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대규모 숙청과 철권통치 이 민족에 대한 강제이주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먼저 떠 오릅니다
스탈린은...
가난한 구두공의 아들이었으며
레닌과 같이 혁명활동을 하고 그 과정에서 큰 신임을 얻습니다
또한 구 소비에트내에서 민족문제 전문가로 인정받기도 하였지요
스탈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들과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비교 분석하므로서 스탈린에 대한
옳바른 역사적 평가와 관점을 같기를 기대합니다
우선 스탈린이 구 소련의 수장이 된 시기는..
1928년으로 1925년 레닌 사후 권력투쟁으 거쳐 확고한 일인자로 부상합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유럽 제국주의간의 자체 모순에 의한 치열한 암투와 제국간의
합종연행을 통한 세력불리기 제 3세계에 대한 침략등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조건에서 가난한 농업국가인 구 소련의 초창기는 프랑스 영국 독일과 같은
선진 산업국가의 침략을 막아낼 어떠한 수단도 없었습니다(자구책으로 독일과 불가침조약 결행)
이런 상황에서 스탈린이 선택한 길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을 통해 중공업을 발전시키고
곡물 생산의 안정화를 위해 강제적으로 집단농장을 추진합니다
이 과정에서...
까레아 스키 즉 우리민족인 고려인들도 집단농장으로 강제이주 되었지요
당시 독일과 제국동맹을 맺은 일제의 동 북만주 침략과 구 소련에대한 공공연한 도발등
에 의해 외형적으로 일본인들과 구분이 불가능한 까닭에 일제 간첩들을 두려워한
스탈린에 의해 수많은 고려인들이 피 눈물을 흘리며 서 러시아로 강제 이주 당합니다
그리고 스탈린의 숙청에 의한 2000만명 아사설은..
서방세계에서 구 소련을 비방하기 위해 거짓 지어낸 것으로
최근 공개된 구 소련의 문서들을 보면 대략 어림잡아 80만명 정도이며
특이한 점은 일반 민간인들에 대한 숙청은 거의없고 정치적 반대세력이나 반 혁명세력
들이 대다수입니다
기실 80만명도 어마어마한 것이지요
아무리 유럽제국들의 침략이 두려웠고 자신의 철권통치를 위해서라도 이렇게 많은
생명들을 희생하였다는것은 정말 이해할수 없는 일입니다
이 정도의 희생이면 한다리 건너 건너의 소문으로 인해 공포정치의 효과는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아뭏든 이런 희생위에서 ...
구 소련의 산업은 전반적 농업국가에서 일면 공업국가의 면모를 갖췄고
이러한 결과로 인해 독일의 침공을 효과적으로 물리쳤으며 독일제국이 몰락하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하게 됩니다(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구 소련에서의 패전에 의해
독일제국의 거의 모든 군 전력을 잃은 다음입니다)
구 소련의 피해와 인명 희생을 비교하면 ..
프랑스 영국 미국의 피해는 거의 조족지혈 수준입니다(군인 민간인을 포함 대략 2500만)
독일제국과의 전쟁이 끝난후 ...
스탈린은 승전국들과의 담판을 통해 방대한 지역을(동구권)손에 넣었고
이 국가들을 구 소련의 위성국가로 만듭니다
한편 동남아 지역에서 일제의 가미카제 전술에 의해 고전하던 미국이
구 소련의 참전을 요구하며 모스코바 3상회의(포츠담 회담)를 통해
한반도 38선을 기준으로 양분 신탁통치하기로 약속하고 남진을 통해
일제를 몰아냅니다
물론 동 북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항일무장투쟁 세력과 함께...
이후 북조선을 점령한 소련군은 해방을 선포하며..
조속한 정권이양을 하였지만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구 소련출신 군 관계자들과 정치인들을 남겨두고 떠납니다
스탈린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위해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개략적으로 나마
올렸습니다 만 너무나 부족한 점이 많은것 같군요..
활발한 토론을 통해 풍부한 내용으로 채워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형편 없었던 러시아를 가장 단시간에 세계 최강의 나라로 만든 러시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였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을 처형하고 독재자 였다는 평가도 있지만 세계역사에서 그보다 더한 지도자도 많았으며
그당시의 백성들은 그런 상황을 현실로 받아 들였다고 생각해야 되겠지요!
정묘호란, 임진왜란을 겪을 때 전국민의 거의 20% 이상을 죽여야 했던 무능한 지도자도 있었고
6.25때 남북한 합쳐서 전체 인구의 10% 정도가 죽어 나간적도 있습니다.
나는 스탈린의 능력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싶습니다.
