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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학반(斅學半)
남을 가르치는 일은 자기 학업의 반을 차지한다는 뜻으로, 학업의 반은 남을 가르치는 동안에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이다.
斅 : 가르칠 효(攴/16)
學 : 배울 학(子/13)
半 : 반 반(十/3)
출전 : 서경(書經) 열명하(說命下)
남을 가르치는 일은 자기 학업의 반을 차지한다는 뜻으로, 학업의 반은 남을 가르치는 동안에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이다. 즉 가르치는 일의 절반은 자기 공부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효학반(斅學半)은 서경(書經) 열명(說命) 하편(下篇)에 나오는 말로, 남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일은 자신의 학문을 닦는 데에도 이익이 된다는 뜻이다. 학학반(學學半), 교학반(敎學半)과 같은 말이다. '남을 가르치는 일과 스승에게서 배우는 일은 다 함께 자신의 학문을 닦는 일에 도움이 된다'는 뜻인 효학상장(斅學相長)이나 교학상장(敎學相長)과도 뜻이 통하는 말이다.
부열(傅說)은 중국 은(殷)나라 고종(高宗) 때의 명재상이다. 그는 토목공사의 일꾼이었는데 재상으로 등용되어 중흥의 대업을 이룬 사람이다. 다음은 그가 군주에게 '학(學)'에 대해서 훈고(訓告)하는 내용의 말이다.
은나라의 재상 부열이 말했다. "모든 일을 배움에 있어서 스스로 지혜가 뛰어나다든가 스스로 분별이 바르다고 하는 생각을 버리고, 현자의 가르침을 들어 그 실행을 민첩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덕이 뛰어나게 되는데, 뛰어난 것을 언제나 생각하여 왕으로서 실행할 도(道)를 몸에 쌓도록 해야 한다. 또 사람을 가르치는 일도 필요하다. 가르치는 것은 배움의 절반이다(斅學半). 사람을 가르치는 데 스스로가 실행하지 못할 것을 가르쳐도 사람이 듣는 것이 아니니, 가르치기 위해서는 스스로 수양을 쌓아야 하며,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곧 자기가 배우는 것이다(斅學相長). 자기 몸을 수양할 때 처음에 선한 일을 했어도 후에 태만해지면 아무것도 안되므로, 항상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여 선행에 힘쓰고, 끊임없이 배우는 일에 힘써 정진하면 덕이 닦여 자기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계속 진보해간다. 또 언제 자기가 진보했는지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덕도 높아지고 지혜도 밝아져 많은 사람을 교도할 수 있게 된다."
효학반(斅學半)
남을 가르치는 일이 자기 학업의 반을 차지한다. 학업의 반은 남을 가르치는 동안에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가르치는 것이 배움의 반이다. 가르치는 것이 곧 배우는 것이다. 교학상장(敎學相長)과 맥을 같이 하는 말이다. 교육은 지식과 기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길러주는 것이 우선이다. 맹자(孟子)는 군자의 삼락(三樂) 중에 '천하의 뛰어난 인재들을 구해 가르치는 것(得天下英才而教育之/득천하영재이교육지)'을 포함시킬 정도로 중요시했다. 진심(盡心) 상편에서다.
사람은 남을 가르치는 가운데 배운다. 그래서 가르치는 것이 두 번 배우는 것이란 말까지 나왔다. 교학상장(敎學相長)에서 나온 것처럼 가르치는 일이나 배우는 일 모두 서로에게 도움을 줘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른다(人不學 不知道/ 인불학 부지도)'고 하여 사람 구실을 하는데 배움이 먼저인 것은 물론이다.
