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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토)
현진이의 송별회를 했다.
현진이는 나의 12년지기 친구다.
현진이는 5살 때 나와 10일 차이로 헤르만 하우스에 이사왔고,
우리는 그때 이후로 계속 단짝 친구였다.
초등학교 때 나와 현진이, 다연이(우리 동네에 살았던, 나의 또다른 단짝이다)는 3총사였고,
우리 모두는 또 헤르만 8총사의 일원이었다. (헤르만 8총사는 헤르만에 살고,
심학초등학교를 다니는 나의 동갑내기 친구들의 모임이었다.)
헤르만 8총사들은 핸드폰이 없었던 때에도,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면
약속한 듯이 전부 놀이터에 모였다. 우리는 ‘런닝맨 놀이’를 하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우리는 공책을 찢어 이름을 쓴 종이를 등에 하나씩 붙이고, 온 동네방네를 뛰어다녔다.
가끔 우리의 놀이 때문에 자동차에 기스가 날까봐 걱정하는 이웃 어른들,
너무 시끄럽다고 경비실에 민원을 넣는 주민들도 있었으나,
우리에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빨리 승자를 결정짓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우리는 어른들이 들어가자 마자 바로 다시 게임을 재개했다.
또 우리는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는데, 자전거는 주로 탐험을 할 때의 이동 수단으로 쓰였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우리가 비밀장소로 쓸만한 공간을 찾아 다녔다.
물론 비밀장소라고 해봤자 마당 뒤의 늪이나 놀이터의 구석진 곳이었지만,
그때는 그곳이 비밀장소로 정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만의
암호까지 설정해 암호를 아는 사람만 그곳에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철통 보안책도 만들었다.
우리는 여름에는 자체 워터파크를 만들었고 겨울에 눈썰매장을 만들었다.
각자 집에서 가져온 쿠킹 호일과 랩을 마당 뒤의 언덕에 쭉 깔고
(사실 엄마들 몰래 집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그 위에 물을 뿌려서 워터슬라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눈이 오면 눈을 고르게 핀 후 그 위에서 플라스틱 썰매를 타고 놀았다.
그 외에도 우리가 했던 놀이들을 다 얘기하려면 아마 끝이 없을 것이다.
대치동의 초등학생들이 중고등학교 수학을 마스터하고 있었을 때에
우리는 파주 시골의 아이들답게 ‘오늘은 뭐하고 놀까’를 고민하며,
매일같이 새로운 놀이법들을 열심히 개발해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와 현진이는 이런 어린 시절을 공유하고 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우리는 이런 저런 일로 많이 싸웠다.
서로 예민한 시기이기도 했거니와 우리는 공부의 최대 라이벌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험 기간에는 같은 차를 타고 다니는데도
말이 한마디도 오가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싸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언제나 내게 먼저 베풀어주었던 것은 현진이었다.
현진이는 공부하다가 좋은 문제집이 있으면 항상 내게 알려주었고,
자신이 구한 귀한 기출문제 자료들도 usb에 담아 건내주었다.
좋은 인강을 알려준 것도, 교과서 필기를 보여준 것도,
그리고 마지막까지 나를 응원해준 것도 현진이었다.
혼자만 잘하겠다는 욕심에 가득 차, 좋은 것이 있어도 일절 나누지 않던 내게,
현진이의 이런 태도는 성적과 무관하게 ‘이번에도 내가 졌음’을 깨우치게 했다.
현진이는 내게 어떤 사람이 진정한 승자인지를 가르쳐주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갈등이 최고조로 달해 거의 냉전 같은 시기를 겪었다가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다시 사이가 많이 풀렸다.
중 3이 되면서 현진이는 좋아하는 가수가 팝 가수에서 k-pop 아이돌로 변해
한창 세븐틴에 빠져 지냈다.
옷과 말투가 약간씩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공연을 두번씩이나 보러가기도 했고,
굿즈를 산기 위해 천막에서 줄을 서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아이돌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는,
현진이의 아이돌 세계와 팬심을 완전히 이해해주지 못해
친구 순위에서 많이 밀려난 듯 했지만,
그래도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에 우리는 신기하게도 항상 함께 있었다.
현진이에게 나는 선택적인 친구였다면, 내게 현진이는 필연적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일 아침마다 나의 등교를 도와준 것이 현진이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나는 현진이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맞벌이 부모님 아래 학교에 다니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현진이 어머니는 현진이 준비물, 간식을 챙길 때 언제나 내 것까지 챙겨주셨고,
우리 엄마가 바빠서 해주시지 못하는 부족한 것들을 항상 채워주셨다.
