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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말라
요한복음 5:41-44
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참 사람이 되신 분이십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그분은 하나님께서 아담이 타락한 이후 곧바로 구약 내내 인류를 죄로부터 구하기 위해 보내기로 약속하셨던 바로 그 메시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더라”(창 3:15).
예수님은 바로 여자의 그 후손인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후 메시아가 오시면 이루실 사명은 다윗에게 주신 언약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시는 것이며, 또한 구약의 멜기세덱 대제사장이 예표하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는 것이고 나아가 모세에게 약속하셨던 영원한 마지막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친히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어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을 만족시키고자 자신을 속죄 제물로 바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을 부활 승천시키셔서 성삼위하나님과 주의 백성들 사이에 영원한 중보자로 삼으실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이시기에 자신을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자들에게 약속에 따라 영생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사람의 아들, 곧 인자이시기에 그를 메시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셔서 영원한 불못에 던지실 것입니다.
[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요 5:26-27)
[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리라.
6. (그러나)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하나님)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시 2:2, 6, 11-12)
이처럼 우리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자, 곧 사람의 아들로서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성경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그러므로 성경은 영생을 얻은 자의 가장 분명한 신앙 고백을 알려줍니다. 시몬 베드로가 거듭난 참 신자들을 대표하여 가장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참 신자였던 마리아의 언니 마르다의 신앙 고백입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
고린도후서 1장 19-20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언약에 ‘예’가 된다고 알려줍니다.
[
19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후 1:19-20)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은 또 말합니다.
“우리가 참된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20).
그러므로 성경에서, 특히 요한복음에서는 선한 일을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것을 뜻하고 악한 일을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거절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 5:28-30)
오늘 본문의 문맥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는 친히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에 대해 소개하셨습니다.
첫째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예수님을 증거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세례 요한의 증거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32-33절입니다.
[
32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
](요 5:32-33)
이 일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1장에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며 ‘네가 누구냐’ 물은 때의 증언부터 시작합니다.
[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여기서 주의 길은 여호와 하나님의 오심을 위한 길을 곧게 하는 것이기에 오시는 분은 주 하나님이십니다.)
26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즉, 여호와께서 사람으로 마침내 역사 속에서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이분을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증거하며 안내하는 것입니다.)
](요 1:19-21, 23, 26-27)
그리고 그 다음 날 요한은 나사렛 예수가 누구인지를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증언하였습니다.
[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요 1:32-34)
그렇습니다. 세례 요한은 분명하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했습니다.
둘째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행하신 기적들은 구약의 예언 성취로서 그 기적들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만이 이룰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물로 포도주를 만드심)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 2:11).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더라”(요 2:23).
또한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 연못에서 삼십 팔 년 된 누운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이 기적을 행하신 직후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요 5:20-21)
무엇보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표적은 예수께서 메시아이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뚜렷한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세례 요한의 증거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도 아들 예수를 증거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
35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요 5:35-36)
셋째는, 하나님께서 친히 눈에 보이는 역사와 하늘로부터 들리는 분명한 소리로 예수님을 증언하신 사실입니다. 그 사건은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있었습니다. 이때 세례 요한 및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님의 머리 위에 강림하는 것을 보았고 또한 하늘로부터 나는 분명한 소리도 들었습니다. 이는 성부하나님과 성령께서 친히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셨던 것입니다.
[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눅 3:21-22)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영광을 받으신 이후에 그의 서신 요한일서에서 인류 역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와 또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나타난 내적인 증거를 언급합니다. 역사 속의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및 성령을 보내신 사건이며, 믿는 신자에게 나타난 증거는 생명이 참으로 그들 안에 있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신자는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계신 것을 알게 됩니다.
[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일 5:5-13)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증거를 근거로 자신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하여 주십니다.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요 5:37).
넷째는,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록하게 하신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8-39).