여기에 더해 남을 가르치는 것(斅)이 자기 배움의 반을 차지(學半)한다는 이 성어는 교육이 자신의 학문을 닦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중국 고대의 기록으로 상서(尙書)라고도 하는 서경(書經)에 이 말이 사용됐다. 은(殷)나라 무정(武丁) 임금 때의 재상 부열(傅說)이 배움(學)에 대해서 알기 쉽게 풀이한다. 부열은 원래 토목공사의 일꾼이었는데 재상으로 등용되어 중흥을 이끌었던 사람이라 한다. 인용된 부분을 보자.
왕이 가르침을 청하자 부열은 옛날의 교훈을 배우고 본받아야 일을 이룰 수 있고, 배움의 뜻을 겸손하게 하고 독실히 믿어야 몸에 쌓인다고 아뢴다. "모든 일을 배움에 있어서 스스로 지혜가 뛰어나다든가 스스로 분별이 바르다고 하는 생각을 버리고, 현자의 가르침을 들어 그 실행을 민첩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덕이 뛰어나게 되는데, 뛰어난 것을 언제나 생각하여 왕으로서 실행할 도(道)를 몸에 쌓도록 해야 한다. 또 사람을 가르치는 일도 필요하다. 가르치는 것은 배움의 절반이다(斅學半). 사람을 가르치는 데 스스로가 실행하지 못할 것을 가르쳐도 사람이 듣는 것이 아니니, 가르치기 위해서는 스스로 수양을 쌓아야 하며,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곧 자기가 배우는 것이다(斅學相長). 자기 몸을 수양할 때 처음에 선한 일을 했어도 후에 태만해지면 아무것도 안되므로, 항상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여 선행에 힘쓰고, 끊임없이 배우는 일에 힘써 정진하면 덕이 닦여 자기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계속 진보해간다. 또 언제 자기가 진보했는지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덕도 높아지고 지혜도 밝아져 많은 사람을 교도할 수 있게 된다."
효학반(斅學半)은 남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일은 자신의 학문을 닦는 데에도 이익이 된다는 뜻이다. 학학반(學學半)·교학반(敎學半)과 같은 말이다. '남을 가르치는 일과 스승에게서 배우는 일은 다 함께 자신의 학문을 닦는 일에 도움이 된다'는 뜻인 효학상장(斅學相長)이나 교학상장(敎學相長)과도 뜻이 통하는 말이다.
효학반(斅學半)
이 성어는 은(殷; 商)나라 무정(武丁; 高宗)임금 때의 재상 부열(傅說)이 배움(學)에 대해서 왕에게 진언하는 가운데 나온다. 부열은 원래 토목공사의 일꾼이었는데 재상으로 등용되어 중흥을 이끌었던 사람이라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王曰:來! 汝說. 臺小子舊學於甘盤, 既乃遯於荒野, 入宅於河. 自河徂亳, 暨厥終罔顯. 爾惟訓於朕志. 若作酒醴, 爾惟麴糵; 若作和羹, 爾惟鹽梅. 爾交修予, 罔予棄, 予惟克邁乃訓。
왕은 말씀하셨다. “이리오라. 부열(傅說)이여! 나는 지난날 감반(甘盤武丁; 高宗 때의 賢臣)에게 배운 적이 있는데, 부왕의 분부로 초야에 묻혀 살았으며 황하 안쪽으로 들어가서 민생을 살피다가 이 박(?)땅으로 되돌아왔소. 그동안 배우려고 애를 썼으나 끝내 뚜렷하게 얻고 배운 바가 없이 지금에 이르고 말았소. 부디 그대는 내가 훌륭한 뜻을 세울 수 있도록 가르쳐주시오. 만약 내가 술이나 단술을 빚으려 하면 그대는 누룩이 되어주고, 국을 끓이려 하면 그대는 소금과 식초가 되어 주시오. 이와 같이 그대는 이 몸이 배우고 익히게 하여, 언제든지 나의 곁에 있어주시오. 그리하면 나도 오직 그대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할 수 있을 것이오.”
