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 영화지만 만일 주연배우들이 이들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 영화들이 지금까지 찬사를 받으며 명작으로 내려올 수 있었을까요? 배우들의 외모와 카리스마가 얼마나 영화 속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것은 물론이고, 로버트 테일러 또한 이들 전설의 중심으로 그 누구도 근접 못할 매력의 소유자로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헐리우드의 미남 배우 계보는 무성 영화 시대의 루돌프 발렌티노로부터 시작하여 타이론 파워-게리 쿠퍼-로버트 테일러-록 허드슨-로버트 레드포드를 거쳐 탐 크루즈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 프랑스 배우이긴 하지만 알랭 들롱을 빼 놓을 수 없겠지만...
그중에서 특히 빛나는 인물은 로버트 테일러일 것입니다. 선이 굵으면서 부드러운 조각 같은 외모인데, 영화 전문가들과 일반 대중 모두 그를 고전적인 의미에 있어서 사상 최고의 미남 배우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갈매기 눈썹에, 우뚝한 코, 회색빛이 감도는 푸른 눈, 희고 고른 치아,
1940년대와 50년대 영화팬들을 사로 잡았던 최고의 미남배우 로버트 테일러. 본명은 ‘스팽글러 알링톤 브르흐’라는 다소 어려운 이름입니다.
* <원탁의 기사>에서
그저 여자 관객들을 끌어 모을 만한 잘생긴 남자 배우감으로 발탁되어 배우로서의 캐리어를 시작한 그는 그 수려한 용모 덕에 평단의 혹평을 묵묵히 감내해야 했습니다. 빼어난 외모와는 달리 그는 촬영장에서 성심성의를 다하며 동료와 스탭들의 호감을 사는 성실남이었다고 합니다.
1936년 당대의 대여배우 그레타 가르보와 공연한 <춘희>에 이르러 마침내 '로버트 테일러도 연기를 할 줄 안다'는 익살스런 호평을 얻었고 진정한 연기자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 <흑기사>에서
이 귀족적 풍모의 당당한 미남, 로버트 테일러의 출세작은 단연 <애수(Waterloo Bridge, 1941)>입니다.비비안 리와 공연한 이 영화 한 편으로 그는 단박에 전 세계 여성팬들을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2차 대전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워털루 브릿지 위에서 중년의 장교가 추억에 잠기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영화는 이십여 년 전 과거로 돌아가 1차 대전 당시. 공습을 피하다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두 젊은이의 운명은 전쟁의 와중에 얽히고 꼬여, 결국 비탄에 빠진 여자는 사랑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트럭에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 <쿼바디스>에서
전쟁의 와중에 사랑이 시작되고, 그로 인해 가슴 아프게 끝나버린 비련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전 세계 영화팬들로 하여금 눈물로 손수건을 흠뻑 적시게 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아무튼, 이 영화 한 편으로 로버트 테일러는 풋내기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버리면서 당대의 배우로 올라섰고, 동시에 손에 닿을 수 없는 헛된 연모의 대상으로 전 세계 여성의 가슴 속에 깊숙히 자리잡게 됩니다.
* 망중한
하지만 애초 비비안 리는 남자 주인공 로이 역을 로렌스 올리비에가 맡기를 원했고, 로버트 테일러가 낙점된 데에 불안해했다고 합니다. 당시 남편에게 쓴 편지에서 '로버트 테일러는 정말 그림같은 남자지만 분명 미스캐스팅'이라고 불평했지만, 나중에 비비안 리는 개인적으로 <애수>를 가장 좋아하는 출연작이라 밝힐 정도였습니다.
* <원탁의 기사>에서
아무튼 결과론이지만, 남자 주인공 역에 로버트 테일러를 캐스팅한 것은 MGM 영화사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1년 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세계 최고의 여배우로 자리매김해, 캐스팅 문제까지 입김을 불어넣을 힘이 있던 비비안 리가 계속 고집을 부려 로이역을 올리비에 경이 맡았더라면... 아마도 영 딴판인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요..
