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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생명과 복을 택하라 신30:11-20, 요14:1-10
사람은 누구나 사망과 화를 싫어하고 생명과 복을 받아 누리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생명과 복은 저절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망과 화를 면하고 생명과 복을 받아 누리려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생명과 복을 받아 누리는 올바른 방법을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의 말씀은 모세의 유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자손의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이 마쳐갈 즈음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둔 모압 평지에서 모세는 자기의 사명을 다했음을 알았습니다.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 되었던 자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다 죽었고, 그들의 자녀 세대가 성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출애굽 1세대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며,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대신 불신앙으로 사사건건 원망, 불평하고 불순종을 선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자기의 사명을 마칠 날이 가까운 것을 직감한 모세는 온 백성을 그 앞에 불러 모으고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행할 법도를 하나씩 짚어가면서 들려주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신명기는 모세의 유언과도 같으며, 구절마다 이스라엘 자손을 향한 모세의 간절한 마음이 드러나 있습니다. 신약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지상의 사역을 마치고 십자가로 향하면서 주님의 죽음에 대한 예고로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두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생명과 복을 선택하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생명과 복을 선택하려면,
1.무엇보다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기를 선택해야합니다.
본문 신30:20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성도들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은 우리의 죄 사함과 구원을 위해 독생자를 주신 사랑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사실에 대해 요일4:9-11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권세나 명예를 사랑하고 향락과 돈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생명과 복의 길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기에 로마서의 말씀에 보면 이런 육적인 소욕들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도 요일2:15-17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했습니다.
성도가 주님의 가르치신 말씀을 따라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면 주께서 기뻐하시고 참 복을 받게 하십니다. 세상의 것들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들이지만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선대할 때 부지 중 주님을 대접하고, 천사를 대접하는 것이 되어 큰 복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미국의 대 부호 하워드 휴즈는 ’베풀어서 덕을 쌓아 두어라! 반드시 은혜로 되돌아 올 것이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한번은 그가 미국 네바다주 사막 한 복판에서 낡은 트럭을 몰고 가던 "멜빈 다마"라는 한 젊은이를 만났는데, 그가 허름한 차림의 노인을 발견하고 급히 차를 세웠습니다. 그러고는 어디까지 가십니까? 타시죠! 제가 태워 드릴께요.
그 노인은 고맙소. 젊은이! 라스베이거스까지 가는데 태워다 줄 수 있겠소? 하면서 낡은 트럭에 올라탔습니다. 어느덧 목적지인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습니다. 가난한 노인이라 생각한 젊은이는 25센트를 주면서 영감님! 차비에 보태 쓰세요! 그러자
노인은 참 친절한 젊은이로구먼! 어디 명함 한 장 주게나! 그는 무심코 명함을 건네주었습니다. 명함을 받은 노인은 멜빈 다마! 고맙네! 내 이 신세는 꼭 갚겠네! 나는 "하워드 휴즈"라고 하네!
그 후 세월이 흘러 이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렸을 무렵에 기상천외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세계적인 부호인 하워드 휴즈 사망이란 기사와 유언장이 공개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워드 휴즈는 영화사, 방송국, 비행기회사, 호텔, 도박장 등 50개 업체의 회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의 유산 중에 16분의1을 '멜빈 다마'에게 증여한다는 내용이 유언장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지인들은 ''멜빈 다마"란 사람이 누구인지 도대체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유언장 뒷면에 하워드 휴즈가 적어 놓은 '멜빈 다마'의 연락처와 함께 자신이 일생 살아오면서 가장 친절한 사람이란 메모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하워드 휴즈의 유산이 250억 달러 정도였습니다. 그 유산의 16분의 1은 15억 6250만 달러이며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1조8750억 원 가량이었습니다. 낡은 트럭을 태워준 친절과 25센트의 차비를 준 자비로운 친절을 투자해 1조8750억 원으로 되돌아 온 것입니다.
이 글의 내용이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보여줍니다. 그 하나는 친절의 가치는 이렇게 클 수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 많은 재산이 있어도 그 재산을 가지고 가지 못하고 두고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워드 휴즈'가 남긴 마지막에 한 말은 "Nothing“ (낫씽) 아무것도 아니야! 였습니다. 즉! 인생을 살아보니 아무것도 아니란 것입니다. 그는 ‘낫씽!’ ‘낫씽!’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재물도!, 명예도!, 가족도!, 친구도!, 미녀도! 죽어가는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헛된 것을 사랑하며 인생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다가 주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는 성도들이 됩시다.
2.주님을 의지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살기를 선택해야합니다.
