 제(祭)자는 왼쪽 위에는 육달월(月)이고 오른쪽 위에는 오른손이며 그
아래에 볼시 여기서는 귀신시(示)로 읽어야 하고 제사제라고 읽는다고 설명했다.
거리가 가까워 아침 9시 30분경 경주시 배동 소재 남산 서쪽안 서남산 제1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 바로 맞은 편에 삼릉 등산로 입구이고 주차장 옆에는 화장시리 다소곳이 앉아
있고 그 반대편에는 경주 문화유적 안내소가 위엄있게 서 있었다.
안내팜프렛에는 삼릉에서 용장골가는 코스가 나와있고 설명도 있었다.
천년 고도인 경주 남쪽에 위치한 남산은 동편에 위치한 해발 468m 금오봉(金鰲山)과
서편에 위치한 해발 492m인 고위봉이 각각 솟아 40여 계곡과 크고 작은 산등성들을
합해서 남산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우리 일행은 시산제 사용되는 제물 일체를 회원들이 들고 큰 도로 횡단보도를 건너
선덕여왕 촬영지로 자리를 옮기고 일정한 자리를 잡고 시산제를 준비했다.
남산을 오르른 탐방로 초입에는 산불감시요원과 자연정화켐페인회원들이 합동으로
각각유니폼을 착용하고 안전봉을 들고 켐페인 홍보를 하고 있고 우리는 그옆 선덕여왕
촬영지의 한곳을 선택 시산제 준비를 했다.
제상 뒤편에는 대구 재향경우회 시산제 현수막이 걸리고 제상은 미리 준비한 합판을
의자에 놓고 제상을 만들어 제물을 올렸다.
제물 중 문어도 준비하였고 시루떡은 3시루가 왔다(주체측외에 회원들이 정을 다해 준비
해온 떡이었다.)
돼지머리 대신 돼지 고기 (삽겹살)를 쓰기로 했다.
재물이 차려지고 아침 9시 50분경 시산제가 시작 되었다.
제례 순서는 국민의례. 애국가제창.묵념 .강신.참신. 초헌. 측문낭독.아현.종헌.현작.종작.
소지. 음복.순으로 모든 행사가 끝나고 오전 10시 55경에 등산을 시작했다.
등산은 정상조(23명) 문화탐방조(22명)으로 나눠졌다.
남산에는 청동기 시대 유물외에도 왕릉과 불교유적들이 산재되어 있는 산이며 특히 절터는
112개나 있고 탑은 61개 불상은 80체나 있다고 한다.
마애불상이 많이 임석불상과 불교신앙이 합쳐진 흔적을 볼수있다 고 했다.
큰 바위 감실을 파고 그 안에 불상을 조성한 특이한 불곡 석불 좌상을 비롯하여 삼릉계 석불
좌상 칠불암 불상군 등도 오르내리면서 보게 되면 좋은 역사공부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등산을
시작했다.
출발하여 5분 거리에 삼릉이 우람하게 나란히 앉아 있고 그 주변 아름들이 소나무는 울창하며
꼬물꼬불하고 가지가 한쪽으로 길게 쳐저 있었다.
천년을 지켜온 소나무의 늠늠한 모습과 청량한 맑은 공기에 고맙다고 감사했다.
이어서 석조여래좌상과 마애관음보살상이 우릴 반긴다.
매 5분거리에는 문화유적들이 눈앞에 나타나니 숨가쁜줄도 모르고 지겹지도 않다.
감탄이 절로 날 만큼 신비로운 선각육존불은 등산로와 조금 떨어져 있어 그곳에는 가지 못하고
조금 오르니 바위에 그려진 선각여래 좌상이 천년의 세월을 하루같이 보낸 듯 미소지으며 우릴
반겨주고 그 옆에는 금오봉과 삼릉가는 안내판이 외롭게 서 있었다.
산을 오른지 약 25분쯤에 상선암자에 도착했다.
