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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14)우리나라 민속주 1호 부산 산성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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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마다, 가문마다 전해 내려오는 전통 민속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이 가운데 많은 종류의 술이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최근 사라졌던 전통 민속주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생소한 이름의 전통주도 속속 눈에 띈다.
쏟아지는 민속주 가운데 우리나라 민속주 1호는 무엇일까. 답은 ‘금정산성 토산주’(산성막걸리)로 백두대간의 끝자락인 부산 금정산의 산성마을에서 빚는 막걸리다.
#대한민국 민속주 1호
막걸리가 민속주 1호가 된 것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대중적인 술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민속주 지정에는 사연이 있다.
1960년 주세법으로 누룩 제조를 금지한 이후 산성막걸리는 마을 사람끼리만 만들어 마시는 것으로 명맥을 이었다. 5·16 군사쿠데타 전 부산 군수사령관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산성막걸리 맛에 흠뻑 취하곤 했다. 그 맛을 잊지 못한 박 전대통령은 79년 부산에 순시차 내려와 산성막걸리를 찾았다. 그리고 ‘사라질 위기’라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양성화할 것을 지시(대통령령 제9444호)했다. 이어 81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국풍 81’ 행사에서 가장 많이 팔리면서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노역의 허기와 피로를 달래준 술
산성막걸리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지만 임진왜란 이전까지 올라간다. 화전민들이 생계수단으로 술을 빚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숙종 32년(1706년)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금정산성을 축조하면서 외지인에게 산성막걸리의 맛이 알려졌다. 거대한 성을 쌓는 데 동원된 인부와 군졸에게 갈증과 허기, 피로를 덜어주는 새참거리였다. 인부들은 공사가 끝나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도 새큼하면서도 구수한 그 맛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맛 소문이 퍼지면서 산성마을에서 누룩을 빚는 양에 따라 동래를 비롯해 경남 일대 쌀값이 오르고 내릴 정도였다고 한다. 부산시 시사편찬실 표용수 위원은 “일제 강점기에 산성에 살던 학생들은 책가방에 누룩을 넣어 다니며 동래에 내다팔아 학비를 조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항우장사도 세 주전자는 못 비운다
산성막걸리는 인공재료를 사용치 않고 누룩과 쌀, 물 세가지만으로 전통제조 방식대로 만드는 자연 발효주다. 산성마을은 금정산 봉우리에 둘러싸인 분지로 해발 400m가 넘어 평지보다 기온이 평균 4도 이상 낮다. 또 예부터 맛 좋기로 소문난 금정산의 맑은 물이 산성막걸리만의 독특한 맛의 비결이다. 특히 보통 막걸리의 주도(酒度)가 5도인 것에 비해 산성막걸리는 8도이고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을 정도로 걸쭉해 ‘항우 장사도 세 주전자는 비우지 못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마을의 또 하나 자랑은 흑염소불고기와 도토리묵이다. 여기에 곁들여 마시는 산성막걸리는 등산객에겐 꿀보다 달콤하다.
현재 산성막걸리의 하루 생산량은 100말 정도. 750㎖짜리로 3,000통 가량이다. 소량 생산이어서 금정산성 일원에서만 판매되고 있다.
〈부산|권기정기자 kwon@kyunghyang.com〉 |
[전통주 기행]재래식 고집하는 막걸리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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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막걸리는 민속주 제1호로 제조 판매 허가를 받을 당시 주민 288명이 참여, (주)금정산성 토산주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마을 사람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현재 주주는 100명. 7년 전부터 유청길씨(47)가 대표를 맡아 회사를 꾸리고 있다. 직원은 유사장을 포함해 모두 5명이다.유씨는 산성막걸리 맛의 비결을 ‘재래식 양조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200m 깊이에서 퍼올린 금정산의 맑은 물에 밀을 씻어 지름 30㎝ 크기의 동그란 누룩을 만든다. 실내온도 40~50도의 누룩방에 넣어 최소 15일 이상을 발효시킨다.또 쌀로 고두밥을 지어 우선 식힌다. 누룩과 버무린 뒤 물에 섞어 발효탱크에 넣는다. 20도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이때 쌀 140㎏에 누룩 80㎏, 물 10말 정도의 비율이다. 하루 정도만 지나도 술이 되지만 제대로 된 술을 거르려면 1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가장 중요한 공정은 누룩을 빚는 과정이다.
현재 산성마을 일대에는 누룩을 만드는 집이 여러 곳 있으나 금정산성 토산주에서는 유사장의 여동생 유미옥씨(40·사진)가 이를 담당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운 이후 30년이 넘게 누룩을 빚고 있다.
유씨는 “재래식을 고집하다보니 맨발로 밟아 누룩을 만들고 있으며 온도가 높은 누룩방에서 일할 때는 숨이 가쁠 정도여서 힘이 부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또 술을 익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 때문에 일하는 사람 모두 시력이 크게 떨어질 정도로 막걸리 만드는 작업은 고된 과정의 연속이다.
현재 지역마다 전통민속주 제조자를 무형문화재 또는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산성막걸리는 민속주 1호임에도 아직 무형문화재나 명인 지정을 받지 못했다.
전국에 막걸리 제조업체가 많은 데다 전통적 방식으로 막걸리를 빚는 곳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유사장은 “산성막걸리를 부산의 전통 명주로 만들기 위해 산성마을뿐 아니라 전통음식점과 관광지 주변 업소에도 공급할 계획”이라며 “관광객이 제조공정을 견학하고 직접 막걸리를 빚는 체험행사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부산|권기정기자〉 |
[전통주 기행]효모·유산균 풍부 정장작용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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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막걸리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좋은 지하수와 쌀로만 제조한다, 둘째 개량곡자가 아니라 증자하지 않은 통밀로 만든 자연곡자를 사용한다, 셋째 금정산의 자연적 지형에 의해 자연저온발효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막걸리는 영양학적으로 일반주류와는 달리 알코올도수가 낮다. 2% 내외의 단백질·당질, 1% 내외의 유기산 그리고 라이신·트립토판·페닐알라닌·메치오닌 등을 비롯한 10여종의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그 외에도 비타민B 복합체·이노시톨·콜린 등이 많이 함유돼 있다.
산성막걸리는 곡자로 통밀을 사용함으로써 일반 막걸리의 영양성분 외에 식이섬유를 비롯한 통밀의 유용 영양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이러한 물질들은 피로물질을 제거하고 성인병을 예방해 주며 피부미용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 효모와 유산균이 풍부해 정장작용에도 효과가 있다. 특히 산성막걸리의 경우 자연곡자를 사용해 다양한 유용발효 곰팡이종류가 발견되었다.
자연효모가 풍부해 저온발효에 의해 약 1도 높은 알코올도수를 만든다.
생효모 속에 들어있는 글루타치온을 비롯한 아미노산·비타민·무기질이 건강에 도움을 준다. 막걸리 양조의 주역을 담당하고 있는 탁주 효모의 대사물 중에는 일종의 항생물질을 비롯한 미지의 특수성분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촌의 장수자들이 유기산을 가지고 있는 과실이나 발효유 등을 많이 먹듯 우리나라 장수자 중에 막걸리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 많은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막걸리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 것은 애석한 일이다. 특히 산성막걸리에 대한 연구는 현재까지 논문 1편뿐인 실정이다. 앞으로 많은 과학적 연구가 이뤄져 김치처럼 세계시장에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으로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양지영·부경대 식품생명공학부 교수〉 |
※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