푸틴도 러시아를 부흥시킬 인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을 점령한?한 마디만 해드리죠,1945년 9월 발표한 <치스챠코프 포고령>부터 읽어보시지요.그리고 남쪽에서 동시에 발포한 《맥아더 포고령》 동시에 읽어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점령후의 표고령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소련군은 본국으로 철수하고 자치권을 인정하였지만
미군은 지금도 주둔하고 있습니다
포고령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요?포고령부터 시작을 하는 것인데 그게 중요하지 않다니요?그리고 북에 대해서는 소련군이 점령을 하지않았습니다.단지 군사고문단만 파견을 한 것 입니다.바로 그걸 말 하는 겁니다.포고령과 군사고문단 그리고 북에서 인민위원회가 정식 출범을 한 1946년2월8일 이후 대부분 철군을 한 것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어울려 돌아가는 것 입니다,소련군은 3.8이북을 점령을 한 것이 아닌 잠시 방조(협조를 북에서 방조라함)를 하는 역할을 했을 뿐인 것 입니다.그걸《치스차코프 포고령》에 명시를 한 것 입니다.
포고령보다 중요한것은 구 소련이 북조선을 위성국으로 만들려 시도하였다는 것이지요
여타의 동구권 국가들처럼 말이지요
이점을 잘 생각해보면 구 소련이 북조선을 위성국화하여 서방세계에 대항한 전진기지로 이용하려 하였다는
것입니다 당근 북조선의 자주의지와 관계없이...
그러나 이런 속셈을 간파한 북조선 지도부가 친소파들을 다 쫒아내었습니다.
스탈린에 대한 일반적 오해도 문제지만 스탈린의 과오도 인정하여야 합니다
특히 민족문제에 관한 한 스탈린은 철저하게 자국중심이었으며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타국을 이용하는 짓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세계해방과 인민해방을 외쳤지만....
본인의 글에 대한 오해를 하지않으셨으면 합니다.소련의 만행과 야욕을 모르는 바 아니며 그들이 북한을 위성국 내지는 속국화를 시도했던 것 역시 잘 압니다.다만 본인이 강조하고자 하는 요지는 그 소련의 야비함이나 대국주의를 결코 북에서는 허용을 하지않았기에 <점령> 이나 <자치권 허용>등과 같은 용어와 같은 인식은 북의 입장에서 결코 허용이 될 수 없다는 걸 말 하는 겁니다.북은 분명하게 말 하고있습니다.<조선인민혁명군>이 <<조국을 해방했다>> 하고있습니다.이는 점령 혹은 자치권 허용등과 같은 인식은 곤란합니다.이에 대한 논지를 말 하는 겁니다.물론 소련이 야욕을 부렸지만(북에서는 종파사대주의자로 지칭) 찻잔
속의 강한 태풍 정도라는 거지요.다만 용어의 사용과 인식에 대해서는 그 동안 북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인식과의 일치점과 불일치점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본인은 이 점을 말 한 겁니다.
충분히 공감합니다
점령이란 단어는 북조선이 아닌 일제를 말한 것입니다
북조선 지도자들의 평가도
시대가 바뀌면 달라지겠죠
괴뢰국엔 지도자가 없어요/총독만 바뀌죠
돌개님의 지론에 적극 공감 합니다
자치권 허용이라는 사대적 사고가 나에게도 습윤되어 잇슴을 님의 말슴으로 개달았습니다
역사는 참 재미있습니다 ^^ 하긴 모든 공부가 다 나름의 재미가 있지요.
스탈린은 그루지아인으로 러시아 정교 신부가 되려고 한 젊은 시절에는 신학생이었지요.그리고 소련이 북한을 미국이 남한 점령한 것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말 그대로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축출,자생적 민족정권 수립에 협조하는 성격이죠.또한 북한을 위성국으로 삼으려 했다는데 김일성을 비롯한 세력에게 당치도 않은 일입니다.씨알도 먹히지 않지요.물론 위성국으로 한다 해도 미국이 남한을 점령하고 민족반역자와 부정부패자 앉히고 민중을 고문하고 수십만 학살하는 미국의 지배정책과는 차원과 질이 전혀 다르지만 말입니다.
남한 사회에서 열에 예 닐곱은 어떠한 형태로든 교회에 나가본적이 있을겁니다
님이 말한 그 신학생 시절에 맑스주의를 받아들였고 이후 재정 러시아 노동운동에 전념하지요
당연히 스탈린의 대국주의는 미 영 프와 같은 제국주의와 그 본질적 성격이 다릅니다
제국주의는 식민지의 착취와 수탈을 위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대국주의는 착취와 수탈보다는
(상대적 민족과 민중에 대한 수탈을 금지하는 사회주의 원리상)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한 군사적 역학관계를
이용하려 하였다는 것이지요 즉 위성국을 전선의 전면에 내세워 자국을 전선으로 부터 멀리 떨어뜨리려 하였다는
것입니다 .
당근 그 시작은 군사 경제원조로 부터 시작되고 원조에 기댈수록 정치적 종속은 심화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