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 느티나무신부님 + 찬미 예수님 오늘 주님의 만찬 미사 참석하셔야 되지만 어찌된 일입니까? 바이러스 때문에 정말 설마 했더니 성삼일도 못 지내고 TV를 통해서만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아픈 마음이 사제인 저에게도 아주 절절이 전해옵니다. 오늘 오전 8시 반에 교구청 경당에서 주교님과도 지구장들과 교구청에서 사는 신부님들과 성유 축성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주교님은 교구 설립 60년 만에 처음으로 신자 없이 성유축성미사를 드린다 하셨죠. 오늘따라 미사 드리는 주교님이 힘도 없어 보이고, 많이 늙으셨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교구와 지구에 있는 신부들을 대신해서 한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 했습니다.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성유축성 미사 때 두 가지의 아주 중요한 예절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병자성사에 쓰는 성유와 세례성사 때 쓰는 크리스마 성유를 축성합니다. 그래서 교구에서는 성유축성 미사 때 환자들에게 바르는 기름과 세례 때 바르는 기름 두 가지를 축성하는 아주 중요한 날이기에, 지부장들이 못 갔어도 교구청 식구들끼리라도 반드시 해서 그 성유를 각 본당에 나눠주어야 됩니다. 오늘 지구 각 본당 성유를 가지고 왔습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사제가 서품 때 약속했던 그 서약을 갱신하는 날입니다 사제서품 때 약속했던 의무가 일곱 가지를 상기하는 예식을 합니다. 사제가 사목자로서 지켜야 할 의무가 세 가지 있고, 사제 개인직분에 대한 것이 네 가지가 있습니다. 물론 사제서품식 때 하나하나 묻지는 않지만, 그 서품식에 나오는 기도의 내용에 보면 그 7개가 분명히 있습니다. 사제가 사목자로서 지켜야 할 의무 세 가지가 뭐냐? 첫 번째가 말씀 선포를 충실히 해야 될 의무가 있음을 서약합니다. 두 번째 성무 집행을 성실하게 한다고 하는 의무를 그때 받습니다. 세 번째 양들을 돌보는 데 충실해야 된다고 하는 의무를 그날 약속하는 겁니다. 또 사제 각자가 개인직분에 맞는 의무는 네 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순명, 두 번째가 독신으로 산다는 것, 세 번째가 기도를 끊임없이 드리겠다는 것, 마지막 네 번째로는 봉헌의 삶을 살겠다는 것을 약속했습니다. 사제의 삶 자체는 서품이 되는 그날부터 죽을 때까지 바로 봉헌입니다. 이 갱신의 소리가 지구의 신부들 귀에도 드렸으리라 믿으며 미사를 봉헌했던 겁니다. 요즘 너무 어두운 이야기들만 들리는데 흐뭇한 소식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우리 상당지구 신부님들이 지난 번 모였을 때, 우리 사제들이 코로나 때문에 고생하는 분들을 위해 성금을 모아야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교구를 포함 세 교구에서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내일 전달할 겁니다. 흐뭇한 이야기죠? 지금 각 본당마다 재정이 밑바닥입니다. 그래서 어느 본당 신부님은 받은 사목비 그대로 본당에 집어넣고, 그러는 와중에 신부님들이 당신이 아꼈던 돈을 모아 한마음으로 봉헌하는 것은 좋은 본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중에 이 어려운 사태가 다 끝나고 나면 우리 교우들이 봉헌해야하는 것도 있을 겁니다. 교우들이 모금을 해서 정말 힘든 분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할 때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복음을 좀 잠깐 묵상하도록 합시다. 그런 얘기들 많이 하죠? ‘나라의 어른이 없다’ ‘집안에 어른이 없다’ 교회 어른이 없다‘ 안타까운 표현입니다 그러면 그 어른이 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복음의 나옵니다. 어른이 되려면 반드시 이 덕(德)을 갖추어야합니다. 수도원 원장이든, 교구의 주교든, 정치인이든 어른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어른이 되기 한 조건은 ‘섬기는 사람’, ‘봉사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제가 이 이야기를 했는지 헷갈리는데, 막내 동생 신부가 일본서 사목을 합니다. 동생 신부와 동창 신부가 본당끼리 자매결연을 해서, 한 해는 일본으로 다음 해는 한국으로 왔다 갔다 해요. 동창신부님이 본당 신자 30명과 일본 하네다공항에 내려 준비된 버스에 올랐죠. 그 버스기사님이 정중하게 한분한분 고개를 90도로 숙여 인사하면 맞아주셨대요. 우리 신자들은 그 기사 어깨 툭툭 치면서 수고한다고 말하며 올라갔대요. 모두 탑승하자 기사분이 마이크를 잡고 다시 90도로 절을 하면서 인사하더래요. ‘여러분, 환영합니다. 제가 이 교구의 주교입니다.’ 주교님이 버스를 몰고 온 것예요. 어깨 툭툭 치며 건방 떨었던 신자들은 고개도 못 들었죠. 그 주교님은 은퇴할 때까지도 교구 신부님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해요. 어느 신부님이 울적하고 사목에 열의가 없고 고민이 있어 보인다는 소문을 들으면, 밤중에 찾아가 그 신부님 성당근처 호프집에서 전화한대요. ‘신부님, 시간 있으세요?’ ‘제, 그런데 주교님은 어디신데요?’ 맥주 한 잔하면서 무엇이 힘든지 이야기 나누시고, 하룻밤 재워 달라 하신대요. 그런 주교님한테 사제들은 우리 주교님이라는 표현이 붙습니다. 아무개 주교님, 이름이 붙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교님. 누가 험담을 하면 목숨 걸고 싸웁니다. ‘너 잘못알고 있어, 우리 주교님은 그런 분이 아냐!; 지금 돌아가셨지만 인천 교구에 미국 신부님 나길모 굴리엘모 주교님이 계셨죠. 