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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삼하 15:13-14)
목마른 영혼 63:1~4
[다윗의 시,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4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만족한 영혼 63:5~11
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8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9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10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
11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께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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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시편 기자는 황폐한 땅에서 주님을 갈망하며, 주님의 권능과 영광을 보길 원합니다. 그는 그의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는 인자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워할 것입니다. 그를 노리는 자들은 멸망할 것이지만, 주님을 따르는 그의 영혼은 주님의 오른손이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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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영혼 63:1~4
63편은 시편 기자가 원수들에게 쫓겨 유다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을 갈망하며 고백한 기도시입니다. 자신을 찾아 멸하려는 원수들 때문에 시편 기자는 황폐하고 메마른 광야로 도피했습니다. 메마른 땅이 단비를 기다리듯, 수척해진 그의 육체와 영혼은 주님을 갈망하고 앙모합니다. 그는 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권능과 영광을 경험하던 때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사랑(인자)이 자신의 생명보다 낫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사귐이 없다면 그의 삶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으로 뜨거워진 그의 영혼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는 평생토록 하나님을 찬양하며 손을 들어 기도하리라고 서원합니다. 하나님 사랑을 묵상할 때 고난을 이겨 낼 힘을 얻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원수를 피해 광야로 도피한 시편 기자가 갈망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나에게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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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한 영혼 63:5~11
하나님 사랑은 최고 음식으로 차려진 진수성찬을 즐기는 것과 같습니다. 시편 기자의 목마른 영혼은 하나님 사랑으로 채워졌고, 그는 기쁜 입술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성도에게 하나님 사랑은 최고 양식입니다. 주님을 향한 그의 갈망은 밤에도 계속됩니다. 그는 힘을 다해 주님을 따르고, 주님은 그분의 날개 아래 그를 품어 주십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오른손이 자신을 붙들고 계심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이 강한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시면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또한 시편 기자는 원수들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을 것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기로 다짐한 자는 기뻐하지만, 거짓말하는 자는 말문이 막힐 것입니다.
●더 깊은 묵상
메마른 광야에서도 시편 기자의 영혼이 만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난과 위기가 닥칠 때 나는 무엇을 하며 그 시간을 통과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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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드리는 기도
믿음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고, 작정하셨으며, 섭리하심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하신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이 심지어 죽음의 길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선하며, 최상의 것임을 알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이와 같이 신뢰하는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곧 자기 부인이 됩니다. 그럴 때 믿는 자는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게 될 것이고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반면 이렇게 기도하기는 했으나 온전한 믿음이 없다면 불안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원대로 해 달라는 내 간구를 곧이들으시고 정말 하나님의 원대로 하시면 어쩌나?’라고 생각하며 불안해한다면 사실 믿음으로 기도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정직하게 나아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말씀 듣기는 어떤 기도로 이어지고 있습니까? 자기를 부인하며 가난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굳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들은 하나님 말씀이 기도를 통해 삶의 일부가 될 때, 그 말씀은 참된 하늘의 기쁨과 만족과 은혜를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설교 듣는 법 / 김형익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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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시편 63편 1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무엇을 경험하느냐보다 그것을 신뢰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풍요로운 땅으로 인도하실 수도 있지만,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으로 인도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느 때든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고 내 삶의 주님이심을 고백한다면, 고단한 순간은 오히려 하나님을 찾고 의지할 기회가 됩니다. 인생의 목마름은 영원한 생수이신 주님으로 해갈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인생은 광야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경험합니다.
어떤 보물보다 주님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을 누린다. - A. W. 토저
오늘의 기도
하나님! 마르고 황폐한 상황에서 주님을 바라볼 때 기쁨과 즐거움이 풍족하게 하시니, 그 은혜에 감사합니다. 제 영혼의 참된 만족은 오직 하나님 안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오른손이 저를 붙드심을 기억하며, 주님이 주시는 새 힘으로 충만한 하루를 살아가게 하소서.