스님도 보살도 비운 절에는 부처님만 인자하게 앉아 소리없이 경을 외우는 듯했다.
함께 했던 장 병욱 회장은 상선암에서 부처님을 뵙고 우후 예식장에 참석해야 한다며 부득이 정상을
취소하고 혼자 혼자 먼저 하산했다.
경근하게 절을 하고 입구에 설치된 시주함에 지폐를 넣고 커피 한잔을 마시고 전각을 둘러보니 사찰
뒤 큰 바위가 근엄하게 산을 안고 서 있었다.
바위가 지키는 동안은 산은 무너질 염려가 없어 보이며 마치 이 암자를 보호하고 있는 듯 했다.
이 길고 험한 산골에 그 당시에 이런 자리를 택한 것이 불심인가 본다.
상선암을 뒤로하고 정상을 오르니 드디어 신선이 놀 듯한 바둑바위가 바둑 바위가 코끼리등 같이 넓게
펑퍼짐하게 앉아 우릴 반기는데 아래를 훤히 내려다 볼수 있는 곳이었다.
바위 한편에는 바둑판이 그려져 있는듯한 모양도 있고 또 한쪽에는 느린 우체통이 엽서를 안고 서 있었다.
내남천은 경주 서쪽을 거쳐 포항 형산강에 합류되는 강이다.
지형이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아 강물이 북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만약 남쪽이 울산이 낮다면 내남천은 울산방향으로 흘러야 하는데 지형이 그렇지 않아있다.
강물이 북쪽으로 흐르는 지형에 사는 사람들은 특이하게 고집이세다.
경주나 대구 사람들의 경우이다.
우리나라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거나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 대부분이데 역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거나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 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강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유하다.고 본다.
들녘 가장자리에는 감자 열린 듯 촌락들이 여기저기 보이고 저 멀리 시내로 보이는 곳에는 아파트도 높이
솟아 있었다.
바둑 바위는 이곳을 찾은 나그네는 너나 없이 꼭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공기맑고 푸른 하늘 아래 짙은 솔잎의 향기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힐링할 수 있어 모두가
즐기고 있었다.
오늘은 아침 기온이 영하 6도로 시산제를 지내는 동안은 제법 추웠으며 산을 오르는 동안 음달이여서
추웠지만 점차 날도 풀리고 운동으로 등줄기에 땀이 벨 무렵부터 점차 등산하기 좋아 졌다.
여기서 부터는 제법 경사도가 심하고 바위길로 미끄럼을 주의해야 하고 돌부리에 넘어지지 않아야 하는
곳이 많았다.
지금까지 소나무 밭이었다. 소나무가 많은 산은 "기" 도 많다.
급경사를 타고 숨을 헐떡이며 오르다가 칼등같은 능선을 지나 되돌아보니 마애석불여래 좌상이 저 아래
앉아 바위를 쳐다보는지 내남 들을 내려다 보는지 위에서는 알수 가 없구나! 나 뿐만 아니라 등산객들은
한결같이 아! 저지 저기 있구나! 하며 연신 샷을 눌러 댄다.
또 5분쯤 더오르니 정상가는 갈림길 아래 쪽에 화장실이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이런 높은 곳에 화장실이 있는 걸 보니 역시 문화유적을 찾은 사람들을 위하는 시 당국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산 정부근에 화장실이 있는 산은 처음본다.
여기서 부터는 소나무가 적고 잡목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었다.
문화 유적 등을 살펴 보며 오르니 쉽게 올라와 졌으며 낮 12시경 드디어 해발 468m 금오봉(金鰲逢)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은 그리 뾰족하지 않고 둥근 두봉이며 1m넘는 표석에는 앞에는 금오산(金鰲山) 이라 새로로 적혀 있고
오른쪽엔 국립공원이라고 역시 세로적혀있으며 뒷면에는 금오산을 노래한 한시와 그아래 한글로 변역된 시
기가 적혀 있는데 아래와 같다.