단단한 체격 등 어디 한 곳 흠잡을 구석이 없는 완벽한 미남이었습니다. 약간 처진 윗입술 끝이 웃을 때면 활처럼 휘어 올라가 달콤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1911년 네브라스카 출신인 그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는데, 담당교수를 무척이나 따랐던 모양입니다. 그가 LA의 포모나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자, 테일러도 그를 따라 학교를 바꿀 정도였다고 합니다.
* <쿼바디스>에서
그 결정이 결국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 연극활 동 중 그는 MGM 영화사의 스카우터에게 픽업이 됩니다 .빼어난 용모 덕을 본 것이지만, 이후 그의 용모는 배우경력에 실상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지나치게 잘생긴 외모가 다양한 배역을 시도하는데 오히려 장해가 되었고, 연기력을 인정받는데도 걸림돌이 된 면도 있었죠.
헐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미남자인 그의 주변에 여자가 들끓지 않았을 리 없지만, 그렇다고 고질적인 바람둥이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1939년 당대의 여배우였고 네 살 연상인 바바라 스탠윅(두번째 결혼)과 떠들썩한 결혼식을 올렸으나, 유독 많은 작품을 공연한 에바 가드너(이 여자의 남성편력은 대단히 유명합니다)를 비롯한 다수의 여배우들과 심심찮게 염문을 뿌리며 바바라의 속을 끓인 끝에 결국 1951년 이혼했습니다.
* 바바라 스탠윅과
로버트가 라나 터너와 바람을 피운 일로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을 정도니 그녀도 잘생긴 남편 때문에 무척이나 속앓이를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혼 후에도 같이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을 정도니 그녀는 로버트를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녀는 로버트 테일러가 죽을 때까지 그의 수입 15%를 부양비로 받으며 독신으로 늙었습니다.
* <흑기사>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일찍이 비행기 조종을 배웠던 로버트 테일러는 2차 대전 중에 해군에 입대해 항공교관으로 복무했습니다. 비행과 사냥, 낚시여행을 즐겼던 그도 자신의 자가용 비행기 이름을 바바라 스탠윅의 애칭인 '미시'로 붙일 정도였으니 꽤나 그녀를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제작사를 세워 제작을 겸하기도 하던 그는 말년까지 계속 활동하다가 1969년 폐암으로 죽었습니다. 향년 58세.
* <형제는 용감하였다>에서 스츄어드 그랜저와 안 브라이스
흡연가의 한 사람으로서 씁쓸한 얘기지만, 그는 상당한 애연가였습니다. 그의 장례식에서는 절친한 친구였으며, 후일 미국의 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이 고인을 기리는 조사를 읽었습니다.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자신의 별을 남겨둔 채로 그는 정말로 밤하늘의 한 점 별이 되었습니다. 사실, 로버트 테일러는 불운한 배우였을지도 모릅니다. 지나치게 빼어난 외모가 오히려 배우로서의 성장을 방해했을 수 있기 때문이죠.
특별히 상복도 없었고, 어마어마한 필모그래피를 남기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올드 영화팬들의 가슴속에 그는 영원히 '세기의 미남'으로 남아, 전설이 되고 있습니다.
[ 대표작 소개 ]
< 애수(Waterloo bridge) >
마빈 르로이 감독은 마이라와 로이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기까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우연한 사건들을 교묘히 배치하여 멜로드라마의 전형을 만들어 냈습니다. 또한 비비안 리의 청초한 모습과 로버트 테일러의 중후한 남성미는 이후 만들어진 숱한 비극적 러브스토리의 전형적인 인물상이 되었다고 할 수 있죠.
특히 비비안 리는 마이라 역을 통하여 성녀(聖女)와 창녀(娼女)라는 양극적 이미지를 훌륭하게 연기하여 비평가들로부터 금세기 최고의 여배우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로이와 마이라가 춤출 때 흘러나오던 <올드랭사인 Auld lang syne>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음악으로 남아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6·25전쟁 중에 피난지인 부산과 대구에서 처음 개봉되어 많은 관객들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였고, 이후로도 여러 차례 재개봉되었으며, 이 영화의 영향으로 마스코트가 유행하기도 하였습니다.