현진이도, 현진이 어머니도, 내게 단순한 친구와 친구 어머니를 넘어서
거의 은인 같은 존재였다.
그랬던 현진이네가 캐나다로 간다고 하니 나는 충격이 이만 저만일 수가 없다.
이집트 다합에서 이 사실을 전해듣고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다.
나는 원래 현진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한 학년 아래 후배로 다니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됐다.
현진이가 없는 학교에 내가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매일 붙어 다니지는 않았어도, 그냥 옆 반 어딘가에 그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항상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는데.
이제와서야 당연하다고 여겼던 현진이가 내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느낀다.
송별회는 우리 집에서 했다.
아빠가 지난 6개월간 배운 이탈리아 요리를 직접 선보이셨다.
로제 파스타, 크림 파스타, 토마토 파스타.
우리 가족은 이 요리를 위해
오후 12시부터 거의 6시간 넘게 주방에서 준비 작업을 했다.
(아빠가 새로 산 생면 제조기로 직접 면을 뽑았다^^)
계속 왔다갔다하며 음식을 나르고, 정리해야 하는 게 정신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이 직접 만든 음식을 현진이 가족에게 대접한다는
것이 의미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엄마가 나와 현진이를 위해 만들어주신
앨범을(5살때부터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을 하나하나 모아 앨범을 만들어주셨다),
현진이에게 선물로 주었다.
어쩌면 캐나다로 가기로 한 선택이 현진이에게는 더 맞는지도 모른다.
현진이는 자유분방한 것을 좋아하고, 한 분야에 빠지면 그 분야가 지겨워질 때까지
파고드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현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기에
한국은 너무 팍팍하다.
물론 지금은 멀리 떠나는 듯 보이지만,
내가 금새 여행을 다녀온 후에 우리가 다시 연락하고 만났던 것처럼,
현진이의 유학도 아주 잠깐의 이별이리라 생각한다.
<가족여행 코스 추천 - 군산, 신안, 해남, 태안>
8/25(월)~9/2(일) 7일간 나의 무사귀환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국내 여행을 다녀왔다.
그 코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로 우리 가족은 총 3명(아빠는 뒤늣게 태안에서 합류했다)이 여행에 참가했으며,
자가용으로 이동했다.
8/26(일)-1일째: 전라북도 군산
1.중식당 ‘지린성’
점심으로 군산의 맛집이라고 소문난 중식당 ‘지린성’에서 고추 짜장 한 그릇,
삼선 짜장 한 그릇, 짬뽕 한 그릇을 먹었다.
*이곳은 고추 짜장이 가장 유명한 식당이다. 확실히 삼선 짜장보다는 고추 짜장이
맛도 더 명확하고 맛있었다. 다만 계속 먹기에는 너무 맵다는 것이 문제였는데,
‘공기 밥’을 따로 추가해서 먹는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혹은 짬뽕 대신 짬뽕밥을 시켜서 같이 먹거나)
*’복성루’라는 군산의 유명한 중식당이 하나 더 있는데, 인터넷 검색 결과
‘복성루’보다는 ‘지린성’이 더 맛있다는 평이 있어, ‘지린성’에 다녀왔다.
점심을 먹은 후,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구경을 했다.
(군산은 작은 마을이라 볼거리들이 다 모여 있었다.)
2. 군산 근대미술관
군산에서 꼭 가봐야 하는 곳 중 한 곳이라기에 다녀왔다.
들어가는 데에는 입장료를 내야 해서, 그냥 밖에서만 사진을 찍었다.
3.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월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그래서 또 입구에서 사진만 이렇게 찍었다.
*월요일에 군산에 가는 것은 비추다.
거의 모든 상점이 월요일에는 휴무다.
‘휴무’가 적힌 표지판 앞에서 인증샷만 찍고 와야 하는
이런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면, 월요일 말고 다른 요일에 군산 여행을 하시길.
4. 초원 사진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촬영지였다는 초원 사진관.
나는 이 영화를 안 봐서 별로 감흥이 없었는데,
만약 이곳에 갈 생각이 있다면, 이 영화를 먼저 보는 것을 추천한다.
5. 경암동 철길 마을
예전에 기차가 다녔던 철길을 관광지로 만든 것이다.
