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약이 무효 일 때 만이 명약이 나온다.
진퇴양난(進退兩亂)에 해소점은 위아래를 봄에서 찾을 수 있다.
돌아가자니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없고 그냥 가자니 천길 낭떨어지요. 결과 불 보듯 뻔한데 이처방 저 처방 다 해봐도 효험은 없고 몸은 죽어가고 한마디로 백약(百藥)이 무효(無效)인 병자를 떠올려보면 그 처지를 알 수 있다.
지금의 지구촌이 바로 그런 지경이다. 300년을 내다복고 설계하고 구축한 지구촌의 머리같은 미국의 뉴욕이 물에 잠기고 첨단 기술의 상징인 일본이 지진과 쓰나미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오늘 내일 일기가 에사롭지않다.
우리나라도 12월 천둥번개가 예사가 되었으며 예기치않는 폭설과 자연재해에 대안없는 공염불을 외워야할 판이다.
인간들이 성장위주의 산업구조 속에서 만들어낸 자연파괴의 산물인 것은 굳이 강조하지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라고 볼때 어떤 방안이든 내놓아냐할 싯점에 이르른 것이다. 자연재해는 국경, 너 나가 없으며 위아래 또한 구분하지 않는다. 공부한 자들이 보는 자연재해는 지구가 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소등에 날파리들이 가득 붙으면 소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참다가 도가 지나치면 꼬리로 털거나 몸을 뉘어 딩군다. 파리는 부패물질을 먹이로 한다.
그것이 파리가 사는 생존원리이다. 주변에 부패하는 음식을 치우면 파리보고 오라고 고사를 지내도 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익없는 세상을 만들면 모두가 넉넉해 질 수 있다.
실제로 경제구조가 복잡하지않고 자급자족하는 소위 못사는 나라들에 가보라! WHO(세게보건기구)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국민소득이 낮은 나라일수록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어떤이의 행위로 인하여 유발되는 상대가치의 서러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왜 그럴까?
인간은 상대적 지위의 고하를 기준으로 성공이란 개념의 바램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세까지만 해도 재물의 량보다는 권력의 높이에 촛점이 맞추어 살았다.
그때 가지만 해도 권력이 재물을 장악하여 늘이고 줄이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백성들은 권력의 주관처인 관에서 시키는 데로 하기만 하면 무탈 하였다.
상대적 박탈감과 상대적 비하감이 발생하기 어려운 상황속에서 살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권력이 축적된 국제독점자본재벌들의 손아귀에 들어간 이후에는 개개인들의 삶이 자유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살벌한 자유경쟁 벌판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가 되었다.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경제구조를 갖는한 각국의 백성들이 양떼가 되어 무서운 몰이개와 주인들의 요구에 저항 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모든 것을 저당 잡히고 빗진자가 되고만 것이다. 메스미디어는 연일 더 사고 더 쓰고 더 많은 소유를 행복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Happy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은 어짜피 지금을 주도하고 있는 영미인 독점자본가들에겐 알 수 없는 일일것이다. 왜냐면 그러한 질물을 아직 한번도 받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서양 문명에서 행복의 기준이 좋은 집에서 예쁜 마누라와 좋은 차타고 좋은 음식먹고 자유롭게 여행하는것 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믿는한 이러한 인간의 행복을 긍국적으로 보장하는 지구라는 터전은 죽어갈 수 밖에 없다. 독자들도 이즘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대부분 물질적인 풍요를 주안점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것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정음“을 가졌기 때문에 단어의 본질을 알 수 있는 우리들이 보는 Happy의 본질은 ”합:合“이다. Happy는 ”합:合“이란 단어음의 변형음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합(合:Happy)의 뜻은 무었일까?
”집안에서 함께 먹는것“ 이다.
너무도 아름답고 따뜻함이 있는 풍경이 아닌가? 이런 모습이 바로 Happy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Happy 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을 하나씩 찾아 없애는 일만 남았다.
사람들의 이동거리는 먹이가 부족해지면서 부터라는 인류학자들의 말이 떠올려진다. 서양문화의 바탕에는 이동 목축업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이 개척정신으로 둔갑하여 산업화의 동력이 되었다. 당시대 앞선 기술, 아니 더 파괴력 높은 기술들을 앞세워 평화로운 나라들을 식민지화하고 수탈하여 부를 축적하는 일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수탈한 부를 이용하여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선진국 되는 길이라고 믿어버리게 되면서 국제경제 구조는 억압과 수탈(양털깍기:국제독점자본재벌을이 한 나라의 경제를 채권으로 살찌우고 때가 되면 양의 털을 깍아 수익을 올리듯이 신용위기 조장으로 가치를 급격히 떨어트리는 가운데 가치있는 재화와 기업들을 먹어치우는 수법을 일컬음)을 근간으로 하는 양치기 경제로 자리잡고 말았다.
이제 양들은 저항할 수 없고 국지적으로 저항한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몰이개와 주인들의 욕심을 피할 수 없다. 더 먹어야하고 더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하며 더 빨리 털을 키워야 하는것이다. 도저히 양들에게서는 지금의 사슬을 끊을 방도가 떠올려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몰이개에서 찾아야 하는데 이마져도 목줄을 주인들이 쥐고 있는 이상 가망없는 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열쇠는 주인들에게 있다고 믿고 찾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 해소책이 될만것이 있다.
주인들이 돈과 이익 보다 더 절대적으로 숙명적으로 어쩔 수 없다라고 결론낸, 아니 신에게 맡겼다고 하는 그 일을 누군가 해소해주기만 하면 된다는 가정을 그려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건강과 수명연장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해가 뜨고 지는 원리와 이치를 알면 건강과 수명을 늘이고 줄일 수 있다. 이들은 기술에 기대어 불멸하기를 고대한다. 그래서 죽기 전에 급냉시켜 자신들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기까지 동면하는데 엄청난 비용 지불을 서슴치 않는다.
뿐만 아니라 부자들은 공통적인 바램이 있다. 그것은 맛있는것을 찾아먹는 것이다. 이름대면 알만한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의 삶 속에서도 비서5명중에 3명이 몸에 좋고 맛있는 신선한 음식을 조달하는 일에 종사한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몸은 탈이 날경우 첫번째로 입맛을 없앤다. 자연의학에서 그런 현상은 더 먹지 말라는 몸의 저항 신호이다.
건강한 사람의 장(腸)도 먹은 것을 반정도만 소화시킨다. 병자들은 거의 1/5도 소화하지 못한다.
소화력이 떨어지면 잠이 오지 않는다.
위장은 잠잘때 쉬기 때문이다.
위산이 분비되지 못하면 위 속에 있는 음식은 바로 소화가 되지 못하고 부패한다.
부패는 독소를 낳고 독소는 혈구와 세포에 쌓여 통병증을 유발한다.
부자들의 공통된 병명이 비만인 것을 알면, 그리고 미만의 자연치유법을 알게 하는 가운데 지금의 안타까운 지구촌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백약이 무효인때 ”명약:明藥“이 아니고 무었을까?
그것도 후불로 시행하니 이 어찌 좋지않을 소냐?
이시대의 암호명 ”얼씨고 좋다.“를 적으면 이장을 마감하고자한다.
첫댓글 좋은글 좋은 정보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