더욱이 유대인들이 가장 신뢰하는 모세의 율법은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요 5:45-46)
그러므로 예수님이 독생하신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또한 그리스도이신 사실은 수많은 증거들로 입증되었습니다. 더욱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후 부활하신 사건은 가장 분명하게 역사적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인 사실을 입증하였습니다. 따라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율법 앞에서 자기 백성들의 죄값을 치르기 위한 가장 위대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과 이 땅의 사람들은 독생하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그리스도로 오셨음에도 그분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도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한 하나님과 독생자의 사랑과 배려인 줄 알지 못하고 도리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죄에 대한 마땅한 저주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 율법의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그 분은 사실 사람들의 인정이 필요없으며 사람들을 기쁘게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는 실제로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5:34).
아무튼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왜 사람들이 자기, 즉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지 그 근본 원인들을 분명하게 알려주십니다.
첫째는, 의도적으로 믿기를 거절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40).
이 구절을 원어에 따라 의역하면, “너희는 영생을 원하지 않기에, 내게 오기를 바라지 않는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증거가 없어서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바라는 것과 뜻하는 것이 따로 있어서 아무리 증거를 제시해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증거 문제가 아니라 완고한 마음으로 대적하는 문제인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로마서 1장에서 타락한 인간에 대해 원어 연구를 통해 자세히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가 인간의 영혼 속에 들어온 이후로는 그들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증거를 의도적으로 안 믿고 대적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제 설교의 복음이 안 들리고 안 믿어지는 이유도 안 믿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에 안 믿는 것입니다. 이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도록 부패한 인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는 어떤 증거를 보여주어도 안 믿을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도 안 믿을 것이며, 본인이 죽었다가 살아나도 안 믿을 것입니다.
반면에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 된 본성에 따라 그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을 것입니다. 이단이나 여러 사교들을 보면 교주 및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이 거짓으로 드러나도 거짓 교훈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계속 이단과 사교에 머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그들의 가르침이 거짓이든 말든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현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주께서 빵을 배불리 주실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믿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구원과 영생의 진리를 알려주자 그들은 순식간에 예수님을 멀리하고 떠났습니다.
[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 6:49-51, 60, 66-68)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그의 지각이 열려야 합니다. 지각이 열리면 자신의 완고함과 악함을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때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 대상인 것을 알게 되고는 두 손을 크게 들고 예수님께 나아오게 됩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
그런데 사람의 지각이 열리려면 복음이 증거되어야 하고 그리고 복음이 증거될 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야만 가능합니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셨도다”(요일 5:20).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도 저는 주의 성령께서 이 복음과 함께 역사하셔서 불신자들의 지각이 열리고 이로 인해 자신의 완고한 모습을 깨달아 회개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게 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하심과 주 되심과 구원자 되심을 믿게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회개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아무튼 불신자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자신의 의도적인 선택이기에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그 책임은 오직 자기 자신일 뿐입니다.
반면에 구원을 얻은 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죄를 깨달아 알고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역사로 인한 것이기에 영원토록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해 찬송과 영광과 감사를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4-9)
이에 주 예수께서는 위대한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고 완전한 죄사함이 있을 것이며, 멸망 당함이 없고 생명의 영역에서 영원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즉,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망령된 에서처럼 영생을 하찮게 여기고 원하지 않으니, 영생을 주시려는 하나님과 그 영생이 가능하도록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구원을 거절하고 또한 복음을 듣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믿기를 거부하는 두 번째 이유는, 32절에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과 맞물려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을 존경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보내신 그분의 아들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이름으로 서로 영광을 나누며 권세를 누렸지만, 정작 하나님이 보내신 모세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도 사랑하지 않았으니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것입니다. 나아가 모세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하였음에도 그들은 모세의 글을 매일 보면서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이에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모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요 4:46-47)
그들이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하는 세 번째 이유는, 44절에 있습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44).
그들 마음 속에 있는 가장 깊은 관심은 오직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들의 영광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에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43절에서 매우 특이한 진리를 알려주십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요 5:43).
