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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사기반-사마천에 길을 묻다> 2016년 가을 야외수업-광명동굴 그리고 충현박물관 탐방기 금년 야외수업은 강의실 공사일정 변경 등으로 여러차례 변경이 있어 결국 11월18일(금)에야 이루어졌다.날씨 변화가 많아 걱정이 되었으나 마침 이날은 추위가 누그러져 포근한 날씨라 야외행사에는 적당한 날씨였다. 당초 40명이 넘는 사전 통보인원이 크게 줄어 25명이 참가하였다. 10시30분 철산역에서 가는 무료 광명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하였다. 10시도 안된 시간에 벌써 철산역에 제법 많은 인원이 모이는 못말리는 부지런, 그리고 적극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버스에는 해설가이드까지 타고 있어서 광명동굴 뿐만아니라 광명의 관광투어명소 먹거리 등에 관해 설명도 있었다. 아마도 이처럼 많은 투어객을 맞기가 쉽지 않았음인지 어떤 단체냐고 물어온다. 강남의 고전연구반으로 논어를 배우고 사마천 사기를 배우는 노장년 학생들이라는 말에 존경한다며 환영의 박수까지 보낸다. 40분 걸려 목적지 광명동굴 종점에 도착했다. 미리 인원점검과 회비수금까지 마친지라 바로 매표소로 가서 단체입장권을 구매했다. 경로는 1천원,일반은 4천원이다. 약속한 11시30분에 동굴입구에서 해설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강남사기반이라는 이름 때문에 도대체 어떤 단체냐 궁금했단다. 동굴의 역사,동굴의 크기 깊이, 동굴안의 현재모습 등에 약 2km에 이르는 동굴안을 돌며 상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광명동굴 광명동굴은 1912년 4월부터 1972년 7월까지 금속(금,은,동,아연)을 캤던 채석광이다. 길이가 7.8km(지하 275m,총 8레벨로 구성)이고 동공은 50여개로 추정되는 황금광산 광명동굴이다. 총 면적은 342,797평방미터이다. 1912년부터 1972년까지 60년을 지내는 동안 일제강점기(1945년까지) 거치고 한국전쟁시는 피난처 로서 그리고 1961-2년에는 광명지역 노동운동 발상지 역할을 했다. 1972년에 결국 폐광되고 1978년부터 2010년까지는 소래 포구의 새우젓 저장소로 역할을 했다. 2011년 광명시가 매입해 일반 시민에게 개방하여 이미 100만명의 입장객을 돌파하였고 2012년에는 100주년 기념행사를 하였다. 작년에는 와인동굴을 오픈하여 국내산 와인을 전시 판매하고 있고 시음코너도 있다.
입구에 들어가면서 바람길,웜홀광장(worm hole square),빛의 광장,그리고 바다 물고기들이 유리관 안에서 노니는 동굴아쿠아월드도 시선을 끈다. 황금의 방에는 금도금한 금잔,구슬들이 어지러이 깔려 있고-황금망치를 들고 돌맹이를 두드리면 황금으로 변하는 "아이샤의 주문" 코너에는 행운과 부를 얻기 위한 관광객들이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귀신의 집도 만들어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수직 갱도는 지하1레벨에서 지하7레벨까지 모두 8레벨로 층을 이루고 지하로 32도,42도 각도의 사경을 따라 무려 275m깊이로 광석 채굴을 하였다고- 지하1레벨에서 내려다 보이는 동굴지하호수는 바로 지하 2레벨에 위친한다. 지하 2-7레벨까지는 광정에서 나오는 지하암반수로 가득 차 있다. 요란한 물소리가 나서 보니 황금폭포 물소리다. 광물의 샘물도 있어 시음을 하게 한다. 관광객을 위해 재미를 더해주는 곳이 있다. 판타지 웨타 갤러리- 국내 최대의 길이로 신비의 용(龍)이 매달려 있다. 무서운 용이 살아 움지이는 듯 하다. 또 불로문과 불로계단은 장수를 바라는 노인들에게 인기 스페이스이다. 역사의 흔적은 자료로 통계가 있기 마련- 1955년부터 1972년 채굴 통계로ㅡ 금 52kg, 은 6,70kg, 동 1,247ton, 아연 3,637ton-1912년 이전 일제 강점기의 통계는 남기지 않아 모르지만 아마도 수백kg의 금을 채굴했으리라 추정된다.