옛날 과자와 쫀드기 같은 것들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다.
나와 오빠는 여기서 뽑기 체험을 했다.
6. 한일옥
우리는 ‘한일옥’에서 소고기 무국을 먹었다.
7. 화담여관
우리는 ‘화담여관’에서 묵었다.
이곳은 일본식 가옥을 개조해서 만든 여관이다.
(일본식 가옥을 따라 만든 것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 때부터 있었던 건물을 개조한 것이다)
방 안의 모습. 일본식 가옥답게 다다미 방이었다.
*한 방에는 최대 3인이 잘 수 있다.
*TV같은 것은 없고,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시끄럽게 떠들면 안된다.
만약 밤 늦게까지 놀 계획이 있다면, 여기 말고 다른 숙소에 예약해야 한다.
요즘 게스트 하우스의 문화라는 ‘나이트 파티’.
숙소에 묵는 투숙객들끼리 하는 ‘치맥 수다 파티’ 정도라고 보면 된다.
(게스트 하우스 측에서 신청을 받고, 신청자에 한해서 파티를 연다.
신청자가 1명이여도 직원과 둘이 파티를 한다고 한다.)
나와 엄마와 오빠는 각자 참가비를 10000원씩 내고 파티에 참가했다.
(참가비는 술안주 비용이고, 술은 각자 사가야 한다. 나는 초코 우유를 마셨다.)
이삼십대 커플들만 오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커플은 한 명도 없었다. 나이는 우리 엄마가 가장 많기는 했지만(47세),
수다를 떠는 데에 있어서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7시부터 9시까지 파티를 했고, 그 이후에는 더 놀고 싶은 사람들끼리
2차로 술집에 갔다. 우리 집에서는 이제 막 20살이 된 오빠 혼자 2차를 가서
열심히 술 마시고 놀다가 왔다.
8. 이성당 빵집
다음날 아침, 우리는 아침 일찍 이성당 빵집을 찾았다.
*이성당 빵집은 오전 8시에 오픈하고 밤 10시에 문을 닫는다.
‘월요일에는 휴무’이니 이 점 유념할 것.
(우리도 모르고 월요일에 갔다가 헛걸음을 했다)
*가장 유명한 빵은 단팥빵(1500원)과 야채빵(1800원).
단팥빵은 아침 일찍 나오지만, 야채빵은 오전 11시쯤에 나온다.
11시부터는 계산대 줄이 엄청 길어지니,
10시 반쯤 가서 단팥빵을 먼저 산 후에, 야채빵 줄을 기다렸다가
11시에 바로 야채빵을 사는 것이 좋다.
먹어본 결과, 맛이 크게 특별하거나 대단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이성당’은 맛보다는 오랜 역사 때문에 유명한 듯.
군산에 여행 온 기념으로 딱 한 두개 정도만 맛보면 충분한 것 같다.
9. 카페 ‘틈’
이곳은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카페로
건물이 분위기 있고 예뻤다.
우리는 드립 커피를 한 잔 사서, 신안으로 떠났다.
8/27(화)-2일째: 충청남도 신안
신안으로 가는 길에 영동에 들러 ‘아미정’이라는 식당에서
‘영광 굴비’를 먹었다. 1인당 굴비 정식이 25000원 정도였다.
비싸긴 했지만 그만큼 풍성하고, 만족스러웠다.
점심을 먹은 후 약 1시반 반 정도 차로 이동해서
신안 증도에 도착했다.
1.신안 엘도라도 리조트
우리는 엘도라도 리조트에 먼저 들어갔다.
바다가 보이는 경치 좋은 곳이었다.
리조트 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다..
*수영장은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
(이집트의 바다를 그리워하는 나의 뒷모습)
수영장에 바다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었다.
8월 말이라 해수욕장은 이미 폐장된 상태여서
수영은 못했다.
2. 신안 해송숲
다음날 아침, 해송 숲에서 산책을 했다.
사실 우리는 너무 더워질 때 가서 많이 못 걸었는데,
아침 일찍 엘도 리조트 앞 해수욕장에서 출발해
이곳까지 쭉 따라 걸으면 정말 좋을 듯 하다.
3. 짱뚱어 다리
짱뚱어가 보인다는 다리 위에서 갯벌 구경을 했다.
송송 뚤린 구멍 사이로 조그만 갯벌 생물들이 얼굴을 내밀어 보였다.