즉, 어떤 사람이 진리를 전하든 비진리를 전하든 상관없이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고 인정을 받으면 그를 영접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에도 어떤 유명하다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일반 사람들은 곧바로 믿는 현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은 없다고 말하며 진화론을 주장했습니다.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다가 그 이론이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인정을 얻자 많은 사람들이 그 이론을 주장한 사람의 이름을 영접하고 믿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요 그리스도로서 진리 그 자체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죄인된 인간들을 의존하거나 그들의 인정이 필요 없습니다.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요 5:34).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요 5:41).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며 다만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참조, 요 5:43, 34).
그러므로 단지 죄악된 본성에 따라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들은 반드시 죄 가운데서 멸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멸망 받은 상태에 있는 죄악 된 무리들의 특징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우리도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도다”(엡 2:3).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확고한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44절)
주님의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의 동기가 어떤 영광을 구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믿음이 참 믿음인지 아니면 거짓 믿음인지 나뉘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 영광을 구하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는 믿음은 참 믿음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거나 인기를 끌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은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 아버지께 인정받는 것만이 그분의 삶의 모든 동기였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가르치며 하나님을 대표한다고 하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그리고 더욱 율법대로 철저하게 살아보겠다는 정신으로 형성된 바리새인들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거룩하고 종교적인 사람들로 보였지만, 그들의 마음 중심의 동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들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진실한 신앙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유혹과 위험과 사탄의 방해공작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고 자기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는 사람들은 종교나 신앙이라는 명분하에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부터 영광을 취하시지 않은 반면,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영광을 구하였습니다. 심지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영광을 구하려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께서 내리시는 결론은 자신들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 없고 도리어 대적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는 것과 “그들이 자신의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는 것”을 연결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어떤 종교적인 행사를 하더라도, 기도를 하고 헌금을 하고 봉사를 하더라도, 만일 그 동기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신앙 생활은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일 뿐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만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헛된 영광을 추구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신앙 생활은 단지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고 드러내기 위한 종교 놀이일 뿐입니다. 오직 참된 영광은 하나님의 칭찬을 구할 때 옵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구하는 것만이 진정한 믿음의 본질이며 복음의 본질입니다. 사람에게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온 맘으로 주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을 인정하시며, 이러한 하나님의 칭찬과 인정이야말로 위대하고 영원한 영광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저주를 가져오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특징을 말하는데 그 특징은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2-14절을 쉬운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억지로 할례를 받도록 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육체를 꾸미기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면, 박해를 받을까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스스로도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여러분에게는 할례를 받게 하려는 것은 여러분에게 (자기들이) 한 일을 가지고 자랑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말고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세상은 나에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결국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짓 복음을 외치던 자들의 마음 동기는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 즉 자기 영광을 구하는 것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로 보건대 모든 진리의 왜곡과 이단은 궁극적으로 자기 영광을 구하는 데서 발생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영광을 구한 사람들의 비참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다니엘서 4장을 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바벨론궁 지붕에서 웅장하고 거대한 바벨론 성을 바라보며 자기 도취에 빠져 독백을 합니다.
“이 큰 바벨론과 그 도성들이 내 위엄과 내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단 4:30).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의 영광보다 오직 자기 영광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치셔서 왕위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는 일곱 때 동안 정신병에 걸려 소처럼 풀을 먹으며 들짐승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을 보면 헤롯왕이 사람들 위에 신처럼 군림하며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가로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방자한 헤롯을 못마땅하게 여기시고 즉시 주의 천사를 보내 그를 벌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벌레에게 먹혀 죽게 되었습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행 12:23).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사람으로부터 받는 영광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였느니라.”
