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儉城은 바로 衛滿朝鮮의 都邑,단군조선의 都邑은 아니다.

그림coo2.net 발췌
---------------------------------------------
史記卷一百一十五 朝鮮列傳 第五十五
---------------------------------------
注 集解徐廣曰:
「昌黎有險瀆縣也。」
索隱韋昭云「古邑名」。
徐廣曰「昌黎有險瀆縣」。
應劭注「地理志遼東險瀆縣,朝鮮王舊都」。
臣瓚云「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也。
-----------------------------------
漢書 卷二十八下 地理志第八下
-----------------------------------
요동군(遼東郡)편에 나오는 험독(險瀆)에 대한 설명부분
險瀆
應劭曰 朝鮮王滿都也 (응소왈 조선왕 위만도읍이다)
依水險 故曰 險瀆 (험수에 의지해서 험독이라한다)
臣瓚曰 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 此自是險瀆也(신찬왈 왕검성은 낙량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 이로서 험독이라한다)
師古曰 瓚說是也 (신찬의 말이 맞다)
浿音普大反
----------------------
삼국지 위지(魏志) - 위략
----------------------
漢以盧燕王 朝鮮與燕界於溴水 及反入匈奴 燕人衛滿亡命胡服東渡水
한이로연왕 조선여연계어추수 급반입흉노 연인위만망명호복동도수
한(漢)에서 노관을 연왕으로 삼았다.
조선과 연(燕)은 추수(溴水)를 경계로 삼았다.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갔다.
연나라 사람 위만이 호복(胡服)을 입고 동쪽으로 추수(溴水)를 건너 망명을 하였다.
---------------------------
추수(溴水)- 명일통지(明一統志)
---------------------------
溴水在濟源縣 其源有三 一出琮山俗呼白澗水春秋公諸侯于梁此 一出縣西二十里曲陽城西南山
一出陽城南溪俱東南流與瀧水合又東南至溫縣入于黃河
추수재제원현 기원유삼 일출종산속호백간수춘추공제후우량차 일출현서이십리곡양성서남산
일출양성남계구동남류여롱수합우동남지온현입우황하.
추수는 제원현에 있다.그곳에는 3가지의 시작점이 있는데 그 하나는 종산 일명 백간수이며,
하나는 현의 서쪽이십리 곡양성 서남산에서이고 마지막 하나는 양성 남계 동남류가 롱수와 합해져
온현에 다다라 황하로 들어가는곳이다.
먼저 운영자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위만조선지와 고조선지를 구별하지 않고 고조선지와 위만조선지가 같은 하북성 창려나 천진등으로 중국사가 즉 사기나 한서를 쓴 사람들에게 휘둘리고있어 이에서 벋어나지 못하고있다는 점이다. 이는 착각도 보통 착각이 아니다.
사기를 쓴 사마천이나 전한서를 쓴 범엽은 기원전 2세기 이후 사람들로 그들이 사서에 기록한 조선은 바로 위만조선이지 기원전 4세기에 망한 고조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원전2세기 사람들이 그들보다 200년전에 분열된 다른나라의 역사를 대상으로 전쟁장면을 기록 할 수가 있을까? 사기나 한서는 분명히 위만조선을 상대로 한나라 유철이 분열책으로 승리하고 잠시 4군을둔 승전을 기록했을 뿐이다.
당시 고조선지에는 이미 부여가 고조선의 역할울 하고 고구려가 부여의 태생적 한계에 반기를 들고 약 150여년 후에 그 후예국임을 표방하고 일어났다,남에는 위만조선이 있었고 북에는 부여를 비롯한 고구려와 백제,신라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서 秦나라 멸망후 천인 유방이 전한을 건국을 하려하나 항우에 휘둘리고 있을때 맥인들과 흉노가 그들을 도우려 내려왔다는 기록이 前漢書 券1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논리적 역사의 진실이다!!.
사기집해나 색은은 시대적으로 위만조선이 멸한지 800년 이후에 작성된 사서로 그 저자들인 서광이나 배인등 역시 상대에 작위적으로 변형된 위만조선의 하북위치설로 오인되어 오가는 사가들의 주해는 잘못된것이다. 즉 험독은 조선왕 위만의 수도이지 고조선왕의 수도였던 하북지역이 아니였던것이며 이를 마치 위만조선과 고조선지를 혼동시켜 위만이 고조선을 이은 적통국가의 군주처럼 기술한것이다.
운영자가 누누히 주장하는것 처럼 위만은 하남성 제원에 위치한 추수와 롱수 즉 조선패수를 넘어와 산서남부의 상하雲障을 넘어 秦나라 空地인 현 산서 동남부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우거왕을 죽이고 번조선이란 나라를 이어받은 것이다. 이런 지리적 설명이어야만 논리적으로 조선패수와 연나라 위치 그리고 흉노와 한나라와의 관계가 쉽게 설명 되는 것이다.

즉 위만조선 이전의 번조선은 패수와 연나라의 경계를 하여 산서동부에 위치하였고 연은 현 통칭적으로 알려져있는 하북 연산지가 아닌 하남의 냑양부근 그리고 흉노는 산서의 분하서부와 하투및 섬서지역을 장악하였던것으로 추정된다.부여는 하북과 산서북부 요녕등의 고조선지를 점유하였던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선의 험독이 있다는 창려는 현 하북이어서는 안되며 현재 하남과 산서의 王屋山 혹은 陽城 주변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험독의 한자중 瀆은 도랑독 혹은 물가독으로 글자그대로 황하가 흐르는 저습지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고래로 대륙에 4瀆이 있어 北瀆이 바로 제원의 濟瀆을 일컬었다고하니 瀆은 일반명사가 아닌 고유명으로 지명에 붇여져 조선왕이있는 도읍명으로 불려졌을것으로 생각된다.
심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