하나님은 내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나의 도움이 되어 주시며, 나를 끝까지 붙잡아 주시고, 감사와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주님을 애타게 찾고, 주님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나의 마음을 부디 알아 주시고, 이 갈급함과 이 애타는 마음에 단비를 내려 주시고, 필요를 채워 주시기를 소망하자
이 생명 다하도록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끝까지 완수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나의 길을 인도해 주시는 그 은헤와 사랑에 감사하자
내가 주님께만 매달리고, 주님께서 당신의 오른손으로 붙잡아 주시고, 친히 도움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하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풍성히 누리고 경험하자
다윗은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습니다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63:2) 그러나 이 시는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라는 표제에서 알 수 있듯이 다윗이 반역자들의 칼을 피해 광야에 있을 때에 지은 시입니다 그렇다면 왜 다윗은 광야에 있었으면서도 마치 성소에 있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 하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있는 곳 어디에서나 함께 하시기 때문에 비록 황폐한 광야에 있었지만 거기도 성소가 되는 것이고 거기서도 예배하고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63:1~2)
참으로 우리 하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니, 우리가 현재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상관 없이 우리 몸이 성소인 줄 믿고 그 성소에서 주를 찬양하기 원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시63:3~4)
굶주린 중에 기름진 것을 먹이실 것을 믿고, 괴로운 중에 평안하게 하실 것을 믿고, 침상에서든 새벽에든 어느 때든 어디에서든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주를 찬송하기 원합니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시63:5~6)
그때에 우리의 원수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 없어지고, 우리는 주의 도우심을 받아 주의 그늘 아래에서 즐겁게 예배하게 될 줄 믿습니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시63:7~10)
하나님은 성실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성실함과 인자함이 그와 함께 하리니"(시89:24)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될 줄 믿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왕하18:7) 어디에서든지 이기게 하실 줄 믿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대상18:6)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2절 주는 나의 하나님입니다. 마르고 황폐한 광야에서 물을 찾던 시인은, 그 목마름이 육체의 갈증만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물이 없어서 불편한 게 아니라, 영혼이 채워지지 않아 고단했던 것입니다. 주의 권능과 영광을 마주하던 성전과 성소는 광야에 없지만, 그는 간절히 주를 찾고 육체와 영혼을 다해 주를 앙모합니다. 그렇게 찾아내고 눈에 담은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묵상 중에 간절히 갈망하고 기다리며 찾아야 할 하나님은, 성경 속 영웅들의 하나님, 누군가에게 들은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5-8절 나의 도움이십니다. 시인은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서 뜨거운 광야의 낮을 또 한 번 버티고 밤을 맞이했습니다. 불편한 잠자리지만 누워서 하루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하루의 생명이 연장되고 새벽이 되자, 시인은 신실한 하나님의 말씀을 읊조리며 경탄합니다. 목마름과 배고픔 속에서도 하나님은 ‘골수와 기름진 것’(최상의 음식을 가리키는 표현)을 먹는 것보다 더 큰 만족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은 우리를 놓은 적이 없습니다. 붙잡힌 그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3,4절 시인은 하나님께 평생을 겁니다. 평생의 송축과 기도를 서원합니다. 그의 손에 부와 영광이 주어져서 드리는 고백이 아닙니다. 생명을 위협당하는 광야에서 나온 찬양입니다. 생명을 채울 것을 쫓던 광야에서, 주의 인자하심이 자신을 쫓고 있음을 봤기 때문입니다. 환경과 상황이 변하고 사람들이 떠나도, ‘인자’(헤세드)만은 어디든 끈질기게 그를 추격해왔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광야에서 아무 희망도 붙잡을 수 없는 빈손을 인자하신 하나님을 향해 들어 올립니다. 시인과 함께 손을 들 수 있겠습니까? 세상 것들만 움켜쥐느라 무거운 손은 아닙니까?
9,10절 왕궁에서 광야로 쫓겨난 시인은, 모든 상황이 바로잡히길 간구합니다. 광야에서 드린 찬양의 맹세가 왕궁에서 이어질 거라 확신합니다. 기도밖에 할 수 없는 광야 같은 상황이라고 절망하고 있진 않습니까? 기도만 할 수 있는 광야라서 찬양해야 하지 않을까요?
기도
공동체-어떤 어려운 형편도 주를 향한 마음과 찬양을 가로막지 못하게 하소서.
