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만 생산이 되던 차(茶)는 ( 요즘은 실론티가 유명하지만 차가 인도 남쪽 실론에 재배를 성공한 것은 19세기 말 무렵이었다 ) 이제 영국으로 막대하게 수입이 되기 시작했다.
대신에 은(銀)이 수없이 중국으로 흘러들어 갔다. 영국은 적자를 메꾸기 위한 방편으로 차를 중국에서 수입하여 전 세계에 중간 도매를 하여 팔아도 보았지만 무역 역조 현상을 당할 길이 없었다.
그 와중에 식민지인 미국에 지나치게 관세를 높여 팔다가 [ 보스턴 차사건 = 식민지에 지나치게 차에 대한 관세를 높여 붙인데 불만을 품고 미국인은 인디언 복장으로 차를 실은 배를 습격하여 바다에 빠뜨린 사건 ]으로 미국이 독립까지 하게 되어 애꿎게 식민지만 잃고 손해만 더욱 커졌다.
중국이 원하는 은도 전부 멕시코( 당시 독립 전이라 에스파냐의 식민지 )에서 수입하여 가져 와야 했다.
생각하다 못한 영국은 아편 제국이란 특성을 그대로 살리기로 했다.
당시에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은 그때 제일 이득을 안겨 주는 식민지는 인도였는데 즉 인도에서 면제품과 기타 특히 양귀비를 재배하여 전 세계에 팔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은 양귀비에서 나오는 아편을 중국 남부부터 공공연하게 퍼뜨리고 비밀스럽게 팔기 시작했다.
중국은 단기간에 아편중독자가 다량으로 생겨났으며 그 거대한 사회( 당시 추정으로 인구가 3억 정도 )가 모르핀( 아편의 유효성분 )에 찌들어 가기 시작했다.
이 막대한 아편의 중국으로 수입은 이제 은이 다시 영국으로 역조하는 현상이 당연히 나타나게 되었다.
이 심각한 사회현상과 무역역조로 중국의 황제 도광제는 강경하고 충직한 [ 임칙서 ]를 광동지방에 흠차대신( 欽差大臣 - 특정 사건에 대하여 황제의 의중을 전적으로 받고 일을 집행하는 신하 )으로 파견을 하였고 그의 강력한 단속의 결과로 결국 인류 역사상 가장 추악한 목적으로 벌인 전쟁 중에 하나인 [ 아편전쟁 ]이 터졌다.
세계 역사상 가장 극적인 [ 극동의 굴욕 ]이 바로 아편전쟁일 것이다. 서양은 힘을 발휘하였고 추악한 방법으로 중국을 굴욕을 시켰었다.
witpo
① 흔히 차하면 특히 홍차, 그것도 [ 실론티 ]가 생각이 나는 분이 많을 것이다. 오늘날 스리랑카의 옛 명칭이 실론이여서 아직도 실론티라고 부르는데, 하지만 실론에서 차가 생산이 된 것은 19세말이여서 생각보다도 재배의 역사는 짧다.
중국 남부에서만 생산이 되는 차를 영국은 전 세계 식민지 곳곳에 재배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원래 실론은 커피의 재배가 주종이었지만 19세 말 무렵에 커피에 대한 병충해가 대량으로 발생한 후에 차로 대체하여 재배에 성공하여 오늘날 이른다고 한다.
스리랑카는 실론티 이외에 보석과 이른바 [ 남방불교 ]라 불리는 상좌부 불교의 나라이기도 하다. 사진은 차재배지인 누와라엘리야 모습.
② 아편 전쟁( 鴉片戰爭, Opium Wars )은 19세기 중반에 청나라와 영국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다음과 같이 2번의 전쟁이 있다.
제1차 아편 전쟁 (1839~1842) : 영국과 중국의 전쟁
제2차 아편 전쟁 (1856~1860) : 영국과 중국의 전쟁에서 프랑스가 덤태기로 따라 붙어서 벌어졌다.
중국( 당시에는 만주족의 나라 청淸 )은 힘과 외교상의 미숙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양 열강들은 청에 대해 대국, 잠자는 사자 등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으나 이후 중국은 세계 최강대국에서 서구 열강의 호구로 전락한다. 1차에서 난징조약, 그리고 2차에서 베이징 조약을 맺은 이후 중국은 유럽열강의 침탈에 속수무책으로 놓이게 된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중심의 질서가 무너지고 서구 열강의 침략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은 위가 임칙서가 아편을 단속하는 모습이고 아래는 광동에서 벌어진 아편전쟁의 묘사도.
첫댓글 witpo 선생님,
정성을 쏟아서 올려주신 해박하신 글에 늘 감탄하며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건강도 더 챙기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