본문 신30:20에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 줍니다. 유혹의 길을 피하고, 방종 하는 삶을 피하도록 권면하며, 절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구들은 구속이나 억압이 아니라 생명과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죄악으로 말미암아 병든 상태에 있는 영혼이 고침 받아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처방이 곧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청종하면 그 속에 생명이 있고, 복이 있습니다. 육신의 요구를 따라 내 마음대로 무절제한 생활을 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고, 그 결과는 사망과 저주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분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본문 8절에 빌립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소서.’ 요청할 때 주님은 9절에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대답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길과 진리가 되신 분입니다. 우리가 어느 낯선 곳에 가서 목적지를 잘 찾지 못할 때 사람들에게 가는 방향을 물어봅니다. 그러면 "이리로 가세요. 저리로 가세요."하고 방향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마침 그곳으로 가니까 저를 따라오세요."라고 직접 안내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길과 진리가 되신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오늘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무사히 목적지인 하늘나라에 이르게 될 줄 믿습니다.
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 사냥꾼이 산속에서 노루사냥을 하는데 갑자기 심한 눈보라가 몰아닥쳤습니다. 그는 얼마가지 않아서 방향감각을 잃었습니다. 눈 위에 나있는 발자국은 바람 때문에 다 지워져 버렸습니다. 눈덮힌 산속의 모습은 평소하곤 완전히 딴 판으로 바뀌어 계속 헤매다가 시간이 흘러 밤이 되어 결국 그는 내려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며칠 후 실종된 그를 찾으러 구조대원들과 그의 가족들이 그 산속을 누비고 다니다가 깊은 산속에서 눈 속에 엎드린 채로 싸늘하게 죽어있는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가 죽은 바로 옆에 큰 길이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는 죽었습니다. 오늘 우리주변에도 이와 같이 길 잃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안내자 없이 길을 잃어버리고 불안과 초조 속에 헤매면서 인생의 돌파구를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 속에서, 어떤 사람은 지식에서, 어떤 사람은 사람을 의지해서,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잊기 위해서 세상향락에 빠져 돌파구를 찾으려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다 어리석고 부질없는 일들입니다. 인생의 참 안내자인 예수님만이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살기를 선택하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주님만을 섬기며 살기를 선택해야합니다.
신명기 본문 17-18절에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이처럼 간곡한 마음으로 당부를 했는데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으나 우상 숭배에 빠졌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왕국이 갈라졌는데 북 왕국은 앗수르에게, 남 왕국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우상을 섬긴 죄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요 생명의 근원입니다.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길과 진리가 되실 뿐만 아니라 생명이 되신 분입니다. 사도 요한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장례식에 참석했다는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죽은 자를 살려주셨기 때문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 주셨고,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아들도 살려주셨으며,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도 살려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지 사흘 만에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부활이요, 생명 되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습니다. 이 참 생명을 소유해야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하늘나라를 예비하시고, 그 곳으로 들어가게 하시려고 세상에 오셔서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희생의 피를 흘리시고 속죄의 길,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떠나 말도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우상을 섬기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오직 생명 주신 주님만 사랑하고 섬겨야 마땅합니다.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한 토인이 사소한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추장의 노여움을 사 죄인을 사형시킬 것을 명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선교사는 비싼 보화를 싸 가지고 가서 추장에게 주면서 죄인의 생명을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추장은 보기보다 완고하고 냉담했습니다. "저런 물건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상아나 금, 은, 노예 따위는 부럽지 않소. 그런 것들은 저쪽 부락에 가면 얼마든지 빼앗아올 수 있소. 더구나 백인의 물건은 갖지 않겠소. 내가 오직 필요로 하는 것은 피요. 다른 것은 소용없소." 추장은 다시 부하에게 죄인을 죽일 것을 명했습니다. 화살이 시위에서 떠나려는 순간 선교사의 가슴에는 연민의 정이 가득하여 자신도 모르게 죄인 앞을 가로막고는 자기가 화살에 맞았습니다.
순간 선교사는 쓰러졌다가 이내 몸을 일으켜 화살을 뽑아 땅에 던졌습니다. 선교사의 몸에서 솟구치는 피를 추장에게 보여주며 "자, 당신이 구하고 있는 피요. 받으시오. 그리고 그를 살려 주시오." 선교사의 행동에 감동한 추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좋소. 당신은 당신의 피를 가지고 그를 샀소. 그는 당신의 것이오." 그 때에 죄인은 선교사의 발밑에 엎드려 감격에 떨면서 부르짖었습니다. "주인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은 피로 저를 사셨습니다. 아무쪼록 오늘부터 어디를 가시든지 제가 모실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 후 선교사가 가는 곳마다 그 토인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에도 결코 싫은 기색을 하지 않고 섬겼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피로 값 주고 사신 분입니다. 이 주님 만을 섬기며 살기로 선택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생명과 복을 선택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생명과 복을 선택하려면,
◐.무엇보다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기를 선택해야합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살기를 선택해야합니다.
◐.주님만을 섬기며 살기를 선택해야합니다. 아멘.
<2024. 09. 25. 호현낙선>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