본 시편은 다윗이 압살롬으로부터 도망하여 광야에 있었을 때라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압살롬이 예루살렘궁에 워낙 빨리 들이닥쳤기에 다윗은 몸 만 빠져 나왔습니다
그만큼 급했고 위험했습니다 다윗이 도망가는 중에 시므이라는 사람은 다윗을 욕하고 조롱하기까지 했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도대체 무슨일인가 ? 했을 겁니다
1절에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라고 말씀합니다
물이 없고 황폐한 땅이라는 말은 절망적인 표현입니다
그런 가운데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물이 없고 황폐한 땅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면 믿음을 잃어버릴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물이 없고 황폐한 땅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다윗에겐 어떤 곳이든 성소입니다
우리가 어디서든 하나님을 찾을수 있고 그곳이 바로 성소라 할수 있습니다
다윗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을수 있었던 이유 2가지입니다
첫째, 자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3절에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여기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낫다는 것은 주가 자신의 생명보다 낫다는 말로
자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생명보다 주가 자신의 생명보다 더 가치가 있기에 물이 없고 황폐한 땅에 서도
연연하지 않은 것입니다
물이 없든 물이 있든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물이 없든 물이 있든간에
주님의 사랑을 가치있게 여기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을 표현합니다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골수와 기름진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고 싶다면 주의 사랑은 가치 있습니다
라고 고백하면 됩니다
구체적으로 6절에 밤중에도 주를 묵상하며 밤새 주를 깊이묵상합니다
절망적인 환경은 무엇을 묵상하는가 중요합니다
다윗은 절망적인 환경 가운데 절망적인 생각을 하기 보다 주를 깊이 묵상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이렇게 해야 합니다
둘쨰 다윗이 찬양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도움을 믿기 때문입니다
7절에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다윗은 주의 도움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도망할때
따라오려거든 후새를 따라오지 말고 예루살렘에 남겨두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도움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은 끝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과 멀리하는 사람을 대조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8절 하반절에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 하는 사람은 9절에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
우리는 어떤 형편에 놓였습니까 혹시 다윗과 같은 형편에 놓이지 않았습니까?
다윗은 자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어서 절망중에 있는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하는
우리 모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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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다윗은 자신이 비록 원수들에게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믿음은 그 무엇도 꺾을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이 자신의 모든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임을 3절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처지는 사막이라고 하여도 그 영혼은 천국에 거하는 자였습니다. 그 어떤 사막도 다윗이 가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끊을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상황앞에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며 그분만을 찬양하는 믿음을 소유하였습니다.
묵상하기
나는 다윗과 같이 사막에서도 천국의 찬양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2.주는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기에
다윗이 사막에서도 찬양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완전한 도움자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원수들을 분명코 멸망시키고 자신을 회복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절망속에서도 찬양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도우시는 분으로 받들고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환란을 당하여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지켜 주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 승리하게 하실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묵상하기
나는 다윗과 같이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나의 도움자로 확신하고 살아가는가?
시편 63편은 62편과 마찬가지로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광야로 피신했을 때 작성한 노래입니다.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삼하 15:28).
너희에게서 내게 알리는 소식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루터에서 기다리리라 하니라(삼하 15:23).” 그의 심령은 ‘물이 없어 메마르고 지친 땅과 같이 목마른(1절)‘ 간절한 상태였고, 한 시도 어떤 상황으로 치달을지 알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이때 그가 떠올린 것은 다윗의 그 초라한 장막에서 발견했던 주의 능력과 영광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2절).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모스 9:11~12)” 다윗의 장막은 모세의 시대 광야에서 만든 그 정교한 디자인과 명령하셨던 조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엘리베이터도 없고, 습기로 곰팡이가 있는 지하 예배당이나, 과거 전쟁 후에 옮겨 다니는 천막교회와 같은 임시 처소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허물어진 장막을 다시 일으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눈물이 있고, 무릎이 있고, 하나님과의 교제와 나눔이 풍성하고 친밀한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완벽한 모세의 성막도, 화려한 솔로몬의 성전이 아니라 여호와를 찾는 심령의 가난함과 간절함임을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이제 그 예배의 처소는 다윗에게 광야라는 메마른 땅으로 변했습니다. 초라하게 스스로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 법궤를 그 장막으로 돌려보냈지만, 그 생명보다 더 소중한 주의 인자하신 그 헤세드의 사랑을 구합니다. 그는 황량한 그곳에서도 동일한 여호와를 찾으며, 화려한 궁정에서 취했던 귀한 음식들보다 더 만족하고 기쁨이 넘치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문제가 문제가 되지 않고, 고난이 고난이 되지 않는 상태, 그것이 신앙의 정수입니다. 선교지로 가야만 선교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있는 곳이 보내신 곳이며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이 찾는 사람임을 깨닫는 인생,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다고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자녀인 것입니다.