說曰:王! 人求多聞, 時惟建事. 學於古訓, 乃有獲. 事不師古, 以克永世, 匪說攸聞. 惟學遜志, 務時敏, 厥修乃來. 允懷於茲, 道積於厥躬. 惟教學半, 念終始典於學, 厥德修罔覺. 監於先王成憲, 其永無愆. 惟說式克欽承, 旁招俊乂, 列於庶位。(尚書/說命下)
부열이 말하였다. “왕이시여! 많은 견문을 쌓고자 원하는 사람은 훌륭한 업적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며,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배우면 반드시 수확이 있다고 하였으니, 옛 성현의 가르침을 좇도록 하십시오. 옛 성현의 가르침을 스승으로 삼지 않고 길이 빛날 업적을 남겼다는 사람의 이야기는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배움은 뜻을 겸손하게 해야 하니, 항시 예리한 주의를 기울이면 덕의 수양은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진실로 그런 뜻을 마음에 품으면 그 몸에 학문의 도를 쌓으실 수 있습니다. 가르침은 배움의 반이라고 하였으니, 처음과 마지막을 마음에 두고 배움에 항상 힘쓰시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덕은 닦일 것입니다(惟斅學半, 念終始典于學, 厥德修妄覺). 그리고 선왕께서 이룩하신 규범을 잘 살피고 본받으신다면 영구히 과오를 저지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제가 능히 임금의 뜻을 공경하고 받들어 널리 뛰어난 인재들을 불러 모아 관직에 임명하여 임금을 보좌하도록 하겠습니다.”
효학반(斅學半)
남을 가르치는 일이 자기 학업의 반을 차지한다. 학업의 반은 남을 가르치는 동안에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교육은 지식과 기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길러주는 것이 우선이다.
맹자(孟子)는 군자의 삼락(三樂) 중에 '천하의 뛰어난 인재들을 구해 가르치는 것(得天下英才而教育之)'을 포함시킬 정도로 중요시했다. 진심(盡心) 상편(上篇)에서다.
사람은 남을 가르치는 가운데 배운다. 그래서 가르치는 것이 두 번 배우는 것이란 말까지 나왔다. 교학상장(敎學相長)에서 나온 것처럼 가르치는 일이나 배우는 일 모두 서로에게 도움을 줘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른다(人不學 不知道)고 하여 사람 구실을 하는데 배움이 먼저인 것은 물론이다. 여기에 더해 남을 가르치는 것(斅)이 자기 배움의 반을 차지(學半)한다는 이 성어는 교육이 자신의 학문을 닦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중국 고대의 기록으로 상서(尙書)라고도 하는 서경(書經)에 이 말이 사용됐다.
은(殷)나라 무정(武丁) 임금 때의 재상 부열(傅說)이 배움(學)에 대해서 알기 쉽게 풀이한다. 부열은 원래 토목공사의 일꾼이었는데 재상으로 등용되어 중흥을 이끌었던 사람이라 한다.
인용된 부분을 보자.
왕이 가르침을 청하자 부열은 옛날의 교훈을 배우고 본받아야 일을 이룰 수 있고, 배움의 뜻을 겸손하게 하고 독실히 믿어야 몸에 쌓인다고 아뢴다.
그러면서 가르침은 배움의 반이니 처음부터 끝까지 배움을 잊지 않고 시종 배움에 힘쓰면 덕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갖추어질 것(惟斅學半, 念終始典于學, 厥德修罔覺)이라고 말했다. 열명(說命) 하편(下篇)에 실려 있다.
가르칠 교(敎)와 같이 가르칠 효(斅)에는 칠 복(攵), 복(攴)이 함께 들어 있어 매를 가지고 아이를 길들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교편(敎鞭)이나 편달(鞭撻)이란 말이 회초리를 뜻한다고 하지만 학생들이 학대로 느낀다면 정도를 넘어선 것이다.
체벌, 욕설, 폭언 등은 아동학대 및 학교 폭력 정의에 포함돼 엄연히 법률 위반행위에 해당된다니 학교에서는 사랑의 매라도 주의할 일이다.