< 애수 줄거리 >
안개 자욱한 런던. 워터루 브릿지 앞에 한 대의 차가 멈추고 기품이 있어 보이는 군복의 신사가 내립니다. 그는 알수 없는 회환의 눈물을 담고 브릿지 난간에 기대인 채 손에 쥔 작은 마스코스를 내려다 봅니다. 그리고 가슴 아픈 옛 사랑의 추억 속으로 빠져 듭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 휴가를 받아 돌아온 런던에서 내일 다시 부대로 돌아가야하는 25살의 젊은 대위 로이 크로닌은 공습경보에 놀라 허둥대는 한 처녀를 도와 지하철로 대피합니다. 혼잡한 대피소 안에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두사람.그가 다시 전쟁터로 떠난다는 것을 알게 된 처녀는 로이에게 작은 마스코트를 주며 행운을 빌어 줍니다.
그날 밤. 올림픽 극장에서 올가 키로바 발레단의 공연을 관람하던 로이는 낮에 만났던 처녀를 무대 위에서 발견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마이라 레스터. 발레단의 무희였지요. 다시 만난 반가움은 기쁨,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설레임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던 두 사람은 서로 더할 수 없이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로이의 청혼을 행복하게 받아 들이는 마이라. 그들은 온 세상을 얻은 듯 기쁨에 들뜨지만, 미처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에 로이의 출정 명령이 떨어집니다.
실망스런 마음을 감춘채 워터루 브릿지 역에서 로이를 떠나 보낸 마이라는 공연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바람에 완고한 발레단에서 해고 되고 맙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힘든 일. 그러나 로이가 있어 행복한 그녀. 어느날 로이의 어머니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가 떠나기 전 어머니에게 마이라의 신변을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약속장소에 갔던 마이라는 우연히 전사자 명단을 보게 되고, 그 안에서 로이의 이름을 발견합니다. 로이를 잃음으로서 모든 것을 잃어 버리는 마이라. 그녀에겐 현재도 미래도 없었습니다. 죽음 보다 더 캄캄한 삶을 하루 하루 살아 갈 뿐인 마이라는 거리로 몸을 내던집니다.
전쟁에 지친 남자들에게 웃음과 몸을 팔며 살아가던 그녀는 그 날도 워터루 브릿지역에서 오늘 밤 자신을 살 만한 남자를 찾아 역전 앞을 서성거립니다. 때 마침 기차가 도착하고 수 많은 군인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리고 그 군인들의 무리 속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가 마이라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와 그녀를 부등켜 안습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로이는 그렇게 마이라에게 돌아온 겁니다. 얼굴을 매만지며 많이 야위었다고 걱정해주고 어떻게 알고 마중나왔느냐고 신기해 하는 그를 그녀는 말없이 바라보며 눈물만 짓는데...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세월을 슬퍼하는 마이라와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로이. 행복한 결혼식을 앞두었지만 로이의 사랑을 받아 들일수 없는 마이라는 그를 떠나 안개 자욱한 밤에 워터루 브릿지를 거닙니다.
그 옆을 셀수 없이 지나가는 군용 트럭 들의 눈부신 헤드라이트. 한 순간, 그 눈부신 빛 속에 마이라의 눈물 젖은 모습이 멈추었고.. 그리고 귀를 찢는 경적 소리와 함께 바닥을 뒹구는 마스코트.
한해를 마감하는 올드랭 사인의 구슬픈 멜로디가 흐르고...주인 잃은 작은 마스코트만이 차가운 보도 위에 남겨졌습니다.
< 테마 음악,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
1788년에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번스에 의하여 작사,작곡되었습니다. 곡명은 ‘그리운 옛날’이라는 뜻이며, 한국에서는 ‘석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노래는 전세계적으로 이별할 때 불리고 있으나 내용은 다시 만났을 때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지요.
“어릴 때 함께 자란 친구를 잊어서는 안 돼. 어린 시절에는 함께 데이지를 꺾고 시냇물에서 놀았지. 그 후 오랫동안 헤어져 있다 다시 만났네. 자아, 한 잔 하세.” 하면서 다시 만 날 수 있게 되기를 빌며 헤어질 때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00년을 전후하여 애국가를 이 곡조를 따서 부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