이곳에서도 본당신부를 하셨죠. 인천 교구 신부님들도 항상 나주교님 얘기할 땐 ‘우리 주교님’이라 하셨어요. 그 주교님에 대한 기억은 아주 많죠. 워낙 청빈하시고, 전철타고 다니시고, 주교회의에도 도시락 가져오시고, 등등 항상 그런 분이셨지만 언제 사제들에게 ‘이분이 우리 아버지다’는 느낌을 주었나하면 신부들 중 누가 아프다면 밤중에 찾아와서 옆에서 물수건 들고 밤새 간호해준대요. 그럼 어찌 주교님에게 아버지라는 소리가 안 나오겠는가! 그리고 그런 주교님보고 저렇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안 할 사제다 어디 있는가! 어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유니폼만 바뀐다고 어른이 아니지요. 섬길 줄 알아야하고, 봉사할 줄 알아야합니다. 우리 교황님 어떠십니까? 교황이 되시자 마자 일주일에 한 번씩 노숙자와 아침을 같이 하셨어요. 당신 사비를 털어 노숙자들이 샤워할 수 있는 이동버스 하나를 만들어 목욕 시켰죠. 제자들이 예수님께 발을 씻겨 달라 발을 내맡기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교우도 없고 아예 발 씻는 예식도 다 생략이 되었지만, 신자들도 사제에게 발 내미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그 당시 상식으로도 스승이 제자들의 발을 씻을 수가 없는 일이었던 겁니다. 더구나 예수님이 보통 어른이고 보통 스승님이십니까?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어떻게 그 더럽고 천한 발을 씻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제자들은 놀라서 넘어갈 일이 자꾸 생겨납니다. 예수임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거라는 말도 이해할 수가 없었죠.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우리의 밥으로 남아있겠다 하셨어요. 우리들의 양식이 되어 끝까지 남아있겠다 하셨어요. 발을 씻겨주는 것도 놀라운 데 돌아가시겠다는 더욱 놀라운 일인데, 죽고 나서 내가 너희의 밥이 되어 끝까지 남아있을 거라는 말을 제자들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공관복음에는 최후의 만찬이 나오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에는 최후의 만찬이야기대신 발을 씻기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발을 씻기는 것도 봉사요, 밥이 되어 우리 배를 채워주는 것도 봉사입니다. 그 봉사하는 것과 사람들의 밥이 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누군가의 발을 씻기는 섬김의 자세가 되어있지 않고, 누군가의 밥이 되려하지 않을 때는 절대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귀하고 비싼 땅은 많이 밟혀야하고, 더러운 것 다 끌어안아야만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와 인연은 끊어진다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봉사하지 않으면 주님과의 인연이 끊어진다는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봉사하는 것은 자기만족이나 과시도 아니고, 눈치 보며 하는 것도 아닙니다. 봉사는 자기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향하는 것입니다. 봉사는 크게 네 가지가 있죠. 첫 번째는 기도의 봉사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물질의 봉사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희생의 봉사가 있고, 네 번째는 땀의 봉사가 있습니다. 나이가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탐욕스럽기 이를 때 없는 노인네들 많습니다. 수의에 주머니가 없는데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움켜쥐고만 살지 베풀 줄 모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철이 난다는 것이지요. 나이가 많다고 저절로 철이 나는 것도 아니고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유니폼이 바뀌었다고 철이 나는 것도 아닙니다. 높은 벼슬을 얻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영적으로 어른처럼 노력하지만, 섬기는 사람이 되려고 하루에도 수십 번 다짐하지만, 뒤돌아보면 섬김만 받다가 하루가 다 지나간 쓸쓸한 날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와의 인연은 끊어질 것이다.’ 기도 봉사합시다. 물질 봉사하고, 희생 봉사하고, 땀의 봉사로써 예수님 닮아갈 수 있다면, 이 세상 떠나는 날에 ‘주님보고 살았기에 임 닮았다 하소서’하는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큰 행복이요, 복락이겠는가! 교우 여러분들, 이 힘든 시기 너무 어려워하지 마시고 용기를 내시고, 기쁨은 섬김을 받을 때 봉사 받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봉사할 때 하느님은 기쁨이라는 선물을 주신다는 것을 믿읍시다. 그리고 요즘 같은 때는 온 식구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져있고, 자매님들은 밥해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죠? 서로가 아끼면서 섬길 때 우리 가정에서부터 하느님의 은총은 꽃을 피울 수 있음을 믿으며 성삼일 열심히 잘 지내도록 애씁시다. 아멘 ♣2020년 주님만찬 성목요일(04/09)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