바다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생태계였다.
신안은 우리나라에서 꼭 가봐야 할 곳 ‘2위’라고 한다.
4. 고향 식당
아침 겸 점심으로 고향식당에서 낙지볶음을 먹었다.
사실 증도에서는 ‘짱뚱어 회’가 가장 유명하다고 하나,
우리는 짱뚱어보다는 낯익은 ‘낙지’를 택했다.
낚지 볶음은 매우 맛있었다. (굳이 낙지 덮밥을 시켜 먹지 않아도,
낙지볶음에 밥을 비벼 먹으면 된다)
이집트 다합에서 자주 만들어 먹었던 오징어 덮밥과 아주 유사한 맛이었다.
5. 태평 염전
증도는 염전이 많은 곳. 그래서 우리도 염전 구경을 다녀왔다.
사실 너무 넓어서, 우리는 앞에 살짝만 구경하고
소금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소금 아이스크림은 처음에는 아주 강력한 맛이 나서
맛있으나, 계속 먹다보면 너무 짜서 혀가 얼얼하다.
가족끼리 하나만 사서 맛만 보는 것 추천.
8/28(수)-3일째: 전라남도 강진, 해남
신안에서 강진을 거쳐 해남으로 갔다.
1.강진 하멜기념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선원이었던 하멜은
폭풍으로 방향을 잘못 들어 조선에 표류하게 되었다.
조선인들에게 발견된 하멜 일행은 이후 훈련도감에서 강제로 일을 했는데,
탈출 시도를 하다가 들통난 그들이 유배 보내졌던 곳이 이곳 강진이었다고 한다.
훗날 다시 탈출에 성공해서 그가 쓴 책이 바로 ‘하멜 표류기’다.
나는 ‘하멜 표류기’가 처음으로 조선에 대해 해외에 알린 책이라기에,
조선에 대한 좋은 얘기들이 담긴 책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하멜이 조선에서 힘들었던 것, 강제 노동을 했던 이야기를 담은 책이란다.
조선에 대한 욕이 왕창 들어있지 않을까 싶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굉장히 재밌는 역사를 들을 수 있었던 박물관이다.
2. 강진 고려청자 박물관
우리는 박물관 관람은 하지 않고, 청자 판매장에만 다녀왔다.
강진은 아주 오래 전부터 도자기 장인들이 많이 살았던 동네라고 한다.
우리는 아빠의 리조또를 담을 만한 고려 청자 그릇 하나를 기념으로 사왔다.
3. 영랑 생가
영랑은 김윤식 시인의 호이다.
그는 정치적 생각이 들어가지 않은 서정적 시를 쓰는 시문학파였다.
그의 시 중에 내가 중학교 1학년 국어 시간에 배운 시가 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란 제목의 시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이 시는 내가 처음으로 외웠던 시이기도 하다.(물론 숙제로^^)
사실 생가를 샅샅이 보거나 적혀있던 설명을 열심히 읽은 것은 아닌데,
그냥 그곳에 다녀왔다는 것만으로 그와 많이 친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앞으로 교과서에서 ‘김영랑’이란 이름을 보게 된다면,
무척 반가울 것이다.
4. 다산 초당
다산 초당은 산 중턱에 있었다. 산이 매우 험준에서 올라가기가 정말 힘들었다.
거의 암벽 등반을 하는 느낌이었다.
(*노인들은 몸을 삐긋해서 다치거나 위험할 수 있으니,
1년 이상 꾸준히 운동을 했던 분이 아니라면 무리해서 올라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 생활을 했던 곳이다.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고, 마을과도 분리되어 있어서
조용히 혼자 생각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기에는 딱 좋은 유배지로 보였다.
조선시대 때 모든 죄인들이 이런 곳에서 유배 생활을 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유배는 아주 좋은 교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유배지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죄에 대해서 돌아보고, 반성하며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5. 해남 유선관
강진에서 해남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관이었다는 해남 ‘유선관’에 묵었다.
(*원래는 차량 출입 불가인데, 유선관에 묵는 사람들만 차를 가지고 산에 올라갈 수 있다.)
이전 같았다면 공중화장실을 써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겠지만,
나는 이미 하반하에서 공중화장실 사용에 완전 적응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한옥집이고 산속에 있어서 당연히 와이파이는 안될 줄 알았는데,
그리고 이런 곳에서 와이파이를 찾는 것은 아주 웃긴 일이라 생각했는데,
핸드폰을 켜보니 암호도 없이 와이파이가 빵빵하게 잘 터졌다.