그러면 사람들은 언제부터 헛된 영광을 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까? 헛된 영광을 구하는 마음은 마귀의 마음 속에 있다가 우리의 첫째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통해 사람에서 들어왔습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하와가 뱀을 통해 마귀의 말을 듣고 미혹을 받습니다. 이때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어 보려는 헛된 영광”을 가지고 선악과를 따먹는 죄악을 범하게 됩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 사람들은 교만하여져서 바벨탑을 쌓으면서 말합니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름을 하늘 높이 닿게 하여 온 세상에 알리려는 헛된 허영심을 갖게 되더니 결국 하나님을 대항합니다. 사실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온 땅에 흩어져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기 영광을 높게 드러내고자 흩어지지 않고 똘똘 뭉쳐 살면서 헛된 야망을 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수고를 헛되게 하시고 수치 가운데 처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다시는 전 세계적으로 헛된 영광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언어를 다르게 나누셨습니다.
사사기를 보면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등장합니다. 그는 헛된 영광심에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 기드온이 죽자마자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루 아침에 자기 형제 69명을 칼로 죽였습니다. 그는 당분간 자기 꾀와 무력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그의 두 개골이 깨지게 하여 죽게 만드셨습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기 위해 악을 일삼는 자를 하나님은 그냥 두지 않으신 것입니다.
사울 왕은 교만이 커져서 왕의 권한을 넘어 제사장직을 침범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얻은 후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좋은 노략물들을 몰래 감추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사울의 깊은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보다 자기 영광을 구하는 자세가 항상 앞서 있었습니다. 사울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승리와 축복을 주시면 마치 자신이 그 일을 이룬 것처럼 자기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2절에 이를 증거합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삼상 15:12).
사울은 평생 자신의 헛된 영광과 인기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헛된 영광을 구하는 사울을 버리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하는 다윗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자리에서 벗어나길 원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삶은 결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은커녕, 종국은 언제나 비참과 미움, 죽임과 멸망과 허무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6절과 15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공동체 내에서 다툼과 분쟁과 미움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들의 헛된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싸움과 미움과 경쟁과 분열의 뿌리에는 언제나 헛된 자기 영광을 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따라서 공동체가 다같이 헛된 영광을 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다면 진정한 하나됨과 성령의 사랑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또한 종교를 통해 자기 영광을 구하는 위선자들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마 6:1, 2, 5, 16).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에게 화가 있을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마 23:25).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헛된 영광을 구하는 마음과 그로 인한 악한 죄성의 독소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며, 이러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기도를 합니까? 혹시 헛된 영광을 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모순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는 목적은 본능적으로 헛된 영광을 구하는 옛사람을 죽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새사람의 마음을 갖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즉, 기도는 내 영광을 구하는 죄성을 십자가에 죽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기 위하여 버둥거리는 것입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하여 눈물 흘리며 애통하며 간절히 기도하기 바랍니다. 이러한 기도 가운데 그 마음이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는 마음이 될 것입니다. 그때 그는 하늘의 참된 자유와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신령한 복을 풍성하게 누리는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창조주 하나님이신 우리 예수님은 낮고 천한 사람이 되시기까지 자신을 무한히 낮추셨습니다. 또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자신의 영광을 버리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의 본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신앙 생활일진대, 신앙 생활의 가장 중요한 자세는 자신의 영광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로마서 2장 28-29절은 거듭난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언급합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이 구절은 종교적인 어떤 행위를 한다고 하여 그가 구원 받은 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그 마음이 변화된 자, 즉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가 진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의 칭찬을 구하는 삶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칭찬을 구하는 삶을 살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즉, 구원 받은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의식하는 가운데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위의 동기가 오직 하나님께 인정 받으려는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된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십자가의 길 외에는 없습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스스로 동참하는 것이 참된 영광의 길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낮은 자리에 스스로 처하길 힘쓰는 자가 되길 바랍니다. 그래야 진정한 참된 영광의 소유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 이후로 우리의 짧은 여생이 더욱 십자가의 정신에 서서 자기 영광을 구하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박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사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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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말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