▶ 斅(가르칠 효, 가르칠 학)은 형성문자로 𢽾(가르칠 효)는 간체자이고, 學(배울 학/가르칠 교/고지새 할)과 𢽾(가르칠 효)와 斆(가르칠 효)와는 동자이다. 뜻을 나타내는 칠복(攴=攵;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學(학→효)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斅(효, 학)은 (1)'가르칠 효'의 경우는①가르치다, 교도하다(敎導--)②교육하다(敎育--)③배우다, 본받다④학교(學校) 등의 뜻이 있고, (2)'가르칠 학'의 경우는 ⓐ가르치다, 교도하다(敎導--)ⓑ교육하다(敎育--)ⓒ배우다, 본받다 ⓓ학교(學校)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남을 가르치는 일은 자기 학업의 반을 차지한다는 뜻으로, 학업의 반(半)은 남을 가르치는 동안에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을 효학반(斅學半)에 쓰인다.
▶ 學(배울 학, 가르칠 교, 고지새 할)은 ❶회의문자로 아이들이 양손에 책을 들고 가르침을 본받아 깨우치니 배우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學자는 ‘배우다’나 ‘공부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學자는 臼(절구 구)자와 宀(집 면)자, 爻(효 효)자, 子(아들 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갑골문에 나온 學자를 보면 집을 뜻하는 宀자 위로 爻자를 감싼 양손이 그려져 있었다. 한자에서는 爻자가 무늬나 배움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고 있으니 이것은 ‘배움을 가져가는 집’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니까 갑골문에서의 學자는 집이나 서당에서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子자가 더해지면서 ‘아이가 배움을 얻는 집’이라는 뜻을 표현하게 되었다. 그래서 學(학, 교, 할)은 (1)철학 또는 전문적인 여러 과학을 포함하는 지식의 조직체. 곧 현실의 전체 또는 그 특수한 영역 및 측면에 관하여 체계화된 지식의 계통적 인식 (2)학문(學問) 등의 뜻으로 ①배우다 ②공부하다 ③흉내내다 ④모방하다 ⑤가르침 ⑥학교(學校) ⑦학문(學問) ⑧학자(學者) ⑨학통(學統) ⑩학파(學派) 그리고 ⓐ가르치다(교) 그리고 ㉠고지새(되샛과의 새)(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닦을 수(修), 익힐 련(練), 익힐 습(習),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가르칠 교(敎), 가르칠 훈(訓), 가르칠 회(誨)이다. 용례로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을 학교(學校), 배우는 사람으로 주로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을 학생(學生),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히는 일을 학문(學問), 사물을 배워서 익히는 일을 학습(學習), 학문에 능통한 사람이나 연구하는 사람을 학자(學者), 학문의 실력이나 역량을 학력(學力), 공부하여 학문을 닦는 일을 학업(學業), 학문의 사회나 학자의 사회를 학계(學界), 한 학년 동안을 규정에 따라 나눈 수업 기간을 학기(學期), 출신 학교에 따른 연고 관계를 학연(學緣), 학문의 기술 또는 학문의 방법이나 이론을 학술(學術), 공부한 이력을 학력(學歷), 공부하는 데 드는 돈을 학비(學費), 배워서 얻은 지식을 학식(學識), 한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 벗을 학우(學友), 학생의 무리 또는 학문을 닦는 사람을 학도(學徒), 학업을 닦음을 수학(修學), 실지로 보고 학식을 넓힘을 견학(見學), 배우지 못함이나 학문이 없음을 불학(不學), 일정한 목적과 방법으로 그 원리를 연구하여 하나의 체계를 세우는 학문을 과학(科學), 인간이나 인생이나 세계의 지혜와 궁극의 근본 원리를 