광산 채굴시 채석된 돌을 내리는 조구통도 후레시를 비추어 가며 볼 수 있었다. 역시 최대의 관심장소는 2011년에 만들었다는 350석의 동굴 예술의 전당이다. 음악회,뮤지컬,패션쇼 등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를 한다니 정말 대단한 생각이 든다.우리반 가수 서상호 회원의 노래를 듣고 싶었지만 기회를 놓쳐 아쉬웠다. 또 한 곳은 작년에 오픈한 와인동굴이다. 국내 여러 지방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전시 판매하는데 시음대는 누구나 와인 맛을 보게 하였다. 입장료를 보니 와인시음값으로 1,500원을 매겨놓았다. 머지않아 쇠고기 돼지고기를 굽는 식당을 개관할 예정이라니 와인도 덩달아 잘 팔릴 것이다. 가학산 광명동굴은 여름철에 특히 피서지로 인기를 모은다고 한다. 동굴내 온도가 12도를 유지하니 얼마나 시원한 피서처인가- 겨울철 바깥은 영하라도 동굴안은 선선 하니 사계절 모두 관광이 가능하다. 지난 여름 피서시즌에는 하루 입장객이 2만명을 훌쩍 넘었다고 하니 그 인기도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또한 접근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편리해 이 또한 큰 장점이다. 주변에 가학산 근린공원이 조성되고 쉼터가 마련되어 점차 인기있는 관광지로 거듭 날 것으로 보인다. 해설사와 함께 출구로 나오니 어느듯 50여분이 지났다. 입구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남겼다. 단체를 인솔하고 식당으로 향한다. 나무계단길을 따라 도로로 나와 구내 카페식당으로 - 2층에 자리한 식당에는 젊은 관람객들이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는 분들이 있었다. 우리는 "광식이도시락과 우동"을 합친 통일 메뉴로 예약했기에 바로 식사가 가능해 시간절약을 할 수 있었다.17번버스를 타니 전원이 한자리도 남기지 않고 우리식구만 전세를 낸듯 탑승하였다. 한명이라도 더 왔더라면 서서 가는 회원도 있었을 듯. 도중에 ktx광명역도 보이고 이케아,코스트코,롯데아울렛 등 큰 건물들이 지나간다. 소하2동주민센타 앞에서 하차, 길건너에 있는 충현박물관을 찾아들었다. 오리 이원익대감의 충현박물관 정확히 2시정각에 해설사가 나오고 대문을 열어주었다. 충현박물관(忠賢博物館)은 조선조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선생과 그의 직계 후손들의 유적과 유물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선생은 태종의 12번째 아들 익령군의 4대손으로 선조,광해군, 인조 3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냈으며 오리정승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선생은 투철한 책임감과 애민정신으로 많은 업적을 남기었다. 예로 대동법을 실시하여 백성들의 세금을 덜어주었고 임진왜란때는 평안도 도순찰사로 평양탈환에 큰 공을 세웠고 사도도체찰사로 군무를 총괄하여 왜란을 극복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호성공신에 녹훈되고 완평부원군에 봉해졌다. 정의감이 투철하고 청빈하게 살아 청백리에 녹선되었다.이 일대는 선생이 말년에 여생을 보내시던 곳으로 인조께서 하사하신 관감당(觀感堂),사당인 오리영우(梧里影宇),충현서원,종택 등 지정문화재가 있다. 선생이 거문고를 타시던 탄금암(彈琴岩)과 400년 수령의 측백나무,최근 복원된 풍욕대(風浴坮), 삼상대(三相臺) 같은 정자가 남아있어 조선시대 선비의 풍류도 엿볼 수 있었다. 전시관에는 선생의 영정,친필,교서,문집,사궤장연첩과 그 후손들이 남긴 고문서,목가구,제기,집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친필 유서와 손녀에게 내린 따뜻한 시-종가에 내려오는 생활용품을 볼 수 있어 정감이 갔다. 충현박물관의 설립자는 선생의 13대 종손 이승규박사와 종부 함금자여사이다. 바깥 산자락에는 선생의 부모와 형님의 묘소와 묘비가 있고 선생의 묘소는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오리서원 인근에 부부 합장묘로 묻혀 있다. 충현박물관은 이원익선생의 종가에서 만든 전국 유일의 종가박물관이므로 관리를 위해 입장료도 다소 비싼 편(@3,500원,단체 2,800원)이고 평소에는 문을 닫아 놓고 있다. 12월1일부터 2월까지 동계에는 관람이 불가하다고 한다. 풍욕대,삼상대 그리고 부모와 형님 묘소까지 둘러보면서 만추 의 낙엽과 단풍이 어우러진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서 박물관 대문으로 돌아오니 정확히 예정대로 3시였다. 오늘 야외수업은 여기서 종료하고 17번 버스를 타고 철산역으로 회귀하였다. 비록 참가인원은 적었으나 볼거리와 느낌도 많고 유익한 야외수업이었다.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린다. 비교적 사진을 많이 게재하여 다시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배려하였다. 사정으로 참가치 못한 동지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광명동굴> 동굴입구로 오르는 계단 동굴입구 동굴아쿠아룸 반지의 제왕 동굴 안에서 낳은 아이 굴댕이 동굴을 나오며 가학산 등산로 입구 작품-자세히 보니 자동차 백밀러? <충현박물관> 오리대감 영정 평양감사 시절 영정-이때는 젊은 나이? 수염이 검고 양손이 나온 건 스님이 그렸기 때문? 오리문집 교서와 유서 비문 글 전시된 각종 생활도구 측백나무 ㅁ자집 구조 눈에 익은 여러 생활용품들 관감당 탄금암-거문고를 이 바위위에서 - 400년수령의 측백나무 사당 오리영우 삼상대 풍욕대-바람으로 몸을 식히다. 야외강의장에서 수업하면 좋겠다. 숙부 이억령묘소 이원익선생의 형 이원보 내외 묘소와 비문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