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를 봤다. "절찬 상영중" 이기 때문에 내용을 자세히 말할 순 없다. 줄거리는 대략 무당 두명과 지관(풍수지리 전문가), 장의사 넷이서 관을 이장하면서 생기는 일들이다. 공포영화를 프래디의 피자가게 외에 본 적이 없고 무서운 거 봐봤자 심야괴담회 정도여서 원래는 파묘를 딱히 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친구가 보자길래 그냥 김고은 좋으니까 보러 가기로 했다. 그냥 김고은 보고 친구 만나려고 가는 거였어서 예고편도 영화관 가는 길에 봤다. 시작하기 전까진 평온했는데 스크린에 커다랗게 파묘 하고 뜨니까 무서우면 어떡하지 막 보다가 뛰쳐나가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근데 생각처럼 막 도망가고 싶게 무섭진 않았다. 재밌게 몰입감 있게 무서운 정도였고 일상 속에서 자기 전에, 엘베 탈 때, 샤워할 때 생각날만한 타입의 공포물이 아니어서 후유증도 없다. 구멍 없이 주조연 모두 연기가 좋았고 내용 부분에서도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일의 스케일이 커지기 때문에 갈수록 완전히 몰입해서 보게 됐다. 오랜만에 재밌게 본 영화였다.
나는 무속신앙 같은걸 믿지도 않고 풍수지리 같은 미신도 안 믿는다. 그런데도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일하는 과정이 되게 흥미롭고 마음이 끌렸다. 물론 그들이 하는 일의 내용을 동경하는 건 아니고 일하는 모습들이 멋있었던 것 같다. 뭔가 그들만 아는 자기들의 분야에서 사건이 전개되는 가운데 계속해서 새로운 위험을 감지하고 일을 처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들이 다 신기하고 재밌어 보이고 폼난다고 해야 되나. 특히 지관(최민식)이 좋았다. 몇 장면에서 손에 흙을 쓱 묻혀서 혀로 핥아 맛을 보고 바로 땅의 길흉을 판단하는 게 현실에선 그냥 미신이지 하는데 프로페셔널 해 보였다. 게다가 처음엔 그냥 돈 벌려고 일하는 거 그뿐인 사람 같았지만 돈이 안되면서 아주 위험한 일, 그렇지만 이 땅을 밟고 있는 모두를 그리고 앞으로 밟을 자손들을 위한다면 지관이 해야 할 일에 뛰어든다. 돈이 아닌 사명으로 움직이는 직업인은 어떤 직업을 가졌든 멋진 것 같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에 반대해 의사들이 파업을 했다. 민감한 주제일 수 있고(최악의 상황을 예로들자면 여기 의사선생님 자녀가 있을 수도 있는거니까) 어차피 내가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니까 굳이 왈가왈부 할거 없다. 나는 그 행적의 옳고 그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건 아니고 그것에 대해 사람들끼리 싸우는 걸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주장이 있었다. 공무직이 아닌 직업에 사명감을 왜 요구하냐. 그럴거면 공산주의국가에 가서 살라. 이런 식의 주장이었다. 진짜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맞는 말이긴 하다. 자본주의면 그냥 쉬운 표현으로 자본=돈 돈주의이다. 돈주의 사회니까 직업도 가장 먼저 돈벌이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치만 그럼에도 자본주의 국가이기 전에 그냥 함께 더불어사는 사회의 일원으로 자기가 맡은 일의 원래 본분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무엇이 우선이냐, 결국 가치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차피 서로 설득으로 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직업을 가장 먼저 돈을 버는 수단으로 보는 사람들이 잘못됐단 얘기를 할 생각이 없다. 근데 그 사람들이 옳든 말든 어느쪽이 맞든 틀리든 그냥 직업에 대해 생각할 때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조건 사명이다. 너무 당연하고 이상적이기만 한 이야기이더라도 모두가 사명을 바라보고 일하는 세상이 모두에게 서로에게 좋기 때문이고, 그래야 사람이 사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진로를 생각할 때도 그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직업으로써 사람들의 무엇을 충족시키는지, 무엇을 유익하게 하는지 무엇을 창출하는지를 보고 싶었다. 그런 것에 초점을 맞췄더니 의미가 추상적이기보다는 확실히 눈에 보이는 일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의 삶에 부수적인 것들보다는 필수적인 필요들을 간접적이기보다는 직접적으로 채우는 일이 나에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애초에 그쪽에 아무 재능도 없어서 못하지만) 가수, 운동선수, 화가(특히 화가), 시인 이런 직업을 내 평생직업으로 가지고 살 순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직업들을 깎아내리는 건 아니다. 우리 엄마는 미술을 전공하셨고 내 동생의 꿈은 야구선수다. 모두 멋지고 필요하지만 사람의 삶을 즐겁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은 나에게 부수적인 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꾸 강조하지만 덜 가치롭다는 말이 아니라 의미를 항상 직접 체감할 수 없다는게 싫다는 거다. 내가 일하면서 처리할 모든 업무가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것과 직결되어야 된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본질적인 의미가 좀 더 실리적인 쪽일 때 충실하게 뚜렷한 사명을 가지고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수년간 진로에 대해 다양한 직업들, 내 적성과 흥미들을 생각하면서 느꼈던 것 중 하나를 정리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