금오산을 노래함
높고도 신령스런 금오산이여!
천년 왕도 응혼한 광체품고 있구나
주인 기다리며 보낸 세월 다시 천년 되었으니
오늘 누가 있어 능히 이 기운 받으련가? 라고 적혀 있었다.
일반적으로 표석은 앞면에만 산이름과 산높이가 적혀 있는데 금오산은 뒷면에 산에 대한 시를 적어놓았다.
산을 오르면서 느낀 것은 남산에는 계곡마다 절터요 . 능선마다 바위마다 불상이다.
일반 사찰에서는 법당앞에 탑을세우는 것이 일반인데 비해 남산에는 법당과는 상관없이 바위 봉우리에 세워져
있어 바위산과 연결되어 마치 구름에 걸린 듯 높이 솟아 있는 탑들은 누가 언제 져질렀지 망가지고 떨어져 원형을
볼수없이 아쉽다.
경주 남산에는 남아 있는 암자들 중 가장 오래된 불상은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이라고 하면 옥릉암 보리사 등 절터
는 147곳이며 불상은 119구 중 입체 불상이 29이고 바위면에 새긴 마애 불상이 51체라고 하며 불탑은 96기 라고
하고 왕릉이 13기라고 하는데 다 탐방 할 수는 없고 산을 오르내리며 볼 수 있는 몇 군데만 찾아보았다.
12시 50분경 하산을 시작했다.
용장 사지방향으로 하산을 하면서 불상과 탑돌을 둘러본다.
정상에서 약 200m쯤 내려오니 생태경관 복원사업으로 묘지도 이장하고 임산로가 나오고 솔 숲도 욱어지고 폭도 넓고
걷기도 편안하다. 완만한 직선 등산로로 걸어가는 이 의부 회장 등 회원들의 뒷 모습을 두어장 사진에 담아 본다.
다시 350m 쯤 더 내려오니 삼릉 역사 문화탐방로 안내판이 길가에 서서 반갑게 남산에서 가장많이 문화유산을 탐방 할
수 있는 곳이라며 안내 하고 있었다.
용장골로 하산 하면서 문화유적 탐방은 용장사 터. 석탑. 석조여래좌상 등 관람했다.
용장골은 금오봉과 고위봉 사이에 있는 남산에서는 제일 큰 계곡으로 22곳의 절터. 11기의 석탑 .6구의 불상이 남아
있다고 전하지만 우리는 용장 사곡 삼층석탑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 등 2~3개만 보았다.
설잠교는 오래된 듯 하고 설잠은 조선 초 매월당 김 시습 법호인 설잠을 따서 설잠교라 고 한다고 했다.
설잠교에서 기념 사진을 남기고 용장골에 내려오니 바위아래 샘에서 물이 흐르고 음료수 쪽박이 2개 있어 목이 말라
마셨드니 물 맛도 좋고 시원했다.
200m ~ 300m 더 내려오니 탑방로안내 판이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2시 50분경 금오봉에서 약 2.8km내려오니 용장마을이 750m 남았고 용장골 출렁다리를 지나니
바로 용장마을이 500m남는다.
용장마을 입구 큰 도로에서 좌측으로 가면 내남파출소 오른쪽으로 가면 내남면이다.
우리는 내남파출소 옆에 위치한 용장골 맷돌 순두부 식당을 선두로 찾아가 후미가 올 때 까지 기다리다가
오후 3시 20분부터 하산 주 몇 오찬을 즐기고 오후 4시 50분경 대구로 출발 했다.
위 산행수기는 이 상길 회원님의 시산제 천년고도 경주 남산 금오봉 옮겨 씀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했습니다.
찾아주시어 고맙고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일상에 행운있길 소망합니다
몇군데 오타가 있어 수정했습니다.
죄송합니다.아량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