추구하는 학문을 철학(哲學), 언어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을 어학(語學), 학교에 들어감을 입학(入學), 개인의 사사로운 학설 또는 개인이 설립한 교육 기관을 사학(私學), 외국에 가서 공부함을 유학(留學), 학문에 나아가 닦음 또는 상급 학교로 나아감을 진학(進學), 학교에서 학기를 마치고 한동안 수업을 쉬는 일을 방학(放學), 방학을 마치고 다시 수업을 시작함을 개학(開學), 다니던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옮겨가서 배움을 전학(轉學), 학문에 힘써 공부함을 면학(勉學), 배우고 때로 익힌다는 뜻으로 배운 것을 항상 복습하고 연습하면 그 참 뜻을 알게 된다는 학이시습(學而時習), 학문은 미치지 못함과 같으니 쉬지 말고 노력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학여불급(學如不及), 배우는 일에 정성을 다해 몰두함을 학업정진(學業精進), 배움이란 마치 물을 거슬러 배를 젓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한다는 학여역수(學如逆水), 외고 읽을 뿐으로 이해하려고 힘쓰지 않고 또 실천하지 못하는 학문을 기송지학(記誦之學), 배우지도 못하고 아는 것이 없음을 불학무식(不學無識), 널리 공부하여 덕을 닦으려고 뜻을 굳건히 함을 이르는 말을 박학독지(博學篤志) 등에 쓰인다.
▶ 半(반 반)은 ❶회의문자로 소(牛)를 해부하듯이 물건을 나누는 일, 또는 나눈 반쪽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半자는 ‘반’이나 ‘절반’,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半자는 牛(소 우)자에 八(여덟 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八자는 숫자 ‘여덟’이라는 뜻이 있지만, 본래는 무언가를 반으로 가르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그러니 半자는 소를 반으로 가르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半자가 ‘가르다’라는 뜻을 가진 다른 글자와 구별되는 것은 정확히 반으로 가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半(반)은 (1)둘로 똑같이 나눈 것의 한 부분(部分) (2)일이나 물건의 중간(中間) 등의 뜻으로 ①반, 절반(折半) ②가운데 ③한창, 절정, 가장 ④반신불수(半身不隨) ⑤조각, 떨어진 한 부분(部分) ⑥가장 ⑦똑같이 둘로 나누다 ⑧반쪽을 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쪽만 대륙에 연결되고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육지를 반도(半島), 한밤중을 반야(半夜), 한짝으로만 끼게 된 가락지를 반지(半指), 반지름을 반경(半徑), 한 기간의 절반을 반기(半期), 반쪽 면을 반면(半面), 절반으로 자름을 반절(半切), 한 해의 반인 여섯달을 반년(半年), 절반으로 줌을 반감(半減), 본래 값의 절반을 반가(半價), 반 걸음을 반보(半步), 하나를 둘로 똑같이 나눔을 절반(折半), 반반씩 둘로 나눈 것의 앞부분을 전반(前半), 반반씩 둘로 나눈 것의 뒷부분을 후반(後半), 반이 더 됨을 과반(過半), 절반이 지남을 태반(太半), 두 분량이 같음을 등반(等半), 절반으로 나눈 것의 위쪽을 상반(上半), 절반으로 나눈 것의 아래 쪽을 하반(下半), 얼굴을 반만 아는 사이라는 반면지식(半面之識), 잠깐 만난 일이 있었을 뿐인데도 그 얼굴을 기억하고 있음을 반면식(半面識), 반은 승려이고 반은 속인이라는 반승반속(半僧半俗),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함을 반신반의(半信半疑), 얼굴만 겨우 알 뿐이고 교제는 얕은 사이라는 반면지교(半面之交), 일을 하다가 중도에서 그만둠을 반도이폐(半途而廢), 아들과 다름없이 여긴다는 반자지명(半子之名), 몸의 좌우 어느 한쪽을 마음대로 잘 쓰지 못함을 반신불수(半身不遂) 등에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