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봄의 법칙으로 ‘의사’ 꿈 이루다
- 나영주·영신 성도
동생은 로스쿨 합격…변호사 위해 공부
궁극적 비전은 복지타운 ‘에덴의 뜰’ 설립
어릴 적 할아버지는 나를 부르실 때 ‘닥터, 나’라고 불렀고, 동생 영신(사진 왼쪽)이는 ‘나 변(호사)’이라고 부르시곤 했다. 나와 영신이는 할아버지를 통해 의사와 변호사라는 꿈을 갖게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꿈을 잊고 나는 경희대 식품영양학과에, 동생은 고대 생명과학부에 입학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 나에게 새로운 꿈을 주셨다. 노인을 위한 복지타운 설립에 대한 비전이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꿈을 나눴고 비전을 공유하게 됐다. 그리고 주님이 주신 ‘에덴의 뜰’이라는 이름과 함께 복지타운 설립에 대한 꿈을 위해 도전하기 시작했다.
복지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연대 사회복지대학원에 들어간 나는 어릴적 꿈이었던 의사에 도전하기로 했다. 마침 의학전문대학원이 세워져 전북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게 됐다. 4년의 학업과정과 인턴을 거쳐 나는 고대 안암병원 레지던트에 합격해 올해 2년차다. 가정의학과를 선택하려했던 나는 인턴과정에서 내과로 바꿨다.
내과가 어렵다보니 많은 인턴들이 중도에 포기를 했지만 나는 새벽 6시 중환자실 회진을 시작으로 주어진 과제에 성실히 임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지켜본 한 교수님이 ‘너같은 아이가 내과에 필요하다’며 지원을 권유했다. 고대 출신도 합격하기 어렵다는 내과에 내가 지원한다는 건 욕심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나에게 용기를 주시면서 도전해보라고 하셨다.
면접 시험장에 들어서자 수많은 교수님 중 내과를 추천하셨던 그 교수님이 면접관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어려운 질문을 던지셨는데, 전날 밤 공부했던 내용 중 하나였다. 질문에 대한 답을 정확하게 하자 교수님은 다른 면접관들에게 나를 가리켜 ‘성실한 학생’이라며 아낌없이 칭찬해주셨다. 그 결과 나는 타대학 출신으로 고대 안암병원 레지던트에 합격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에덴의 뜰’에 대한 비전을 확고히 다져갔다. 현재 레지던트 2년차이다 보니 바쁜 일정으로 식사를 거르고 잠을 설칠 때가 많다. 흰 가운에 대한 동경만으로 의사가 되길 원했다면 나는 벌써 중도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내할 수 있는 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 때문이다.
꿈을 향한 도전은 나만이 아니다. 고대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했던 영신이도 어릴 적 꿈인 ‘변호사’ 도전에 나서 지난해 말 전북대 로스쿨에 합격했다. 2010년 고대 로스쿨에 도전해 실패한 영신이는 나의 권유로 약학전문대학원을 준비했다.
하지만 시험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다시 로스쿨에 도전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시험 전날 본 문제가 시험 당일 출제되면서 영신이는 좋은 성적을 얻었다. 영신이가 시험 보는 동안 시험장에 동행했던 부모님은 캠퍼스를 돌며 중보기도를 쉬지 않으셨다. 영신이의 합격 소식에 나와 동생은 첫째는 하나님께 영광, 둘째는 부모님께 감사드렸다.
교회 교역자로 사역하시다 교회를 개척하신 어머니 류 목사님은 바쁜 사역 중에도 우리를 정성 다해 키워주셨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사역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셔서는 모든 집안 일과 말씀 공부에 전념하셨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탓에 동생과 나는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었다. 특히 동생은 어릴 적 머리를 크게 다쳐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했지만 고대에 입학, 재학 시절 내내 장학생이었다.
나와 영신이가 잘 자란 데에는 아버지 나일석 장로님(반석교구)의 헌신 또한 컸다. 아버지는 대화를 통한 격려와 기도를 통한 중보를 쉬지 않으셨다.
‘에덴의 뜰’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된 것도 부모님과 같은 어른들이 마지막 생을 잘 보내실 수 있도록 해드리기 위해서다.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꿈을 향해 전진하도록 이끌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비전이 같은 믿음의 배우자와 동역자들을 허락해주시고 ‘에덴의 뜰’을 완성시켜주실 것을 확신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