산속 여관에서 와이파이라…
진짜 우리나라 와이파이는 위대한 것 같다.
우리는 두륜산의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저녁으로 파전과 도토리 묵을 먹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16첩 아침 반상이 우리 방으로 배달됐다.
아침부터 너무 진수성찬이라 약간 당황한 감이 있었지만,
먹다보니 아주 맛있게 거의 다 먹었다.
특히 감자조림이 가장 맛있었다.
6. 두륜산 대흥사
대흥사는 내가 이제껏 가봤던 절들 중에 가장 크고 좋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조용하고 아늑했다.
안쪽에 보니 절 건물을 더 짓고 있는 듯 했는데,
내 의문은 ‘도대체 뭘 위해서 계속 절을 확장하나’였다.
지금도 텅텅 비어 있는데 말이다.
이것도 교회를 끊임없이 확장시키는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일까?
권력 과시를 위해서 일까?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불교자들에게서 무리하게 걷은 돈으로
절 짓는 비용을 충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7. 해남 땅끝 마을
해남은 우리나라의 땅끝이라고 한다.
우리는 땅끝 전망대가 있는 곳까지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갔다.
(만약 하반하에서 이곳에 왔다면, 다같이 조깅해서 꼭대기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날은 안개가 많이 껴서 전망대 경치가 별로 안좋았다.
그래도 망원경으로는 작은 섬들과 바다의 미역 건조대(?)들이 보였다.
*날씨가 좋은 날 이곳에 가면 훨씬 좋을 듯하다.
*땅끝비는 전망대 근처에도 있고, 주차장 쪽에도 있고, 여러 개가 있다.
전망대 근처에 있는 곳은 전망대에서 10분 이상 걸어 내려가야 하므로,
아예 모노레일을 타고 끝까지 내려가서, 주차장 쪽 땅끝비에서 사진을 찍는 것을 권한다.
우리는 점심으로 전복죽(값도 싸고 매우 맛있었다.
전망대 근처에 전복죽을 하는 집은 아주 많다)을 먹고,
약 2시간 반 정도 이동해 담양으로 갔다.
*해남 특산물: 고구마
해남은 고구마가 유명하다.
정식 특산물 매장이 아니더라도 도로 중간중간에서 고구마 직거래를 하시는 분들이 많다.
우리도 그 중 한 아저씨께 고구마 한 박스를 구매했다. 먹어본 결과, 굉장히 달고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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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절친과의 이별이 힘들겠지만 멋진 모습으로 응원해가며 다시 만날날을 기대해보아요
이번엔 군산!!! 이곳 빵집 줄서서 들어가 뭐 특별할게 있겠어?하고 몇개만 사들고 나온 단팥빵과 야채빵 돌아와 완전 땅치며 후회했던 기억이 나네요
은재 코스대로 여행한번 가보고 싶은생각이 드는데?
왠지 이 여행 코스는 은재의견이 많이 반영됐을듯 ^^
은재가 여행한 코스대로 여행을 해봐도 좋을것 같다~
늘 생동감있는 보고서는 읽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거 같아.
ㅋㅋ 위에 댓글이 같은.....
은재를 위로해줄 말이 없네...그렇지만 이미 현진이와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시간을 영원히 고액 원금처럼 저장했기에 못보는 사이에도 계속 이자가 불어날 거야. 평생토록.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다시 만나게 되겠지...좋은 만남은 항상 그렇게 엄청난 고액 원금을 고금리로 평생 묻어두는 것같은 효과를 낸단다...곧 고3 이 지나고 캐나다로 현진이를 만나러 여행가고, 에드워드 프린스 섬에도 현진이랑 같이 가서 빨강머리 앤의 흔적(?)도 둘러 보고 하겠지. ^^* ...그래도 아쉽긴 아쉽구나...ㅠㅠ.
나도 은재 여행 코스대로 다녀오고싶다 <준형맘>
친구와 이별은 단란한 가족여행으로 채워지네요.
만나고 떠나고,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하는 삶의 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변화가 없다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다양한 경험들이 아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하네요.
은재의 앞날에 다양하고 찬란한 일상들이 펼쳐지길 기대하며
하루하루 진실로 살아내려는 은재에게 사랑의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은재~ 화이팅~
- 준휘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