부귀영화와 무병장수의 허탄한 구름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전쟁은 여호와께 있음을 고백하며,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는 변함없는 도움을 구하며 그 전능하신 날개 아래 거하는 주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의 말씀요약
시편 기자는 황폐한 땅에서 주를 갈망하며,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원합니다.
그는 그의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는 인자하신 주를 찬양하며,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찬송할 것입니다.
그를 노리는 사람들은 멸망할 것이지만, 주를 따르는 그의 영혼을 주의 오른손이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주의 인자하심을 찬양함 (63:1~5)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도 하나님을 갈망하며 사모하는 자는 영혼의 만족과 기쁨을 얻습니다.
이 시편의 배경은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 도망할 때, 혹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할 때 유다 광야에서
지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윗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메마르고 황폐한 상황에서 하나님 한 분만을 갈망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가장 명확히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지만(약 4:14),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영원한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면 주님의 인자하심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비록 메마르고 황폐한 곳에 있을지라도 주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하면,
진수성찬을 먹은 것 같은 영혼의 만족을 누립니다.
- 황폐한 땅에서 주 하나님을 찾는 다윗의 마음과 태도는 어떠한가요?
주님의 인자하심이 내게는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나요?
도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함 (63:6~11)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승리하는 삶은 불가능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많은 원수와 적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 하나님의 도우심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잠잘 때도 새벽에도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하나님을 기억하고 의지하면, 전능자의 크신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원 역사는 그분을 찬양하고 더 가까이하며 따를 이유가 됩니다.
주님의 ‘오른손’은 권능, 위엄, 정의 등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따르는 사람은
능력의 하나님이 친히 호위하시기에 안전하며, 결국 반역하고 거짓말하는 악인은 패망하고 맙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영적 힘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억하고 그분을 찬양하는 데 있습니다.
- ‘주는 나의 도움’이라는 고백을 얼마나 자주 하나요?
고난의 시기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한 후 내 신앙은 어떻게 성장해 왔나요?
오늘의 기도
메마른 곳에서 은혜의 단비이신 주님을 더욱 사모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예배할 때 제 영혼을 만족시켜 주시고,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안식과 승리를 누리게 하소서.
고난에 처한 다윗이 자신을 지탱하는 신앙의 원칙을 선포하는 형식을 취한 광야에서의 노래이다.
다윗은 시편의 절반이나 기록해서 스스로 이스라엘에 노래 잘 하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형통할 때보다는 고난의 자리에서 부른 노래가 더 많다.
본문도 유다 광야에 있을 때라는 표제처럼 사울 왕에게 쫓겨다닐 때나 아들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칠 때 만든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고백처럼 주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읊조리는 가운데 그의 영혼은 샘물을 만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깊이 들어갈수록 육신의 생명을 넘어서는 영혼의 가치를 발견하고 소멸해 가는 육신 속에서도 영원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온갖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데 그런 사람이 다윗이었다.
그것을 체험한 다윗은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믿음의 눈은 육신의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마련이다.
비록 광야에서도 성소에 있는 것처럼 주님을 바라보고 메마르고 황폐한 땅에서도 샘물같은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다.
삶이 유린되고 일상이 무너진 환경일지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은 어디든 성소가 되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은 그곳에도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 하나님을 만난 다윗은 시간적으로는 평생에, 공간적으로는 성소와 침상으로 표현한 것처럼 모든 장소에서 주님을 찬양하기로 작정을 하고 있다.
인생은 고단하여 산을 넘으면 강을 만나고 강을 건너 한숨 돌리면 깊은 계곡이나 메마른 광야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고난은 돛단배에 부는 바람과 같아서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
주님이 함께 계시면 메마른 인생에도 샘물이 솟아나고 가난하고 힘든 인생길을 걸어도 감사가 넘쳐나게 된다.
그래서 다윗은 고난 당한 것이 유익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주님과 함께 승리의 꽃길을 걸어가길 소망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천지를 다스리시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우리의 심령을 가득 채우기를 소망합니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주님을 찾고, 고난 가운데 여호와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가득한 주님의 자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위에 기름 부어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주님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이 땅 가운데 전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시121: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시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요15: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눅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시 109:105~106)
로마서 8장 35절에서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라고 표현하면서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은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지만(약 4:14),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