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각박하다고들 하지만 아직 인정이라는 것이 남아 있고, 사람에게 하나님 형상의 잔영(殘像)이 있음을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일화가 있다. 지난 2000년 6월9일 오전 10시 미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 법정에서 벌어진 전경으로 워싱턴포스트지에 소개한 내용이다.
어떤 청각 장애인 부부가 아파트 월세 630달러 중 250달러를 못 냈으니 이들을 쫓아내 달라고 아파트 회사 측 변호사가 요청했다. 눈을 지긋이 감은 채 고소 내용을 듣고 있던 도널드 맥도너 판사(55)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자기 사무실로 갔다가 1분쯤 뒤에 되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빳빳한 100달러짜리 지폐 2장과 50달러 지폐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집세가 지불된 걸로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원고 측 앤드류 로렌스 변호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반면, 중년의 두 청각 장애인 부부는 기쁨에 차 손을 가슴에 가져다 댔다. 감사를 표현하는 청각 장애인 언어였다.
그러나 로렌스 변호사는 “250달러는 한달 치 밀린 집세에 불과합니다. 임차인을 내어쫓아야 합니다”라면서 판사의 중재안을 거부했다. 맥도너 판사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있더니, “나머지 집세도 내가 내겠소”라고 말하곤 그의 사무실에서 다시 얼마의 현금을 가져와 로렌스 변호사에게 전달했다. 당황한 로렌스 변호사는 정회를 요청했지만, 맥도너 판사는 심리가 끝났다고 선언해 버렸다. 그러자 법정에 다른 수임 사건으로 와 있던 4명의 변호사들이 주섬주섬 자신들의 지갑을 뒤적였다. 이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1,250달러를 모아 그 부부에게 전달했다.
루이스 스완과 데보라 모리스는 그 전 해 10월 늦깎이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결혼하면 부인인 모리스의 장애인 연금이 대폭 줄어버린다는 사실을 이들은 미처 몰랐다. 모리스의 장애인 연금은 결혼 전에는 월 500달러 정도였는데, 결혼과 함께 91달러로 줄었고 이제는 아예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그들은 같이 살면 돈을 더 절약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소위 법의 맹점(盲點)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사건을 담당했던 페어팩스 카운티의 로버트 호란 검사는, “판사가 송사를 해결하기 위해 재판정에서 자신의 개인 돈을 줬다는 얘기를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이 이야기를 그 해 6월10일 자 1면 기사로 다루면서, 맥도너 판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한사코 거부했다고 전했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신문에 싣는단 말인가’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각박한 이 세상에서 가끔 이런 소식은 우리를 다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 세상이 아직은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경전에 의하면, 태초에 세분이 인간을 빚으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셨다. 정말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인 모양이다. 누군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으랴.