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中國 어느 시골 마을에 살던 老人이 큰 성에 볼일이 있어서 나귀를 타고 집을 나섰다.
성에 도착(到着)해 나귀를 끌고 걷다가 어느 집 문패(門牌)를 보았는데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世上에서 제일 장기를 잘 두는 사람이 사는 집’ 노인은 그 집 문을 두드렸다.
어떻게 오셨소? - 집주인과 장기를 한판 두고 싶어서 왔소.
이윽고 젊은 主人과 老人이 마주 앉아 장기를 두는데 主人이 내기를 제안(提案)했다.
그냥 두면 재미가 없으니 진 사람이 스무 냥을 내면 어떻겠소이까? - 그거 좋소이다!
그리하여 판돈 스무 냥을 걸고 장기를 두는데 노인(老人)이 쩔쩔맸다.
어르신 장을 받으셔야지요. - 과연 장기를 잘 두시는구려. 내가졌소이다. 그러면 약속(約束)대로 스무 냥을 내시지요. - 내가 약속(約束)은 했지만 지금 수중에 돈이 없소. 대신 내가 타고 온 나귀가 오십 냥 가치는 되니 나귀를 받아주면 안 되겠소?
젊은 주인(主人)은 생각지 않았던 나귀를 얻게 되어서 기분(氣分)이 매우 좋았다. 당장에 우리를 짓고 나귀를 씻기고 멋진 안장(鞍裝)을 만들어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그 노인(老人)이 다시 찾아왔다.
장기를 한 번 더 두고 싶소이다. 이번에는 돈을 가져왔으니 내가 지면 스무 냥을 내고 이기면 대신 나귀를 찾아가겠소이다. ‘옳거니 나귀에다 이번에는 공돈 스무 냥’ 주인(主人)은 속으로 쾌재(快哉)를 불렀다.
다시 老人과 主人이 마주 앉아 장기를 두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찌 된 일인지, 젊은 主人이 老人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생땀을 흘리며 안절부절못하다 결국 지고 말았다.
제가 졌소이다. - 그럼 약속(約束)대로 나귀를 몰고 가도 되겠소이까?
깨끗하게 목욕(沐浴)시키고 새 안장(鞍裝)까지 깔아 놓았는데 나귀를 돌려주려니 집주인 마음이 떨떠름했다.
하지만 내기에 졌으니 약속(約束)대로 나귀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老人이 나귀에 올라타 길을 떠나려 하자 젊은 主人이 老人을 다급히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지난번에는 어르신이 수가 많이 모자랐는데 대체 어떻게 장기를 잘 두게 되었소이까?
老人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100리쯤 떨어진 시골에 사는데 관가(官家)에 볼 일이 있어 왔다가 관가(官家) 입구에 '나귀를 타고 들어올 수 없다'는 방을 보고 어디 나귀 맡길 데가 없나 염려하다가 마침 주인장(主人丈) 집 문에 쓰여 있는 글을 보고 장기를 지면 이 집에 맡겨둘 수 있겠다 싶어서 장기를 졌소이다. 그리고 이제 일을 다 봤으니 나귀를 찾아가려면 장기를 이겨야 하지 않겠소이까?
젊은 주인(主人)은 기가 막혔다. 일주일 동안 나귀만 잘 돌봐준 것이었다. 집주인은 얼굴이 빨개져 노인(老人)이 멀리 가자마자 ‘세상에서 제일 장기를 잘 두는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문패(門牌)를 뜯어내 던져 버렸다.
자만심(自慢心) vs 참된 지혜(智慧)!^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世上에서 제일 잘나고 똑똑한 줄 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잘나고 똑똑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한 착각(錯覺)에 불과하다.
교만(驕慢)은 언젠가 화(火)를 부른다. 자만심(自慢心)은 사람을 태만(怠慢)하게 만들고 태만은 실수(失手)를, 실수는 실패(失敗)를 부르기 때문이다.
자신(自身)의 부족(不足)함을 알아야 겸손(謙遜)하고 다른 사람에게 배울 수 있다. 자신(自身)의 부족함을 아는 것이 지혜(智慧)의 시작(始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